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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637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0.08 22:00
조회
441
추천
6
글자
22쪽

모략이 가득한 선거활동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38화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앗!!!”


교장의 샤우팅이 방송실을 통해 전교에 울려 퍼졌다.


연약한 아이들의 고막을 배려하여 마이크를 꺼버렸다. 일단은 더 할 말이 없기도 했고.


허나 흥분한 교장의 눈에는 그런 사소한 문제는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


그는 다짜고짜 달려와 내 어깨를 붙들고 짓눌렀다.


“상혁아 장난이 지나치구나. 교장 해임이라니!”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고, 동공이 흔들린다. 마치 사형선고를 들은 사형수 같은 모양새.


“농담 아니에요. 장난도 아니고. 저는 학생회장 선거에 나갈 거고. 당선 되면 교장 선생님부터 바꿀 겁니다.”

“크윽!”


과정이 어찌 되었든. 내가 선거에 참여한 이상 당선은 거의 확정적이다.


학생이 교장을 몰아내는 게 가능한지를 구태여 물어볼 필요도 없다.


다른 불가능한 일들도 보란 듯이 달성한 게 바로 이 몸이다.


한 번 하겠다고 한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뤄낼 것이다.


지난 3년간 교장의 비리를 목격해 왔으니,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지는 미래를 확인한 교장이 두 손을 들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힘들다고 잠시 정신이 나갔나 보구나. 학생회장 일은 없던 걸로 하마. 그러니까 학생들한테 농담이라고, 취소하겠다고 말해주련?”


그러나 이미 늦었다.


좋게 말할 때 꼬리를 말고 물러날 것이지. 왜 굳이 뻐팅기다가 쓴맛을 보는 걸까?


선 가지고 줄타기를 하려니까 저렇게 되는 것이다. 선이란 건 넘지 말라고 만든 건데 말이다.


그를 향해 최후통첩을 보냈다.


“공약을 취소할 생각은 없어요. 자기 사정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후보는 되고 싶지 않아서.”


그 쪽이 선택한 학생회장이다. 그 결과도 달게 받길 바란다.


방송을 마치고 복도로 나오자, 수많은 인파들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방송을 듣고 감정이 벅차올라 밖으로 뛰쳐나온 것으로 보인다.


“학생회장님이 나오셨다!”

“와아아아. 학생회장! 학생회장!”

“저분이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믿고 따르도록!”


아직 선거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교장에 대해 걱정하는 애들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평소처럼 웃으며 양 손을 흔들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이제 학생회장이 될 테니 행동거지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신뢰할 수 있으면서도, 능력 있어 보이는. 그런 인상을 주고 싶다.


참고할만한 사람을 잠시 머릿속으로 탐색했다.


국회의원...은 아니고. 그래. 이제이. 제이가 직원들 앞에서 보이는 표정을 따라하기로 했다.


그리고 천천히, 절도 있는 동작으로 애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와아아아아!”

“박상혁을! 아니. 존귀하신 상혁님을 따르자아앗!”


달아오른 팬에 기름을 뿌린 것처럼, 반응이 한층 더 커졌다.


할 거면 제대로.


마음을 먹었으니, 이번엔 삼길초의 정점이 되어볼까 한다.


* * *


방송을 통해 학생회장에 대한 포부를 밝힌 뒤. 주변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어머! 정말? 역시 우리 상혁이는 똑똑하고~’로 시작해서 2시간 동안 내 칭찬을 멈추지 않으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 손주가 감투를 맡는다고? 역시 가문의 자랑이자 대들보구나!’라며 한껏 치켜 올려 주셨는데.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도 할 수 있을 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친구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상혁이는 최고니까 회장을 하는 게 맞아!”


내가 칭찬을 받으면 어째서인지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 우리의 너구리와.


“흠. 나는 라이벌이니까 선거에 나서는 게 좋을까?”


대항 의식을 불태우며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지훈이.


“훗. 상혁이의 밑에 꼭 달라붙어 있으면, 나도 언젠가 높은 사람이 될 줄 알았어.”


내 지위가 상승함에 따라 자신의 지위도 올라갔다며 좋아하는 다빈이까지.


혹시 내가 낙마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하긴. 내가 출마한다는 소식에 거의 전 인류가 열광했다. 반응만 비추어 봐도 내 당선은 유력한 상황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남들은 환호할 때, 지 혼자 눈치도 없이 입을 삐쭉 내미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적어도 두 사람은 확실하게 내 취임을 반대하고 있다.


하나는 모가지가 달랑달랑한 교장이고. 다른 하나는 원래 학생회장 유력 후보였던 5학년 박의진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고. 머지않아 ‘타도 박상혁 연합’을 만들었다.


