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612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0.14 22:00
조회
392
추천
8
글자
24쪽

선생 공아린의 수난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42화



“흐읏! 2년만의 학교다! 애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빨리 보고 싶다.”


한 여성이 삼길초 교문 앞에서 기지개를 쭉 피고 있다.


습하 습하 숨을 크게 들이 마시었다 내쉬는 게, 오랫동안 기다린 순간을 맞이한 사람인 것만 같다.


얼핏 보면 변태로도 오해할 만한 상황이지만, 경비에게 잡혀가는 불상사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 학교의 선생님이었으니.


육아휴직을 마치고 2년 만에 돌아온 공아린은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힘차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좋은 아침이야!”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냥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시니컬한 학생들.


기대했던 감동의 재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그만 아이들이 아장거리며 자신을 반겨줄 줄 알았는데...


그녀는 자신이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운 탓일 거라며 애써 웃어넘기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확실히 많이 바뀌었네.”


친한 동료 박 선생님에게 들은 대로, 삼길초는 크게 탈바꿈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건물이 공사용 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존 건물보다 더 크고, 좋게 바꾼다더니. 정말인 것 같다.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 새벽과 오후에 주로 공사를 할 터.


때문에 속도가 느려, 완공이 언제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린은 그와 상관없이 기분이 좋았다.


새 건물에서 학생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수업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길초에서 근무하며 모든 순간이 행복했지만, 시설만은 불만족스러웠던 게 사실이니까.


화장실이나 식수 시설 같은 편의성이나, 건물의 부식 정도를 비롯한 안전성 등은 여러 모로 봐도 불편하고 위험했다.


바꿔야 한다고 그렇게 건의를 했으나, 짠돌이 교장 때문에 진척이 없었는데 그게 이렇게 해결될 줄이야.


덕분에 걱정을 덜고, 학생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깔끔한 건물에서 근무할 수 있다니, 다른 교사들이 보면 침을 흘리며 부러워하지 않을까?


어떤 훌륭하신 분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린은 진심으로 그분에게 감사를 보냈다.


“아이들도 좀 달라진 것 같은데...”


바뀐 건 건물뿐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행동거지도 그녀의 기억과는 다르다.


아린의 시선이 그네에 머물렀다. 초등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기구를 꼽으면 항상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그네다.


하지만 좌석이 한정적인 까닭에 자리를 두고 박 터지게 싸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분쟁이 일어나는 곳이니 오늘도 아무 일이 없으리라는 법이 없었다.


때마침 꼬마 2명이 한 자리 남은 그네를 향해 동시에 접근하는 중이다.


소란을 감지한 아린이 다급하게 애들을 향해 뛰어갔다.


“애들아! 번갈아가면서 타면...”


그러나 아린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쓸모가 없게 되었다.


그네에서 마주친 두 꼬맹이는 싸우기는커녕 서로 양보를 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곳에서 3학년 선배님을 만날 줄이야. 선배님 먼저 타시죠.”

“허어. 내가 그래도 1살이 더 많은데, 동생의 것을 뺏어서야 쓰겠는가. 아우님 먼저 타시게.”


저게 정녕 9살과 10살의 대화라는 말인가. 그녀의 기억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예절과 기품이 배어났다. 누구의 영향을 받았기에 저렇게 어른스러워진 걸까?


‘상혁이?’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처음엔 짝도 없이 배척당하던 상혁은, 그 재능을 드러내고 누구도 손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상혁에게서 비롯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혁이는 상당히 어른스러운 아이였으니까.


새삼 2년간의 공백이 실감이 되었다.


그 뛰어난 아이는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앞으로 나아갔고. 그 결과가 지금이다.


아린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뒤쳐진 기분이 들었다.


“... 괜찮을까?”


사실 아린에게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그녀의 직장 동료에게서 불온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 선생님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요.’


슬슬 복귀를 준비하려던 아린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아니. 아직 계약 기간도 안 끝났고, 육아휴직은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인데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게 무슨 소리에요오옷!’


아린은 오랜만에 삐약거리며 박 선생에게 사정을 물었다.


그렇게 들은 삼길초의 소식은 다음과 같았다.


