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일반소설

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902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8.10 23:00
조회
28
추천
0
글자
11쪽

55. 메마른 기억 - 2

DUMMY

하련이 민후 형의 웹툰 근황과 방금 전 대화를 엮는 것에 나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다시 잘못된 선택을 한 꼴이었다. 평소 같으면 오달진 웃음과 함께 흥미에 빠져 들떠있을 하련이었지만 이번에는 화장대 의자에 앉아 팔짱 낀 채 얼굴을 찌푸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는 진작에 네 편에 섰을 거야."


하련도 선유도 나를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는지 이해한다. 이전에도 이런 행태에 하련이 내게 화를 냈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은 별개였다. 나는 이 기간 만이라도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남에게까지 심려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하련에게 모자를 뺏어낸 뒤 화장대에 주먹을 가볍게 내리쳤다.


"지금은 시험 기간이야. 당분간 아무런 활동도 없으니까 좀 편할 거야."


하련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눈을 마주쳤다.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돼. 나중에 또 작가님이랑 약속 잡아서 행동할 거잖아."


"민후 형이 나한테 요청한 일이야. 애초부터 가족사에 관한 일이라 남들이 간섭하는 것 자체가 민폐라고."


"내 말을 좀 들어봐. 직접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이 아니잖아. 이 일에 너 혼자 헤아리려 애쓰려 하니까 조금이라도 생각을 나누자는 거야."


선유는 하련 뒤쪽에서 다가와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축제 여파도 제대로 안 갔는데 요즘 너무 힘든 길만 고집하는 것 같아. 뭐라도 좋으니까 강연이 널 돕고 싶어."


나는 선유와 하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번처럼 멋대로 고집부리며 상황을 틀 생각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민후 형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사에 관한 내용이 힘겨움에 빈말로 새 나오지 않을까 두려운 탓에 이러는 걸지도 모른다. 그만큼 내 멘탈은 한동안 피폐에 가까워졌으니 말이다. 나는 짧게 생각한 뒤 모자를 갖추고 스튜디오 바깥쪽 문으로 향했다. 뒤이어 선유와 하련이 뒤따라오자 나는 문을 등지고 선유와 하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험이 끝나는 주 일요일, 역전 샤를 아웃렛에서 모여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련이 네가 다음 무대에서 준비할 품목도 거기서 사면 좋잖아?"


하련이 요지를 못 잡은 듯 멋쩍은 표정을 짓자 나는 옷 모양을 양쪽 검지 손가락으로 그려갔다. 하련은 알아챈 듯 눈을 부릅뜨다 선유를 잠깐 힐끗 본 뒤 조금은 일그러진 인상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게 잠깐 눈짓을 하더니 입에 손을 댄 채 내 귓가에 얼굴을 댔다.


"여기서 말하면 어떡해? 아직 나미 선배랑 상의도 안 했단 말이야."


"그럼 그냥 하면 되잖아? 차기 부장일 거면서."


내가 대놓고 말하는 것에 하련이 당황하다 내게 오만상을 지었다. 선유가 의문에 휩싸인 듯 눈을 깜빡이며 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련이 선유에게 다가가 얘기를 나눌 사이 나는 등지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면 민후 형 웹툰도 막바지에 접어드니까 스토리에 관해 자세히 풀어갈 수 있을 거야. 지금은 시험 기간이니까 자세한 내용은 시험 끝나고 채팅방에 한번 더 공지할게."


일방적인 통보 같았지만 선유와 하련이 꼬리를 물고 늘어질 기미는 없어 보였다. 나는 벌써부터 빡빡하게 다가올 입장에 벌써부터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 일은 우리들끼리의 문제야. 남한테 알리는 일이 없도록 할 것!"


상황이 일단락된 후 나는 레미 부원들과의 소통을 줄여갔다. 이전 중간고사 때 아슬아슬하게 장학금 턱걸이를 한 탓에 이번만큼은 절치부심하고 공부에 임해야만 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매번 방에 틀어박혀 공부를 한 탓에 누나와의 접점이 적어졌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기간에 늘 있던 전개라 크게 신경 쓰려하지 않았다.


지난 일에 너무 힘들었던 걸까? 나는 얼굴에 깊게 내려앉은 다크서클과 충혈된 눈에도 피로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공붓벌레 시절보다도 밤샘 공부에 익숙해져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둘씩 채워갔다. 자습실에서도 책상 안쪽 led 라이트를 켜고 시종일관 공부만 하니 사람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는 줄 알았다.


그 고양이 같은 계집만 아니었으면 말이다.


"언제까지 뻐팅길 수 있을까? 검은 마스크?"


날렵한 눈매에 뾰족한 콧대, 짧지만 각지게 잡힌 턱선과 단정하게 다듬은 일자형 앞머리를 가진 교지편집부 소속 2학년 학생으로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아 훼방을 놓았다. 계속되는 인터뷰에 내가 거절하자 계집은 책상 위에 둔 휴대폰으로 메모장 어플을 켜놓은 채 길게 늘어트린 검은색 생머리를 하얀색 면직 곱창 머리끈으로 단정히 묶어갔다.


