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왜 연재를 하는지 이해를 못하시겠다고 하니,
작가와 독자라는 신분을 벗어나서 시장 논리만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장르소설 시장에 소비자(독자)가 있고, 생산자(작가와 출판사)가 있습니다.
생산자, 작가와 출판사는 한 쪽은 소프트웨어를 생산하고, 다른 한쪽은 그것을 상품화하고 데코레이션 하고, 포장하여 시장에 출시하는 하드웨어를 담당합니다.
분명히 그런 시장으로 움직이고 있으므로,
구차하게 작가가 먹고 살기 힘들다, 연재하면 안 사 본다 하는 등의 이야기는 할 필요 없고,
전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입장에서 시장을 바라 보죠.
I 시장 분석.
1. 시장의 이해.
지금의 장르문학 출판 시장은 무협, 판타지, 로맨스 등을 통틀어서 하루에도 십여 종 이상의 책, 권으로는 수십권의 책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실정이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고르기에는 충분한 정보가 부족한 거의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설마 이것조차 부정하지는 않겠지요.
아무리 무협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책은 여러번 대여해서 보신다 할 지라도,
모든 책을 다 보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며, 최소한도로 시장에 나오는 모든 장르소설의 제목이라도 다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60여개의 출판사들이 하나같이 권당 8천원이라는 가격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시장 가격이 8천원으로 균형을 잡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출판사가 거의 매 달 새로 생기는가 하면, 또 퇴출되는 출판사도 있다는 사실에서
정말 경제학에서 이야기 하는 완전경쟁시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II. 생산자 활동
2. 시장에서의 생산자의 선택.
생산자이던 소비자이던 시장의 경제주체로서 행위는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이익의 극대화 입니다.
그것이 생산자의 입장에서 먼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행위를 알아보겠습니다.
출판시장에서 모든 생산자는 같은 가격을 가진 제품을 출하하고 있으므로,
결국 동등한 또는 대동소이한 생산비용이 소요된다고 할 수 있고,
그렇게 볼 때, 생산자의 이익의 극대화는 결국, 그리고 오로지 최대의 판매, 매출의 극대화로 귀결됩니다.
딱히 시장의 크기를 크게 한다거나, 시장의 질을 업그레이드 한다거나, 시장가격을 올린다거나 하는 복잡한 시장 자체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생산자는 오로지 많이 팔아서 돈 많이 버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작가, 출판사가 아니라도 먹고 사는 모든 사람들의 목표일테니까요.
3. 많이 팔기 위한 생산자의 마케팅 활동.
그럼, 시장 사람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가끔 가는 진짜 시장, 성남의 모란시장, 노량진의 수산시장,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신림동의 돼지목살골목과 곱창빌딩 등에서 자기 가게로 오라고 호객행위하는 것이 잘못되었나요?
노량진 수산시장의 수천 개의 가게에서 모두 자신만의 특색있는 상품을 파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똑같은 물건을 똑같은 가격에 팔고 있습니다.
신림동의 7층(맞나? 에혀 기억이....)짜리 곱창빌딩도 일층에서 꼭대기까지 한 층에 수십개의 가게, 합 오백여개의 가게들이 있는데, 모든 메뉴가 곱창볶음입니다.
서로 자기 가게에 오라고 하는 것이 잘못되었을까요?
모두가 이윤의 극대화, 매출의 극대화를 위해 벌이는 적극적인 마케팅의 일종일 뿐입니다.
다른 곳을 보죠.
대형 마트를 가면, 판촉 행사를 갖습니다.
햄의 경우, 손님들에게 맛보기로 밥을 싸서 주기도 하고, 치즈는 빵에 발라 주기도 하고, 술은 컵에 따라 주기도 합니다.
라면의 경우, 묶음으로 사면 놀랍게도 가격할인까지 해 주기도 합니다.
하다 못해 전체 시장에 출하되는 제품이 3,4가지 밖에 안 되는 고급 승용차의 경우에는 그 속에서도 매출의 극대화를 위해 광고를 합니다.
생산자로서 많이 팔기 위한 활동은 너무도 정당한 것입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타 상품과의 차별적인 홍보전략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상품이 백 종도 안 되는 자동차 광고 시장이 일년 50억에서 200억 시장으로 커질 정도로 홍보와 차별화 광고는 중요한 마케팅 활동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부정하지 못하시겠죠?
4. 차별화 광고 마케팅의 방법.