자기 권력을 위해서 의진을 헌신짝처럼 버렸던 교장이, 다시금 의진이랑 힘을 합친다는 것도 웃기기는 했지만. 의외로 두 사람의 시너지는 나쁘지 않았다.


교장은 짬을 먹을 대로 먹은 능구렁이요, 박의진도 5학년 중에선 수재라고 불리는 아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선동하고,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대표적인 전략이 바로 네거티브 선전.


그들은 철저하게 삼길초의 이면을 자극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대놓고 말을 못한다 뿐이지, 삼길초에도 내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두 사람의 타겟층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현재 상황은 3학년이 실력을 앞세워 고학년을 밀어내는 모양새다.


고작 학생이 교장이 마음에 안 든다며 쫓아내는 모양새고.


msg를 조금만 가미한다면, 평범한 사람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딱 좋은 상황이 아닌가.


그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안티들을 집결시킨다면 꽤나 커다란 세력을 이룰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팬과 안티의 대결 구도가 되었네.”


가슴이 근질근질 거리는 게 느껴진다. 향상심이 세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보내는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하면 오히려 즐겁기까지 한다.


어떻게 짓밟을 수 있을까. 어떻게 현혹시켜 나의 편으로 꿇릴 수가 있을까. 상상만 해도 즐겁다.


살짝 과잉진압인 것 같기는 하지만, 손속을 두지 않을 것이다.


인맥과 돈과 권세를 아낌없이 사용할 테니. 적들도 재주껏 노력하기를 바란다.


단순히 노력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죽을힘을 다하고, 끝까지 발버둥을 처야 할 것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재미가 있을 테니.


* * *


박의진은 삼길초 5학년 학생들 사이에서는 나름 유명한 학생이다.


매 시험마다 못해도 3등 안에는 드는 두뇌. 수려한 편인 외모. 빵빵한 집안.


거기에 친구들을 잘 살피는 인망까지.


여태 학생회장들과 비교를 해도 그리 꿀리는 스펙은 아니다. 이변이 없었다면 무사히 회장직을 수행했으리라.


... 갑자기 나타난 경쟁 상대가 괴물이어서 조금 뒤떨어져 보일 뿐.


그렇다고 해서 곱게 쫓겨날 생각은 없다. 얼마나 기다리고 고대하던 학생회장인데.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겨우 자기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예인이 나타나 하나 남은 자리를 홀랑 채가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오장육부가 꼬이고,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심정이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박상혁과 대적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고작 12살의 나이에 불과하지만 의진에게는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


아예 승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더라면 시도조차 하지도 않았으리라.


개인으로 안 된다면 타인의 힘을 빌리면 된다.


교장이 그를 밀어주기로 했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도 인맥과 연줄은 아직 남아 있다.


아직 누구에게 투표할지 고르지 못한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의진의 아버지는 3선 국회의원이다. 선거의 스페셜리스트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그가 아들을 위해 두 팔을 걷고 직접 나섰기에, 의진의 가슴 속 승리에 대한 기대가 조금 차올랐다.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정확히 3일이 지나고. 의진은 자신이 자부하던 빽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선거 홍보 기간이 시작되고, 두 진영은 초장부터 전력으로 홍보에 나섰다.


“조선시대의 유학자 이이 선생님은 군사부일체라는 말을 했습니다. 임금과 스승을 대하는 걸 아버지 모시듯 하라는 소리죠. 그런데 세상 어떤 자식이 아버지를 내치려고 합니까! 패륜입니다. 패륜!”


교장의 라인에 속하는 교사들은 수업 시간만 되면 공개적으로 박상혁을 저격하곤 했다.


교장을 내치는 학생이 어디 있냐면서 말이다. 학교라는 체계가 붕괴될 거라고 으르렁거렸다.


그 다음으로 예시를 든 게 각 나라의 독재자들.


지도자를 잘못 세우면 고통받는 건 그 밑의 사람들이라며 학생들에게 잔뜩 겁을 주더라.


사상교육은 일종의 금기에 해당한다. 어린 아이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가 조금만 굵어도 알아서 들을 텐데, 순수한 아이들은 뭐가 독인지 약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그냥 주는 대로 받아먹곤 한다.


그런데 비열한 교장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금기를 범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상혁 측 인원들도 이를 방관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어느 날부터 학교에 나오는 인원들이 점차 줄어든 것이다.


한 명, 두 명. 한 자리 수에서부터 시작해서 마흔 명에 이르기까지.


