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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타로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망나니 왕자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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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타로
작품등록일 :
2019.01.07 14:16
최근연재일 :
2019.01.18 06:5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4,432
추천수 :
84
글자수 :
56,953

작성
19.01.15 06:50
조회
229
추천
4
글자
9쪽

2. 인간적인 성장법 (5)

DUMMY

“하,”


조프리는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굳은 팔이 어설프게 움직이면서 책상에 놓인 깃펜을 팔꿈치로 쳐 바닥에 떨어뜨렸다.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양탄자에 잉크가 흩뿌려졌지만 조프리의 시선은 왕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눈앞에서 피곤함에 반쯤 졸면서 입으로는 책 내용을 줄줄 말하는 왕자가 정말 자신이 알던 그 테오도르 왕자가 맞나 싶었다.


조프리는 ‘마법 기초 이론’ 책의 내용을 꽤 잘 알고 있었다. 마법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어릴 때 입문용으로 한 번 씩 거치는 이 책을 어린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닳도록 읽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테오도르 왕자가 내뱉고 있는 문장들이 그저 아무 말이 아니라 책을 그대로 복사한 내용이라는 것도 알았다. 심지어 왕자는 책에 존재하는 오탈자조차 정확하게 외웠다. 신기 수준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조프리는 세그덴 제국 내에 위치한 마탑에서 운영하는 마법 아카데미 출신이었다. 수재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 조프리는 당당하게 1등을 차지했다.


그 잘난 놈만 모인 수재들의 세상에서도 테오도르 왕자처럼 단숨에 책 한 권을 암기하는 괴물은 없었다. 조프리 자신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이십 년을 살면서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조프리는 처음 테오도르 왕자를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왕자를 만나러 간 것은 아니었고, 자신이 어릴 때부터 존경했지만 아르마냐크 왕실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마법사, 외젠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나이가 지긋하고 실력도 출중하지만 마탑에 있지 않고 왕실에 봉사하고 있는 이 마법사는 세간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아이쿠, 왕자 저하!’

‘네 이놈, 감히 내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려?’

‘송구하옵니다···!’


그런 인물이 조그만 한 금발머리 남자애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있었다.

꼬마 주제에 키도 크고 힘이 어찌나 센지 비쩍 마른 데다 반항할 수 없는 처지인 외젠은 맥없이 두드려 맞았다.


‘이 따위 마법서에 흥미 없으니 썩 꺼지거라!’


외젠은 조프리에게는 시선도 주지 못하고 허둥지둥 짐을 챙겨 그 공간을 빠져 나갔다.

조프리의 주먹이 저도 모르게 꽉 쥐어졌다.


한참 씩씩대던 왕자의 눈이 조프리에게 꽂혔다.

왕자가 손짓하자 시종이 황급히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쑥덕거리더니 왕자가 거만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네가 프레데릭 공작의 동생이라지?’

천박하고 거들먹거리는 목소리.


‘···예, 왕자 저하를 뵙습니다.’

방금 본 광경에 충격을 받은 조프리는 마지못해 예를 차렸다.


‘마법을 좀 한다던데. 그래, 내가 마법을 배울 필요가 뭐가 있겠어? 너 같은 놈이 널렸는데. 너를 부리는 게 내 일이지, 하하!’


조프리는 그 순간, 자신의 고국인 아르마냐크 왕국의 현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무능하고 멍청한 녀석이 1왕자이고 차기 국왕감이라는 것.


충신에 대한 예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어린 나이부터 학업에는 관심 없는 싹수 노란 놈.

왕실 마법사 따위야 왕족들의 발길에 차여도 반항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부터 조프리는 마법에 더욱 더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왕실에 충성을 바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신이 존경하는 형님의 공작령에 처박혀 형님을 위해서만 일하거나, 마탑에 남을 생각이었다.

그런 분노어린 동력 덕분이었을까? 조프리는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런데, 그랬던 1왕자의 머리가 저렇게나 좋았단 말인가?


신이 있다면 이래서는 안 되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내려다보는 것 밖에 못하는 멍청한 권력자가 사실은 머리까지 좋은 악당이라고 하면··· 그건 지나쳤다.


조프리는 자신이 책장을 지나치게 세게 잡아서 종이 끝이 헤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프리가 얼빠져 있던 동안, 테오도르는 암송을 마치고 줄을 당겨 하인을 불러 물까지 가져오라 시킨 후였다.


하인이 물을 들고 오자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양새가 일견 순진해보일 정도였다.


왕자의 나이가 이제 열여섯.

조프리는 왕자가 더더욱 싫어졌다. 전보다 훨씬 더.


“오늘 수업은 이제 끝인가?”

방금 한 암송이 아무 것도 아닌 양, 뽐내는 기색도 없이 묻는다.


“···오늘은 이만 하지요.”

조프리는 왕자의 뻔뻔한 낯짝을 보기 싫어 휙 돌아섰다.




***




뭐야, 제대로 안 가르쳐 줄 건가.


나는 서재의 문을 닫으면서 눈을 부라렸다.

내가 조프리에게 배울 것이 없는 것과 조프리가 나에게 가르칠 의지가 없는 것은 별개다.


나는 하루살이 같은 인간의 삶에서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나름대로 깨우쳤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빠른 시일 내에 마나를 키우고 용체도 되찾아야 했다.


