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일반소설

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840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4.09 23:00
조회
28
추천
0
글자
22쪽

35. 기쁨을 주는 Make up! - 10

DUMMY

다시 봐도 확실한 은정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부원들은 일제히 침묵을 이어갔고 소희 또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니 머릿속은 혼란으로 뒤엉켰다.


은정은 주변 눈치를 보다가 조금씩 문 손잡이에 손을 댔다.


나는 은정에게 다가가 뭔지 묻고 싶었지만 은정은 내 시선도 보지 않은 채 그대로 문을 박차고 오퍼레이터를 빠져나왔다.


뭔가 싶어 당황했지만 때마침 여유도 생겨 나는 은정의 행선지를 보면서 추격에 나섰다.


은정이 조심히 무대 계단을 내려가 그대로 몸을 숙여 스튜디오로 우회하자 나는 무대 뒤쪽으로 이동하며 전선과 앰프를 확인하는 시늉을 보였다.


잠시 뒤, 은정이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일찍이 안쪽 문으로 들어가 스튜디오에 대기하려 했다.


주변에 학년 대표 부원들이 의아한 시선을 보였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은정이 들어오기만 기다린 채 문을 닫았다.


그러나 시간이 돼도 바깥쪽 문이 열릴 기색을 보이질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대며 계속해서 상황을 지켜봤지만 나미 선배가 다가오며 시선이 틀어졌다.


"강연아, 화장 다 끝났어?"


"네. 화장은 다 끝났는데 도중에 스파이가 있어서 쫓던 중이었어요."


"스파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얘기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스튜디오에 유동 인구가 보이질 않자 나는 바깥쪽 문을 열어 강당을 둘러봤다.


주변에 은정에 관한 인기척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스튜디오로 들어와 의문을 표하던 중 무대를 지켜보던 하련이 눈에 잡혔다.


"하련아 잠깐 나 좀 봐!"


"왜?"


"혹시 은정이도 작전에 포함시킬 생각이었어?"


이에 하련은 고개를 저어댔다.


"왜 내가 SMK까지 끌어들이면서 그래야 돼?"


"그럼 누구지?"


미로와의 대화를 통해 SMK가 가담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판단했다.


나는 생각을 더듬어보며 주변 환경이 어땠는지를 떠올렸다.


방금 전까지 석상같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소희가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 거기에 부원까지 알 정도라면 분명히 은정과 친분이 있는 사람과 접촉했다는 뜻이다.


오퍼레이터엔 통제 부원이 있으니 레미에 연관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고 거기에 돌아다닌 사람까지 고려했다.


그럼에도 나는 정확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자리에 경직되었다.


그동안 스튜디오는 활발하게 움직였고 시간을 보니 2부도 다 끝나갈 참이었다.


축제가 끝나면 레미 부원들이 다 같이 모여 무대 위에서 마무리 인사를 나눌 예정이었으니 일단 상황을 보류하고 이동할까 싶었지만 부원들이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다.


"하련 선배! 서비스 코너 할 시간 돼요?"


"충분해. 그대로 밀고 나가자!"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축제가 끝날 터인데 서비스 코너는 금시초문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송출되는 무대 화면을 살펴봤다.


선유와 미로는 무대 위로 올라와 있었고 곧바로 방송 스피커를 통해 무대에서 들리는 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오늘 여러분들과 오후 축제를 마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모두의 성원 덕분에 축제의 퍼즐들을 맞췄잖아? 근데 이렇게 축제가 끝나긴 아쉽잖아요 선배?"


"맞아! 그래서 이번 축제 때 받은 이 감사장을 여러분들 앞에서 읽고 싶습니다. 가능하죠?"


곧바로 관객들의 호응이 들려왔고 나는 듣도보도 못한 감사장 봉투가 뜯어지는 장면을 지켜봤다.


흰색 바탕에 종이로 된 봉투 속에 종이가 나왔고 종이도 제법 두꺼웠는지 접히다 만 흔적들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오달진 미소를 지으며 화면을 응시했고 감사장을 펼치던 선유조차 나긋한 미소를 지었다.


"강연에게 온 편지군요. 바로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놀랄 새도 없이 승준은 내게 어깨동무를 트며 엄지 척을 보였다.


무대 조명이 꺼지고 선유와 미로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이 상황이 뭔가 싶었다.


