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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635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0.06 22:00
조회
445
추천
10
글자
21쪽

석유재벌의 금고 열쇠를 얻다.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36화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1등공신이 누구냐니. 나 말고 누가 또 있어?”

“있다면요?”


우혁의 표정이 살짝 멍청해졌다. 노력한 것도 자신, 석유를 발견한 것도 자신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그러다 갑자기 눈을 치뜨더니 기가 차다는 듯, ‘허, 참. 하하.’와 같은 추임새를 쏟아내며 물었다.


“설마. 아니라고는 생각 하는데 설마. 내가 부자가 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게 너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네.”


그가 몸을 움찔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만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내뱉은 게 내가 아니었다면 미친놈의 이야기라 취급하고 정말 나갔을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신뢰를 쌓아두었던 덕분에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옛날에 한 무역상이 있었어요. 볼품없고 쥐뿔도 없지만 의기만은 뛰어난 사람이었죠.”

“이번엔 옛날이야기니? 선문답을 하는 것 같구나.”


선문답은 아니고. 이해를 돕기 위해 즉석에서 만든 우화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소원을 하늘이 들어준 건지 큰 수익을 올렸지 뭡니까? 평생을 부자로 살 수 있는 수익이었죠. 그는 집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 생각에 싱글벙글 웃었답니다.”


투덜거릴 때는 언제고, 우혁은 내 이야기에 깊게 빠져들었다. 어쩌면 무역상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주는 것도 하늘이요. 거두는 것도 하늘이니. 무역상의 배에 큰 구멍을 뚫어놓았지 뭡니까? 보물이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위험하게 생긴 거죠.”

“이런. 개 같은 하늘 같으니라고. 못된 자식!”

“그런데. 그 때 한 소년이 등장했어요.”


참고로 잘생기고 똑똑하며,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소년이라 첨언했다.


갑자기 작가의 사랑을 듬뿍 받는 캐릭터가 등장하자 우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제 곧 극의 하이라이트였기 때문에 다시 이야기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였다.


“소년은 하늘의 못된 심보를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무역상에게 그 사실을 알렸죠. 그런데 돈에 눈이 먼 무역상은 그 말을 무시하지 뭡니까?”

“미련한 녀석이군.”

“네. 미련한 사람이죠. 그래도 자애로운 소년은 무역상이 개털이 되는 꼴을 지켜보지 않았어요. 일부러 배를 부수기 시작한 거죠. 놀란 무역상은 다급하게 수리공을 불렀고...”

“바닥에 구멍이 뚫렸음을 발견했다?”

“그런 거죠.”


우혁은 손가락을 퉁기며 기뻐했다. 자신이 원래 이런 쪽으로 감이 좋다며, 무역상이 잘 되어서 다행이라면서 말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 무역상이 부자가 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글쎄 무역상도 노력을 했고, 하늘이 수익을 내려주었지만. 지켜낸 건 소년이니 소년이 가장...... 설마 이거 내 이야기냐?”


눈치가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닌 듯하다. 그래도 마지막의 마지막엔 내 이야기의 핵심을 찾아냈다.


“네. 맞아요.”

“끄응. 이야기를 들으니 네가 플로리다에서 했던 행동이 이해가 가네. 그래서 그 지랄을 했던 거구나.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야.”


어허. 지랄이라니. 우혁의 재산을 구하기 위한 숭고한 노력을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진상을 알게 된 그의 표정은 생각보다 미묘했다.


“사실이라면 네가 일등공신이 맞기도 하고. 그런데... 아무래도 믿기 어렵긴 하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운명이니 DNA니 하는 이야기는 쉽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으니까.


그래서 준비했다. 내 이야기의 신뢰도를 한 번에 높여줄 비밀 병기를.


나는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 옆 테이블 아저씨에게서 TV 리모콘을 뺏어왔다. 그리고 공중파 방송을 틀었다.


축구를 보던 옆 테이블 아저씨가 절규했으나, 만원 몇 장을 꺼내 보답하니 어린 아이처럼 헤헤 웃더라.


그 광경을 우혁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하루 어떻게, 어째서, 왜, 뭐하는 거니 등의 질문을 수도 없이 내뱉은 사람이다.


대화를 하다 말고 TV를 키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이럴 땐 그냥 가만히 있으면 답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 같다.