교장이 그만두고, 그를 따르던 몇 교사들 또한 자리를 내려놓았다.


대부분 교장의 세력이던 사람들이다. 어차피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겠다. 눈칫밥을 먹느니 다른 곳에 가겠다는 심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임기가 남은 사람들마저 책상을 비우자, 다른 교사들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임기가 남았는데 굳이 떠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다른 곳에 가면 또 적응하고 고생하는데.


‘교장이 그만뒀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식으로 버틴다는 교사도 존재했다.


그러나 누가 무슨 수를 썼는지, 그들도 결국 울먹이며 전근 신청서를 제출하더라.


물론 나쁜 일인 것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그만둔 교사들의 면모를 보면 실력적이던, 인격적이던 하나같이 다 하자가 있었다.


술자리에 가면 한 번 쯤은 뒷담이 나올만한 그런 부류의 인간들.


때문에 남은 사람들은 그들의 전근을 기뻐했지만, 동시에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한창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고 있었고, 그게 자신에게 향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들이 이렇게 쉽게 갈려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이상 부정할 수는 없다.


항의를 하는 교사들도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눈 밖에 나기라도 하면 전근을 당할 테니. 침묵을 유지할 수밖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자신은 인격적으로도, 실력적으로도 괜찮은 교사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 뿐.


아직까지 멀쩡한 교사 중에서 강제 전근을 당한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공아린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교사들 중 하나였다.


아무리 육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2년의 공백은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실전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으쌰으쌰 밝은 척 하며 학교까지는 왔지만... 이렇게 자신이 뒤쳐졌다는 느낌을 받으면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건 어쩔 수 없다.


“흐읍! 정신 차리자!”


아린은 시무룩해지려는 표정을 세게 때려 일깨웠다.


뒤쳐졌으면 열심히 따라가면 되는 법이다. 상황이 어떠하든 그녀가 아이들의 선생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관계가 사제지간이 아니던가.


설령 억지라고 할지라도 기분을 끌어 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생존율이 높아진다.


“상혁아. 선생님 열심히 할게!”


아린은 파이팅을 외치고 행정실로 향했다. 오랜 휴직 기간 동안 쌓인 서류를 제출하기 위함이다.


* * *


똑 똑 똑.


“실례합니다. 복직 건으로 서류를 제출하러 온 공아린입니다.”


슬쩍 서류를 제출하고 빨리 교무실로 가고 싶었으나, 서류를 받아줄 사람이 없었다.


자리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니다. 하나 같이 양 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정 씨. 인적사항 보내주기로 한 건 어쨌어요?”

“아!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보내드릴 게요.”


아직 시간이 넉넉함을 확인한 아린은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바쁜 사람에게 서류를 넘겼다가 분실 되는 경험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신당부를 하면 또 바쁘다고 짜증을 내고.


어이가 없지만, 행정부서랑 척을 져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려나. 학기 초도 아닌데 되게 바쁘네.’


연말정산 때문이라고 하기는 이상하다. 겨울방학도 아직인데 벌써부터 정산에 들어갔다고 보긴 어렵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인적 사항, 경력, 평가서라는 이야기가 계속 들린다.


아린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전근 보낼 사람 뽑고 있는 걸까?’


들으면 안 되는 정보를 듣고 있는 것만 같다. 가시방석을 깔고 앉은 기분이다.


슬그머니 나갈까 고민하는 순간, 아린에게 주목이 쏠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현정 씨. 그 사람 지금 왔어요?”

“아뇨. 아직...”

“차관님이 신경 써달라고 한 일인데. 일처리를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이 호통치자 한 직원이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아린과 눈이 마주쳤다.


직원은 아린의 얼굴과, 손에 들린 서류를 힐끗 보더니, 그녀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지금 막 온 것 같습니다!”


그녀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벌써?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심사 같은 걸 한다고? 준비가 하나도 안 되었는데?


그러나 경력만 4년차지 사실상 신입과 다름이 없던 아린은 상황을 느긋이 판별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삐약거릴 뿐이다.


“네? 저, 저요?”

“오늘 오시기로 한 선생님 아니세요?”