"마음속에 감추고 싶었지만 이렇게 편지를 올립니다. 오빠를 처음 봤을 때 웬 기인이 내 앞에 있나 싶었습니다. 갑자기 제게 화장을 청하니 굉장히 당황스러웠죠. 하지만 오빠는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실력자였습니다. 저는 오빠에게 받은 화장을 수도 없이 본 탓에 그날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죠."


그 후 선유는 감사장을 미로에게 넘겨줬고 미로가 감사장에 손가락을 짚어가며 읽을 지점을 찾아갔다.


"오빠가 다시 화장해주는 순간이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오빠가 해주는 화장은 순수하면서 섬세하게 와 닿았기에 부담 가지지 않고 묵묵히 화장이 끝나길 기다렸죠. 화장이 다 끝난 직후, 저는 얼굴로 놀림받는 사람이 아닌 당당하게 제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비록 화장이라는 가면을 썼지만 그걸 주저 없이 만들어준 강연 오빠가 멋있고 든든해 보였습니다. 화장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무대 조명이 켜졌고 관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의문이 들어 머리를 더듬거렸지만 감사장 내용을 되돌아보니 소희 밖에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강연이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사랑받는 존재인 걸까?"


"정말 부러워요. 이런 신실한 마음을 가진 선배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동아리를 떠난다니 말이죠."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이 상황을 수긍했다.


어차피 알려야 될 내용, 차라리 이렇게 일파만파 퍼트리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럼, 나도 그만둬야겠네."


"뭐?"


잘못 들은 줄 알고 화면을 살펴봤지만 관객 쪽에서 의문의 함성을 질러대며 웅성거렸고 선유는 허탈한 표정으로 관객들을 바라봤다.


나는 재빨리 바깥쪽 문으로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무대를 지켜봤다.


발 벗고 나서고 싶었지만 분위기도 그렇고 SMK의 입김이 예민해져 보여 조용히 자리를 유지했다.


"선배, 진심이세요?"


"강연이 없으면 SMK의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없어질 거면 다 같이 없어져야지. 우리는 하나의 팀이었잖아!"


이에 앞좌석은 아비규환에 빠진 채 혼란스러워했고 통제 인원들은 일제히 스튜디오와 오퍼레이터를 에워쌌다.


나는 조명이 보이지 않는 벽 쪽에 몸을 기대 SMK를 지켜봤지만 익숙한 자리가 비어있던 게 눈에 잡혀 곧바로 통제 인원 속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이는 늦은 판단이었고 스쳐가는 검은 실루엣이 내 멱살을 잡아챘다.


그대로 벽으로 밀쳐나간 뒤에야 서로 눈을 마주쳤다.


검은색 티타늄 테 안경에 살의적인 눈초리만으로 누구인지 대충 보여 실소를 지었다.


"엄청 빠르네. 이게 팬쉽이라는 건가?"


"다물어!"


규리가 한 손으로 쥐는 힘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해 점점 목이 매캐해졌다.


그때 선유와 미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로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그렇긴 하지만, SMK도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요?"


"그럼 또 악순환을 자처하겠단 뜻이야? 우린 하나의 사람이지,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고!"


그 후 스튜디오에서 나미 선배와 하련이 나와 제지에 나섰고 이를 듣던 규리는 힘을 풀어 그대로 손을 놓아 내 가슴을 밀쳐냈다.


가만히 있나 싶었지만 금세 음흉하게 웃어대며 핑거팁 자세를 취했다.


"이렇게 판을 갈아엎다니. 내가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오해야. 난 방금 전에 이 사실을 알아챘어!"


"어디서 거짓말이야? 이제 대가를 치를 텐데 잘도 입을 나불대고 있네!"


다음에 규리가 보일 행동은 안 봐도 뻔한 시나리오였다.


비록 누나가 강당에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은정처럼 누군가 매복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나는 맥락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상황을 받아들이는 실정이었다.


"잘 가!"


그렇게 규리가 쿡쿡 쪼개면서 핑거팁을 하려는 순간 내 앞으로 뭔가가 지나쳤고 검은 실루엣이 역동적인 몸동작을 보이면서 그대로 규리의 복부에 돌려차기를 강타했다.


예상치 못한 탓에 규리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안경을 떨어트렸고 이를 줍는 검은 실루엣이 보란 듯 그 자리에서 손 힘으로 안경다리를 박살냈다.


"너 우리 동생한테 뭐 하는 거야?"