공중파에서는 한창 뉴스가 진행 중이었는데, 오후의 뉴스가 대체로 그러하듯 별 것 아닌 소식들을 전하고 있었다.


옆집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다투다가 틀니가 빠졌다느니, 라면을 깠는데 다시마가 2개가 들어 있었다느니. 그런 소식을 말이다.


그런데 아나운서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그리고 갑자기 새로운 자막이 떠오르고 긴박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속보가 들어온 것이다.


“속보입니다. 역대 최고 풍속의 토네이도가 미국 마이애미를 휩쓸고 있습니다. 수많은 건물들이 무너지며 인적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한국에도 익히 알려졌던 OTC 사의 유전에서 큰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에잉 미국 일을 가지고 무슨 속보라고.”


축구를 즐기던 아저씨는 김이 팍 샜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가 특별하게 싸이코패스인 건 아니다. 아무리 테러나 재해가 발생해 사람이 죽어나간다 하더라도, 외국에서 발생한 일이면 남일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곳에도 마이애미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이게... 무슨.”


우혁의 손에서 물 컵이 떨어져 바지를 적셨지만, 그는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을 뿐이다.


짧은 시간 동안 나눴던 키무라와의 우정 때문은 아니리라.


그냥 그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회사를 매각하지 않았으면, 아직 마이애미에 있었으면 어땠을지를.


뉴스는 유전의 상황을 특히 중요하게 보도했다.


토네이도가 시추 설비를 무너트렸고, 그 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


보통 바다 근처에서의 폭발은 별다른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 법이지만, 유전에는 기름과 가스가 잔뜩 쌓여 있었다.


펑! 퍼벙!


연쇄 폭발이 일어나며 불기둥이 연속적으로 솟구쳤다.


한 번 솟아오른 불은 바람에 뒤섞여 불바람을 만들었고.


그 불바람은 플로리다에서 유전의 흔적을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듯 거세게 몰아쳤다.


펑! 퍼벙!


과연 다시 복구를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러울 정도로 망가지는 중이다.


폭음이 들릴 때마다 우혁의 몸이 움찔거린다.


화면 속 바다를 멍하니 보는 것은, 아마 내가 들려주었던 이야기의 무역상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 이뤄낸 재산도, 목숨도 모두 날아갈 뻔 했다.


그런데 한 소년이 억지스럽게나마 회사를 매각시켰고, 한국으로 귀국시켰다.


덕분에 여전히 통장에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찍혀 있고, 가족들과 이렇게 여행을 올 수 있었다.


아찔하면서도 안도의 감정이 드는 것이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아 정신이 아득해졌을 것이다.


“아저씨. 그럼 이제 제 요구 조건을 말해도 괜찮을까요?”


한참을 멍하니 있던 우혁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너무 놀라 우리가 어떤 대화를 하고 있었는지를 잊어버린 것 같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되짚어 주자.


“아저씨를 구원한 사람은 저에요. 그 많은 돈을 지켜낸 사람도 저고요. 그러니 그 돈 좀 제가 쓰려고 하는데. 괜찮죠?”


성아가 미래를 관측한 덕에 타이밍은 완벽하다. 확실한 증거를 보여줬고, 그를 진창 뒤흔들어 놨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요구사항을 제시하더라도 과하지 않다 확신할 수 있다.


보상금 같은 푼돈은 필요 없다. 세상을 움직이고 뒤흔들 수 있는 폭력적인 금을 원한다. 부분도, 일부도 아닌 전부. 모든 것을.


우혁의 눈은 힘없이 흔들리고 있다. 그의 사고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존재와 조우했다.


그리고 그 존재가 자신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한다.


뺏기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게 될 까봐. 어쩌면 더 심한 꼴을 당할 까봐 겁을 먹은 것이다.


물론 나는 상도덕이 없는 깡패는 아니었기 때문에 갈취가 아닌 ‘대여’의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걱정 마요. 돈을 빼앗겠다는 게 아니니까.”

“... 그러면?”

“이번 사건을 보며 느낀 건데. 아저씨는 경영 쪽은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우혁의 최대 업적이 바로 유전을 발견한 건데 그건 내 덕분이고.


허리케인이야 뭐 천재지변이라고 하지만, OTC 운영은 전부 랜들에게 떠맡겨 놓았던 거 아닌가? 그래서 매각 때 차질이 발생했던 거고.