"끈질기네. 사흘쯤 됐으면 지겨워서 털어놓을 줄 알았건만."


"교지편집부는 늘 이런 식인 거냐?"


"대충은. 그리고 이렇게 가식적으로 공부할 바에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나서는 게 좋달까?"


나는 순간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공부를 가시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항상 이런 점이 문제였다. 섬세한 부분을 눈여겨보지 않고 행위적 시선이 가지는 공통점으로 공감대를 호소하려는 속셈이다. 물론 계집의 빈말에 무반응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그저 공부했다. 내가 특수한 상황에 공부가 안 된다고 자각하려는 생각조차 없었다.


교지편집부 계집의 계속되는 질문에도 나는 묵묵히 공부에 임했고 시간은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주변 책들과 필기구들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고 계집은 '치'라고 짧게 내뱉은 뒤 휴대폰을 교복 치마 주머니 속에 넣었다.


"검은 마스크라더니 말하는 법도 잊었나 봐?"


"알 게 뭐야. 지금 마스크를 쓴 것도 아니잖아?"


"치, 재수 없어."


내게 있어 더없이 좋은 말이었다. 이제야 이 계집이 내게 멀어질 거란 생각에 벌써부터 안심이 갔다.


반면에 선유와 미로는 교지편집부의 공세와 이전 후배들의 화력까지 가세해 난감한 상황이 이어졌다. 선유는 할 얘기 자체부터 별로 없어 하던 말을 반복하는 꼴이었고 미로는 정보망을 다루는 만큼 손쉽게 털어놓는 것처럼 말해도 내부적으로 복잡한 검열이 이루어졌다.


어떤 후배가 SMK 채팅방에 난입해 내 소문을 입수할 생각이었지만 되레 미로파들이 분개한 탓에 쫓겨났던 기억 밖에 없다 들었다. 미로파들이 내 정보에 관해 전적으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탓에 세세한 정보가 오가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시험 기간 동안 미로파들의 강세는 날이 갈수록 커져갔고 나를 지지하는 파는 사실상 유나 밖에 없을 정도로 처참한 실정이었다. 물론 나 자신이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내 정체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뜻일테니까.


자습실을 나와 계단으로 향하는 길까지 교지편집부 계집이 뒤따라오나 싶더니 금세 반대쪽 복도로 방향을 틀었다. 나를 몹시 째려보는 듯한 시선이 잠깐 오갔다.


나는 그대로 교실로 가 정규 수업을 마치고 자연스레 하굣길에 접어들었다. 검게 흐릿한 구름들이 주변을 에워쌌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나는 다가오는 인기척에 반응했다. 교지편집부 계집인가 싶어 내가 고개를 옆으로 돌린 순간 승준이 부리나케 뛰어오다 숨을 고른 채 내 앞에 멈춰 섰다.


"선배 잠깐만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릴 동안 승준은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두들겼다. 그 후 내게 보란 듯 화면을 보여주며 특정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선배 혹시 학교 주간지에 관해 들어본 적 있어요?"


"아마도."


"잘 됐네요. 마침 이번 주 주간지가 학교 SNS에 페이지에 올라왔던 참인데 내용이 좀 이상해서요."


나는 바로 승준이 가리킨 주간지 1면을 두루 살펴보았다. 시험 준비에 대한 학생들과 교사들의 생각이 기록된 걸 봐선 내게도 이러한 맥락으로 접근했던 걸까 싶었다. 그러나 2면을 보자마자 나는 경악과 함께 승준에게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SMK의 검은 마스크 이강연, 팬에 대한 홀대 논란 번지다!


태천고 2학년이자 레미에서 큰 센세이션을 선보인 이강연 학생으로부터 의문스러운 소식들을 접했다.


SMK의 가장 큰 팬덤인 암호중 학생들의 채팅방으로부터 팬들이 이강연 학생을 대놓고 비난했다는 소식과 더불어 이강연 학생은 직접적인 인터뷰에 암묵적인 반응만을 보였다.


몇 달 전, 이강연 학생은 SMK 팬덤에 분열을 자초했고 스스로 나가겠다는 통보까지 멋대로 정해 팬들을 혼란시켰다.


독선적인 이강연 학생의 행동에 SMK 팬덤은 실망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오랜만에 쓰던 모자와 마스크에 열기가 치솟는 순간이었다. 나는 모자챙을 매만지며 이성을 차린 뒤 승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교지편집부 녀석들, 사람 하나 담가보려고 작정했네."


"선배, 기사가 거짓된 거 맞죠?"


"물론. 오히려 SMK 팬덤이 날 내쫓으려 했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상대다 보니 지금 애써 반문해봤자 소용없을 거야."