규리는 물론, 나조차도 상상 못 한 존재, 누나가 내 앞에 나타나 괴력을 선보였고 뒤따라 도움반 선생님이 누나를 향해 뛰어왔다.


"다연아! 다른 사람 함부로 때리지 말랬잖아!"


도움반 선생님이 화난 누나를 겨우 추스르며 뒷걸음질 쳤고 나는 다소 멍해진 채 누나와 대면했다.


"누나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방금 전부터. 근데 저 애가 너한테 목 조르고 있었잖아! 어떻게 된 거야?"


"나중에 설명해줄게. 도와줘서 고마워."


도움반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누나를 끌어안은 채 강당을 나왔고 나는 규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살짝 빗맞았던 게 보였음에도 규리는 아무것도 못한 채 주저앉다 쓰러지다를 반복했다.


"어떻게, 이런 힘이!"


"합기도에서 누나 발차기 아프다고 소문이 자자했거든. 하지만 누나도 린치였으면 나처럼 속수무책이었을 거야."


"말도 안 돼!"


어처구니없었지만 아무튼 주적이 조명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멈춰있으니 내게 있어서 호재였다.


그 후 나는 통제 인원들에게 오라고 손짓했고 부원 서 너명이 내게 다가왔다.


"이 계집 보이지? 우리 레미 막장으로 만든 주범 중 하나니까 스튜디오에 잘 가둬놔줘."


"알겠어! 그냥 데려가면 돼?"


"어, 화난다고 때리진 마. 어차피 못 움직일 거야."


규리가 통제 부원들에게 이끌려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모습, 참으로 통쾌한 순간이었다.


나도 덩달아 스튜디오로 들어와 상황을 지켜본 뒤 화면에 잡히는 행태들을 보았다.


마지막에 뭔 난리인가 싶어 안쪽 문으로 향하던 중 승준이 재빨리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안쪽 문을 온몸으로 막았다.


"선배! 나가기 전에 제 말 듣고 나가는 게 나을 거예요!"


"뭔데?"


승준이 해주는 말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눈을 부릅뜬 채 잠시 손에 턱을 괴며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토대로 이번 일들을 정리해나갔다.


무대에 들어서니 무대 중앙에서 벌어지는 갈등, 아니 작전을 위한 연기가 너무도 절실해 보여 주저할 필요 없이 무리에 진입했다.


"그만 해. 더 이상 주접떨 필요 없어."


내가 들어서자 주변은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 경직되었고 선유는 딱 내가 대면할 수 있게 자리잡으니 흐름도 안성맞춤이었다.


"이 작전, 선유 네가 구상했다면서?"


"강연아, 나는 그저."


"알고 있어."


선유는 막막한 듯 인상을 썼지만 나는 조금씩 안색을 풀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너의 고충을 해결해줬으니까 이번엔 네가 내 고충을 해결해주고 싶었던 거잖아?"


내가 승준에게 들었던 말은 이게 다였다.


이를 통해 왜 선유가 오퍼레이터에 들어갔는지, 감사장을 어떻게 만든 건지, SMK를 상대로 대담하게 나섰는지, 그리고 그 일까지 모두 이해한 채 마음만은 충분히 보답받은 상태였다.


나는 무대 중앙 마이크를 두들기며 스피커와 앰프 상태를 확인하며 관객들을 둘러봤다.


"아아! 갑작스러운 소동으로 인하여 실례를 끼치게 된 점 사과드립니다. 잠시 뒤, 레미 일동의 합동 인사와 함께 축제의 폐회식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변 부원들의 당황스러운 시선이 역력했지만 나는 마이크를 거치대에 둔 뒤 부원들을 보며 실소를 지었다.


"어차피 이렇게 판 벌려놓은 거 SMK가 호락하게 가겠어요? 빨리 진행합시다."


부원들은 내가 무슨 소릴 하는지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 후 레미 일동이 2오로 줄지어 섰고 나는 다시 마이크를 잡은 채 상황을 지켜봤다.


선유와 미로부터 학년 대표 부원들, 정비 부원들, 방송 부원들까지 처음에는 무표정으로 덤덤하게 있는 듯 했으나 금세 분위기를 타며 하나둘씩 미소를 지었다.


폐회식 대본은 이미 내 손에 있었고 간략히 확인해둔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마이크를 잡아 폐회식 연설을 이어나갔다.


