00.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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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3일 목요일, 내 12번째 생일.
“우람아, 생일 축하한단다.”
“우리 아들, 소원 뭐 빌었어?”
“놀이공원!”
그때, 나는 그 철없는 소원을 빌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 그럼 이번 주말에 아빠랑 엄마랑 동생이랑 다 같이 놀이공원에 갈까?”
“오늘 안 가고?”
“오늘은 아빠가 처리해야 할 일이...”
“싫어, 갈 거야! 내 생일은 오늘이란 말이야!”
만약 그랬더라면, 아마 내 인생은 지금과 180도 달라졌겠지.
“으음, 좋아. 그럼 아예 지금 당장 갈까?”
“여보,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다고...”
“쉿, 괜찮아. 오늘은 우리 하나뿐인 아들 생일이니까... 아들? 준비됐지?”
“아싸! 놀이공원!”
그렇게 내 고집을 못이긴 부모님은, 못이기는 척 나와 6살 어린 동생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갔다.
“아니, 평일인데 차가 왜 이렇게 막혀?”
“여보, 저...저기!”
- 끄아아악!
- 사, 살려주세요!
- 괴물이다! 모두 도망쳐!!
[몬스터 웨이브 발생! 몬스터 웨이브 발생!]
[실제 상황입니다! xx지역에 계신 시민 여러분께서는 지금 즉시...]
몬스터 출현 이후 대한민국 역사상 2번째로 많은 인명피해와 사상자를 발생시킨 ‘필드’의 몬스터 웨이브 사태.
이는 정부와 협회가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필드 관리에 점차 소홀해지면서 발생된, 사상 최악의 몬스터 웨이브 사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사건이었다.
“어, 어떡하지? 여보?”
“...일단 차에서 내리자.”
“아, 알았어. 우람아, 우비야, 엄마 손 꽉 잡아.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알겠니?”
부모님은 우리 남매를 데리고 직접 두 발로 도망치는 방법을 택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곧 치명적인 패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다고. 너도 알잖아?’
만약 우리 가족이 차 안에 숨죽이고 있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참으로 의미 없고 쓸데없는 가정이지만,
여전히 나는 이 장면과 마주할 때마다 그런 의미 없는 생각을 한다.
“크윽, 당신, 먼저 가!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여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지영아. 우리, 애들은 살리자.”
“...”
부모님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우리 남매가 숨죽이고 있을 때.
키이...
명칭, 레드 맨티스.
최소 Lv.20 이상의 중하위종 몬스터.
“가! 절대 뒤를 돌아봐선 안... 커헉!”
키아아!
푹!
그 빌어먹을 놈의 앞발이, 부지불식간에 아버지의 복부를 관통했다.
“여, 여보!”
“끄으윽...! 내가 잡고 있을 테니까 빨리!”
“얘, 얘들아. 당장 뒤로 뛰어!!”
뿌려지는 핏물,
흘러내리는 내장,
꺼져가는 생명의 빛.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이었다.
“아빠! 아빠!!”
“도망쳐야해! 무조건 앞만 보고 뛰어!”
“어, 엄마...”
아버지를 부르짖는 여동생.
동생과 내 목덜미를 꽉 붙들고 뛰어가는 어머니.
‘저 한심한 놈.’
그저 패닉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병신 한 놈까지.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의 비명소리를 뒤로 한 채,
아비규환의 도로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 반대편에 헌터가 왔다!
- 그, 그럼 저쪽까지만 가면 살 수 있는 건가?
- 멈추지 말고 뛰어!
그때 들려온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
그 순간만큼은, 한줄기 희망이 비치는 것 같았다.
콰당!
“얼른 일어나!”
“엄마! 우비야!”
그러나 중간에 넘어지고만 어린 동생.
키아아악!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레드 맨티스.
“안 돼!”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순간,
어머니는 초인적인 힘으로 동생을 내게 힘껏 내던지셨다.
서걱
피슈욱!
그리고 곧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
콰드득
수십 수백 번을 마주해오고 있으나,
도무지 이 장면만큼은 마주할 자신이 없다.
콰득!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고개를 돌리고 두 눈과 귀를 막는 것뿐.
“얘, 얘들아! 얼른 이쪽으로!”
그리하면 이 지긋지긋한 악몽은,
곧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도망치는 우리 남매의 뒷모습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씨발.’
나는 그렇게 부모님의 희생을 딛고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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