“맞는데...”

“그럼 빨리 와요!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까.”


정신을 차려보니, 아린은 어느새 근처 교실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무언가 이상한데. 아닌 거 같은데.’


교실에 들어서니 곱지 않은 시선들이 날아와 아린에게 꽂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말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가서 앉으세요. 마지막 차례 때, 모의수업을 하시면 됩니다.”


안내해 준 자리로 가서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아린의 옆에 앉은 교사들도, 심사위원들도.


2년의 공백 동안 새롭게 들어온 선생님들인 것 같다.


심사위원이야 원래 이런 쪽 일을 맡던 교장 쪽 라인이 전부 날아갔으니 모르는 것도 당연했고.


‘모의수업이라...’


모의수업은 그녀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 자리가 정말 테스트를 위한 자리라는 게 실감이 났다.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 걸까?’


그럴 수는 없다. 헤어질 때 아이들과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할 수 있다. 아니 하고 말 거야!’


아린은 자신이 그 옛날 어리버리 하던 햇병아리가 아님을 보여주기로 했다.


역대급 초등학생이라 불리는 그 박상혁의 담임이었으니까.


그로부터 2시간이 흐르고, 공아린을 포함한 네 사람의 수업 시연이 모두 끝이 났다.


이를 지켜보던 아린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짤렸다.’


점잔하게 표현해서 저 정도지. 그녀가 욕을 즐겨했더라면 분명 이렇게 말했으리라.


‘아니 X발. 그동안 삼길초의 수준이 얼마나 높아진 거야?’


천외천, 하늘 위에도 하늘이 있다는 걸 아린은 깨닫고 말았다.


발성, 수업의 구성, 자료 준비, 수업 스킬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비벼볼만한 건덕지가 없었다.


아린이 평균보다 떨어지는 실력을 가진 건 아니다. 오히려 평균 이상에 속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고시원 생활을 했을 때, 언제나 성적이 상위권이었으니까.


그러나 저들에 비하면 택도 없었다. 고시원에서 봤던 1등, 2등도 저들보다는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왜 저런 괴물들이 삼길초에 있는 걸까?


아이들을 생각하면 나쁜 일은 아니다. 초등학교는 중, 고등학교로 가기 위한 터전을 마련하는 장소다.


저런 훌륭한 선생님들이 함께한다면 학생들의 성장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른 학교 학생들에 비해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겠지.


학생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뿐이니 엇나가는 아이들도 줄어들 테고.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복 받은 일은 없었다.


그 행복한 자리에 자신이 없다는 게 문제여서 그렇지.


아린은 잠시 자신의 모의 수업을 회상했다.


삐약. 삐약.


나름 눈에 힘을 주고 잘난 척을 해보았는데, 이미 멘탈이 나간 상황이라 그런지 삐약거리는 걸로밖에 안 들렸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만 같은 허탈함이 그녀를 덮쳤다.


이제 돌아가 보라는 심사위원의 말에 흐느적거리며 교실에서 나섰다.


심사위원들이 몇 선생님들에게 따로 말을 거는 걸 보니, 이미 생존자는 정해진 걸로 보인다.


저들은 살아남고. 자신은 죽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항상 생각하던 1학년 3반 애들을 다시 못 보게 되는 것이다.


“어떠케. 이럴 쑤가 이써. 훌쩍.”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다.


그래서 그녀는 거칠게 눈물을 훔치고는 고개를 들었다.


선생으로서는 실격이어도 좋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그 아이들과 한 번 더 만나고 싶었던 까닭이다.


아린은 심사위원이 교실을 나서기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어이쿠 깜짝이야. 아직 안 가셨나요?”

“부탁이 있어서...”

“심사위원은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결과도 안 나왔으니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세요.”


어림도 없는 소리. 그런 사탕발림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그녀의 실력이 가장 바닥이라는 사실은 그녀도 알고 심사위원도 알고 있다.


자신과 3반을 떼어놓으려는 수작으로밖에는 안 보인다.


집으로 보내고 다른 학교로 전근 처리를 할 거라는 예감이 머리를 강하게 맴돌았다.


