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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사람 님의 서재입니다.

대환장 길운 선협전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탁목조
작품등록일 :
2022.06.18 23:43
최근연재일 :
2022.07.15 21:20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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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417

작성
22.07.1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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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9화 길운은 모르는 대길이 있었다

DUMMY

29화 길운은 모르는 대길이 있었다








“다녀왔느냐?”

“네, 가주님.”

“북천의 고곤이 다녀갔느니.”

“그렇습니까.”

“고곤이 지켜보고 있으니 삼약문의 일도 그리 할 수밖에 없었지. 고곤의 눈앞에서 벽가가 하찮은 욕심을 부릴 수는 없지 않느냐.”

“물론입니다.”


삼약문에 다녀온 벽가의 영체기 수사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일이 그렇게 되었던 것이니 그 성단기의 아이에게 화신기 승경단을 쥐어 준 것도 이해가 되었다.


“자고로 수사란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떳떳하지 못한 상태로 인계를 떠나 영계에 오른다면 어찌 되겠느냐.”


벽가의 태상가주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었다.

이에 영체기 수사는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물러나왔다.

그런데 그런 그의 뇌리로 태상가주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 이제 그 일은 내 손을 떠난 것이니, 이후의 일은 네가 알아서 하거라.


그 말에 영체기 수사는 잠시 멈칫 했지만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보폭을 넓혔다.

태상가주의 언질은 다른 의미가 아니었다.

화신기 승경단이나 삼약문에 대한 일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는 말은, 그에게 자유를 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 그가 나서서 대길운이라 했던 그 성단기 어린 놈의 손에서 승경단을 빼앗아 온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대놓고 벽가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는 없지만, 관심을 끊고 모른척 할 필요가 없다니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암묵적인 허락을 받았으니 발걸음에 기운이 실리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의기양양도 며칠 후, 길운이 화신기 승경단을 삼약문에 바쳤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수그러들고 말았다.

길운에게 화신기 승경단이 있다면 어떻게든 빼앗을 방도를 만들 수 있겠지만, 삼약문은 벽가의 보호를 받는 곳.

그런 삼약문을 상대로 수작질을 부리는 것은 영체기 수사인 그의 역량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결국 화신기 승경단 한 알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북천의 고곤께서 오신 것도 그렇고, 승경단을 삼약문에 내어 준 것도 그렇고. 그 놈, 운이 좋구나. 이름이 제 값을 하는 놈이야.”


결국 깊은 한숨과 함께 승경단을 포기하게 된 벽가의 영체기 수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상황이 이리 돌아간 속내는 삼약문에 머무는 길운으로선 전혀 알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저 북천의 지배자인 고곤의 등장이라는 우연과 승경단을 포기한 길운의 약삭빠름이 만들어낸 대길운이 길운에게 닿았을 뿐.


* * *


“떠난다고?”


기해전이 문주전으로 찾아온 길운을 보며 물었다.


“승경단 연단도 끝난 마당이니, 이제 제 갈 길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길운이 활기찬 음성으로 대답했다.


“영체기 승경단 세 알을 받더니 곧바로 작별을 고하는구나.”


기해전이 섭섭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그러게 머리 검은 짐승 거두는 것이 아니라니까.”


길운을 뒤따라 왔던 조양은 잔뜩 화가 난 기색으로 혼잣말을 했다.


“거두긴 뭘 거둡니까? 솔직히 저도 할만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정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지. 그리 억척을 내어서 영체기 승경단을 세 알이나 만들어 줬더니, 그걸 받자마자 떠나려 해?!”

“아니, 그건 이전부터 그리 한다고 했던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솔직히 승경단도 벌써 몇 년 전에 만들어졌을 것을 지금까지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늦춘 거면서.”

“뭐라?!”

