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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타로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 망나니 왕자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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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타로
작품등록일 :
2019.01.07 14:16
최근연재일 :
2019.01.18 06:50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4,435
추천수 :
84
글자수 :
56,953

작성
19.01.08 18:50
조회
390
추천
9
글자
11쪽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2)

DUMMY

심드렁한 표정의 이프리트가 나타났다.


<그대는 누구지? 어딘가 익숙한데.>

<계약자도 몰라보는가?>


나는 내심 이프리트가 반가웠지만 겉으로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내가 눈빛을 사납게 하자 이프리트가 미간을 좁혔다. 정령왕 앞에서 무례하게 구는 ‘기억나지 않는 계약자’가 누구인지 가늠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건방진 표정에 열이 올랐다. 거칠어진 숨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있었다. 자연 안에 흐르고 있는 정령들마저 떨게 하는 그것. 모든 것을 짓누르는 포악한 기세.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종족만이 가지고 있는 기운이 사방을 압도했다.


드래곤 피어. 이게 가능하다니. 영혼이 그대로라서 그런 걸까. 인간의 육체가 갖는 후유증인지 머리가 띵하게 아파왔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제야 이프리트는 움찔했다.


<드래곤이군.>

<나, 아이첸데브리스다.>

<몸이 바뀌었군.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이프리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설명할 수 있는 상대방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유희에 나오기 전 이프리트와 계약한 것이 아주 잘한 일이 되었다.


모든 설명과 추측을 들은 이프리트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아마 정령왕의 생애에서 가장 황당한 이야기겠지. 나도 이해한다. 직접 겪은 나도 황당하니까.


<···그래도 널 소환하는 건 가능하더군.>

<그야, 네 영혼은 그대로니까. 우리가 한 계약은 영혼에 새긴 것이다. 육체가 바뀐다고 달라질 건 없지.>

<그렇군.>

<그래서, 그 검이라고?>


이프리트가 줘보라고 손을 내밀었다. 가까이에서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건 ‘클리브 솔리스’다. 세상에서 없어진 지 꽤 되었는데 드래곤들이 갖고 있었나보군.>


<그건 로드가 준거야.>

<악명 높은 마검이다. 약한 상대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버리지.>

<영혼을?>

<그래. 네 상대였던 그 인간의 영혼은 사라졌을 거야. 명계로도 못 가고 그냥 사라져 버리지.>


그것 참 고소하구나. 용생을 어지럽히고 갔으니 그 정도 대가는 치러야겠지.


<문제는 그렇다면 너는 그대로여야 하는데··· 감응했다던 그 검이 궁금하군. 클리브 솔리스와 부딪쳐서 멀쩡했다면 보검일거야.>

<그렇군.>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하급 정령 샐러맨더들은 내게 말을 걸었던 남자들의 말을 엿들으러 가 있었다.


정령들이 엿들어온 정보는 이랬다.


몸의 주인의 이름은 테오도르로 아르마냐크 왕국의 1왕자다.

나이는 열여섯 살. 차기 유력 왕위계승권자지만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다. 아름다운 얼굴로 망나니짓을 해서 왕궁 사람들이 뒤에서 부르는 별명이 ‘잘생긴 쓰레기,’ 줄여서 ‘잘쓰’.


다혈질에 폭력을 쉽게 사용하고, 배움을 게을리 하는 멍청이. 왕위계승권 1위이면서도 스스로의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바보.


두 기사도 일층에 앉아 내 뒷담화를 하며 ‘잘쓰’를 자주 입에 올렸다고 했다. 자신의 기사들에게도 존경받지 못하는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었다.


내게 붙어있는 두 기사의 이름은 흑발의 ‘프란시스’, 적발의 ‘아롤.’


이 도시는 지나가는 경유지로, 테오도르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공작과 결혼한 1왕녀 줄리아를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니, 인간 몸에 들어가도 어떻게 이런 망나니 녀석에게···?


<···확실히, 정령들은 쓸모가 많군.>

정령들의 기여가 지대했다. 태어나서 처음해보는 칭찬이었다. 나름대로의 고마움의 표현에 무뚝뚝하기만 하던 이프리트의 표정이 의외라는 빛을 띠었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엘로디아나에게서는 그 비슷한 말도 1만년 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는데 말이지.>


그렇지만 피식 웃는 게 기분 나빠 보이진 않았다. 이프리트는 필요할 때 다시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프리트와 대화를 나누면서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이 예쁜 쓰레기, 테오도르의 몸으로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것.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내 육신을 찾는다.