심지어 경주 여행도 깔끔하게 기획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사람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일선에서 움직이면 안 된다. 그래도 아이디어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 방향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시키면 된다.


그래. 나 같은 유능한 인재한테 말이다.


“그러니까 그 쪽 돈 제가 관리해줄게요.”


상당히 포괄적인 말이었기에 좀 더 세부적인 조건을 들려주었다.


“모든 지출을 통제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간섭을 안 할 것도 아니고. 말하자면... 자문 같은 역할이죠?”


총괄 같이 복잡한 업무를 다 맡는 것은 질색이다. 큰 권리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지만, 내가 원하는 건 큰 권리에 작은 책임.


그러니 자문이다. 우혁이 등신 같은 행동을 할 때 이를 제지하고, 혹시나 내게 조언을 구한다면 알고 있는 지식을 아낌없이 풀어주고.


사실상 서포팅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 결과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막대한 재산이 담긴 금고의 열쇠다.


부정부패한 관리들이 돈을 해쳐먹을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인가. 나라에서 금고 열쇠를 그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 우혁의 허가만 받는다면 돈을 얼마든지, 어디에든지 사용할 수 있다.


자문의 형식을 빌어 돈을 투자시키면 그만이니까.


이는 운명과 대적하는 데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아이X맨이나 배X맨이 강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돈으로 꾸덕꾸덕 장비를 맞췄기 때문 아닌가.


이 몸 역시 마찬가지. 석유를 기반으로 강화를 진행한다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된다.


“...”


그런데 우혁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원래 투자는 신중히 해야 하는 게 맞긴 한데... 기다리는 입장에 있자니 조금 답답했다.


어쩔 수 없지. 그를 구워삶기 위한 마지막 제안을 건넬 수밖에.


나는 우혁을 향해 세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나한테 돈을 맡기면 세 가지는 보장해줄게요. 첫째. 이번에 토네이도를 피한 것처럼, 돈을 꼬라박는 일은 없을 거에요.”


세계 굴지의 은행에 돈을 맡겨 놓는 것만 같은 안정감이다. 적어도 기상천외한 일로 거지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내가 돈을 좀 갖다 쓰는 일이 있긴 할 텐데. 손해를 내지는 않을 거에요. 뭣하면 계약서에 적어도 상관없어요. 몇 달에 한 번 실적을 점검했을 때 실적이 마이너스면 자문 자리를 내려놓는다던가.”


적어도 내 개인의 욕망을 위해 돈을 탕진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소리다.


우혁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강제로 태워진 자이로드롭에 안전벨트 정도는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한 표정이랄까.


물론 그게 내가 돈을 빼먹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가 약속한 것은 어디까지나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소리.


티가 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수수료를 챙겨갈 생각이다.


돈 주인이 알면 기겁할 이야기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지.


“마지막으로. 이게 가장 큰 혜택이에요. 제 제안을 수락하면 아저씨랑 저 사이에는 친분이 생길 거에요.”


그의 표정이 3살짜리한테 씨앗은행 5억 원짜리 지폐를 받은 것 마냥 뒤틀렸다.


그딴 걸 얻어서 어디다가 써먹냐는 듯한 눈치다.


“저는 기본적으로 제 사람들은 잘 챙겨요. 무슨 일이 있으면 외면하지 않을 거고요.”

“... 이번엔 도와줬잖니? 아무나 다 잘 도와주는 거 아니었어?”

“그거야 제가 얻어먹을 게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 거고. 다음에는 못 본 척 할 거에요.”


그제야 우혁은 내 친분이 가지는 가치를 이해한 것 같다.


“우리 나름 친한 사이였던 것 같은데.”

“아뇨. 그냥 미르네 아빠일 뿐인데요.”

“끄응. 나 어릴 때는 주위 사람이랑 다 친구 먹고 그랬는데.”


그는 물잔을 잡았다 놨다를 반복하며 고민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선뜻 결정하기는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머리로는 알겠어도, 막상 넘겨주려면 손이 달달달 떨리는 게 돈이었으니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우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태연한 내 태도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내가 거절하면 네가 얻어가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니?”

“그렇죠.”

“망할 때 망하더라도 결정권은 나에게 있는 거고.”

“굳이 따지자면. 그렇긴 하죠.”