한 반이 통째로 결석을 하는 경우가 생기자 교사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도 그럴 게, 하나같이 사상교육을 하던 반 아이들만 빠졌으니까.


그 시위의 중심에는 어머니회가 있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어머니의 영향력만 하겠는가.


엄마가 아이를 붙잡고. ‘아가 오늘은 집에서 엄마랑 놀자!’ 한 마디 하면 신난다고 학교를 제낄 아이들이다.


상혁과 지훈의 어머니는 어머니회의 실세다.


자신의 아들들이 학생회를 차지하는 걸 꼭 보고 싶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가진 바 권력을 아낌없이 휘둘렀고, 의진 필두의 5학년 어머니회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 결과 교장이 준비한 묘수는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계속 방해를 걸어오겠지만, 이전만큼 영향력을 끼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의진의 얼굴에는 미소가 남아 있었다. 겨우 한 가지 방법이 실패했을 뿐이니까.


그런데 그 다음 수도, 다다음 수도 틀어 막히니까 정신이 아찔해지더라.


의진의 아빠. 3선 국회의원 박우태가 가장 먼저 시도한 건 바로 선거 차량 동원이다.


선거철만 되면 차량이 시끄럽게 노래를 틀어대는 바람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선거 차량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효과가 좋으니까.


반복적으로 들려주어 상대에게 인상을 남기기만 하면 성공이다.


어차피 공약이고 뭐고 잘 모르는데, 조금이라도 이름이 익숙한 사람을 뽑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선거용으로 개조하여 하루 종일 뺑뺑이를 돌렸다.


아이들의 취향을 저격한 전략은 꽤나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등하굣길에 학교 근처를 지나면, 의진의 선거곡을 흥얼거리는 꼬맹이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을 기점으로 아이들이 흥얼거리는 노래가 바뀌었다.


‘의진’의 이름이 들어갈 자리에 ‘상혁’을 넣어서 부르더라.


우태의 전략이 유효하다고 판별되자 상혁이 이와 비슷한 전략을 차용한 것이다.


그래도 같은 전략이면 조금이라도 더 먼저, 많이 시행한 쪽이 유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어째서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상혁의 쪽으로 갈아탔는가.


선거에서 3번이나 승리한 우태도 모르는 그 비결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혁의 선거 캠프가 홍보하는 곳으로 몰래 찾아갔다. 그리고 이마를 탁 치며 감탄했다.


그곳엔 인기 아역 배우 유한별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TV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배우가, 고작 초등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나서 노래를 부르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심지어 땀을 흘리면서도 싫은 구석 하나 없이 열심히 노래를 부르더라.


듣는 사람에게까지 진정성이 전달될 수준이니, 자연스레 감동을 받을 수밖에.


결국 홍보는 얼마나 임팩트를 심어주는지에 대한 승부다.


그리고 임팩트 측면에서 의진은 저 아역배우를 넘어설만한 수단이 없었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도 이해가 갔다.


국회의원 우태는 잠시 고민했다. 지인 중에 아이돌이나 배우가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들을 불러서 맞불을 놓으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한별의 뒤에 서 있던 아이가 노래에 참여하는 순간, 깔끔하게 포기했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공기를 타고 밀려왔다.


웬 꼬마 아이가 유명한 성가대 뺨을 세 대 정도는 후릴 정도로 실력을 뽐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합창대회 CD를 통해 본 적이 있다. 승윤이라는 꼬마였나.


설마 그 아이조차 포섭을 해뒀을 줄이야. 우태는 자신의 준비 부족을 인정했다.


저 아이를 뛰어넘을 가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급의 가수는 초청하는 것만 해도 수천만 원이 깨진다.


배보다 배꼽이 크고, 실속이 없는 장사다.


천상의 노랫소리가 아이들의 마음을 폭격하는 걸 목격하며, 우태는 다음 방법을 준비했다.


“애들아 떡볶이 먹고 가렴! 필기구도 있어! 우리 의진이 잘 부탁한다!”


그것은 바로 돈!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아기나 어른이나 마찬가지.


돈을 풀면 지지율이 오른다. 그 인생의 진리가 우태에게 3선의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애들의 환심을 사, 어떻게든 지지율을 비슷하게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 이상한 건축물이 하나 생겼다.


텐트의 형식을 한 그 건물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짐을 날랐고.


아이들의 하굣길에 맞춰 가져온 물건들을 풀기 시작했다.


요리사들이 치킨을 튀겨 애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옆 화덕에서는 피자를 굽고 있고.


일본에서 생산된 고급 필기구까지 뿌리는 중이다.


텐트에는 당연하게도 상혁의 얼굴이 크게 박혀 있었다.