난 차기 로드감일 정도로 재능이 있고 정결한 혼을 지닌 드래곤이다. 로드는 용생이 끝난 후에도 신계로 올라가 신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버러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끝장날 수는 없었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야 말 것이다.




***




이프리트는 사라지면서 내 옆에 정령들을 붙여주고 갔다. 상급이라 인간형의 모습을 띤 샐라임들은 내 귀에만 들리도록 온갖 정보를 읊어주었다. 내가 실수하지 않도록.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프란시스의 머리 위에 올라앉은 녀석과 아롤의 어깨에 기댄 녀석이 보였다.


“저하, 식사 하시고 출발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기사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지극히 극진했다. 꼬투리를 잡힐 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알겠네.”

군소리 없이 일어나 일층으로 내려가는데 뒤에서 시선을 주고받는 기사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저번에 바닷가재 요리가 마음에 드시지 않으신다기에 이번에는 다른 요리사를 찾았습니다. 사슴고기라고 합니다.”


<저번에 식사 자리를 완전히 뒤엎었다고 합니다.>

<요리사의 손가락을 자르려 했으나, 기사들이 가까스로 말렸습니다.>

<급사를 희롱했습니다.>


왕을 가장 닮아 무뚝뚝한 샐라임들은 땅의 정령들에게 전해 듣고 말해주었다.


끙. 가지가지 했군.

눈을 내리깔고 있던 나는 군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내가 별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이 안도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사슴고기를 잘라 천천히 씹었다. 인간들 요리는 처음이었는데 맛이 나쁘지 않았다. 잘생긴 쓰레기 놈은 어떤 고급 입맛을 가진 자식이었기에 이런 걸 엎어? 이미 산산이 부서져 사라진 영혼을 향해 욕설을 퍼부어주었다.


나는 얌전히 먹고 있는 나를 긴장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경들도 들지 그러나? 맛이 괜찮네.”

솔직히 저들이 서있든 굶든 내 알바 아니지만, 인간이 된 이상 인간의 도리를 지켜야했다. 그냥··· 유희라고 생각하자. 왕자 역할로 유희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지! 나는 자꾸 심란해지는 마음을 달랬다.


“···네? 맛이 있습니까?”

당황해서 반문하는 아롤을 프란시스가 팔꿈치로 팍 찔렀다.

“하하, 감사히 먹겠습니다, 저하.”


눈치가 빠른 프란시스는 커트러리를 급하게 놀리더니 맛을 극찬하기 시작했다.

“정말 맛있습니다. 속까지 부드럽게 씹혀서 식감이 좋습니다.”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하라고 하고 싶지만 묵묵히 들어주었다. 이미지 쇄신, 이미지 쇄신.


식사가 끝난 후에는 이런 말도 은근히 흘렸다.

레어에서 심심할 때 읽었던 기사소설에서 나오는 느끼한 대사들 중 하나였다.


“주방장에게 잘 먹었다고 전해주게.”

“···네, 네!”


무심하게 계단으로 향하는 내 등 뒤로 수군거리는 기사들의 대화가 들렸다.

‘그렇게 맛있었나?’ ‘솔직히 평범하던데.’ ‘오늘 왜 저래?’


변덕이나, 맛이 간 것처럼 보이나 보다. 하루 이틀로 바뀔 이미지는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그나마 왕궁 밖에 나와 있다지만, 왕궁으로 돌아가면 어찌한다···.




***




마차에 오르려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저하, 뒤랑달은 어디에···?”

말끝을 흐리며 내 허리춤을 바라보는 아롤의 시선이 혼란스러웠다. 원래 가지고 있던 장검은 어디가고 훨씬 작은 단검이 단출히 걸려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그 검 이름이 뒤랑달이었군.


“사정이 있다.”

설명하기도 변명하기도 어려워 딱 잘라 말했다. 이런 태도가 애매하게 구는 것보다 낫겠지.


기사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지만 목 끝까지 올라오는 말을 참는 듯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수긍의 대답을 내뱉는다.

“···네,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밖에서 말을 타고 마차 안에는 나 혼자였다.


‘어떻게 전하께서 내리신 보검을···’

‘팔았나!?’

