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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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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836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5.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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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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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7. 마땅한 복수? - 2

DUMMY

"화장품 사러 왔지 아니면 뭐겠어?"


유나의 교복을 보고 하교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생각했다. 유나는 내게 나긋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내게 다가와 내 교복 소매를 흔들어 댔다. 히죽대며 상황을 즐거워하니 주변 시선이 우리 쪽으로 집중되었다.


"교복 늘어지잖아. 안 떨어져?"


"싫은데! 오빠가 날 의심했으니까 내리는 벌이야."


"나 참..."


잠시 동안 감질나게 즐기는 듯 보였으나 유나는 내 장바구니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뭔데 이렇게 많이 샀어? 저번처럼 화장해줄 사람 생긴 거야?


"아니. 누나 화장품 떨어져서 사러 온 건데."


"누나? 오빠 누나가 있었어?"


유나가 놀란 듯 휘둥그레진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덩달아 미로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자 뭔가 싶을 즈음, 미로가 손가락으로 내 등에 X자를 그려댔다. 뒤이어 고개를 살살 젓는 미로의 모습에 나는 대충 상황을 파악한 뒤 유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축제 때 규리가 안 보였잖아. 그때 날 괴롭히는 줄 알고 규리한테 돌려차기를 날렸던 사람이 누나였어."


"뭐? 설마 규리가 며칠 동안 끙끙 앓았던 게 다 그 언니 때문이었어?"


"맞아. 규리가 잠시 동안 스튜디오에서 몸을 숨겼던 것도 다 거기서 시작되었던 거야."


"세상에."


유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이어갔지만 규리 얘기에 점점 표정이 굳어갔다. 뭐라 얘기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정적이 흐르는 분위기에 나도 미로도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화장품을 구매한 뒤 나는 미로와 헤어져 유나와 발을 맞추며 집으로 향했다. 내가 규리에 관한 얘기를 이어가니 유나는 아무 말없이 굴다가 조금씩 볼을 부풀며 인상을 썼다.


"선유 오빠, 솔직히 좀 의외야."


"뭐가? 네들이 스토킹한 게 스트레스였다고 미리 일러뒀을 텐데."


"그래도! 오빠는 내가 이렇게 했어도 결국 용서해줬잖아. 근데 선유 오빠는 규리한테 따귀를 날렸다고 하니까. 가뜩이나 아팠을 텐데 거기서 더 때릴 생각을 한 게 말이 안 돼."


'웃기고 자빠졌네.'


이게 진정한 모순이 아닐까 싶었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 잘도 린치를 합리화한 계집이 이렇게 이성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이 공존한다니 실로 소름이 돋았다. 최근에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지만 유나의 속내는 아직도 들끓고 있을 것이다.


주상복합 후문을 통과해 나무가 우거진 인도에 다다르자 유나는 내 교복 와이셔츠 소매를 거세게 잡아당기더니 그대로 내쪽으로 밀쳐내며 까르르 웃어댔다. 내가 뭐라 대꾸하려던 순간 유나는 이미 저 멀리 도망쳐 내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축제 여파에도 유나가 저렇게 마이 페이스를 유지하는 모습에 다행인 건지 안 좋은 건지 딩최 알 수 없었다.그저, 속내를 드러낼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사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누나 방문을 두들겼다. 마스크를 교복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자마자 누나가 문을 열어 나와 대면했다.


"왜 그래?"


"화장품 사 왔어."


화장품이 든 종이 봉투를 건네주자 누나는 봉투를 열어 화장품들을 둘러봤다. 빠진 화장품이 없는지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대충 일이 마무리된 것 같아 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교복도 입고 있겠다, 나는 거울 앞에 선 채 새로 사 온 면 마스크를 하나 꺼내 포장을 뜯었다. 미로가 보여준 대로 얇고 찍어낸 듯한 비주얼인 걸 확인하고 나는 그대로 마스크를 얼굴에 착용한 뒤 메쉬캡을 써보았다.