"이상으로 제17회 태천고등학교 전반기 축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나를 더불어 레미 부원들이 일제히 고개 숙여 인사를 올리자 관객석에서 가볍게 갈채를 보내줬다.


고개 들어 관객석 주변을 둘러보니 학생들이 강당 대문을 통해 나가는 모습이 보였고 예상대로 SMK 계집들은 아직도 혼란스러운 듯 이리저리 웅성거리며 자리를 지켰다.


슬슬 입을 열까 할 찰나, 갑자기 뒷자리에 있던 학생들이 나가려 하질 않자 나는 다시 마이크를 두드렸다.


"축제가 마무리되었으니 학생 분들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을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꼼짝도 하질 않자 나는 무심코 마이크가 켜진 채 한숨을 내쉬었다.


아차 싶어 분위기를 읽었지만 다들 이렇게 있으니 내게 선택권은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무대에 걸터앉은 채 마이크를 잡았고 앞좌석에 앉아있던 SMK 계집들과 눈을 마주쳤다.


"원래라면 난 이 축제를 끝으로 레미를 그만둘 생각이었어. 이래저래 이유야 있었지만 결국 SMK가 싫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지. 헌데 내 존재감이 이렇게 재평가를 받을 줄 몰랐어."


나는 손가락으로 여러 SMK 계집을 겨냥하며 팔을 좌우로 움직여댔다.


"여기 있는 계집들의 생각을 다시 들어보고 싶어. 내가 떠나야만 하는지, 아니면 레미에 남길 원하는지 말이야."


원래 SMK라면 날 부정하는 파가 대체적이겠지만 선유가 강한 임팩트를 날린 탓인지 선뜻 부정도, 무마도 못하는 애매한 모습들을 보였다.


상황이 계속되자 나는 다시 마이크를 두드리며 말을 이어가려 했다.


그 순간 앞좌석 가운데쯤에서 누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채 나와 대면했다.


"가지 마."


익숙한 얼굴이라 이젠 놀랄 것도 없어 또다시 마이크에 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 계집, 어디 나불거려 봐."


"오빠,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런 짓 안 할 게."


"널 어떻게 믿냐?"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 오빠를 잃고 싶지 않아."


마치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유나는 울먹인 채 내게 애태웠고 검은 완장 계집들은 회장의 무기력한 모습에 덩달아 위축되었다.


그때 이를 대적할 만한 사람이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대면했다.


"회장이 우습냐? 너 같은 속물 하고 오빠들이 같이 붙어 다니는 게 얼마나 역겨운지 알고 떠드는 거냐고!"


"그럼 원래대로 진행할까?"


나는 조금씩 건들면서 여러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 순간 무대에 있던 누군가가 내 마이크를 채가 무대 앞에 섰다.


"뭐가 역겨운데?"


목소리와 함께 민아가 질겁한 듯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대충 왜 그런지 보여 고개를 끄덕였다.


"강연 선배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우리하고 어울릴 수 없다는 건데?"


"미로 오빠,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예요!"


"언제까지 강연 선배가 너희들한테 휘둘려야 되는데? 우리는 뭐 다루기 쉬운 인형인 줄 알았어?"


의외의 반응이었다.


사실상 SMK의 앞잡이 역할을 맡던 미로의 역습이 이어지니 민아는 아예 얼어붙은 채 경직되었고 유나도 미로의 면모를 보고 놀란 듯 보였다.


검은 완장을 찬 계집들도 표정이 굳었고 머지않아 내 왼쪽 옆으로 선유가 빈자리를 채웠다.


"강연아, 지금이 적기인 것 같지 않아?"


"이거 참."


다들 한 소리하던 날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통쾌한 상황을 생소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미로가 내게 마이크를 건네주자 나는 유나를 보며 오달진 미소를 씩 지어갔다.


"회장 계집, 내걸고 싶은 조건이 생각났어. 들어볼래?"


"말해줘!"


쉽지 않은 맞수라 나는 숨을 고르며 상황을 환기했다.


마이크를 들자마자 엄습하는 불안감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지금은 미련을 가질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너한테 거친 폭력을 당했다고 말하면 믿어줄 거야?"


이에 유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고 앞좌석 뒷좌석 가릴 것 없이 주변이 술렁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유나가 어이없는 듯 고개를 절절거리는 모습과 그 당시 살갑게 다가오던 모습과 대조되어 역겨움 그 자체였다.


