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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의 모두가 원하는 세상

효자무신록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다원.
작품등록일 :
2024.06.02 22:08
최근연재일 :
2024.06.25 19:00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9,112
추천수 :
1,024
글자수 :
164,546

작성
24.06.04 14:48
조회
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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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11쪽

효자무신록-사연

DUMMY

사연




잔치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남은 멧돼지 고기는 훈제를 해서 각 집에 나눈다고 옮긴 후에 자리가 정리될 때 우수가 다가왔다.


“형님. 저랑 같이 술 한잔 더 하시죠.”

“아우의 청을 거절할 수야 있나. 가세.”


우가촌을 나온 둘은 오늘 선우상이 쪼깬 후에 꺼내 놓은 바위 조각이 있는 곳으로 갔다.

둘은 각자 가까운 돌 위에 앉았고 우수가 선우상의 술잔에 술을 따라줬다.


선우상도 술병을 들어 우수의 술잔에 술을 따라줬다.

우수는 먼저 술잔을 비우더니 입을 열었다.


“의형제를 맺었으니 아무래도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할 것 같아 이런 시간을 갖자고 청했습니다.”


선우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기가 깃든 그의 눈빛만 보아도 그는 이런 촌구석에서 살 인물이 아니었다.


“그 전에 내가 먼저 이야기해도 되겠나?”

“그러시죠.”


선우상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 자네도 짐작했을 것으로 보이네만 난 선우세가의 마지막 생존자일세.”


우수는 굳이 답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선우상이 이름을 밝혔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본가를 멸문시킨 자들은 강북칠흉이라는 자들이네.”

“들어 보았습니다. 그 일로 강북칠흉에게 정도맹의 추살령이 내려졌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촌구석에서 잘도 그런 소문을 주워 들었군.”


우수는 쓴웃음을 지은 채 답했다.


“가끔 이곳에 오는 상단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런가?”


선우상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가촌의 모든 이들이 잠든 시간. 선우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삼십 년에 걸친 추적 끝에 한 달 전 이곳에 왔을 때 복수를 마칠 수 있었네.”


우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표정이 싹 굳었다.


“하지만 강북칠흉을 죽인 이는 광혈마존이라고···.”

“그래. 내가 광혈마존일세.”


우수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광혈마존.

피에 미친 절세의 고수.


천하에 군림하는 구존을 십존으로 만든 불세출의 고수를 일컫는 이름이었다.

우수는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광혈마존은 피에 미친 살귀로 그 무위는 십존의 일인이나 두 번의 혈사를 일으켜 무림공적이 된 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말 형님이 맞으십니까?”

“맞네.”

“하지만 형님의 눈에 광기라고는 본 적이 없습니다.”


선우상은 그 말에 미소를 머금었다.


“맞네. 내가 익혔던 무공은 광혈마공이라 불리는 십대금공의 하나였네. 빠르게 강한 힘을 주지만, 내 안에 광마혼이라는 것을 키워내는 무공이었지.”


우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정말 그런 무공이 존재한단 말입니까?”

“믿지 못하겠지만, 실제로 그리하다네.”

“지금도 몸 안에 광마혼이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까?”


우수가 긴장한 것이 보였기에 선우상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떤 고승의 도움으로 광마혼은 봉인 되었고, 나는 무공을 잃었네.”

“무공을 잃으셨다고요? 하지만 멧돼지를 일격에 잡지 않으셨습니까?”


우수의 말에 선우상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동생. 내가 무공을 잃지 않았다면 멧돼지는 눈이 마주친 순간에 죽었을 걸세.”


우수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바라보기에 선우상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나는 반쪽짜리일세. 광마혼이 깨어났을 때 벌인 혈사 때문에 십존에 올랐지만, 다른 구존에 비하면 분명 부족하지. 그러나 그런 광마혼을 사용하지 않고도 멧돼지 정도는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 죽일 수 있었다네.”


광마혼이 깨어났을 때야 온전한 십존의 일인이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깨어났을 때 그에게 깨달음을 주었기에 무공은 삼십 년간 일취월장(日就月將)했다.

구존을 제외한다면 적수가 없을 정도.

그래도 반쪽짜리임은 틀림없었다.

우수는 선우상의 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공적인 광혈마존이라는 것을 밝히는 자리에서 저런 걸로 거짓말하지는 않을 터.

무림인. 그것도 그 정상을 논하는 고수들이 하늘을 날고 산을 벤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것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선우상은 말을 이었다.


“사실 휘는 내 친아들이 아니네. 강북칠흉 중 칠흉인 도하예가 어디선가 납치한 아이였네.”

“예?”

“도하예는 어렸을 적 자신의 아기를 잃고 그 또래의 아기를 훔쳐서 기르다가 정신을 차리고 때려죽이는 악녀였네. 그런 그녀를 죽이고 자진하려 했었네.”


우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보고 선우상이 말을 이었다.


“광마혼에게 몸을 빼앗기느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을 마감하려고 했지. 도하예가 죽기 전에 진짜 흉수는 따로 있다는 말을 했지만, 그 말의 진위여부를 파악할 시간조차 없었지. 그렇게 결심을 굳혔을 때 휘의 목소리를 들었네.”


당시를 떠올린 선우상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같이 살기로 했다네.”

“그럼 복수는 내려놓으신 겁니까?”


선우상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는 답했다.


“말했잖은가. 무공을 잃었다고. 강북칠흉을 움직여 선우세가를 멸문한 자가 있다면 그자는 내가 십존의 일인이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자일세.”

“하지만···.”


선우상은 홀가분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무공은 잃었지만, 흉터도 모두 사라졌지. 휘와 함께 새로 살기로 한 것을 도와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일세. 그래서 나는 휘와 함께 무림에서 떨어져 살 생각이네.”


