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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타로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망나니 왕자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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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타로
작품등록일 :
2019.01.07 14:16
최근연재일 :
2019.01.18 06:5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4,441
추천수 :
84
글자수 :
56,953

작성
19.01.10 18:50
조회
320
추천
9
글자
10쪽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4)

DUMMY

응접실을 멀쩡한 척 빠져나왔지만 머리가 띵하게 아파왔다. 무리한 능력 사용의 부작용이었다. 잠깐의 드래곤 피어조차 버텨내지 못하는 이런 허약한 몸으로 ‘용언’같은 것은 아예 불가능하겠지. 나는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버텨내지 못한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고 말 것이다.


인생 체험 유희로 생각하기로 한 만큼, 드래곤으로서의 능력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맞았지만, 할 줄 아는 것이 거의 없고 세간의 신용이 바닥인 망나니의 몸을 갖게 되었기에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능력이 없지, 가오가 없냐!


나는 나에게 배정된 객실로 들어와 푹신한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문제는 공작 부부의 신임을 어떻게 얻어 내냐는 것이다. 능력도 없고, 인성도 바닥인 왕자의 편을 들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을 것이다. 왕위 계승 1순위라고는 하지만, 테오도르를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은 왕궁에 즐비했다.


아. 땅의 기억.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부터 해결하자.

재킷을 걸치고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향하자 일층에 있던 집사가 내게 말을 건넸다.


“저하, 외출하십니까? 마차를 준비할까요?”

나이가 지긋하고 행동에 각이 잡힌 집사는 나와 물리적인 거리감을 유지하며 의무적인 질문을 건넸다. 허허롭게 웃고 있지만 과거에 테오 놈에게 당한 게 있는 것이 분명한 태도였다.


“아니, 되었다. 가벼운 산책만 하고 올 생각이다.”

정상적인 대답만으로도 집사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몸에 배어 있던 칼 같은 예절조차 잊은 모습이었다.


“산책··· 산책이요··· 잘 다녀오십시오.”

직접 문을 열고나서는 내 뒤로 ‘산, 산책···’이라는 집사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그리 놀라운 단어도 아닌데 말이지.


물론 나는 단순한 산책을 위해 나온 것은 아니었다. 산책하는 척 인적이 드문 성의 뒤편으로 가 정령왕 ‘노아스’를 소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인간은 거의 불가능한 정령왕 계약 소식이 테오도르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에는 좋겠지만, ‘인성은 더럽지만 능력만 좋은 악당’ 이미지를 가져봤자 딱히 좋을 건 없었다. 인간들의 반감을 더 사기만 할 것이다. 인내심을 요하겠지만 천천히 인식을 바꾸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높은 성벽과 잡초만이 존재하는 성 뒤편에 도착한 나는 주변을 살핀 후 노아스의 소환 주문을 외웠다.


<만물의 처음과 끝, 대지를 지배하는 땅의 정령왕, 노아스시여.

이 순간 지상에 현현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잠시 후 바닥의 흙이 인간 모양으로 솟아나더니, 흙이 쏟아져 내리고 노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날 부른 게 그대인가?>


잘 익은 피부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잿빛 머리, 금색 눈. 노아스는 젊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웬만한 남자와도 맞먹을 큰 키에 권태로운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모습은 분명 인간인데··· 어딘가 이상하군.>

영혼과 몸의 이질감을 바로 잡아내는 것이 멍청한 풋내기는 아니었다.


<난 드래곤 아이첸데브리스이자, 인간 테오도르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내 불친절한 설명에 노아스는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하는 눈빛을 했다.


<그래서 드래곤이라는 거냐, 인간이라는 거냐?>

노아스는 하나만 선택하라고 종용했다. 물론 내 정체성은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이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드래곤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노아스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짧은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더는 말을 해볼 것도 없다는 태도였다.

<그래? 난 드래곤과는 계약하지 않아. 그럼 이만.>


땅으로 스르륵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 미처 잡을 수도 없었다.


황당했다. 드래곤하고는 계약하지 않아? 뭐 저런 또라이 같은 정령왕이 다 있나···.


정령왕과 계약을 맺는 대부분의 계약자는 드래곤이었다. 정령왕과 계약할 만큼 뛰어난 자연친화력을 가진 존재는 드래곤 정도니까. 엘프 중 일부가 성공하는 경우가 있고, 인간의 경우 희귀하다.


즉 드래곤과의 계약을 포기하면 정령왕은 계약을 할 일이 거의 없다. 유희를 포기해야 하는 지경인 것이다. 게다가 뭐로 보나 드래곤과 계약하는 것이 정령왕에게 득이 많이 된다. 부유한 데다 능력도 많으니까. 나는 노아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노아스의 존재가 더 절실한 것은 솔직히 나였다. 땅의 기억을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니까. ‘기억’에 있어서는 땅의 정령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노아스가 아니라 최상급 정령인 노에아넨을 불러내 계약하는 실리적인 방법도 있지만 그건 싫었다. 드래곤이 어떻게 정령왕이 아닌 최상급 정령과 계약을 한단 말인가? 지나가던 오크가 비웃을 일이었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내리 누르며 다시 소환 주문을 외웠다.