"어떡하죠?"


"괜찮아. 시험 끝나고 말해도 늦지 않아. 나미 선배와 협심해서 교지편집부에 어필해볼게."


횡단보도 녹색 등이 켜지자 나는 승준에게 가볍게 손을 흔든 뒤 재빨리 건너갔다. 누가 이런 기사를 만들었을지 눈에 훤히 보였다. 그러나 나는 되레 기분이 좋았다. 말이 교지편집부지 나와 미로가 나누는 정보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오랜만에 휴대폰으로 레미 채팅방에 들어가니 예상대로 부원들이 이번 기사에 관한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나는 이에 선을 긋고 추후 조치하겠다 적었지만 여론이 좀처럼 식질 않았다. 일부 부원이 자세한 팩트가 뭔지 요청했지만 선유가 먼저 나서 맥을 끊어간 덕분에 가볍게 일단락되었다. 미로가 뒤이어 채팅방에 초대해 문제를 짚어가려 했으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자판을 두들겼다.


'제발 쉬어. 다음 주 시험 기간이야 ㅡㅡ'


'죄송해요... 요즘 바빠서 안일했나 봐요 ㅠㅠ"


'됐고 쉬어 좀! 내막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으니까 괜히 안 나서도 돼."


그 어떤 것도 날 방해할 수 없었다. 내게 있어 자유로운 이 시간을 무조건 지켜내야만 했다. 시험이라는 목표에 삐끗거리면 장학금이 아닌 돈으로 학비가 나가고 무리한 투자에 허덕이던 아버지에게 부담을 안기게 된다.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은 뒷전에 불과했다. 아니, 그래야만 내가 공부라는 개념에 단적으로 집착하지 않고 여유롭게 틀을 잡을 수 있었다.


주상복합을 지나 아파트 정문에 다다를 즈음 나는 보안기 앞에 세워진 채 멈춘 차량이 비상등이 켜진 걸 보았다. 아버지가 그렇게 원하던 하얀색 CSL클래식임에 내가 약간의 경탄을 이어가려던 순간.


"이제 와서 친한 척 지껄이지 마!"


조수석 쪽으로 실랑이가 벌어지다 차 앞으로 나와 온갖 성질부리는 모습에 나는 누구인지 단박에 눈치챘다.


'회, 회장 계집?'


곧이어 유나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오빠?"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 프롤로그 조회수 100회 돌파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배같은 동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39. 마땅한 복수? - 4 20.05.12 30 0 15쪽
39 38. 마땅한 복수? - 3 20.05.11 32 0 12쪽
38 37. 마땅한 복수? - 2 20.05.09 39 0 12쪽
37 36. 마땅한 복수? - 1 20.05.02 43 0 12쪽
36 35. 기쁨을 주는 Make up! - 10 20.04.09 29 0 22쪽
35 34. 기쁨을 주는 Make up! - 9 20.04.06 31 0 14쪽
34 33. 기쁨을 주는 Make up! - 8 20.04.05 32 0 14쪽
33 32. 기쁨을 주는 Make up! - 7 20.04.04 30 0 13쪽
32 31. 기쁨을 주는 Make up! - 6 20.04.02 31 0 12쪽
31 30. 기쁨을 주는 Make up! - 5 20.03.30 35 0 12쪽
30 29. 벗어난 매듭 - 1 20.03.29 36 0 16쪽
29 28. 합법적 잣대 - 8 20.03.24 33 0 21쪽
28 27. 합법적 잣대 - 7 20.03.22 32 0 12쪽
27 26. 합법적 잣대 - 6 20.03.21 37 0 13쪽
26 25. 합법적 잣대 - 5 20.03.21 39 0 14쪽
25 24. 합법적 잣대 - 4 20.03.19 38 0 16쪽
24 23. 합법적 잣대 - 3 20.03.16 43 0 11쪽
23 22. 합법적 잣대 - 2 20.03.10 49 0 11쪽
22 21. 합법적 잣대 - 1 20.03.09 45 0 11쪽
21 20. 필연적 접근 - 7 20.03.05 51 0 11쪽
20 19. 필연적 접근 - 6 20.03.04 49 0 12쪽
19 18. 필연적 접근 - 5 20.02.20 50 0 19쪽
18 17. 필연적 접근 - 4 20.02.18 54 0 12쪽
17 16. 필연적 접근 - 3 20.02.16 48 0 13쪽
16 15. 필연적 접근 - 2 20.02.15 48 0 11쪽
15 14. 필연적 접근 - 1 20.02.14 56 0 11쪽
14 13. 망할 계집 - 7 20.02.12 67 2 11쪽
13 12. 망할 계집 - 6 20.02.11 68 3 10쪽
12 11. 망할 계집 - 5 20.02.10 69 3 14쪽
11 10. 망할 계집 - 4 20.02.09 80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