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쓰러진 이후 위의 성세는 확정적인 것으로 보였다. 촉의 대권은 장완과 강유에게로 분할되어 승계되었고, 주전파인 강유의 목소리는 작아질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오는 번번히 합비의 벽을 넘지 못하였으며 내부에서는 점차적으로 균열의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위에게는 지대한 위협을 끼칠 여유가 없었다. 즉위 이래 수차례에 걸친 북벌로 마음 졸여야 했던 황제 조예 이하 위의 사람들은 이제 베개를 높이하고 잠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서기 229년, 제갈량이 뿌려둔 씨앗은 북방에서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한무제 이후 거듭된 교전과 패배, 균열로 쇠약해져 쇠퇴일로를 걷고 있던 북흉노는 선우의 결단으로 서쪽으로의 이주를 결단, 철마다 게르를 서쪽으로 옮겨지으며 수세대에 걸친 대이주를 감행하고 있었다. 그 마지막에 남은 것이 좌현왕, 그에게 원교근공책의 일환으로 정서대장군 마대가 방문한 것도 그 즈음의 일이었다. 좌현왕은 마대의 요청에 호응하여 발목을 잡고 있던 남흉노의 선우를 기습하여 베고 남하, 서량까지 내려왔다. 이들은 붉은 이리를 시조로 삼은 씨족을 모태로 하여 붉은 이리의 씨족으로 불렸다.
서기 235년. 제갈량의 사망으로 평온해진 국경으로 당해년도의 시작을 기록하는 후한서, 삼국지 등의 사서에는 [촉의 움직임에 호응하여 북적들이 일부 남하하여 국경을 어지럽히다]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민담과 저자 불명의 야사에서는 그 기록을 좀 더 세밀하게 적고 있다. 이 이야기는 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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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이야기입니다. 제갈량 사후의 삼국정세를 북흉노의 일파가 참전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써내려간 글이지요. 배경/인물 외에는 완전한 IF시나리오로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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