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이 욕을 많이 먹는 글이지만 무료로 풀린 시점에서, 특히 도입부라 할 수 있는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다시 재밌게 읽게 되고,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묵향을 접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거의 초기부터 읽었던 것 같고 (80년대 중후반부터 무협지를 읽었으니) 지금은 클리셰처럼 쓰이는 여러 설정들이 당시만 해도 신선한 편에 속했기에 재밌게 읽었었죠. 또 지금처럼 인터넷보다는 대여점에서 보던 시대기에 다른 독자들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읽지를 않다 보니 조금 더 관대했던 점과, 잠깐잠깐 스마트폰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과자와 음료를 옆에 두고 뒹굴거리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것 등이 기여해서 지금 작품들에 비해 더 좋은 추억으로 남았나 싶기도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꼭 그렇지도 않더군요.
글 자체의 질이 요즘 나오는 글들의 평균은 충분히 상회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한번 편집을 거친 글, 그것도 어느 정도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쓰던 시절의 글이라 요즘 글에 난무하는 오타와 맞춤법 오류가 상당히 적다는 것도 크게 작용을 하고요. 이 부분을 요즘 글 작가님들이 너무 경시하는데 매번 얘기하지만 글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아무리 얘기해도 부족하지 않다 생각합니다. 면접으로 비유하자면 일부는 맞춤법은 그냥 정장이냐 아니냐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데 (그것도 나름 착각이라면 착각이지만) 실제로는 깨끗한 옷이냐 아니냐도 넘어선 ‘말을 제대로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 수준이라 제가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면접’을 한다면 묵향은 깨끗한 정장을 입고 또렷하게 말을 하는 지원자고, 오탈자가 많은 글은 늦잠 자다가 허겁지겁 와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하지만 가끔 가능성은 보이는?) 지원자 정도일까요. 출판사 입장에서야 본판만 괜찮으면 나머지는 관리가 가능하니까 그런 부분에 관대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같은 월급 주는 것, 조금이라도 손이 덜가는 사람에게 주는게 인지상정이고요. 뭐 20:80 비유가 들어맞을 정도로 다수의 작품을 유료로 본다면야 또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요.
물론 글이라는 것이 면접과는 많이 다르긴 합니다. 하지만 자전적이기도 하며 작가의 중2병이 영감이 되는 우리나라식 판무의 경우 작가에 대한 평가는 작품의 질과는 별개로 또 작품에 큰 영향을 주고, 면접과 유사한 느낌으로 작품을 매개로 작가와 소통하는 느낌이 강하죠. 그리고 그만큼 악평도 영향을 많이 끼칩니다. 유료화 이후 안따라가서 모르겠지만 약먹은 인삼님 등 많은 스타무료작가의 작품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더군요. 다시 면접 얘기로 돌아가면 정장은 입고 말도 잘하는데... 거만하다거나, 시간 약속을 안지킨다던가?
묵향을 예로 들어 얘기를 꺼내기는 했지만 (한담규정?), 앞으로의 전개를 알고 있는 시점에서도 흡입력이 있는 글을 보는 것이 오랜만이라 즐겁기도 하고, 십여년이 지난 것 같은데 전반적인 글의 수준이 올라가는 대신 우리나라 가요계처럼 그냥 유행만 타는 요즘의 글들을 보면 좀 아쉽기도 하고 그렇네요. 물론 냉정하게 보자면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수작의 비율이 낮아진 것 뿐, 수는 오히려 지금이 더 많을 수도 있으니 그냥 전형적인 꼰대시점이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다시 묵향으로 돌아가자면 여러모로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비뢰도와 함께 거의 막나가는 주인공의 시효격으로 생각되는 작품이고 그런 면에서 참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으면서 그에 걸맞은 재미도 있었던 작품들인데. 물론 유료화가 되는 시점에 뒤도 안돌아보고 선삭을 하기는 하겠지만 이런 마음이 드는 것도 참 안타깝고... 재게시를 계기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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