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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616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9.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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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
추천
9
글자
21쪽

플로리다의 중심에서 붉은악마를 외치다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32화



축구 내기라는 말에 과열되던 분위기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나는 여전히 총을 들고 눈치를 보고 있는 경호원들을 데려다가 빈자리에 앉혔다.


“아저씨들도 할 거 없으면 축구나 봐요.”


그들이 머뭇거리자 태호가 나서 대장격인 인물을 다독였다.


“축구는 다 같이 봐야 재미있는 법일세.”


식당에서 과자를 꺼내 큰 보울에다가 부어 경호원들에게 건넸다.


경기 관람 때 먹거리를 참을 수 있겠는가. 뭘 보면서 먹으면 맛이 2배가 되는 법.


결국 경호원들도 총을 거치시켜두고 자리에 앉았다.


고용주들이 눈살을 찌푸릴만한 광경이지만, 그들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현 시간에도 판은 점점 커지고 있었으니.


사무엘이 흰 치아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 내기 나도 참여가 가능한 건가? 흐흐. 지인 중에 동양인 꼬마를 좋아하는 녀석이 있어서 말이야.”


그동안 돌아가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은데, ‘내기’라는 말이 나오자 태도가 일변했다.


쾌락과 스릴을 즐기는 사람인 듯하다.


물론 새로운 호갱님은 언제나 환영이다.


“좋아요. 거기 코쟁이 아저씨는 참가 안 하세요?”


시추 회사 본부장 케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나 손해를 볼 수도 있으니 아예 참여를 안 하려는 것 같다.


겁쟁이 자식. 다행히도 저런 녀석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빠삭하다.


리스크 이상으로 리턴을 책정하면 된다.


컴퓨터를 찾아 너튜브에 들어갔다. 내 이름을 검색하자 수많은 영상이 화면에 떠올랐다.


나는 이를 케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제가 이래 뵈어도 고향에서는 잘 나가는 배우거든요. 가지고 있는 재산만 해도... 이 정도?”


슬쩍 숫자를 적어 보이자 케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일개 회사 직원에게 2억이 넘는 돈은 큰 금액이었으니까.


케인의 생각을 바꿀 때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 나도 참가하지. 만약에 돈이 없으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탐욕스러운 자식. 곧 있으면 훌륭한 나의 지갑이 될 예정이다.


랜들은 아예 계약서까지 작성하고 있다. 혹여나 무르지 못하도록, 반드시 모든 것을 뺏어버리겠다는 듯이.


어지간히도 승리를 확신하는 모양이다.


“내가 이기면 너는 개처럼 사용하마. 열등한 녀석들이 주제도 모르면 어떻게 되는지 좋은 선전이 되겠지.”


뭐 목줄이라도 채우고 산책이라도 다닐 예정이신가. 생각보다 취향이 고상하다. 그러다 내가 이기면 어쩌려고 그러시는지 몰라.


나는 자신이 있었기에 여유롭게 계약서를 살폈다.


“태호 아저씨. 이거 법적 효력 있어요?”

“흠... 지인 중에 법무 팀 사람이 있는데 물어보마.”


그렇게 전문 인력의 도움을 받아 계약서를 보완했다.


‘모든 것’이라는 말은 추상적이니 각자 걸 수 있는 최고의 것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나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계약서의 효력이 인정받기 어렵다 해서 일단 나대신 태호 아저씨를 대신 판돈으로 올려두기도 했고.


이를 지켜보던 우혁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상혁아. 이러면 정말 되돌릴 수 없게 되는 거 아니니?”

“그렇겠죠?”

“그렇겠죠라니!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알아? 내가 지금이라도 중재할 테니까...”

“괜찮아요. 제가 이길 테니까.”


내 믿음직스러운 발언에도 우혁은 쉽게 물러나지 않고 들러붙었다.


“도대체 뭘 근거로? 나도 한국이 자랑스럽기는 하지만 이렇게 만용을 부리지는 않는단다.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에 누가 있는 줄 아니?”


잘 알고 있다. 도티, 델 삐에로, 비애리, 말디나에 간나바로 그리고 부퐁까지.


월드 클래스의 선수들이 한 트럭이다. 현대로 따지면 손홍민만 11명 데리고 축구를 하는 격.


거기에 2년 전에 세계 대회에서 준우승까지 차지한 스쿼드라고 한다.


저 재능 만능주의자가 우리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도 그렇게 정신 나간 행동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무서운 팀의 상대가 고작 동방의 작은 나라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이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명경기가 되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곧 전 세계 사람들도 알게 될 것이다.