정말 악질인 게 무엇이냐면, 상혁이 준비한 물건들은 하나같이 우태의 물건의 상위호환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은 솔직하다. 치킨 냄새를 맡으면 떡볶이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을 게 뻔했다.


우태는 부들부들 떨며 더 좋은 물품들을 준비하라 지시했다.


감히 국회의원한테 돈 싸움을 걸다니 미친 거 아니냐고, 박살을 내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물건을 공수해오고, 여윳돈을 박박 긁어도, 다음 날이면 보란 듯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이 들어오더라.


이제는 아이들에게 쓰기는 아까울 수준까지 되었다.


호텔 출신 요리사의 출장 뷔페에 최고급 만년필이라니.


어지간한 어른들도 못 누리는 호사였다.


자존심 때문에 억지로 버텨 보았으나, 피눈물을 흘리며 GG를 칠 수밖에 없었다.


“독한 새끼. 돈도 많은 새끼.”


온갖 동물의 새끼를 찾으며 궁시렁거리던 우태는 한 꼬마가 전화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서양의 귀공자와 같이 생긴 그 꼬마는 아버지와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하도 목소리가 호탕하기에 멀리서도 대화 내용을 다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덕분에 형님의 체면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야. 상혁이가 회장이 되면 옆에서 잘 보고 배우렴. 그 자리의 다음 주인은 네가 될 테니까.”


뒤통수에 망치를 후려갈긴 것 같은 충격이 우태에게 임박했다.


미르라고 하면 삼길초등학교 요주의 인물 중 하나였으니까.


삼길초의 패권을 두고 상혁과 다퉜다가 패배했다고는 들었는데, 그 뒤로 의형제를 맺은 줄은 몰랐다.


국회의원 일이 얼마나 바쁜데 초등학교 정세에 신경을 기울일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 때문에 이렇게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다.


미르가 상혁을 지지하는 줄 알았으면 애초에 용을 쓰지도 않고 돈이나 아꼈을 것이다.


석유재벌이랑 돈지랄로 승부를 했다니. 반달가슴곰과 원펀치 내기를 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공허한 그의 귓가로 남우혁의 목소리가 꽂혀 들어왔다.


“하하. 그럴 수만 있다면야 이깟 푼돈이 아깝겠니.”


푼돈. 우태가 피, 땀 흘려 겨우 마련한 돈이 푼돈 취급을 받았다.


이는 그의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거세를 당한 고양이가 된 것처럼 분하면서도, 공허할 따름이다.


“내가 초등학교 선거에서 이 방법 까지는 안 쓰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용역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계 활동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힘을 써야하는 상황이 오기 마련이다.


상대를 꺾어야 하는데 명분이 없을 때. 그럴 때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 육체의 대화를 나누면 온순해지곤 하니까.


상대가 꼬맹이인 만큼 적당히 때리라고 언질을 준 뒤 전화를 끊었다.


양심이 찔리긴 해도, 그런 게 하루 이틀이던가.


큰 뜻을 가진 사람은 눈앞이 아닌 높은 곳을 봐야 하는 법이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실패했다는 연락을 들었다.


무슨 꼬맹이가 정보부대, 경호부대를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연예인이니 경호원이 있는 건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삼시세끼 하루 종일 붙어 있지는 않을 테니, 혼자 있을 때를 노리라고 시킨 건데.


정보부대라는 꼬맹이들이 낌새를 파악하고 경호부대에 연락을 넣었다더라. 튼실한 꼬마가 튀어나와 마무리를 지었다나.


그 어렵다는 국회의원 선거를 3번이나 정복한 우태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진이 빠졌다. 안 되는 일에 매달리며 자존감을 쳐박느니, 그냥 잘하는 분야로 돌아가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핑계를 대고는 선거에서 손을 때고 말았다.


“의진아. 아빠가 급한 일이 생겨서 말이다. 그래도 거의 다 끝냈으니까 이제 의진이 혼자서도 다 할 수 있을 거야.”


그 어떤 상황도 나아지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의진이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우태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진 뒤였다.


자신 있다더니 치졸하게 정신 승리를 하고 갈 줄이야.


만약 패배를 하더라도 그건 우태의 잘못이 아닌 의진의 잘못이라 못 박는 건 너무 추한 행동이었다.


의진은 궁지에 몰렸다. 분명 시작 전에는 할 만한 것 같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어림도 없었다.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길 방법이 없다.


그 때 한 찌라시가 그에게 들어왔다. 학생회장 후보 박상혁이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수상한 짓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출처도, 근거도 없는 소문이지만 의진은 그런 찌라시라도 움켜잡을 정도로 절박했다.