"오!"


이전에 쓰던 마스크보다 통풍이며 라인이며 어디 하나 손색없는 제품이었다. 거기에 표면적까지 넓으니 측면 트러블도 보완하여 마음에 쏙 들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얼굴 윗쪽 주변 트러블이었다.


축제가 끝나자마자 나는 트러블에 맞는 화장품들을 두루 구입했었다. 토너에 에센스, 젤, 로션, 파우더, 심지어 누나 비비크림에 셰딩까지 동원해 트러블을 지워보려 했지만 내 피부를 구제하긴 어려웠다. 오히려 피부에 어떻게 유분이 떠다니는지, 마스크에 묻은 화장품은 뭘로 지워야 되는지 알아갔다. 책상 위에 올려둔 화장품들을 보며 세안 후 어떤 조합을 쓸까 고민하던 중,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나다 그대로 문이 열린 걸 확인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문 너머로 누나가 보였고 내가 사 온 빨간색 틴트를 시용했는지 오른손에 브러시를 꼭 쥐고 있었다.


"강연아 어때?"


"잠깐만."


누나 앞까지 다가가 확인해보니 혼자 바른 것치곤 무난한 색감이었다. 이제 누나도 스스로 가꿀 수 있나 경탄하던 도중, 나는 엄청난 오점을 보고 실소를 지었다. 누나가 잇몸을 보이며 웃는 순간 이에 범벅으로 묻은 틴트들이 내 눈을 자극했던 것이다.


"누나 잘 봐봐."


나는 곧잘 입술을 둥글게 벌려 그대로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다 빼는 모습을 보여줬다. 누나가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나는 이해하기 쉽도록 이가 살짝 보이도록 둥글게 입을 벌렸다.


"틴트를 바르면 꼼꼼하게 하려고 입술 끝까지 다 바르게 되잖아. 그래서."


나는 다시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다 마디가 살짝 들어갈 정도에서 그대로 손가락을 빼냈다.


"입술이 이에 맞닿는 부분을 효과적으로 지워주고자 손마디 쪽에 틴트를 묻히는 거지."


그래도 누나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보여 나는 누나의 브러시를 건네받아 본보기를 보여줬다. 나는 말한 대로 행동을 이어갔고 끝내 내 손가락에 틴트가 묻은 걸 본 누나는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다. 역시 강연이가 최고야!"


"하도 화장품을 접해서 그래."


누나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틴트도 지울 겸 세안에 나섰다. 오늘은 로션과 에센스만 바른 뒤 얼굴에 손찌검하지 않도록 휴대폰을 잡았다. 채팅창을 보니 미로가 SMK 근황을 막 보냈을 터였다. 오늘도 미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는 뉴스니 더도 볼 필요 없이 나는 자판을 두들겼다.


'유명인사 다 됐네 MI로.'


'선배까지 그렇게 부르기예요?'


언제부턴가 SMK에서 미로에게 'MI로'라는 애칭을 쓰며 찬양하는 컨셉 계집들이 부쩍 늘어났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 듯 무시하고 다녔지만 레미에서도 근근이 쓰기 시작해 어느새 미로의 대표 별명으로 자리 잡혔다. 미로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였으나 어디서나 부드럽게 녹아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얘기할 팬들이 많아지니까 힘들어요 선배 ㅠㅠ'


'자업자득이야. 민아도 완전 날뛰더만.'


'맞아요! 걔 왜 자꾸 그러는지...'


'그렇게 혼났는데 결국 허사였네. 역시 뿌리가 다른 집합소라니까.'


미로도 부정하진 않는지 잠시 동안 답글을 적지 못했다. 동시에 나는 SMK에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미로야, SMK는 대체 어디까지 영향권을 미치는 거야?'


'무슨 영향권이요?'