저 녀석에게 수업을 듣느니, 방에서 혼자 마나 수련을 하는 게 낫겠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내 방으로 향했다. 남는 시간은 모조리 마나 수련에 투자해야 했다.


으아아. 침대에 걸터앉자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잠깐만 누워볼까? 침대의 유혹이 엄청났다.

청결하고 푹신한 이불 속에 몸을 파묻자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대로 잠들기만 하면 되는데. 안 된다. 마나 수련해야 되는데···

그때였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불쑥 들린 것은.


<안녕, 테오도르?>


뭐지.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면서 몸을 일으켰다.


<너··· 노아스?>


어떻게 된 일이지. 소환한 적 없는데.

노아스가 은은하게 빛나는 투명한 모습으로 발치에 서 있었다. 불을 모두 꺼두어서 어두운 방 안에서 존재감을 뿜어냈다. 잿빛 머리카락이 허공에 물결치듯 넘실거렸다.


<어떻게 온 거지?>

나는 소환한 적도 없고 그렇게 할 마나도 없다. 어리둥절했다.


<정령은 자연의 속성이 있는 어디든 갈 수 있어.>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길에서도 하급 정령들의 모습이 흔히 보이는데 정령왕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저··· 자연의 일부에 스며있으니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남의 눈에 보이지 않으니 굳이 그런 모습으로 돌아다닐 이유도 없다. 나같이 자연 친화력이 말도 안 되게 높은 경우가 아니라면.

그래서 다들 계약을 해서 계약자의 마나를 끌어다 써서 육체를 유지하려고 한다.


<어쩐 일이지?>

한가로울 정령계를 벗어나 인간계에 이런 모습으로 내려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계약자가 부르지 않았는데 자진해서 올 이유는 없다.


<심심해서 네가 뭐하고 사는 지 좀 봤거든.>

노아스의 황금색 눈이 흥미로움으로 반짝였다.


<염탐한 건가?>

난 한 마디 쏘아붙였다. 흙바닥에 구르고 힘이 빠진 다리를 떨어댄 기억들이 지나갔다. 남에게 보여주기에는 추한 모습들이었다. 드래곤 자존심이 있지, 모양 빠지게.


<계약자, 그것도 인간 계약자가 뭘 하고 사는 지는 흥미로우니까. 정령들의 취미야.>

땅의 공간에서 정령들에게 둘러싸여 인간계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었다. 유희를 나오지도 않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래서?>

뭔가 용건이 있으니까 온 것이리라.


<네가 하고 있는 것들이 흥미롭던데··· 내기도 그렇고. 내가 도움을 좀 줄 수 있을 것 같아.>

노아스가 빙긋 웃었다. 무표정했던 얼굴에 표정이 생기니 인상적이었다. 첫인상과는 다르게 계약자가 되니 나름 특별한 대우인지 태도가 퍽 사근사근했다.


<도움?>

의외였다. 자진해서 도움을 준다니.


<마나 량 늘리려고 애쓰고 있잖아?>

<···그렇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 조프리와의 내기도 이기기 위해서는 마나 량 확대는 필수였다.


<마나 량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알아.>

<정말인가?>

<그래. 자연계에는 마나가 비이상적으로 뭉친 곳들이 종종 나타나지. 난 그런 지역들을 잘 알아. 위험하긴 하지만 너라면 그곳에서 마나 량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연계 마나는 원칙적으로 요령껏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이 전부지만, 특수한 상황에서는 흡수할 수도 있다. 노아스가 아니었다면 잊고 있었을 사실이었다. 아주 특수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고 극히 드물지만, 노아스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솔깃했다. 정령왕의 말이니 거짓은 아닐 터. 하지만 의심스럽긴 했다. 이걸 알려주기 위해 굳이 행차하셨다? 내가 요구한 적도 없는데 말이지.


<그 대가는?>


원하는 게 있으니 도움을 주려 하는 게 아니겠는가. 이런 고급 정보라면 모름지기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할 것이다.

달콤하게만 들리는 그 말에 곧장 반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뭐?>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물었다.>


노아스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게 뭐든 간에 있긴 있군. 그 말은 정말로 마나 량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흥분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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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망나니 왕자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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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시간 안내 (2019.01.10 수정) 19.01.08 252 0 -
14 3. 마나 량을 늘려라 (3) +2 19.01.18 279 6 10쪽
13 3. 마나 량을 늘려라 (2) +1 19.01.17 210 4 10쪽
12 3. 마나 량을 늘려라 (1) 19.01.16 237 2 9쪽
» 2. 인간적인 성장법 (5) 19.01.15 230 4 9쪽
10 2. 인간적인 성장법 (4) 19.01.15 224 6 9쪽
9 2. 인간적인 성장법 (3) 19.01.14 241 6 10쪽
8 2. 인간적인 성장법 (2) +2 19.01.13 296 6 9쪽
7 2. 인간적인 성장법 (1) 19.01.12 298 6 10쪽
6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5) 19.01.11 315 7 9쪽
5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4) 19.01.10 320 9 10쪽
4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3) +1 19.01.09 342 8 9쪽
3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2) +1 19.01.08 390 9 11쪽
2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1) 19.01.07 510 5 11쪽
1 프롤로그 19.01.07 535 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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