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일님이 모 사이트에 쓰신 글 입니다.
공감되는 내용이라 퍼옵니다.
(거기 홈페이지 게시판 내용 불펌 장치돼 있다고 하는데,
저는 거기도 그렇고 여기 고무림도 펌 되던데요...왜 되는지는 알수가 없지만....
물론 연재소설을 펌 해본 적은 없습니다. 앞으로 안할거구요. )
이하 원문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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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님의 방식을 변형 차용합니다. 토막내어 쓰시는 게 무척 편해 보였습니다.^^
- 아실 만한 분들은 다 아실 무협 사이트에 갔습니다. 종종 찾는 곳입니다. 요즘처럼 출간 즈음해서는 더욱. 제 이름이 적시된 제목이(조금 자극적이었습니다.) 눈에 띄기에 클릭했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과분한 칭찬을 주셨더군요. 맛있는 것을 아껴 먹는 심정으로 제 책이 완간되기를 기다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완간된 뒤 전권 구입해주시는 것이 글을 쓴 제게 대한 최대한의 성의 표현이라고 덧붙이시면서요. 황송한 말씀입니다.
- 다른 사이트에서 본 칭찬을 굳이 이곳까지 옮김으로써 스스로 얼굴에 금칠할 만큼 용감한 놈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서두를 이렇게 꺼낸 이유는 그 황송한 글을 읽는 제 마음이 그다지 밝지 못한 때문입니다.
- 언제부턴가 무협 출간의 추세가 5권 이상 장편으로 치우치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쟁선계를 출간함으로써 그 추세에 일조했군요. 묘왕동주를 출간한 90년대 후반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4권도 많아 3권으로 줄이라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은 시기였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고착되어 있던 시장이, 판타지의 등장과 몇몇 초기 장편 무협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급속도로 변화, 이젠 3권 분량은 어느 출판사도 내켜하지 않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례로 지금은 이 바닥을 떠났지만 과거 작업실을 함께 쓰던 형님 한 분이 이미 완결된 3권짜리 이야기를 출판사의 요구로(계약 조건으로 알고 있습니다.) 5권으로 늘려 출간한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습니다.
- 출판 관계자 분의 말을 들어보면 3, 4권짜리를 기피하는 이유도 납득이 갑니다. 그런 물건을 대여점으로 내보내면 한두 달 돌리다 반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반품을 막을 요량으로 출간 주기를 조절하는 둥 여러 방법을 강구해 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게 그 분들의 중론입니다. 결국 현 시장의 주 소비자인 대여점이 장편화를 초래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물론 대여점을 탓할 의도는 없습니다. 시장 구성원 중 어느 한 곳을 지목해 탓하기엔 다들 너무 수동적이고 너무 영세합니다.
- 장편화의 다른 이유는 제작자인 작가층의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생각이 정리되기 전까지 언급을 삼가겠습니다.
- 각설하고, 저 같은 느림보에겐 현 시장이 참 난감합니다. 계약을 하고, 원고를 탈고한 뒤(쟁선계 출간 후 종종 쓰는 '권 탈고'라는 말이 우습기만 합니다), 출판사에 넘겨, 남은 인세를 받는다. 물론 운용의 변화는 줄 수 있겠지만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작가의 생계유지입니다. 그런데 5권 이상의 장편만 통하는 시장이라면 이게 통하지 않게 됩니다. 저 같은 느림보 뿐 아닌, 웬만큼 손이 빠른 작가라도 장롱에 금송아지라도 몇 마리 숨겨놓지 않은 바에야 오랜 기간을 소액의 계약금만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겁니다.
- 현 시장에서 거의 대부분의 작가는 글쓰기와 벌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합니다. 출판사로부터 계약금 이외에도 짬짬이 고료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 출판사라고 금송아지 숨겨놓았을 리 없겠지요. 설령 숨겨놓았다고 해도 작가 줄 이유는 없습니다. 결국 출판사는 전권 입고가 끝나기 전 앞권부터 출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수금한 돈으로 작가에게 고료를 지불합니다.
- 원고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책이 시장에 나가면 뒷권은 어쩔 수 없이 앞권의 반응에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장편일수록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조기 종결되는 작품이 나오게 되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나옵니다. 시장 반응을 살피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오직 그것만이 출간을 좌우하는 요인이 될 때, 그 시장은 풍성함을 잃게 될 것입니다.
- 요점을 놔두고 빙 돌았습니다. 작가가 아니면 별로 관심 없는 글인 줄은 알지만 넋두리하는 기분으로 써보았습니다.
- 쟁선계를 아끼시는 독자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완간된 뒤 구입할 의향이 있다면 지금 구입해 주십시오. 완간된 뒤 빌리실 의향이 있다면 지금 빌려 주십시오. 구입하면 어쩔 수 없이 읽으시게 되겠지요. 빌려도 분명 그럴 겁니다. 한 이야기를 토막토막 끊어 읽을 때의 찜찜함에 대해선 십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모든 분들이 그 찜찜함을 이유로 어떤 장편물의 완간을 그저 기다리시기만 한다면, 그 장편물은 영영 완간되지 못하거나, 최소한 작가가 의도한 대로는 완간되지 못할 겁니다.
- 출판사로부터 들리는 소식이 좋으면 쓰는 이는 힘이 납니다. 다음 쇄에 들어갔다는 말처럼 작가를 신나게 만드는 게 또 있을까요? 경제적인 넉넉함이 더해진다고 쓰던 글 팽개치고 쿠르즈 여행을 떠나진 않을 겁니다.
- 쓰고 나니 요점이 구걸인지 협박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군요. 부끄럽습니다.
돈수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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