'멤버들이 대체로 우광중학교 여중생들로 되어있잖아. 근데 초등학생 애들도 보이니까 다른 학교에도 SMK가 들썩이나 궁금해져서."


'생각해보니까 자세히 알려준 적은 없네요;; 그 초등학생 애들 규리 따라 하고 싶어서 졸래졸래 따라다녔던 거예요.'


'그럼 엔간해서 SMK 계집들은 우광중 학생이라는 거야?'


'그렇죠'


염두에 둔 것과 다른 의외의 대답이었다. 뒤이어 미로가 작성 중이라는 상태창이 떴다.


'말 나온 김에 SMK 탄생 썰 있는데 들어볼래요?'


'탄생 썰?'


나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름 괜찮은 정보 같아 반색을 표했다.


'말해줘.'


'장황한 얘기가 될 수 있으니까 올리는 대로 읽으면 돼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는 인물 캐릭터 이모티콘으로 알았다는 의미를 전했다.


'모든 발단은 선유 선배로부터 시작되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죠 유나도 규리도 하나같이 선유 선배를 좋아했으니까요'


'1학년 때 선유 말하는 거지?'


'네 선유 선배가 무대 담당 맡기 전, 스튜디오와 오퍼레이터를 번갈아 다니며 활동하던 시절부터 좋아했던 원년 팬이었어요 그래서 규리가 금요일만 되면 제 집에 와선 선유 오빠 봤다며 난리법석을 피웠죠'


'민아는 뭐야?'


'민아는 완전히 다른 케이스, 신입생 때부터 절 따라다니던 애였어요 남중, 여중이 따로 있는데도 절 보려고 매번 남중으로 넘어왔죠'


'그때부터 싹이 보였던 거네.'


미로가 연이어 보내는 내용들은 날 흥미롭게 만들었다. SMK의 기승전결을 명료히 표현하는 미로의 센스에 나는 한 명의 독자가 되어 자판에 손을 놓고 감상하기 바빴다.


'결국 규리는 모든 작전이 수포로 돌아갔고 선유 선배와의 불화로 SMK를 나오게 된 거죠'


'요즘 규리는 좀 어때?'


'별로 안 좋아요 유나도 저도 어떻게 대화를 나눠보려고 했는데, 트라우마가 심했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사회에 점점 멀어지고 있어요'


'그래?'


규리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 건 아니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감정이 폭발해 무슨 짓을 할까 두려울 뿐이었다. 선유를 너무도 좋아해서 만든 팬클럽의 원년 멤버, 선유파 대표가 되고 싶어 내 배경을 이용해 미로와 함께 계략을 세웠지만 정작 선유의 마음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파멸의 길을 자초한 시나리오라니 참으로 우스웠다.


나는 휴대폰을 두고 침대에 누워 한숨을 쉰 채 천장을 쳐다봤다.


"우리가 대체 뭐라고 그렇게 흑심을 품는 걸까?"


시간이 흘러, 레미는 강당 무대로 모여 무대 행사를 위한 호흡을 맞춰갔다. 관객석은 SMK 계집들로 한 두 명씩 채워졌고 늘 그렇듯 유나는 나를 보자마자 앞 쪽에 앉아 내게 손을 흔들었다. 반면에 민아를 비롯한 미로파들은 양손에 응원봉을 든 채 내게 살가운 눈초리를 보였다. 미로에게 들어보니 SMK 계집들이 들고 있는 저 손가락 두 뼘 만한 응원봉은 전적으로 미로를 응원하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미로파 계집들끼리 뭉쳐 퍼포먼스를 연습했다고 하니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느껴졌다.


스튜디오에 들어오니 미로와 선유는 화장을 마칠 터였고 하련이 내게 다가와 오늘 맡을 사연 종이를 건네줬다.


"뭐야? 오늘은 하나밖에 없어?"


"왜? 갑자기 SMK에 정들었어?"


"말조심 해. 실례라고."


"그럼 상관없잖아."