우혁의 가슴을 밀어 소파에 앉혔다. 그는 내 패기에 눌리기라도 한 듯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2시간만 기다리세요. 그 쪽의 국뽕, 아니 애국심. 풀로 충전시켜 드릴 테니.”


말을 마친 뒤, 역사적 순간을 영접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왕 볼 거 만반의 준비를 끝마치고 보고 싶다.


TV 속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저 관중들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응원하는 마음은 같을 테니까.


“... 흠.”


관중들을 보고 있자니 빨간 옷이 입고 싶어졌다. 급하다고 흰색 티셔츠를 입고 오다니 나란 녀석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쉬워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사무엘이 마시고 있던 와인이 눈에 들어왔다.


“실례.”


그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병을 빼앗고 화장실로 향했다. 없으면 만들면 되는 법. 요새는 커스텀의 시대가 아닌가.


“상혁아! 도박에 이어서 음주라니! 너 불량한 녀석이었구나? 우리 미르한테 그런 걸 가르친 건 아니겠지?”

“아~ 마시려는 거 아니에요.”


우혁의 절규를 뒤로하고 욕조로 향해 옷과 와인을 때려 부었다.


그냥 입으면 찝찝할 테니 물로 한 번 행구고, 드라이기로 말리면... 짜잔. 손수 만든 응원복 완성이다.


술 가지고 뭐하나 흥미롭게 지켜보던 사무엘이 물었다.


“꼬마야 약도 하냐? 아니면 광증?”


갑자기 술을 빼앗아 옷에 부으니 이상한 놈 취급을 하는 게다.


나는 한 손을 들어 TV 속 관객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일종의 의식이죠.”

“오. 의식. 이름은?”


승리를 위한 열망, 모든 걸 불태우는 의지, 적을 쓰러트리겠다는 각오. 그 이름하여.


“붉은 악마. 아니 Red Devil.”

“멋지군. 그런데 그 옷은 빨강이 아니라 자주색...”

“닥쳐요. 그 쪽 피로 빨갛게 물들일 수는 없으니까.”


인생 한 번 유쾌하게 사는 사무엘은 낄낄 거리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참 재밌는 양반이다.


삐익!


두근거리는 심장과 함께,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경기 초반 승기를 잡은 것은 다름 아닌 한국. 설기연이 패널티 킥을 얻은 것이다.


수비의 개입 없이 골키퍼와 1대 1 상황이 만들어졌으니, 어지간해서는 골을 넣을 수 있을 거라며 우혁이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상혁아! 네 말이 맞구나! 한국이 이길 수도 있겠어!”

“워워. 릴렉스. 아직 아니에요.”


실축이 나온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무미건조하게 받았다.


랜들은 아닌 척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가 PK가 실패하자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 꼴이 조금 웃겼다.


방금까지 쫄았던 주제에 의기양양한 척 하기는.


그 뒤로는 이탈리아가 우세를 유지했다. 비애리가 김대영의 콧등을 부쉈음에도 퇴장을 받지 않았고, 전반 18분경 선제골을 터트리니 양놈들의 기세가 등등해지더라.


“이게 당연한 결과지. 재능의 총량이 다른 것을!”

“오심 아닙니까!”

“아니! 우리가 하면 오심이 아니다!”


이탈리아는 졸렬하게 수비를 하나 더 투입하는 전술을 택했고, 이를 본 사람들은 경기가 끝났다고 평했다.


이탈리아의 수비는 터프하고 튼튼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으니까.


케인의 집에 총을 든 사람들이 도착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뭡니까?”

“축구는 여럿이서 봐야 재미있는 법이라며?”


랜들의 너스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다. 영국의 훌리건들도 축구를 보러 총을 들고 가지는 않으니까.


저택의 호위들은 대부분 우혁의 돈으로 고용한 사람들이니, 명령을 잘 들을만한 수족을 부른 것이겠지.


내기를 이긴 것 같으니 끝나자마자 우리를 제압하려는 게 아닐까.


잠시 귀를 기울이던 태호가 저들의 정체를 추측했다.


“이탈리아 말을 사용하는구나.”


그러고 보니 랜들의 성이 율리우스였지. 로마 역사를 배우면서 들었던 적이 있다.


미국에서 이탈리아 향우회를 하고 있던 걸까. 아니면 본토에서 데려온 따까리일지도 모르고.


랜들의 따까리들은 우리 주위에 앉아 경기를 보며 낄낄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간간히 우리를 보며 끈적거리는 눈빛을 보내는 게, 경기가 끝나면 각오하라는 것만 같다.