비슷한 수많은 제품 중에서 더 많이 팔기 위해서는 분명히
다른 제품보다는 월등하다는 비교우위를 소비자에게 알려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수동적으로 소비자가 자신의 상품을 선택해 주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 남들이 광고 하는데, 나도 그 정도는 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월등한 품질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진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81년에 나온 "콩고기" 라는 제품도 그 중 하나일 것이고, 스티브잡스가 만들었다가 쪽박 찼던 넥스트스텝이라는 OS도 그 중 하나일 것이며, 게임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았던 아미가 컴퓨터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생산자로서 광고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오히려 광고 없이 성공한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생산자는 자신의 상품을 가장 적절히 광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음식의 경우 직접 먹어보는 것 이상의 방법이 없을 것이고,
자동차의 경우 시승해 보는 것 이상이 없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모 자동차 업계에서는 일 년간 타보고 결정하라고 할 정도입니다.
농약과 비료, 사료등은 시범포라고 지정해서 소비자(농민)에게 직접 써 보라고 갖다 줍니다.
이미 직접적인 체험소비 마케팅은 우리에게 일상화 되어 있습니다.
시식코너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십니까?
그 보다 더 강하게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시다면 좀 알려 주십시오.
해 보게 말입니다.
5. 출판시장에서의 차별화 마케팅.
출판시장도 광고 합니다.
책 표지 안쪽에 날개 간지에서 차기작을 광고 하고,
책 뒷표지에 책에 대한 간단한 서평이나, 줄거리 등을 광고합니다.
때로 기대작의 경우는 신문광고까지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상적인 광고일 뿐이지, 가장 직접적인 효과를 갖고 있는 체험소비 마케팅이 아닙니다.
즉, 출판시장이라는 성격 상,
창작물을 읽어보라는 것이 가장 적극적인 마케팅이 될 것입니다.
식품, 자동차, 생활용품 등 다른 상품은 다 되지만
출판시장과 장르문학 시장만은 적용할 수 없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이해 부족입니다.
아니, 이해부족이 아니라, 이해를 하지 않겠다는 오기일 뿐입니다.
6. 출판시장에서의 생산자의 선택. 홍보 전략.
마찬가지로 생산자는 많은 소비자들이 모이는 곳에서 자신의 상품을 광고하고,
체험소비 마케팅을 합니다.
왜 굳이 대형마트에는 맛보기 행사가 있고, 왜 자동차 전시회를 가면, 자동차 소비용품의 판촉 행사가 열리겠습니까.
시장에는 생산자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함께 있고,
그 곳에 가면 생산자는 소비자를, 그리고 소비자는 생산자를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작가와 출판사는 독자가 많은 곳을 찾아가서,
자신의 창작물과 자사의 출판물을 광고하는 게 정상입니다.
역으로 독자는 많은 작가들의 창작물들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몰립니다.
그곳이 고!무림이고, 여타 인터넷 소설 사이트 입니다.
작가가 그 곳에서 자기 창작물을 홍보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입니까?
고!무림은 이미 훌륭한 소비자들의 모임의 장소이고,
그곳에서 작가, 생산자의 자신의 상품 홍보는 정당한 것입니다.
더욱이, 고!무림의 의미가 작가(생산자)와 독자(소비자)의 만남의 장으로서의 역할이기에
작가의 창작물 홍보가 없는 고!무림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베이에서 무협을 찾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은 그런 상품을 취급하는 곳이 아니니까요.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어디에서 쌀 파냐고 묻습니까? 당신을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고!무림에서 연재물을 찾고, 좋은 창작물의 정보를 묻듯이,
작가가 고!무림에서 자신의 창작물을 소개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이 바로 생산자의 홍보활동이고, 최고의 마케팅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7. 출판시장 상품의 특성. 체험소비 마케팅의 적용.
그럼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체험소비 마케팅의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먹는 것은 먹어보는 것이고, 입는 것은 입어보는 것이고, 타는 것은 타 보는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 했듯이 일년이 지나면 중고로 가격이 절반 가까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모 자동차 회사는 타 보라고 합니다.
그럼 작가는 어떻게 광고를 하는 것이 최적의 마케팅입니까?
읽는 것은 읽어보라고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의 연재가 잘못이란 말입니까?
이 순간 당신은 그렇게 이야기 하실 것입니다.
"연재가 잘못이 아니라, 연재 하다가 종료하는 것이 잘못이다."
그럼 그것은 분명히, 연재는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는 말입니다.