“그런데 왜 내가 매달리는 쪽이 된 건지 모르겠구나.”


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혁의 정신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것 같다.


누가 보더라도 상황은 이상했으니까.


제안을 건네는 쪽은 이미 체결이라도 된 것처럼 당당하고, 결정을 하는 쪽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민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구도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오늘은 우혁에게 있어 다사다난한 하루가 될 것이고, 나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날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팔짱을 끼며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


우리 집 레이더 성능이 워낙 좋아서 말이지.


띠리링.


때마침 우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우혁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키무라네.”


마이애미에서 태풍을 맞은 키무라가 마음이 공허하고 적적하여 우혁에게 전화를 건 듯 하다.


우혁은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띠리링. 띠리링.


그러나 키무라는 끈질기게도 매달렸다. 전화를 받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상대의 기분을 알 것만 같다.


화를 내는 것 같은 기세다.


결국 우혁은 조심스럽게 전화기를 들었다. 이미 모든 거래는 끝이 났지만, 인간으로써의 도의라는 게 있었기에.


“#**ま!”


전화를 받자마자, 흥분한 중년의 목소리가 거칠게 스피커를 비집고 튀어 나왔다.


일본계 미국인이라더니 화가 나면 일본어가 막 튀어나오고 그러는 모양.


일본어라고는 특정 단어 몇 개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뭐라 그러는 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망을 보고 있는 경호원을 데려다가 해석을 부탁했다. 보통 고위 인사 경호원 정도 되면 통역도 잘 하더라.


“사기? 아니냐고 하고 있습니다. 유전이 박살날 걸 알고 급하게 판 거 아니냐고.”


의외로 눈썰미가 좋은 친구다. 내 의도를 정확하게 눈치챘다.


그러나 우혁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키무라상도 직접 확인한 내용이 아니냐며 팔짝 뛰었다.


법적으론 꿀릴 게 아무 것도 없었기에 그는 환불 요구, 배상금 요구를 모두 무시하는 결정을 내렸다.


전화를 끊기 전, 키무라의 마지막 말은 꽤나 서늘했고, 날이 서 있었다.


“절대로 이 일을 잊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제 값을 치르게 해 드리죠. 반드시! 반드시이익!!!”


저주는 사람을 움츠러트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익숙한 사람이야 웃으면서 넘길 수 있지만 우혁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


상대는 최소 수천억의 손해를 본 기업의 총수다.


이미 눈이 돌아갔으니 자객을 보낸다 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 온다면야 그래도 12시간의 유예는 있겠지만, 일본에서 사람을 보낸다면? 3시간도 안 걸릴 것이다.


키무라가 미국인이긴 해도 일본계니 일본에 지인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반격 준비를 하기도 전에 야쿠자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우혁은 홀몸도 아니다. 미르와 아름을 신경 써야만 한다. 상황에 따라서 그들에게 험한 꼴을 보일 수 있으며, 불편함을 겪게 만들 수도 있다.


가장으로써 그보다 더 괴로운 상황은 없으리라.


그런데 바로 옆에, 누르기만 하면 고민을 덜어버리고 행복해질 수 있는 버튼이 있다.


골치 아픈 일들을 대신 맡아서 해결해준다는 소년이 있다.


실력이야 지난 총격전을 통해 확인한 바 있고.


“계약서... 필요하니?”

“있으면 좋죠.”


우혁과 정식으로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나의 별이 한층 더 커지고, 밝아진 순간이기도 했다.


* * *


야심한 새벽. 젊은 피들이 부어라 마셔라 하며 공기에 약간의 알콜 향을 가미시키는 시간.


세 명의 청년이 비틀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부자들만이 산다는 청담 주택가였지만, 그들의 행색이나 행동거지는 거리에 녹아들만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니 경계를 서던 남우혁의 자택 경비원이 긴장을 푸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흐느적거리던 청년의 발걸음이 두, 세 템포 빨라지더니.


품에서 칼을 꺼내, 물 흐르듯 경비원의 품에 꽂아 넣었다.


“컥!”


굳이 두 번 칼을 휘두를 필요 없는 깔끔한 칼솜씨다.


그들은 곧바로 담을 타고 저택 내부로 들어갔다. 남우혁과 그 가족들을 참살하기 위함이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돈을 받았으니 처리할 뿐.