어느새 실내가 어웨이 구장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홈이 아니라도 중립국은 될 줄 알았는데.


주변에서 은근히 눈치를 주며 응원조차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실제로 우혁은 손톱을 뜯으며 초조함을 드러내는 중이다.


말려 죽이려는 듯한 기운들이 차츰 차츰 다가왔으나, 한 목소리가 이를 뚫고 뛰쳐나왔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주변에서 코웃음치고, 황당한 눈빛으로 보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세상을 뒤집어엎을 기세로. 또 한 번.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저들이 승리를 확신하는 이 순간까지도 나에겐 즐길 만한 요소였다.


내가 이 자리에 서서 응원할 테니. 오라. 약속된 승리여.


동해와 태평양을 넘어 이 광대한 대지까지 대한민국의 함성이 울려 퍼지리라.


“언제까지 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보자꾸나.”


랜들의 비아냥에도 나는 태연자약할 뿐이다. 아마 끝까지 계속될 것 같은데.


경기가 후반 40분을 넘어가자 우혁은 이제 기절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미르를 위해 미국에 온 꼬맹이가 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고 노예가 되게 생겼으니. 정신이 나갈 지경인 게다.


태호는 그나마 침착한 편이었다. 그동안 이제이가 샘숭에서 일으키는 기적들을 곁에서 목격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기적이란 쉽사리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다. 이를 이루어 내는 것이 승부사고.


나에게서 제이의 어린 시절을 보고 있으니 묵묵히 기다리는 것일 터.


다만, 일이 잘 안 풀릴 경우를 대비하여 탈출할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랜들과 케인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승리 이후의 상황을 그리고 있고, 사무엘은 내기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서로의 생각이 다양하게 부딪히고 얽히고 있는 상황 속에서, 설기연의 동점골이 터졌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귀가 떨어져라 소리를 지르는 우혁. 태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 역시 짜릿한 전율과 아드레날린이 머리의 천공을 향해 뚫을 듯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아직이다. 이 기적의 종착지는 이곳이 아니다.


지금은 랜들을 비롯한 차별주의자 녀석들의 인상이 구겨지는 걸로만 만족하자.


승부는 연장으로 흐르고, 일진일퇴에 따라 지켜보는 이들의 심장이 떨어졌다 올라왔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대망의 117분. 이형표의 크로스가 날카롭게 문전으로 향했고, 안정완이 높게 도약하여 머리로 꽂아 넣었다.


긴 승부의 끝을 내는 서든 데스, 골든 골이었다.


“끄오오옷! 이겼다! 대한민국이 이겼어!”


안 그래도 애국심이 강한 우혁은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오오오!”


긴 시간 타지에서 메말라버린 국뽕의 샘물이 흐르고 넘쳐서 터지는 중이다.


띠링. 띠리링.


핸드폰이 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지훈이, 다빈이, 승윤이까지 방금 경기 봤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이제 나도 봤다.”


결과를 알고 봤음에도 재밌었고, 감동적이었다.


이 기쁨을 친구들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도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경기를 모르고 봤으면 더 재밌었겠지만, 추억의 한 페이지에 강렬한 순간을 담았음에 만족하기로 했다.


플로리다에서 대한민국의 승리를 만끽하다니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 아닌가. 거기에 초호화 판돈까지 쓸어 담을 예정이니 기쁨은 두 배, 세 배가 되었다.


반면 정배 녀석들, 아니 이탈리아의 승리에 걸었던 3인방은 하나같이 넋이 나가있다.


승리가 당연하다고 예상된 경기에서 패배했다. 덕분에 그동안 쌓아올린 재산이 날아가게 생겼기에 영혼이 빠져나간 모습이다.


특히 랜들의 얼굴이 볼만했다. 지독한 차별주의자였던 녀석의 이론이 와장창 깨지다 못해 산산조각이 나버렸으니 충격이 말이 아니리라.


동양인의 유전구조가 제일 열등하다는 말은 한국의 승리로 반박이 가능하고.


재능 있는 자들의 선택이 언제나 옳다는 말도 내가 내기에서 승리함으로 반박이 가능해졌다.


사실 랜들보다는 내가 더 재능이 뛰어나니, 녀석의 이론이 틀렸다 보기도 뭣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내가 이겼고, 녀석은 X 됐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OTC를 팔면 안 된다는 녀석의 주장은 힘을 잃었다.