우수는 선우상의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의 이름을 들었을 때 선우세가의 생존자 중 하나일 거라는 짐작까지는 했습니다만 제 상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는군요.”

“그랬나?”


우수가 선우상의 술잔에 술을 따라줬다.


“죄송합니다.”


선우상이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자 우수가 말을 이었다.


“소제가 주제넘었습니다. 비우란다고 비워질 일이 아니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 휘와 함께 살아가기로 하고도 복잡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서 방황했네. 비우고자 한다고 비워지는 것이 아님에도 자네 말처럼 그 일에 매몰되어 가고 있었지. 아마 자네가 말리지 않았다면 저 야산까지 모두 개간하고 말았을 걸세.”


선우상의 농담에 우수도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선우상은 우수가 따라준 술잔을 비우고는 물었다.


“그럼 이제 아우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


우수도 그 말에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히려 홀가분하네요. 형님만큼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뭐야? 놀리는 건가?”

“아닙니다.”


우수는 손에 든 술잔의 술을 훅 비우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어려서부터 책이 좋았습니다.”


선우상이 술을 홀짝이며 귀를 기울이자 우수가 마음 편히 이야기를 꺼냈다.


“입신양명하겠다고 마을을 떠났습니다. 제 능력을 떨쳐 보이고 싶었습니다. 충분히 잘할 자신도 있었습니다.”


우수의 눈에 깃든 현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저 말이 잘난 척이 아니라 정말로 그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러다 만났습니다. 소소를.”


우수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서 꿈을 포기하고 귀향한 건가?”

“예. 다만 소소의 가문은 몰락했지만, 그 명맥만은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형님 말씀처럼 하늘을 날고 산을 베는 수준의 고수는 아니지만, 뛰어난 무장을 배출한 가문. 책을 판 저는 그들의 눈에 들지 않고 저희는 야반도주했습니다.”

“하하하.”


선우상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니 우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형님. 뭐가 그리 웃긴 겁니까?”

“아우, 보기보다 용기가 대단하군.”


우수도 그 말에 마주 웃었다.


“그게 벌써 11년 전입니다.”

“설마 정이가 생겨서 도망친 건가?”

“예.”


선우상은 우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네는 처가의 허락을 받지 못해 야반도주했다는 것이군.”

“예.”

“이해했네.”


우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아이들이 무공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무공 말인가?”

“예. 훗날 처가와 만나게 된다면 아이들이 저처럼 무시받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선우상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가르쳐 주는 것은 어렵지 않네만 반쪽밖에 가르쳐 줄 수 없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지금 난 내력을 잃었네. 내력에 대해서 설명하고 알려주려면 최소한의 내력이 있어야 하는데 경맥이 찢어진 나는 더는 내력을 일으킬 수 없다네.”


선우상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반쪽이라도 배우겠다면 성심성의껏 가르치겠네. 대신 휘아가 크거든 글 좀 봐주지 않겠나?”

“그러지요. 그럼 제가 글을, 형님이 무공을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러세나.”


선우상과 우수는 서로 술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형님. 성은 우가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가로 말인가?”

“예. 이곳이 아무리 중원에서 먼 곳이라고 해도 이름을 숨기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선우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름을 되찾는 것은 나중의 일이지. 그럼 난 우상. 아들은 우휘가 되는 것인가?”


우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둘은 서로의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황금 물결을 보며 선우상은 뿌듯한 마음이 일었다.

자신의 손으로 처음으로 일궈낸 밭이었다. 비록 밀알은 빌렸다고 해도 제 손으로 키운 밀이 이만큼이나 자랐다.

선우상이 손을 내밀어 밀을 쓰다듬고 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사부님!”


선우상이 돌아보자 대제자인 우정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 우정의 손을 잡고 간신히 서 있는 것은 선우휘였다. 얼마 전에 걷기 시작한 선우휘가 우정을 또 졸랐나 보다.

선우상은 성큼성큼 걸어가 선우휘를 안아 들고는 우정을 바라보았다.


“훈련은 끝내고 나온 것이냐?”

“예. 휘가 어떻게 안 것인지 훈련이 끝나기 무섭게 졸라서 함께 왔습니다.”

“어려운 것은 없더냐?”


우정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아직은 없습니다.”

“입문이 늦어 걱정했는데 다행이구나.”


선우세가에서 무공에 입문하는 것은 네 살 무렵이다. 열 살이라면 한참 늦은 것이기는 했지만, 선우상은 이곳이 선우세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선우세가에서 지낼 때는 다른 이들과 비교되어 앞서 나가기 위해 매일 같이 무공에 매진했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제 한 몸 지키고, 나아가 가족을 지킬 수준이면 됐다.


“그럼 들어가 보아라. 휘는 내가 보마.”

“예. 사부님. 제자 물러나겠습니다.”


우정이 물러나자 선우상은 선우휘를 안아 든 채 밀밭을 보며 말했다.


“어떠냐? 이 애비가 직접 땅을 갈고 심어서 키운 밀이다.”

“아빠. 대다내.”


선우상은 놀란 얼굴로 선우휘를 바라보았다.


“대다내!”


선우휘가 눈웃음을 지은 채 손뼉을 치며 하는 말에 선우상은 흐뭇하게 웃었다.


“요 녀석. 신동이구나. 벌써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녀석이 벌써 이 정도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선우상이 칭찬하며 그 턱을 긁어주자 선우휘가 꺄르륵 웃었다.

선우상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주 미소를 짓고는 다시 밀밭으로 시선을 주었다.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비워지고 있다.


작가의말

연재 시간은 불규칙할 것 같습니다!

분량이 쌓이는 대로 계속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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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효자무신록-살자 +4 24.06.02 1,559 4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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