<만물의 처음과 끝, 대지를 지배하는 땅의 정령왕, 노아스시여.

이 순간 지상에 현현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미간을 완전히 좁힌 노아스가 땅에서 다시 솟아났다. 어쨌든 소환에는 응해야 하니 등장한 것이다.


<계약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난 인간이다.>

<···아까는 드래곤이라고 하지 않았나.>

<누가 봐도 내 육신은 인간이다.>


노아스는 내말에 침묵하며 커다란 눈으로 나를 빤히 보았다. 고민되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 순간 설득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내가 얼마나 인간 같은 지를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다.


<봐라, 내 마나 량을. 이건 드래곤이라고 볼 수 없다. 드래곤 하트도 없고 툭 치면 죽는 허약한 신체다.>

스스로를 인간으로 깎아내려야 하다니. 계약하려고 별 소리를 다 해본다.


<그건 그러네.>

노아스는 싹수가 노란 성격 치고는 순진한 것 같았다. 등쳐먹기 좋은 스타일.


<그 정도 마나 량으로는 나를 다시 소환할 수도 없겠어.>


그건 사실이었다. 정령과 계약하는 데에는 마나가 들지 않고 오로지 자연 친화력만이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정령을 소환할 때는 마나가 소모되었다.


이프리트를 소환하면서도 무리가 없는 것은 이프리트가 내 어머니를 비롯한 여러 드래곤과 계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소환하더라도 이프리트는 드래곤들의 넘치는 마나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계약자는 없는가?>

<나는 누구와도 계약한 적이 없어. 모두 거절했지.>


상기해보니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지나가는 말로 들은 적이 있는 것도 같았다. 땅의 정령왕은 계약자가 없다고 수군거리던 드래곤들의 말. 나랑 관련이 없는 이야기라서 반쯤 잊고 있었다.


계약을 하게 되더라도 계약자가 나뿐이라면 이 허접한 마나 량으로 노아스를 소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 어쩐다.


<좋아, 네가 인간이라니 계약하도록 하지.>

잠시 생각하던 노아스는 의외로 흔쾌히 생애 첫 계약을 승낙했다.


<나 노아스는 인간 테오도르와 계약을 맺는다. 이 순간부터 나와 그대 사이에는 영혼을 구속하는 관계가 성립한다.>


노아스는 손을 뻗어 내 뺨을 만졌다. 끝도 없이 펼쳐진 대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형용하기 힘든 거대한 무게감이 밀려왔다가 사라졌다.


계약명이야 어찌되었든 영혼만 구속하면 되는 거겠지. 나는 찜찜한 마음을 그렇게 털어냈다. 노아스를 설득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계약이 끝나기가 무섭게 곤란한 표정이 된 노아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욱···!”

나는 피를 토했다. 이런 역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허약한 몸. 심장 언저리에 약간 고여 있던 마나는 노아스의 현신을 잠깐 유지시키는 데에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젠장.”

손수건을 꺼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이래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하급 정령을 부르는 게 고작일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갖고 있던, 쓰고 또 써도 끝이 없던 마나가 이렇게 간절한 대상이 되다니.


나는 비릿한 피 맛이 감도는 입안에 혀를 굴리며 성벽을 따라 걸었다. 마나가 급격히 소모되고 나니 몸에도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신체 피로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폴리모프를 하고 인간 흉내를 내도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인간이란 힘든 삶을 사는 존재였다. 첫 유희 한 번 더럽게 어렵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마나’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천년동안 많은 책을 독파했지만 마나 량을 늘려야 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막막했다.

마나가 없으면 제약이 지나치게 많다. 무엇을 하든 간에 마나 량을 늘리는 것이 제 1의 목표가 되었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집사가 정중하게 맞이했다.


“산책은 즐거우셨습니까?”

“덕분에. 그런데 서재는 어디에 있지?”

“···서재요?”

산책에 이어 책을 찾는 내 모습에 집사는 잠시 말을 잊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그래. 서재.”

“서재는 3층 동쪽 회랑 끝에 있습니다. ···빌, 저하를 서재로 안내해 드리게.”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하인까지 붙여주었다.

“예.”


공작성에 책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봐야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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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망나니 왕자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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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시간 안내 (2019.01.10 수정) 19.01.08 252 0 -
14 3. 마나 량을 늘려라 (3) +2 19.01.18 279 6 10쪽
13 3. 마나 량을 늘려라 (2) +1 19.01.17 211 4 10쪽
12 3. 마나 량을 늘려라 (1) 19.01.16 237 2 9쪽
11 2. 인간적인 성장법 (5) 19.01.15 230 4 9쪽
10 2. 인간적인 성장법 (4) 19.01.15 224 6 9쪽
9 2. 인간적인 성장법 (3) 19.01.14 241 6 10쪽
8 2. 인간적인 성장법 (2) +2 19.01.13 297 6 9쪽
7 2. 인간적인 성장법 (1) 19.01.12 299 6 10쪽
6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5) 19.01.11 316 7 9쪽
»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4) 19.01.10 321 9 10쪽
4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3) +1 19.01.09 342 8 9쪽
3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2) +1 19.01.08 391 9 11쪽
2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1) 19.01.07 511 5 11쪽
1 프롤로그 19.01.07 537 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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