연재는 절대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산자인 작가로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으로서 연재는 훌륭한 마케팅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특히 다른 상품(치즈, 햄, 음료, 주류 등) 아주 소량의 것으로 체험이 제대로 될 수 없는
소설의 경우, 그 체험소비는 양이 커질수 밖에 없을 것이고,
생산자는 적절한 체험소비의 양을 정할 것입니다. (오죽하면 자동차가 일년일까!)
분명히 연재가 잘못이 아니라면, 연재가 광고라는 것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III.소비자 활동.
8. 완전경쟁시장에서의 소비자활동
대동소이한 수많은 상품이 출하되는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선호하는 상품이 있는 경우, 그 상품을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경우와,
선호하는 상품이 없는 경우, 여러 가지 새로운 상품을 번갈아가면서 소비하는 경우.
또한 소비자의 선택의 경우 우선도를 확인해 보면,
대부분, 선호하는 상품을 소비하거나,
귀에 익거나 낯익은 제품을 선택합니다.
소비한 적도 없음에도 귀에 익거나 낯익은 제품을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광고의 효과입니다.
9. 출판시장에서의 소비자(독자)의 선택
당신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선호하는 작가가 있고, 그 작가의 작품의 경우 수 차례 반복해서 보기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외의 경우 독자는 어떻게 책을 집어들겠습니까?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창작물에 손이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한 좀 더 눈에 익은 책에 손이 갈 것이고,
그보다 더욱 적극적인 경우.
재미있게 보던 책을 기다리고, 그 책을 빌려 보거나, 그 책을 삽니다.
너무도 당연한 경제활동입니다.
재미있게 보던....
어디에서 재미있게 보던 책입니까?
출간되지 않았던 책이라면? 당연히 연재되던 책입니다.
이미 여러분 스스로가 연재의 효과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재미 있으면 사 보거나, 빌려 보거나!
IV. 경제 주체로서의 당연한 선택. 이윤추구!
10. 생산자의 목적은 광고가 아니라, 판매.
광고는 생산자의 목적이 아닙니다.
모든 경제활동의 목적은 이윤추구이고,
생산자의 경우는 판매가 목적입니다. 광고는 판매를 위한 수단에 불과 합니다.
즉, 상품과 도우미를 고용해서 맛보기 행사를 갖는 이유는
오로지 더 많이 알려서 더 많은 제품을 팔기 위함입니다.
11. 생산자, 작가로서의 당연한 선택. 연종.
작가와 출판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는 책을 많이 파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돈 많이 버는 것이 목표이고,
궁극적으로는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대박 나는 것이 목표 입니다.
광고는 수단이고, 광고에서 수입이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결코 광고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연재는 작가의 수단일 뿐이지, 연재로 작가에게 수입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연재와 광고가 수입을 갈아먹는다면, 더 광고하겠습니까?
생산자의 이윤추구가 당연하다면,
작가가 책을 홍보(연재)하고,
적정한 때 즉 광고(연재)가 더 이상의 판촉 효과를 가져오지 못할 때
광고를 중단하는 것(연종)은 너무도 당연한 경제 행위입니다.
2004년, 올해에 윈도우즈98을 광고하는 것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지금은 팔지도 않는 물건인데, 효과도 없는 광고를 왜 합니까!
다른 예로 요 근래 삼다수 광고 보셨습니까?
갖다 놓으면 동이 나는데, 무엇하러 광고합니까?
당신은 대형 마트에서 맛보기를 배터지게 주는 경우를 보셨습니까?
맛만 보여 줍니다. 그게 맛보기 입니다. 배가 부르면 누가 그 음식을 사겠습니까!
당신은 맛보기 행사에서 더 안 준다고 불만을 터뜨려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매우 배가 고팠거나, 아니면 맛보기를 탑골공원의 걸식 봉사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작가가 연종한다고 불만을 하십니까?
일 년짜리 모 자동차 타기 행사에서 그 차를 영구히 주지 않는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연재/광고를 하는 것이 작가/생산자의 권리였다면, 연종/광고 종료를 하는 것도 당연히 작가와 생산자의 권리입니다.
12. 소비자의 권리- 선택.
맛보기 행사를 지나갔습니다.
맛을 봤습니다.
맛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소비자는 그냥 등을 돌리고 갑니다.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하는 생산자는 없습니다.
맛보기 행사를 개최하고 닫는 것은 생산자의 권리이지만, 맛보기를 참여하고,
제품을 고르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몰지각한 손님의 경우 굽는대로 집어먹고는 그대로 돌아서서 가 버립니다.
고기 굽던 도우미는 속으로는 욕할 지 몰라도, 겉으로는 아무 말 안 합니다.
사고 안사고는 소비자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몰상식하다고 욕할 뿐이지요.