물론 겉으로 덤덤하게만 굴면 기점을 잡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이 타이밍에서 조건을 걸게.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들을 듣고 내가 SMK에 남길 원하는지, 아니면 SMK를 떠나길 원하는지 말해주면 돼."


"왜 그래 오빠? 아까부터 살벌하게."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유나가 가볍게 고개를 까딱할 동안 나는 또다시 마이크를 대고 한숨을 내쉬려 한 걸 겨우 참아냈다.


"S&M 시절, 나는 너와 처음으로 마주쳤어. SMK를 명분으로 내세우던 네 앞에 나는 기지를 부리며 멀어지려 했지."


현재까지만 해도 주변에게 알려주는 내용치고는 제법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선유와 미로, 그리고 레미 부원까지 내 발언에 경악한 듯 보였고 뒷좌석에 앉아있던 학생들은 더욱 웅성거렸다.


유나는 아직까지도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듯 보였다.


"그 후 얼굴에 상처가 남았던 탓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했고 이게 내 아이콘이 되었다, 참 웃기지 않아? 그 후로 날 보고선 좋아한다 뭐라나 지껄이고 말이야."


"무슨 소리야 오빠? 난 오빠를 이전에 본 적이 없어."


"그러겠지. 나는 그 당시 레미의 졸개로 밖에 안 보였으니까. 내가 얼마나 상처 입었었는지 알기나 해!"


마지막에 성깔을 부려보니 유나는 내 험악해진 인상에 겁먹은 채 눈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마이크를 부르르 떨며 고개를 숙이다 겨우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네 흑심에 상처 받은 졸개가 SMK에 남아있길 원해? 아니면 다시 졸개로 돌아가 쥐 죽은 듯이 박혀있을까? 선택해."


나는 선유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며 양손에 턱을 괸 채 유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유나는 내 폭탄 같은 발언에 입조차 뻥끗 대지 못했지만 이내 숨을 고르며 나와 대면했다.


"오빠한테 그럴 줄 몰랐어! 오빠가 나한테 그런 상처를 입었어도 날 용서해줬단 거잖아."


유나가 점점 울먹이더니 결국 그 자리에서 목놓아 울음을 터트렸다.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그 당시 흑심과 대조되어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한 방 먹인 것 같아 마음속은 제법 홀가분했다.


"오빠가, 오빠가..."


슬슬 선택의 시간이 도래되었단 생각에 분위기도 보여 대충 무슨 답이 나올지 예측했다.


어디 하나 없이 다들 숨죽여 나와 유나의 대화를 지켜봤고 유나는 점차 얼굴 앞에 놓은 손을 치워냈다.


"오빠가 SMK에 남아줬으면 좋겠어."


"뭐?"


잘못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얼떨떨한 감정이 감돈 채 나는 선유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았고 그래도 마이크를 두들기며 유나와 눈을 마주쳤다.


"너, 아직도 졸개가 네 우상이 되길 원하는 거야?"


"미안해. 그때는 이런 오빠의 내면을 모르고 멋대로 굴었었어. 이젠 오빠를 알게 되었으니까 다시 한번 내게 자비를 베풀어줘!"


정말이지, 이 계집은 날 얼마나 좋아하는가 싶었다.


아예 두 손을 깍지 낀 채 내게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자 나는 어눌한 모습을 보였고 주변 관객석과 레미 부원들은 마치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듯 긴장을 놓지 않았다.


나조차도 원하던 조건은 모두 충족한 상태라 더 이상 전개를 끌고 갈 의욕도 없던 상태였다.


"하, 내가 그렇게 좋냐?"


"좋아!"


"그래? 회장 계집이 그렇다는데 내가 별 수 있나. 레미 탈퇴는 이제부터 없었던 일이다. 알겠어?"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유나는 금세 내게 함박 미소를 보이다 애절한 미소를 지으며 훌쩍였다.


갑자기 레미 부원들이 떠들썩하자 나는 뭔가 싶어 뒤돌아본 순간 부원들이 한꺼번에 내게 다가와 크게 함성을 절렀다.


엄청난 인구 밀집에 나는 이리저리 몸이 이끌렸고 관객석은 SMK 계집들과 학생들의 박수 소리로 울려퍼졌다.


레미 부원들의 기쁜 표정들이 에워싸고 있으니 나도 미소를 지으며 이 상황을 누리는 게 인지상정이라 생각했다.


