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판타지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귀금속은 아마도 '미스릴'일 것입니다. 대체로 굉장히 값지고,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궁극의 금속 정도의 느낌으로 등장하죠.
그외에 자주 등장하진 않지만 대표적인 귀금속을 들어보자면 '오리하르콘'과 '아다만티움'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미스릴, 오르하르콘, 아다만티움 해서 귀금속 3대장이랄까요.
하지만 원칙적으로 따져보면, 이중에서 써도 되는 것과 써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오리하르콘은 써도 좋습니다.
오르하르콘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책에서 나온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오크나, 고블린, 혹은 트롤처럼 신화나 전설, 민담수준정도로 취급할수 있다 라는 것이죠.
두번째로, 아다만티움은 써도 큰탈은 없겠지만, 조금 애매합니다.
아다만티움은 부셔지지 않는다는 뜻의 그리스어 '아다마스'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 미국의 만화작가가 만든 단어라는 설도 있고. 그 이전에 실제 영어에도 '아다만트(adamant)'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렇듯 아다만티움의 어원은 정확하지가 않고, 애초에 현대영어에 존재하는 단어에 ium을 붙여 금속으로 바꾼거라도 봐도 좋으니까 말이죠.
세번째로, 미스릴은 쓰면 안됩니다.
미스릴이란 말을 만든 사람은 반지의제왕을 집필한 톨킨으로, 애초에 미스릴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으며 톨킨의 순수한 창작품입니다. 그리고 톨킨의 세계관에서 모티브를 따온 던전앤드래곤즈라는 유명한 TRPG(테이블 토크 롤플레잉 게임)를 만든 회사에서 저작권 등록을 해놨습니다. 엄연히 저작권이 있는 단어라는 뜻이죠.
영어 스팰링을 바꾼다든지, 발음을 바꾼다든지("내소설에 등장하는 금속은 '미스릴'이 아니라 '미쓰릴'이야!" 라든지 말이죠.)하는 잔머리를 굴릴 여지는 있지만, 애초에 이런짓은 창작자로서 부끄럽고, 굉장히 덜떨어진 짓입니다.
미스릴이라는 단어가 한국 장르소설에서 가장 즐겨 쓰이게된 배경은, 아마도 초기 판타지소설작가들중 상당수가 앞서언급한 TRPG 던전앤드래곤즈를 즐기던 사람이었기 때문일것입니다. 당시 그들이 글을 쓸땐 딱히 책을 출판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즐기자는 의미였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설정(엄연히 상용인 설정을)을 가져다 쓴 것이겠죠.
혹자는 미스릴이란 단어가 하도 널리 쓰여서 이미 공공재적인 성격을 확보했다는 드립을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건 중국인들이 자기나라에서 짝퉁제품 찍어내는 범죄를, 산자이문화네 뭐네 하면서 옹호하는 짓이나 같은 레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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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서 이건 좀 쓸데없는 사족이긴 합니다만.
'진은(眞銀)'이라는 표현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일어식표현입니다. 한국어에는 '진은'이나 일본쪽 만화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진명(眞名)'같은 표현이 없습니다.
종종 일본쪽의 라이트노벨이나, 만화같은 것들을 많이 접한 분들이 범하기 쉬운 착각중 하나로,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자나 단어를 일본어식으로 조합하는 경우입니다. 따로 따로 떼어놓고 보면 한국어가 맞지만, 합쳐놓으면 사실상 일본어나 마찬가지인거죠. 이것에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그럴싸해보이고 뭔가 멋있어보이는 이유는 사실상 일본문화에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부분은 앞서 '쓸데없는 사족'이라고 표현했듯이, 외래어의 남용은 그다지 좋지 못한 버릇이지만, 그렇다고 외래어자체가 무조건 나쁜것은 아닙니다. 이런 경우에는 글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라든지, 용어의 풍부성이나 함축성, 혹은 용어선택의 편의성을 위해서 충분히 사용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은'이란 단어나 기타 일어식 표현을 써서는 안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하고싶은 말은, 만약 이러한 일어식표현을 골라 쓸 때, 그것이 결국 일본문화에서 온것이란걸 몰라선 안되겠다 라는 정도지요.
가끔보면 영어를 대표로한 서구권 용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면서, 일본쪽 용어를 쓰면 무작정 테클을 거는 경우도 있으니 이런 것은 미리 알아두시는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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