마찬가지 입니다.
또, 설문조사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가도,
상품으로 나와서는 실패하고 보름만에 철수한 상품도 있습니다.
말씀 못 드리지만, 제가 연구원일 때 저희 회사 제품 중 그런 물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문조사에 응했던 소비자를 거짓말 했다고 욕하지는 않았습니다.
시장 조사를 잘못하고, 시장 적응에 실패한 것을 탓할 뿐입니다.
출판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연재할 때는 열심히 보고, 클릭 수가 엄청나다가도,
막상 상품으로 나와서 흥행에 참패할 수도 있습니다.
속으로는 "인터넷에서는 열심히 읽던 독자가 책으로는 안 본다"고 욕할 지 모르지만,
대놓고 "아무개씨 왜 안 사 보십니까?" 하지는 않습니다.
선택, 초이스는 독자의 몫이고, 그것은 독자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생산자/작가는 소비자/독자에게 충성과 책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역 침범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은 오로지 독자의 몫입니다.
연재작이 재미 있으면 읽으시고, 재미 없으면 안 보면 그만입니다.
연종된 창작물이 재미 있었으면, 아마도 그 뒤로는 사거나 빌려서 보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고 마찬가지로
독자에게 연종했다고 작가에게 뭐라고 할 권리는 없다고 봅니다.
연재를 하건, 연재를 안 하건, 연종을 하건, 연중을 하건, 그것은 작가의 몫입니다.
V. 첨언. 선호받는 제품생산자로서 전문작가의 선택-연재. 연재로부터 얻는 것.
13.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선호받는 작가의 특징은 무엇이겠습니까?
양질의 상품을 출하한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이름만 듣고도, 또는 출판사의 이름만 보고 책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경우 양질의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좀 더 좋은 퀄리티의 완성품을 위해 여러 사람에게 시연해 봅니다.
때로는 극소수의 독자에게 모니터링을 하기도 하고,
가장 쉬운 방법으로 연재를 통해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갖습니다.
그래서 얻는 가장 큰 수확은 오타 교정이고,
작은 수확은 논리적 모순과 오류의 수정이며,
가장 작은 수확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아이템 & 모티브를 얻는 것입니다.
제가 선호받는 제품생산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또 제가 전문작가라는 소리도 아닙니다.
누차 이야기 드렸습니다만, 저는 아직 저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겨우 텍스트 엔터테이너라고 표현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이름을 달고 나오는 창작물의 품질을 위하여
많은 독자들로부터의 이야기에 귀를 열어놓고,
그들의 멘트에 감사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결코 잔머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과 창작물의 품질을 위한 노력과 과정이지,
결코 웃기는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독자와 가까워지려는 제 노력이 독자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독자로부터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연재에 목매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제 창작물에 관하여 연종은 저의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제 권리 행사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그동안 누차 이야기 하신 다른 분들의 논의 즉,
시장 상황, 출판사의 종용, 신인작가의 등용문으로서의 가치 등등을 전혀 배제하고
연종은 당연한 선택이라는 제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이야기가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제 창작물은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창작물은 "그처럼 이해력이 짧은 분들이 읽기에는 설명이 부족하고 난해한" 졸작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을 일일이 이해시키기 보다는 차라리 제 설명력의 부조과 무능을 탓하겠습니다.
이 파란 색에 가는 글씨글은 그런 분들의 무능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남의 소리를 듣지 않는 닫힌 귀에 해한 비난임을 말씀드립니다.
참고로, 어느 분께서
"많은 독자분들도 저를 비판하시고 작가님들도 비난하시고..."라고 하셨는데,
화면을 들여다 보니, 이 주제로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작가가 금강님과 박현님과 저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금강님과 박현님은 되도록 부드럽게 말씀하셨으니, 작가는 저 밖에 없고....
작가님들이라는 말씀은 틀린 것 같습니다.
별도이지, 별도들 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더불어 제가 연종 발표를 하면서 한 문장을 볼 때,
제가 사용한 비꼬는 어투로 보이는 문장은 모두, 그 분이 작가에게 한 말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참고로 그 글의 제목은 "연재작가님들의 무책임에 대하여..."입니다. 점이 정확히 세개입니다.
그러므로, 그 글은 연재작가에게 하신 글이 분명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6160번의 제 글이 비난 성 글이라면,
제가 그 분을 비난 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작가를 비난한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는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확인을 원하시는 분에게 그 분의 원문과 시간까지 기록된 스크린 파일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상, 열 받으면 이상하게 냉정해지는 별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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