“아닙니까? 결국 제가 나서서 연단정화(鍊丹淨火)를 피우고서야 연단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

“그것도 제가 몇 번이나 돕겠다고 했던 것을 마다하고 시간을 끌다가, 마지막에 완성도를 높인다고 데리고 가서 얼마나 쥐어짰습니까? 한 번에 영체기 승경단 서른 개가 말이나 됩니까?”

“조양 장로. 그만하게. 솔직히 좀 과하긴 했지. 길운도 섭섭할 수 있는 일이고.”

“섭섭하긴 뭐가 섭섭하다는 겁니까? 그 동안 저 놈이 축낸 연단재료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십니까?”

“대신에 우리 삼약문이 얻은 것도 많지. 더구나······.”

“아, 알았습니다. 거기까지만 하십시오.”


기해전의 말이 길어질 듯 하니 조양이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사실 조양이 이리 전전긍긍하는 것은 길운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기 때문일 뿐, 길운에게 나쁜 감정은 전혀 없었다.


“제가 수도계에 입문하면서 바란 것은 오직 하나,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는 것이었습니다. 때에 이르러서 세상 어느 곳에서 진토가 되는 날을 맞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세상을 떠돌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해해 주십시오.”


기해전을 보며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조양에게 들으란 소리다.

길운 역시 조양과의 돈독한 정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렇다고 세상 유람의 꿈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인연이 다하지 않으면 언제고 다시 볼 일이 있을 터. 재회를 기약하지 않았지만 수도계의 인연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법. 어쩌면 또 쉬이 만나질 수도 있겠지. 그저 우리는 길운 수사와의 인연을 깊이 새길 뿐.”


기해전이 결국 길운의 작별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삼약문의 문주로서 길운에게 문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는 말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삼약문의 손님으로 머물며 적잖은 영향을 끼쳤던 길운이 드디어 삼약문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었다.


“잘 가거라.”


조양은 고개를 틀어 길운을 외면하며 한 마디를 하고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길운은 그런 조양을 보고 빙긋 웃었다.


“저, 갑니다. 그리고 약초밭에 가서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하하하하.”

“뭐? 뭐라?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이에 조양이 깜짝 놀라 길운을 돌아봤을 때, 길운은 이미 둔광과 함께 사라진 후였다.


“이 노옴, 길운아!”


조양이 허공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영기 가득한 조양의 고함소리가 삼약문을 벗어나 대천세계로 넓게 울려퍼졌다.


“잘···, 거거라.”


그리고 맥빠진 조양의 혼잣말이 문주전의 한쪽 귀퉁이에서 흩날렸다.


“걱정하지 말게. 약화천, 약부 두 어르신의 공동전인이라 하지 않던가.”


기해전이 어깨를 잡아주며 섭섭한 기색이 가득한 조양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 시간, 삼약문 곳곳에 길운의 앞길을 축복하는 이들이 가득했다.

하급 제자부터 여러 장로들까지 길운과 연을 맺은 이들은 모두 그의 순탄한 대도행을 빌었다.


* * *


꾸이이이익!

“하하하하. 좋구나! 이렇게 마음껏 날아보는 것도 오랜만이지?”

꾸이이이익!

“그거야 네가 워낙 약초밭을 많이 망쳐서 그런 것이 아니냐. 심심하면 약초밭을 뒤엎었으니.”

꿀꿀꾸울!

“아니긴! 내가 다 봤는데!”

쿠궁!

꾸에엑!


길운이 금아백저의 머리 위에서 발을 구르자, 금아백저가 죽는다고 울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등에 지고 있는 누각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는 것을 보면 길운의 발구르기도 진심은 아닌 셈이다.

그런 중에 금아백저의 등에 올린 누각은 3층에서 5층으로 바뀌어 있었는데, 길운이 삼약문에 머무는 동안 증축한 것이었다.

당연히 금아백저 역시 이전보다는 경지가 높아져서 이제는 축기기 완경에 이르러, 기회만 되면 주인인 길운을 따라 성단에도 오를만 했다.