돈만 준다면 누구든 가리지 않는다는 원칙이 그들을 업계 최고로 만들어주었다.


서른 번이 넘는 작업 동안, 실패한 적 없는 실적도 그들이 최고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


아무리 상대가 석유 재벌이라고 하더라도, 빠르게 작업에 나섰으니 암살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맞이한 것은 무방비한 중년의 남성이 아닌, 그보다 젊고 잘생긴 소년이었다.


그들이 담장을 넘자마자 일제히 불이 켜져, 그들을 비췄다.


“trap?”

“트래뿌? 아~ 함정 말하는 건가? 그 비슷한 거에요. 언제 올지 알고 있으니까. 미리 와서 기다렸어요.”


앞머리를 미역줄기 같이 기른 청년이 주위를 경계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계획이 들켰고, 임무 속행과 후퇴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직 장애물은 소년 하나일 뿐이니까.


“kill you.”


칼을 든 세 사람이 소년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다.


“저희 도장 사범님이 칼을 든 괴한을 상대하는 법을 알려주셨거든요.”


그는 양 팔을 들어 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사범에게 들은 구결을 읊조렸다.


“첫째. 너도 칼을 들고 있는 게 아니면 무조건 도망쳐라. 둘째. 칼을 들고 있어도 쪽수가 딸리면 도망쳐라. 셋째. 도망갈 수 없다면... 경찰을 불러라.”


딱!


그가 손을 퉁기자 저택 내부에서 경찰 옷을 입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중무장을 하고, 양 손에는 스턴 건을 든 상태였다.


아무리 일류 암살자라고 하더라도 저들을 뚫고 목표를 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fuck! retreat!”


미역머리 삼인조는 등을 돌려 정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내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칼을 맞고 쓰러졌던 경비들이 어느새 일어나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쪽이 오는 걸 알고 있는데 설마 경비들한테 방검복 정도도 안 입혔을까봐요?”


보다 쉽게 포박하기 위해, 안으로 끌어들였을 뿐이다.


완전히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은 삼인조가 피식 웃었다.


꼴이 꽤나 사납다. 이왕 잡힐 거라면 녀석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다.


승리를 차지하더라도 벌벌 떨며, 피범벅이 된 채 가져갈 수밖에 없도록.


그 시작은 저 능청스러운 소년의 목을 날리는 것부터이리라.


미역머리가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히며 칼을 휘둘렀다.


소년은 천천히 칼이 내려오는 걸 지켜보고만 있다. 그래도 자신의 온전한 패배는 아니라며 미역머리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던 찰나.


눈앞이 암전되었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 해도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득해져가는 그의 의식 뒤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범님은 그렇게 이야기하셨지만... 굳이 이길 수 있는데 도망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강하니까. 어쩌면 그냥 혼자서 싸워도 될 뻔 했네요.”


한국어를 몰라 무슨 소린지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를 능멸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죽이고 싶다. 그러나 죽일 수 없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몇 번을 생각해봐도 알 수 없다.


그는 억울했다. 지금껏 실패는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다. 이번에도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힘도, 상황도 모든 것이 그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었다.


마치 항거할 수 없는 운명처럼.


운명이 소년을 향해 웃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운명마저 굴복시킬 수 있는 위대한 존재이거나.


미역머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의 의식이 단절되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 댓글, 선호작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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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상승기류2 22.10.05 434 6 20쪽
134 상승기류 22.10.04 422 9 14쪽
133 Do you know 김치? 22.10.01 455 6 21쪽
132 플로리다의 중심에서 붉은악마를 외치다 22.09.30 459 9 21쪽
131 플로리다의 중심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다 22.09.29 458 9 24쪽
130 한국인의 정서 22.09.28 456 9 17쪽
129 플로리다에 가다 22.09.28 474 9 18쪽
128 형 노릇 22.09.27 489 6 18쪽
127 재활용 22.09.24 514 10 20쪽
126 역으로 돌려주다 +2 22.09.23 507 11 17쪽
125 마지막 실험 22.09.22 507 10 17쪽
124 스트레이트 한 방에 22.09.21 518 10 17쪽
123 vs 남미르 22.09.20 508 10 21쪽
122 대적자 해체, 분석 22.09.17 509 10 21쪽
121 전초전 22.09.16 547 1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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