하련의 의연한 태도에 나는 괜히 뻘쭘해져 와이셔츠 가슴 주머니에 사연 종이를 넣기 바빴다. 코너가 시작될 즈음, 선유는 특유의 나긋한 미소를 머금은 상태였다. 얼마 안 가 선유가 나와 눈을 마주치자 가볍게 웃으며 오달진 미소를 지었다.


"선유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는데?"


"축제 뒤에 선보이는 첫 무대잖아. 너무 기대돼!"


선유가 들뜬 모습에 나도 조금씩 얼굴에 미소를 뗬다. 미로는 어떤지 살펴보려는 순간 선유 주변에 있을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스튜디오 바깥쪽 문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다가가 뭐 하는 건지 살펴보니 미로는 문을 살짝 열어놓은 채 바깥을 보며 몸이 경직된 상태였다.


뭔가 이상했다. 코너를 시작하기 앞서 무대 조명을 다 꺼둔 터라 앞이 제대로 보일 리 없었다. 그러나 미로는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주시하자 나는 왠지 궁금해져 미로와 똑같은 시선을 취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가 싶더니 어둠 사이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챘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다 사라지는 노란빛 실루엣, 문을 더 열어 확인해보니 실루엣은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M, I, R, 그리고 O까지 정면을 가득 채우는 MIRO(미로)의 잔상이 놀라우면서도 섬뜩하게 다가왔다.


"무서워요, 선배."


"진짜 정신 나간 계집들이잖아?"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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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39. 마땅한 복수? - 4 20.05.12 30 0 15쪽
39 38. 마땅한 복수? - 3 20.05.11 32 0 12쪽
» 37. 마땅한 복수? - 2 20.05.09 38 0 12쪽
37 36. 마땅한 복수? - 1 20.05.02 43 0 12쪽
36 35. 기쁨을 주는 Make up! - 10 20.04.09 28 0 22쪽
35 34. 기쁨을 주는 Make up! - 9 20.04.06 31 0 14쪽
34 33. 기쁨을 주는 Make up! - 8 20.04.05 31 0 14쪽
33 32. 기쁨을 주는 Make up! - 7 20.04.04 30 0 13쪽
32 31. 기쁨을 주는 Make up! - 6 20.04.02 31 0 12쪽
31 30. 기쁨을 주는 Make up! - 5 20.03.30 35 0 12쪽
30 29. 벗어난 매듭 - 1 20.03.29 34 0 16쪽
29 28. 합법적 잣대 - 8 20.03.24 32 0 21쪽
28 27. 합법적 잣대 - 7 20.03.22 31 0 12쪽
27 26. 합법적 잣대 - 6 20.03.21 35 0 13쪽
26 25. 합법적 잣대 - 5 20.03.21 37 0 14쪽
25 24. 합법적 잣대 - 4 20.03.19 36 0 16쪽
24 23. 합법적 잣대 - 3 20.03.16 40 0 11쪽
23 22. 합법적 잣대 - 2 20.03.10 46 0 11쪽
22 21. 합법적 잣대 - 1 20.03.09 43 0 11쪽
21 20. 필연적 접근 - 7 20.03.05 49 0 11쪽
20 19. 필연적 접근 - 6 20.03.04 48 0 12쪽
19 18. 필연적 접근 - 5 20.02.20 50 0 19쪽
18 17. 필연적 접근 - 4 20.02.18 53 0 12쪽
17 16. 필연적 접근 - 3 20.02.16 48 0 13쪽
16 15. 필연적 접근 - 2 20.02.15 48 0 11쪽
15 14. 필연적 접근 - 1 20.02.14 55 0 11쪽
14 13. 망할 계집 - 7 20.02.12 67 2 11쪽
13 12. 망할 계집 - 6 20.02.11 68 3 10쪽
12 11. 망할 계집 - 5 20.02.10 69 3 14쪽
11 10. 망할 계집 - 4 20.02.09 8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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