“이 놈아, 장난은 그만하고 속도를 늦춰 보자꾸나. 저기 어디가 그곳인 듯 하니.”


금아백저와 장난을 치던 길운이 문득 구름이 갈라지고 드러나는 지상의 모습을 확인하고 얼굴에서 웃음기를 걷어냈다.

길운이 보고 있는 곳은 하나로 흐르던 강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었다.

그곳은 수도계에서 검단(劍湍)이라 부르는 곳으로 강을 갈라 놓은 것이 거대한 검이었기 때문이다.

강의 가운데에 내리꽂힌 검이 이후에 비스듬히 누워서 강을 반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뉜 강은 검의 면 때문에 뒤쪽에서 다시 합쳐지지 못하고 흐르다가 결국 산을 만나 영영 다른 길로 가고 말았다.

실제로 이리 나누어진 강은 수 억 만 리를 흘러가다가 하나는 북천, 하나는 남천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어떠냐? 검단의 모습이.”


금아백저의 머리 위에 선 길운이 검단을 내려보며 물었다.


꾸이이익!

“실로 대단하지 않으냐. 저 검 말이다. 저것이 과거 선계 진선의 강림 흔적이라지 않더냐.”

꾸이익!

“그래, 어쩌면 과장일 수도 있겠지. 솔직히 화신기만 어찌어찌 저 정도의 검을 써봄직 하지 않으냐.”


검단의 검이 아득한 과거에 선계 진선이 내리꽂은 것이라는 이야기는 전설같은 것이었다.

아득한 수명을 지니고 있는 수사들의 세계인 수도계에서도 검단 전설의 진위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다.


“하하하.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겠느냐. 나는 그저 수도계의 명소 중에 하나를 직접 보려 했을 뿐. 그 원을 성취했으니 다음은 운에 맡길 뿐이지.”


길운은 호탕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을 하고는 슬며시 금아백저를 움직여 검단의 꼭대기로 향했다.

수 천 장의 높이를 가진 암벽.

그럼에도 검의 손잡이와 코등이가 선명하고 강을 가르며 박힌 검날도 분명하다.

어찌보면 거대한 암석을 깎아서 하나의 검을 조각했다 할 모습이지만, 그 크기가 일반적인 인지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라, 결국 수도계의 전설이 되었다.


“이걸 뽑겠다고 나섰던 수사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지.”


금아백저가 칼의 손잡이 끝, 수실을 묶는 고리 부분으로 다가갔다.

그곳이 검단 검의 끝, 가장 높은 부분이었고, 이곳을 찾는 수사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벌써부터 길운의 금아백저를 보고 몇몇 수사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읏차!”


길운은 일부러 짧은 기합 소리를 내며 금아백저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러자 금아백저도 스스로 몸을 줄여 주먹 정도의 크기로 변해 길운의 어깨 위에 자리를 잡았다.


타닥!


길운은 검단 검의 정상에 내려섰다.

그곳에는 십여 명의 수사들이 있었고, 몇몇은 일행인 듯 무리를 지어 있기도 했다.

한 눈으로 훑어 그들이 축기기와 성단기의 수사들임을 확인한 길운은 거침없이 몸을 움직였다.

수사들 중에 성단기 후기가 있다면 모를까 가장 경지가 높은 수사가 성단기 중기였다.

이는 길운이 삼약문을 떠나기 전에 이루어 놓은 경지.

그러니 길운이 언행을 조심할 일은 없는 셈이다.


“누가 검단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 주겠느냐? 오래 된 이야기가 아니라, 근래 수 백 년 사이에 알아두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듣고 싶구나.”


검단 검의 꼭대기는 원형의 넓은 광장이었는데, 길운은 그 중심으로 나아가며 조용히 읊조렸다.

하지만 영기가 담긴 목소리는 주변에 있는 모든 수사들이 알아듣기에 충분했다.