축제의 불꽃이 사그라들 즈음, 나는 무대 정비 부원들과 무대 쪽 정리를 마무리 지었고 오퍼레이터를 보니 문이 활짝 열린 채 나미 선배와 하련 선배가 사복으로 갈아입은 소희와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나는 무대 벽에 기댄 채 휴대폰을 켰고 채팅방에 들어가 보니 소희의 프로필이 바뀐 걸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스튜디오에서 레미의 모든 눈초리를 한 몸에 받고 있던 규리 건만 잘 처리하면 일이 잘 마무리되나 싶었다.


그 순간 나는 아직 한 가지 잊고 있던 걸 떠올리며 채팅방에 들어가 자판을 두들겼다.


'은정아!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왜 목표를 버리고 날 도와줬던 거야?'


응답이 없는 듯 했지만 얼마 안 가 답글을 적고 있단 상태창이 떴다.


'착각하지 마. 선유 오빠가 있길 바라니까 난 선유 오빠 소원을 이뤄준 것뿐이야.'


이에 나는 고개를 절절댔다.


내가 방심할 사이에 오퍼레이터에 잠입해서 신호탄 역할로 소희의 화장이 끝났단 사실을 선유에게 알려줬다는 행적,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갈등을 야기했던 은정과의 만남이 결국 은정으로부터 갈등을 무마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실없이 미소를 지으며 자판을 두들겼다.


'그러고 보니 너 아까 니트 꽉 쥐고 있었잖아? 설마 그거 소희한테 해준 화장이 질투 나서 그랬던 거야?'


'몰라. 그런 적 없어.'


참으로 빠른 대답이었다.


알다가도 모르는 배같은 동생의 모습, 이는 나 자신이 놀라운 선의를 베풀 정도로 기분좋게 만들었다.


엄마 주절대는 것 좀 어떻게 말려봐. 짜증 나니까."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파트는 10부작으로 완필됩니다.

그리고 이 파트를 끝으로 1권 분량이 마무리됩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보다 잘쓰는 글쟁이가 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배같은 동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39. 마땅한 복수? - 4 20.05.12 30 0 15쪽
39 38. 마땅한 복수? - 3 20.05.11 32 0 12쪽
38 37. 마땅한 복수? - 2 20.05.09 38 0 12쪽
37 36. 마땅한 복수? - 1 20.05.02 43 0 12쪽
» 35. 기쁨을 주는 Make up! - 10 20.04.09 29 0 22쪽
35 34. 기쁨을 주는 Make up! - 9 20.04.06 31 0 14쪽
34 33. 기쁨을 주는 Make up! - 8 20.04.05 31 0 14쪽
33 32. 기쁨을 주는 Make up! - 7 20.04.04 30 0 13쪽
32 31. 기쁨을 주는 Make up! - 6 20.04.02 31 0 12쪽
31 30. 기쁨을 주는 Make up! - 5 20.03.30 35 0 12쪽
30 29. 벗어난 매듭 - 1 20.03.29 34 0 16쪽
29 28. 합법적 잣대 - 8 20.03.24 32 0 21쪽
28 27. 합법적 잣대 - 7 20.03.22 31 0 12쪽
27 26. 합법적 잣대 - 6 20.03.21 35 0 13쪽
26 25. 합법적 잣대 - 5 20.03.21 37 0 14쪽
25 24. 합법적 잣대 - 4 20.03.19 36 0 16쪽
24 23. 합법적 잣대 - 3 20.03.16 40 0 11쪽
23 22. 합법적 잣대 - 2 20.03.10 47 0 11쪽
22 21. 합법적 잣대 - 1 20.03.09 43 0 11쪽
21 20. 필연적 접근 - 7 20.03.05 49 0 11쪽
20 19. 필연적 접근 - 6 20.03.04 48 0 12쪽
19 18. 필연적 접근 - 5 20.02.20 50 0 19쪽
18 17. 필연적 접근 - 4 20.02.18 54 0 12쪽
17 16. 필연적 접근 - 3 20.02.16 48 0 13쪽
16 15. 필연적 접근 - 2 20.02.15 48 0 11쪽
15 14. 필연적 접근 - 1 20.02.14 55 0 11쪽
14 13. 망할 계집 - 7 20.02.12 67 2 11쪽
13 12. 망할 계집 - 6 20.02.11 68 3 10쪽
12 11. 망할 계집 - 5 20.02.10 69 3 14쪽
11 10. 망할 계집 - 4 20.02.09 80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