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일반소설

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890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8.03 23:00
조회
27
추천
0
글자
11쪽

54. 메마른 기억 - 1

DUMMY

민후 형의 차를 타고 집까지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나는 피곤함에 몸을 겨누지 못한 채 차량 좌석에 늘어지다 주상복합 입구에 다다르자 조심히 몸을 풀어갔다.


"민후 형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네가 다 이끌었지. 네 시간 잡아가면서까지 간섭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민후 형 차에서 내리자 나는 알 수 없는 공허함에 미소를 지었다. 해방감 같은 느낌이 조금씩 들면서도 단기간의 휴식으로 인한 포근함이 내 몸을 후련하게 풀어주는 기분이었다. 민후 형의 차로 시선을 향한 채 조용히 기지개를 켜던 중 민후 형이 조수석 쪽 차 유리를 내리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으로 나눌 인사라 생각해 나는 금세 자세를 풀고 손을 들었으나 민후 형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내 쪽을 가리켰다.


나는 말없이 민후 형의 행동에 의문을 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군가 내게 다가오고 있단 걸 눈치챘다.


"강연아!"


인기척을 느끼고 뒤로 홱 돌아보니 얼굴색이 뻘게진 아버지가 내 앞에 서있었다.


"아버지, 술 마셨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대리운전한테 운전 맡기고 막 도착했던 참이야."


아버지는 숙취해소 음료와 민트초코 우유를 담은 투명한 비닐봉지를 내밀며 나긋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해장라면을 먹고 나서 숙취해소 음료를 마시는 걸로 숙취를 해결하는 파였다. 이는 즉 내가 집에 가서 할 일이 정해져 있단 뜻이었다.


나는 짧은 한숨과 함께 민후 형과 대면했다. 민후 형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부릅 뜨고 있었다.


"강연아, 아버님이셔?"


"네."


"말도 안 돼."


민후 형에게도 내게 이런 외모의 아버지가 있단 사실에 놀란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민후 형이 내 지인이라 생각했는지 차량 앞까지 다가와 정장 속주머니를 뒤적였다.


"반갑습니다. 아들이 신세를 졌군요."


"아닙니다."


민후 형은 손사래를 치며 부인했고 나는 아버지의 주정에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성실하고 검소함에 착실한 아버지는 술만 들어가면 저렇게 넉살을 놓기 일쑤였다.아버지는 정장에서 꺼낸 명함을 민후 형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죄송해요. 술만 마시면 이래서요."


"아니야. 그럼 나중에 또 보자."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민후 형이 차를 타고 떠난 자리에 나뭇잎이 떨어져 있었다. 타이어 자국으로 인해 이리저리 까맣게 무늬를 새겨놓은 나뭇잎은 얼마 뒤 바람에 날아가다 근처 가로수 뿌리 쪽에 놓였다. 그리고 우욱이란 소리와 함께 반대쪽에 위치한 가로수에 아버지와 뚝뚝 떨어지는 토사체가 보였다. 나는 그렇게 오늘의 마지막 한숨을 내쉬었다.


시험 기간이 점점 다가왔지만 나는 이전보다 한결 편한 상태였다. SMK와 레미에 별 신경 쓰지 않고, 자투리 시간에 자습실을 빌려 공부하는 나날이 작년의 내 모습 같았다. 인기척 하나 제대로 느낄 수 없는 몇 명끼리의 침묵 속에서 이따금 들리는 샤프의 딱딱거리는 소리와 책 종이를 넘기는 소리, 피곤함에 뻗어 새근거리는 소리까지 모두 내게 익숙했다. 다른 점이라면 레미의 영향 때문인지 자습실 우측 끝 유리 벽을 통해 보는 시선이 많아진 것 정도였다.


학교 세간에 퍼지는 소문에 의하면 1학년 여학생들이 SMK 인원들의 이모저모를 캐묻고 있다고 한다. 선유와 미로의 재치로 매번 가볍게 넘어가는 듯 보였지만 나는 사람들과 목전에서 만나질 않으니 괜히 호기심만 자극할 꼴이 아닐까 싶었다. 그럼 어떡하나. 공부를 해야 되니 말이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선유로부터 스튜디오로 와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아무래도 지난 일들에 대한 뒤풀이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예상대로 선유는 민후 형의 웹툰에 관한 감상평을 이어갔다. 스튜디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니 나는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를 무릎 위에 얹어둔 채 계단에 걸터앉던 중이었다. 선유가 웃으며 얘기를 진행하나 싶었지만 스토리가 스토리다 보니 거북해하는 모습이 내 눈가에 여러 번 잡혔다.


"괜찮겠어? 내가 괜한 부탁을 해서 이런..."


"그렇지 않아! 그, 축제 때 있던 일 때문에 좀 예민해졌던 거지 결코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뒷얘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말해도 될까?"


"부탁해!"