“내가 스승님께 들었던 검단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삼백 년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 후에 특별한 일이 있으면 알아둘까 하는 것이다. 물론 괜찮은 이야기면 내가 값을 넉넉하게 치를 것이고.”


길운의 말에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자, 길운이 소매에서 옥병 하나를 꺼내어 뚜껑을 열고 축기기 수련 영단 하나를 허공에 띄웠다.

이 정도는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자 몇몇 수사들이 주위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길운에게 가치가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려워 할 것 없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니.”


그런 수사들에게 길운이 다시 부드럽게 여지를 주었다.

그러자 수사들 중에 영준하게 생긴 젊은 사내 모습의 한 이가 길운을 향해 몇 걸음 다가왔다.

길운은 그가 축기기 완경의 수사임을 알아보았다.


“선배님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제가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젊은 수사는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며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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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화 길운은 모르는 대길이 있었다 +2 22.07.14 1,573 56 12쪽
28 28화 벽가의 행사가 옳지 못하지 않습니까 +5 22.07.13 1,567 62 12쪽
27 27화 일단락(一段落) +3 22.07.12 1,626 53 13쪽
26 26화 동천벽가(東天碧家)의 등장 +3 22.07.11 1,635 64 12쪽
25 25화 복잡한 삼파전 +2 22.07.10 1,661 51 12쪽
24 24화 역시나 사혈림(死血林)과 구화문(九火門)이었다 +4 22.07.09 1,636 52 12쪽
23 23화 연단 대업과 불청객 +3 22.07.08 1,709 55 13쪽
22 22화 성단기 승경에서 보물을 얻다 +7 22.07.07 1,742 59 13쪽
21 21화 대운을 잡은 거라지요 +4 22.07.06 1,689 50 13쪽
20 20화 삼약문(2) +3 22.07.05 1,711 54 13쪽
19 19화 삼약문(1) +2 22.07.04 1,752 56 13쪽
18 18화 와, 천서 일족의 결말이 이렇게 된다고? +6 22.07.03 1,745 56 13쪽
17 17화 더듬더듬, 그래도 대충 알긴 하겠다 +4 22.07.02 1,781 60 12쪽
16 16화 기가 막힌 상황이라지요 +5 22.07.01 1,740 57 11쪽
15 15화 초전(草田)이 왜 호수(湖水)냐? +7 22.06.30 1,736 59 12쪽
14 14화 되로 받고 말로 주는 거지 +5 22.06.29 1,742 58 12쪽
13 13화 입구에서부터 발이 잡혔다 +4 22.06.28 1,754 51 12쪽
12 12화 금제 결계 진법을 뚫다 +4 22.06.27 1,793 51 12쪽
11 11화 천서미(千鼠尾)의 끌리는 제안 +4 22.06.26 1,887 51 12쪽
10 10화 천서미(千鼠尾)의 접근 +3 22.06.25 1,875 50 13쪽
9 9화 홍산호를 취하다 +2 22.06.24 1,900 46 14쪽
8 8화 평원장시(平原場市)에서 사기꾼들을 만나다 +3 22.06.23 2,036 48 13쪽
7 7화 이러면 한 십년 부려 먹을 방도가 되나? +4 22.06.22 2,145 54 13쪽
6 6화 일단 받고, 받을 구실을 또 만들고 +2 22.06.21 2,217 52 12쪽
5 5화 수사 저우(猪友)를 만나다(3) +2 22.06.20 2,318 54 13쪽
4 4화 수사 저우(猪友)를 만나다(2) +2 22.06.19 2,454 53 12쪽
3 3화 수사 저우(猪友)를 만나다(1) +4 22.06.19 2,791 61 12쪽
2 2화 대길운, 새로운 세상으로 +3 22.06.19 3,398 68 12쪽
1 1화 대길운(大吉運), 말년에 이름값을 받다 +10 22.06.19 4,796 8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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