만약 상혁이 정말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면, 이를 폭로하여 전황을 뒤집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 의진은 밤늦게 학교로 향했다.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사력을 다해.


그리고 소문대로 상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달빛을 맞으며 운동장에 서 있었다.


잠시 동안 몸을 풀더니, 품에서 검정색 물체를 꺼내 손에 쥐었다.


의진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건 분명... 권총이었다.


“흐읍!”


비명이 터지려는 걸 억지로 틀어막았다. 상혁이 위험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던 걸까?


그게 정말이라면 의진의 목숨이 위험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숨을 죽이고 조용히 관측했다.


몸을 푼 상혁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땅을 구르고, 장애물을 넘어 표적들을 겨눴다. 그 움직임은 운동장을 한 바퀴 돌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아름답고 유려한 움직임이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집중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분명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운동장임에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느낌을 받았으니.


다섯 바퀴를 채운 상혁은 손등으로 땀을 닦으며, 총을 근처 상자에 내려 두었다.


그리고는 급식실로 향했다. 목이 마르기라도 한 모양.


의진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상상이상으로 엄청난 광경을 목격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못했다. 어쩌면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소리가 났을 테니까. 훔쳐보고 있는 게 발각되었다면 조용히 처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상혁이 떠난 지금이 기회였다. 의진은 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다가 발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어쩌면 이게 역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몰라서.


상혁이 자리를 비운 지금이라면 권총 사진을 찍고 도망가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성공한다면 박상혁은 학생회장이 아니라 소년원 모범수가 될 걱정을 해야할 것이다.


의진은 승부사 기질이 있는 소년이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빠르게 상혁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권총 맞네.”


의진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이는 분명한 권총이다. 그가 영화에서 몇 번이나 봤던 모양과 꼭 닮았다.


그는 손을 달달 떨며 사진을 찍었다. 곧장 내빼려는데 수상한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에잇!”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수상한 건 다 들춰보고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는 힘차게 상자를 열었고, 종류별로 정렬되어 있는 총기류들을 찾을 수 있었다.


샷건, 소총, 공기총, 개틀링 건까지.


“흐, 허어엉.”


X되었다는 생각이 의진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상혁이 떠난 지 조금 되었다. 이제 정말 도망가야 할 시간이었다.


의진은 대충 사진을 찍고 상자를 닫았다.


그러자 상자 뒤에 숨어있던 인영이 드러났다.


“너. 봤구나?”


무표정한 상혁의 얼굴이 갑자기 튀어나와 말을 걸었다.


“끼야아아아앗! 흐헤이야아아악!”


의진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여태껏 살면서 질렀던 비명 중 가장 크게, 어쩌면 앞으로 지를 비명들보다도 더욱 시끄럽게.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호작, 댓글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다음주 화요일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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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붕당정치 22.10.21 367 8 17쪽
146 귀족이 뭐라고 22.10.20 380 5 21쪽
145 왕이 나셨도다 22.10.19 386 8 26쪽
144 이제는 세계를 향해 22.10.18 396 6 18쪽
143 학생회의 일상 22.10.15 398 7 15쪽
142 선생 공아린의 수난 22.10.14 393 8 24쪽
141 내가 할 수 있는 것 22.10.13 395 5 19쪽
140 연설 22.10.12 402 8 21쪽
139 악몽의 밤 22.10.11 411 6 18쪽
» 모략이 가득한 선거활동 22.10.08 442 6 22쪽
137 학생회장 후보가 되다 22.10.07 443 8 19쪽
136 석유재벌의 금고 열쇠를 얻다. 22.10.06 446 10 21쪽
135 상승기류2 22.10.05 434 6 20쪽
134 상승기류 22.10.04 422 9 14쪽
133 Do you know 김치? 22.10.01 455 6 21쪽
132 플로리다의 중심에서 붉은악마를 외치다 22.09.30 459 9 21쪽
131 플로리다의 중심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다 22.09.29 458 9 24쪽
130 한국인의 정서 22.09.28 456 9 17쪽
129 플로리다에 가다 22.09.28 474 9 18쪽
128 형 노릇 22.09.27 489 6 18쪽
127 재활용 22.09.24 514 10 20쪽
126 역으로 돌려주다 +2 22.09.23 507 11 17쪽
125 마지막 실험 22.09.22 507 10 17쪽
124 스트레이트 한 방에 22.09.21 518 10 17쪽
123 vs 남미르 22.09.20 508 10 21쪽
122 대적자 해체, 분석 22.09.17 509 10 21쪽
121 전초전 22.09.16 547 1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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