그래서 아린은 아예 복도를 가로막았다.


“아이들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지 않나요?”

“정식 교사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냉철한 심사위원의 말에 아린의 뚜껑이 폭발했다.


정식 교사가 아니라니. 벌써 삼길초는 그녀를 떠나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단 말인가.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애들은 보고 가게 해 주세요!”

“허어. 이거 이상한 사람이었네. 역시 안 뽑길 잘했...”

“봐봐! 역시 나를 내보내려는 거지! 애들! 3반 애들! 아니 최소한 상혁이라도 보게 해주세요!!!”


학교 전체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심사위원은 경비를 부르려 했으나, 아린의 말을 듣고 멈칫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상혁이라고 하셨나요?”


어느새 말투가 다시 경어로 돌아와 있다.


“상혁 군과 어떤 관계가 있으실까요?”

“당연하죠. 저의 제자인 걸요!”


그러자 심사위원은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흐음. 그렇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확인을 해봐야 하나?”


아린은 기회가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언제나 도움이 되는 상혁이는 이 순간마저도 그녀를 돕고 있었다.


상대가 고민을 하고 있으니 물고 늘어져야 한다.


아린은 체면을 다 내던지고 심사위원의 다리에 매달렸다.


“상혁이! 상혁이를 보게 해 주세요!”

“기다려 보세요! 그분을 귀찮게 하면 안 되니 확인을...”

“보게 해 주세요! 불러 주세요!”


간절히, 진심을 담아 상혁을 찾았다. 그러자 아린의 뒤에서 익숙하고도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엥. 아린 선생님?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천사가 조각한 것만 같이 선명한 이목구비. 그러면서도 세상 두려울 것 없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표정.


기억 속 모습보다는 꽤나 성숙한 모습이었지만 그 아이는 틀림없는 상혁이었다.


“사혀그아. 흐어엉.”


결국 아린의 서운함이 눈물로 터져 나오고 말았다.


눈치를 살피던 심사위원은 꾸벅 인사를 하고는 물러났다.


아린은 온갖 고초를 거친 끝에 겨우 소중한 제자와 재회할 수 있었다.


그녀의 상상과는 다르게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본인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만, 기쁘고 벅찬 순간이었다.


* * *


한참을 상혁의 품에서 울던 아린은 헛기침을 하며 일어났다.


이미 한참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위엄을 찾으려는 걸로 보인다.


상혁은 그런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보다 어린이 같은 표정을 띄웠다.


아직은 어색할 아린을 위한 배려였다. 그가 옛날처럼 반응하면 그녀도 금방 적응할 수 있을 테니까.


“아기는 건강한가요?”

“그럼! 이제 엄마 아빠 말도 잘한다? 어쩌면 상혁이처럼 천재일지도 몰라.”

“맞아요. 분명 그럴 거에요.”


잠깐 동안 근황을 나눈 두 사람의 화제는 슬슬 학교 쪽으로 향했다.


“그래서. 여기서 남의 다리를 붙잡고 뭘 하고 계셨던 거에요?”

“크흠. 학교에 정말 대단한 선생님들이 많더라.”


차마 실력으로 쳐 발리고 광속으로 탈락했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경쟁자를 추켜세웠더니, 상혁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전국의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 모이는 중이죠.”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우연은 아닌 것 같은데.”


잠깐 고민하던 상혁은 아린에게 진실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알 권리가 있었으니까.


“교육부가 저희 학교에 관심이 많대요. 한국 최고의 초등학교를 만들 거라는 데요?”

“끄으응. 그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왜 하필 우리 초등학교일까?”


그거야 한국에서 제일 잘난 초등학생이 삼길초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자랑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던 상혁은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이건 비밀인데 삼길초에서 근무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혜택이 주어질 거래요. 다음 근무지는 원하는 곳으로 선택할 수 있다나.”


국립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직업 특성상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


멀리 발령난 경우 이사를 가야 하는데, 이미 가정이 있는 사람들에겐 그만한 스트레스가 또 없었다.


잦은 이사가 아이 교육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무지 지정권은 교사들에게 있어 달콤한 유혹이었다.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수만 있으면 최소한 5년은 편할 테니까.