내가 민후 형과 의논을 할 때부터 식당에서 부모와 만나 일어난 일까지 마치 정리된 아이디어처럼 간결하게 끊어가야만 했다. 현재 민후 형의 웹툰은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어머니에 관한 부당함을 폭로한 채 여러 번 타협을 거절했었다. 그러나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주인공의 동생이 주인공의 집 앞에 서서 울고불고 애원한 끝에 어머니와의 만남을 약속하겠단 내용으로 마친 상황이었다. 스토리를 맞추면 식당 내에서 침묵을 지키는 주인공 뒤에 무슨 전개가 벌어질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선유는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며 인상을 지었고 나는 짧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작가님이 결말은 어떻게 할 거라 말해준 건 없어?"


"없어. 주인공이 어머니를 죽도록 싫어한다는 것밖에 모르겠어."


"왜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가."


"어떤 부분이?"


"주인공의 어머니가 주인공한테 지나치게 무심했다고 하잖아. 그런 어머니가 잘 먹여주고, 잘 입혀주고, 잘 재워줬다고 연신 어필하는 부분이 나오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진 거 있지."


'?'


나는 고개를 들어 선유를 바라보았다. 선유의 일그러진 인상과 함께 나는 방금 전 선유의 말을 되뇌었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베푸는 기본적인 양육이 자식에게 책임이 있단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선유 너는 부모님이 해주시는 일들에 감사하고 있어?"


"부모님의 보은에 조금이라도 베풀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수긍의 의미가 아닌 선유의 입장이 어떤지 이해한 것 정도였다.


"실은 거기에 관해 책을 읽었던 적이 있어서. 부모가 베푸는 기본적인 욕구에 관한 건데, 네가 말한 대로 부모가 베푼 은혜를 자식이 그대로 환원하자는 입장도 있는 반면에, 부모의 부모가 부모에게 베푼 은혜를 마음속에 품고 이를 자식에게 베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순리적인 입장이 존재했어. 즉 후자는 부모가 자식에게 은혜를 강요하지 않는 파라는 뜻이지."


내가 선유에게 잘 어필했는지 떠보던 중 선유의 멋쩍은 표정과 함께 나는 문장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단 걸 알아챘다.


"결론은 다른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는 거였어."


이에 선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비즈니스 같잖아. 자식을 낳지 않는다면 아예 성립하지 않는 조건이기도 하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여기서 더 말해봤자 선유의 뜻은 확고해 보였다.


"왜 네가 이 웹툰에 맞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아. 이 웹툰은 후자에 가까운 생각으로 스토리를 짜왔거든."


선유도 할 말은 없어 보였다. 잠시 동안 서로에게 어색한 모습들만 오갔다. 그동안 레미에서 보여준 Q&A에 맹신했던 걸까 싶었다. 선유는 무대 위에서 건네받는 질문에 성심껏 답해주는 파였다. 그러나 선유는 자신만의 입장이 분명했다. 나는 상황에 맞게 생각을 달리 해야만 했다.


"선유야, 억지로라도 내 의견을 들어줄 필요는 없어."


선유가 대꾸하려 했지만 금세 말문이 막히다 입술을 오물거렸다. 자신을 필요로 한 내 심정을 이해하려 애쓰는 듯 보였다. 여기서 망설여봤자 마무리만 구질해질 뿐이다. 궁리해 둔 생각을 선유에게 전해야만 했다.


"강연아 미안해.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나는 한 손을 가볍게 저으며 선유와 대면했다. 이렇게 틀을 대고 애매하게 굴어봤자 일만 더 꼬일 것이다.


"선유야, 실은..."


관점을 바꿀 뿐이라 할 얘기는 몇 없었다. 선유는 놀란 듯 침을 삼키다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의자 앞에 서있었다.


"네가 들어도 웃긴 얘기지?"


"그렇진 않지만, 미로한테는 얘기했어?"


"아니. 민아와 관련된 일에 내가 끼어들었다고 하면 아니꼽게 볼 게 뻔하잖아."


"그렇겠지."


애초부터 미로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았다. 드럭스토어 이후에도 미로는 나와 만나 SMK에 관한 고충을 풀어갔다. 그때마다 항상 기죽은 표정이 함께했다. 최근 시험 기간으로 SMK SNS 창 메시지가 폭주에 가깝게 치솟았던 참이다. 이를 미로가 대부분 전담해 볼 때마다 피로에 찌든 모습이 역력했다. 요즘은 빈말과 일탈을 반복하는 모습까지 보여 내가 유나를 이용해 자제하겠다 일러뒀지만 미로는 뿌린 대로 거두는 거라며 날 애써 말렸다.


'너 그러다 병 걸려. 조만간 시험 기간이잖아.'


'괜찮아요. 당분간 레미 활동도 없으니까 시험 끝나고 좀 쉬면 돼요.'


'몸 관리 잘해. 너 끙끙 앓는 짤 올리고 싶지 않으니까.'


'조심할게요...'