‘설마··· 단검은 또 어디서 난 건지,’


밖에서 오가는 대화는 저런 것이었다. 왕이 내린 검이었다니. 마검과 붙어서 단번에 사라진 꼴이 그다지 보검도 아닌 것 같지만, 인간들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한가 보다. 내 레어에 훨씬 귀한 검들이 발에 채이도록 있는데, 흥.


메디스 공작령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았다. 행선지에 거의 다다른 참이었다. 작은 마을 몇 개를 지나 도시 온데인의 관문을 넘으면 된다.


전 왕녀이자 현 공작부인인 줄리아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것이 불안했다. 땅의 정령왕과도 계약해둘 걸. 그러면 멀리 있는 정보도 알기 쉬울 텐데.


아니, 가만. 영혼은 그대로니까 한 번 ‘노아스’를 불러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프리트도 소환이 되는데 노아스가 안 될 이유는 없었다. 상성도 아닌 데다 나는 원래 자연 친화력이 극도로 높은 편이었다.


당장이라도 부르고 싶어져 손이 근질근질했지만, 이 마차 안에서는 불가능했다.

좀 더 조용하고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해야 했다. 마음은 조급했으나 지금은 덜컥거리는 마차 안에 얌전히 앉아 있는 게 전부였다.


괜히 유일한 증거인 클리브 솔리스를 만지작거리다가 뒤랑달이 떠올라 이프리트를 불렀다.


<불렀나?>

<그 사라진 검 말이야, 이름이 뒤랑달이라고 하더군.>

<아··· 그거라면 들은 바가 있지. 그 검의 특징은 ‘흡수’다.>

<흡수?>

<상대의 능력을 흡수해서 검안에 채워 넣지. 그건 아마 드워프가 만든 걸 거야.>

<그래서?>

<문제는 클리브 솔리스의 마력이 훨씬 강했다는 거지. 추측이지만 뒤랑달이 흡수하기에는 벅차서 결국 터진 게 아닌가 싶어.>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해결되지 않은 의문은 있었지만.

<그럼 나는 왜 이 몸에 들어온 거지?>

<···거기까지는 나도 모르겠다.>


표정이 구겨진 나에게 이프리트가 급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네 상황이 안 좋아서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지만, 나도 유희 중이라서 아무 때나 오기는 곤란해.>


이프리트는 선을 그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들어서 안다. 유희 중일 때 방해받는 게 얼마나 싫은 일인지는. 인간의 삶에 심취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중간 중간 깨는 게 싫겠지.


<그럼.>

이프리트가 가고난 후 나는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 늘어져 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스스로가 무능력하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천년 동안 쌓아놓은 지식이 있으니, 검술도 연습하면 훨씬 빨리 늘 것이고, 마법도 마나 량만 어떻게 해결한다면 괜찮은 마법사가 될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내 레어에! 산더미처럼 쌓인 내 보물들! 아공간에 넣어둔 돈들!

그거라면 왕국을 몇 개라도 돈 주고 살 텐데. 왕자라고 해봤자 내 기준으로는 좀 사는 졸부에 불과했다.

아까워서 미칠 것 같았다.


당장 레어에는 갈 수 없지만 아공간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일단 마나를 쌓고 마법을 수준급으로 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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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망나니 왕자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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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3. 마나 량을 늘려라 (3) +2 19.01.18 279 6 10쪽
13 3. 마나 량을 늘려라 (2) +1 19.01.17 211 4 10쪽
12 3. 마나 량을 늘려라 (1) 19.01.16 237 2 9쪽
11 2. 인간적인 성장법 (5) 19.01.15 230 4 9쪽
10 2. 인간적인 성장법 (4) 19.01.15 224 6 9쪽
9 2. 인간적인 성장법 (3) 19.01.14 241 6 10쪽
8 2. 인간적인 성장법 (2) +2 19.01.13 296 6 9쪽
7 2. 인간적인 성장법 (1) 19.01.12 298 6 10쪽
6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5) 19.01.11 315 7 9쪽
5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4) 19.01.10 320 9 10쪽
4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3) +1 19.01.09 342 8 9쪽
»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2) +1 19.01.08 390 9 11쪽
2 1. 드래곤, 인간이 되다 (1) 19.01.07 510 5 11쪽
1 프롤로그 19.01.07 536 6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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