전국의 뛰어난 교사가 다 눈독을 들이는 이유가 있었다.


납득한 아린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서. 그래서 자기가 짤리는 거라면서 말이다.


공급이 넘치니 잉여자원을 미련 없이 버리는 게 아니겠는가.


가슴이 시큰 거렸다. 상혁이를 보면 조금 풀릴 줄 알았는데,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니 더 아쉬운 마음이 커졌다.


하지만 그녀는 모범이 되어야 하는 선생이고, 어른이다.


그래서 아쉬움을 꾹 억누르고 떨리는 목소리로 작별을 고했다.


“상혁아. 오늘 만나서 즐거웠어. 흑. 다음 선생님 말씀도 꼭 잘 들어야 한다?”


눈물이 찔끔 흘렀다. 그러나 슬프고도 감동적인 상황임에도 상혁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아니. 정확히는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선생님. 출근 안 하세요?”

“흐엥. 내가 출근을 어떻게 하니? 심사에서 떨어지고 나왔는데.”


아린은 한 손을 들어 창피를 당했던 교실을 가리켰다.


상혁의 시선이 그녀의 손길을 따라 이동했고, 잠시 머물렀다.


그의 명석한 두뇌는 금방 상황을 이해했다. 아린이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선생님. 저거... 신입 교사 면접이에요.”

“으엥?”

“아린 쌤은 관계없어요. 내일부터 출근하시면 돼요.”


아린의 세상이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서서히 과거로 돌아갔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상했다.


상식적으로 오늘 처음 나온 사람을 테스트 볼 리가 없다.


그녀를 끌고 간 직원도 어떤 평가라고는 한 마디도 안 했고.


심지어 평가에 늦어서 내 이름을 소개할 시간도 없었다.


“이게... 뭐야. 내 착각이었구나.”

“당연하죠. 아린 쌤이 얼마나 멋진 선생님인데, 학교가 내쫓겠어요?”


상혁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그 한마디가 아린에게는 크게 와닿았다.


자신의 착각을 깨달은 아린이 오만가지 감정에 휩싸였다.


3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면서도, 이미 진이 다 빠져서 기뻐할 여력이 없었다.


거기에 제자 앞에서 못난 꼴을 보였다는 생각에 상당히 부끄럽다.


그러나 상혁은 아린이 감정을 수습할 시간을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곧 3반 애들이 다 올 거에요.”

“응? 어째서?”

“당연히 아린 쌤이 보고 싶어서 그렇죠. 애들한테 문자로 알려주니까 반응이 뜨겁던데요?”


그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멀리서 꼬마 애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와아! 진짜 공아린 선생님이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추억 속의 아이들이 눈 깜짝할 사이 그녀를 둘러쌌다. 다들 조금은 자란 모습이다.


“어라? 선생님 울어요?”


또 눈물이 흘렀다. 더 없이 초라한, 실력이 없는 선생님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저렇게 좋아해 주는 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 아이들과 다시금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도 행복했고.


이 자리를 마련해준 상혁에게 고마움이 짙게 담긴 시선을 보냈다. 상혁은 마주 웃으며 화답했다.


그렇게 아린은 2년 동안 그리던 학생들과의 재회를 이룰 수 있었다.


조금 모양은 빠지지만, 가장 아끼는 제자 덕에 가장 행복한 형태로.


* * *


아이들은 계속 붙어 있고 싶어 했지만, 수업을 들어야 했기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방과 후 아린의 환영회를 열기로 했다.


오랜만에 맛있는 걸 먹이며 담임 노릇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쉬운 소식이 들려왔다.


“상혁이는 못 먹는다고?”

“네. 아쉽지만 정말 바빠서요.”


상혁이가 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러나 학생회장이 저렇게 바쁜 자리인 줄은 몰랐다.


듣자하니 학교 업무 전반에 관여를 하고 있다는 것 같은데.


아린이 알고 있는 학생회장 업무와는 차이가 났다. 이것도 2년 사이 바뀐 걸까?