어찌 됐든 선유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으니 걱정보단 후련한 감정이 앞섰다. 은정과의 마찰로 다신 없을 행동이라 여겼지만 상황마다 할 일이 있고 그런 것 같다.


"강연아, 궁금한 게 있어."


"뭔데?"


"왜 네가 굳이 나서서 민아 가족 일에 관여하는 거야?"


"모르겠어. 의식의 흐름에 이끌렸던 것 같아."


나는 애써 의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선유는 눈매를 찌푸리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다 나와 대면했다.


"강연이 네가 남한테 이용당하는 것만 같아 영 속이 편하질 않아. 레미에 무대 공연을 하겠다는 것부터 SMK 부원이랑 이상한 스캔들 만들고, 규리 때문에 탈부 위기까지 오고, 거기다 우리 몰래 선행을 베풀려고 했던 것까지 전부 너한테 무리하게 요구되고 있잖아. 너무한 거 아냐?"


선유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다 오만상이 되어 입술을 헐뜯고 있었다. 되돌아보니 그렇기도 하다. 나는 줄곧 규리의 트랩에 속아 수동적인 자세로 SMK를 지내왔다. 이미 지난 일이라 털털하게 넘긴 나지만 선유는 지금 이 상황과 비슷하게 와 닿은 듯 보였다.


"이건 부당해! 그냥 포기하고 쉬었으면 좋겠어."


"괜찮아. 이제 막바지고 곧 여름방학이잖아. 그때 좀 쉬면 돼."


"자꾸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호구 잡히는 거 아닐까?"


다른 목소리와 문이 끼익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나와 선유는 스튜디오 바깥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하련은 유유히 스튜디오에 들어와 나와 선유를 제쳐갔다. 화장대 서랍을 뒤지는 걸 봐선 뭔가 가지러 온 듯 보였다.


"뭐 두고 온 거 있어?"


"장난쳐?"


하련은 이내 나와 대면해 인상을 찌푸렸다.


"선유한테 접촉해서 뭔 얘기를 하나 싶었는데 결국 이런 거였어?"


"아니, 원래 이럴 의도는 없었어."


"뭐가 없어야?"


하련은 서랍을 거세게 밀어낸 채 날 째려보았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고, 선유도 뻘쭘한 지 하련에게 시선을 주지 못했다. 내가 뭐라도 대꾸할까 싶을 찰나 하련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모자를 채가더니 챙을 뒤로한 채 자신의 머리에 썼다.


"다 들었으니까 핑계될 생각하지 마!"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배같은 동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39. 마땅한 복수? - 4 20.05.12 30 0 15쪽
39 38. 마땅한 복수? - 3 20.05.11 32 0 12쪽
38 37. 마땅한 복수? - 2 20.05.09 39 0 12쪽
37 36. 마땅한 복수? - 1 20.05.02 43 0 12쪽
36 35. 기쁨을 주는 Make up! - 10 20.04.09 29 0 22쪽
35 34. 기쁨을 주는 Make up! - 9 20.04.06 31 0 14쪽
34 33. 기쁨을 주는 Make up! - 8 20.04.05 32 0 14쪽
33 32. 기쁨을 주는 Make up! - 7 20.04.04 30 0 13쪽
32 31. 기쁨을 주는 Make up! - 6 20.04.02 31 0 12쪽
31 30. 기쁨을 주는 Make up! - 5 20.03.30 35 0 12쪽
30 29. 벗어난 매듭 - 1 20.03.29 36 0 16쪽
29 28. 합법적 잣대 - 8 20.03.24 33 0 21쪽
28 27. 합법적 잣대 - 7 20.03.22 31 0 12쪽
27 26. 합법적 잣대 - 6 20.03.21 36 0 13쪽
26 25. 합법적 잣대 - 5 20.03.21 39 0 14쪽
25 24. 합법적 잣대 - 4 20.03.19 38 0 16쪽
24 23. 합법적 잣대 - 3 20.03.16 42 0 11쪽
23 22. 합법적 잣대 - 2 20.03.10 49 0 11쪽
22 21. 합법적 잣대 - 1 20.03.09 45 0 11쪽
21 20. 필연적 접근 - 7 20.03.05 50 0 11쪽
20 19. 필연적 접근 - 6 20.03.04 48 0 12쪽
19 18. 필연적 접근 - 5 20.02.20 50 0 19쪽
18 17. 필연적 접근 - 4 20.02.18 54 0 12쪽
17 16. 필연적 접근 - 3 20.02.16 48 0 13쪽
16 15. 필연적 접근 - 2 20.02.15 48 0 11쪽
15 14. 필연적 접근 - 1 20.02.14 56 0 11쪽
14 13. 망할 계집 - 7 20.02.12 67 2 11쪽
13 12. 망할 계집 - 6 20.02.11 68 3 10쪽
12 11. 망할 계집 - 5 20.02.10 69 3 14쪽
11 10. 망할 계집 - 4 20.02.09 80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