대기업 총수, 국회의원이 번호표를 뽑고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허무맹랑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상혁이가 거짓말을 할 아이는 아니니까. 아쉽지만 제자를 보내 줄 수밖에.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몸은 그렇지 못했다.


아린이 상혁의 옷자락을 붙잡고 놓아줄 생각을 안 하자, 그가 웃으며 그녀를 달랬다.


“에이. 그래도 개학하면 자주 볼 수 있을 거에요.”

“그럴까?”

“담임이신데 당연하죠.”


그 말에 아린의 심장이 한층 빠르게 뛰었다.


워낙 뛰어난 선생님들이 많이 들어왔다기에, 담임 자리는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있었지만, 상혁이에게는 더 뛰어난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은 지나간 인연으로, 가끔이라도 마주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말이다.


그런데 상혁이 자신을 담임이라 칭했다.


상혁이가 말한다고 해서 무조건 현실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 아이가 자신을 바라고 있었다.


“내가... 담임을 맡아도 되는 걸까?”


자신도 모르게 약한 소리가 나왔다. 상혁은 아린의 두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더 없이 따뜻한 목소리로.


“그럼요. 저한테는 아린 쌤이 최고인데요.”


한 차례 진동이 아린의 몸을 흐르고 지나갔다.


그녀는 눈물을 꾹 참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하루에 3번 이상 눈물을 터트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 대신 다짐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언젠가 저 아이에 어울리는 교사가 될 수 있게 노력하자고.


그런 선생님이 되고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 *


참고로 아린이 최고라는 상혁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대학교 교육 과정까지 모두 수료한 상혁에게 있어서 수업의 수준은 크게 고려할만한 사항이 아니었기에.


보다 인격적인 면모를 보는 것이 당연했다.


아린의 장점은 사람이 선하고 착하다는 점. 이와 비슷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수준이면 친한 사람을 택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상혁은 공아린이 또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굳이 이를 정정하는 눈치 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지금의 다짐이 그녀를 더 성장시킬 것을 알고 있기에.


언젠가 아린도, 상혁이 꿈꾸는 이상적인 학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리라는 걸 믿고 있었기에.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 줄 뿐이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이 계셔 오늘도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0 대회의 22.10.26 374 7 24쪽
149 왕인 줄 알았는데 종마였던 것에 대하여 22.10.25 361 5 16쪽
148 은총 더 많은 은총 22.10.22 359 7 20쪽
147 붕당정치 22.10.21 367 8 17쪽
146 귀족이 뭐라고 22.10.20 380 5 21쪽
145 왕이 나셨도다 22.10.19 385 8 26쪽
144 이제는 세계를 향해 22.10.18 396 6 18쪽
143 학생회의 일상 22.10.15 397 7 15쪽
» 선생 공아린의 수난 22.10.14 393 8 24쪽
141 내가 할 수 있는 것 22.10.13 395 5 19쪽
140 연설 22.10.12 402 8 21쪽
139 악몽의 밤 22.10.11 411 6 18쪽
138 모략이 가득한 선거활동 22.10.08 441 6 22쪽
137 학생회장 후보가 되다 22.10.07 443 8 19쪽
136 석유재벌의 금고 열쇠를 얻다. 22.10.06 445 10 21쪽
135 상승기류2 22.10.05 434 6 20쪽
134 상승기류 22.10.04 422 9 14쪽
133 Do you know 김치? 22.10.01 455 6 21쪽
132 플로리다의 중심에서 붉은악마를 외치다 22.09.30 458 9 21쪽
131 플로리다의 중심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다 22.09.29 458 9 24쪽
130 한국인의 정서 22.09.28 455 9 17쪽
129 플로리다에 가다 22.09.28 474 9 18쪽
128 형 노릇 22.09.27 489 6 18쪽
127 재활용 22.09.24 513 10 20쪽
126 역으로 돌려주다 +2 22.09.23 506 11 17쪽
125 마지막 실험 22.09.22 507 10 17쪽
124 스트레이트 한 방에 22.09.21 518 10 17쪽
123 vs 남미르 22.09.20 507 10 21쪽
122 대적자 해체, 분석 22.09.17 508 10 21쪽
121 전초전 22.09.16 547 10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