날이 밝는 대로 지금까지 들어온 제안 중 가장 괜찮은 조건에 도장을 찍어버리리라.


이제 개고생도 끝이다. 날 쫓던 신은 발만 동동 구르며 잭팟이 터지는 걸 구경만 하고 있어야할 터.


그동안 답답했던 응어리가 모조리 해소되는 기분이다.


그런데 아직 할 게 남은 것 같다. 하얗게 질려 덜덜 떨던 케인이 계약서가 놓인 테이블을 향해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화들짝 정신을 차린 랜들 역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제압해!!!”


그래. 패배를 곱게 인정하면 악당들이 아니지.


예상했던 바였기에, 일행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경호실장님은 우혁 아저씨 지켜 주세요. 저 경호원들이랑 전선을 구축한 뒤 반격을 가하는 걸로 하죠. 저는 알아서 움직일 게요.”

“상혁아! 그게 무슨 소리니!”


태호는 기겁하는 우혁을 반으로 접어 경호원들 사이로 향했다.


나는 모든 DNA를 활성화시킨 후, 패배자들의 제압에 나섰다.


주변의 흐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한다.


총알의 속도는 내 움직임을 상회하고, 시야는 한정적이며, 해야 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괜찮다. 어느 상황이던 정답은 정해져 있으며, 이를 수행할 능력이 내게는 있으니까.


우선 계약서부터.


테이블을 위로 걷어 차버렸다. 달려오던 케인은 뒤집힌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으며, 계약서는 허공을 향해 나풀거리며 떠올랐다.


이들의 시선이 위로 향한 사이, 빠르게 권총을 집어 들어 랜들의 따까리를 향해 쏘았다.


죽이지 않기 위해서 더 세심한 조준이 필요했지만 내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두뇌가 에임 핵마냥 총알의 예상 경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탕탕!


내 사격이 신호탄이 되어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총알이 쏟아지고 있다. 앞만 보다간 눈먼 총알에 맞기 십상이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소리가, 기척이, 온갖 정보가 시야가 닿지 않는 부분을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랜들의 따까리는 꼬마에게 거리낌 없이 총을 겨누었다. 가만히 있으면 벌집이 될 게 뻔했기에 왼쪽으로 굴러 사격범위에서 벗어났다.


그대로 엎어진 테이블을 엄폐물 삼아, 적의 허벅지에 바람구멍을 뚫었다.


탕탕탕탕!


적의 절반 이상이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X발!!! 저거 뭐야!”

“미친 꼬맹이. 오늘은 말도 안 되는 일만 목격하는 군.”


10살 꼬마가 능숙하게 총격전에 임하고 있다. 어찌 보면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긴 것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오늘은 기적이 한국에 임하는 날. 그리고 이 몸은 자랑스러운 대한의 건아였다.


총알이 떨어진 권총을 얼빵한 적의 얼굴에 명중시켰다.


“크악!”


그리고 상대가 떨어트린 총을 주워 다시 적을 향해 발포한다.


“Go to Hell!”


악에 받힌 녀석들의 집중포화가 이어졌다. 점차 퇴로가 사라졌고, 곧 있으면 강제로 수호의 DNA의 성능을 테스트하게 생겼다.


그러니 피한다. 총알이 내리지 않는 저 하늘로.


발바닥에 힘을 집중시킨 뒤, 힘껏 박차고 하늘로 떠올랐다.


느리고, 우아하게 회전하며 허공에 매달린 것만 같은 자세가 되었고.


180도 회전하여 다시 마주한 적들을 향해 탄환을 쏘아냈다.


타타탕.


묘기에 가까운 사격이다. 누군가는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누군가는 장난질하지 말라며 화를 낼 행동.


그러나 감탄하는 사람도, 화를 내는 사람도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고난이도의 사격이다.


우월한 도약력, 공중에서도 조준이 가능한 실력, 상황에 맞춰 몸을 뒤틀 수 있는 코어 근육.


그 중 하나라도 부족한 경우 성공시키지 못했을 터.


정점의 DNA로 무장한 나 정도가 아니면 흉내조차 못하리라.


“크아아아악!”

“이 자식! 고간을 쏘고 있어!”


얼레리? 아무래도 공중에서의 사격이 익숙하지 않다보니 실수가 나온 듯하다.


그래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니, 결과만 좋으면 OK 아닐까?


“저 악독한 새끼!”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죽여!”


아닐지도 모르고.


적은 아예 방어를 포기하고 내 쪽을 향해 총을 갈기고 있다. 갈 때 가더라도 나만은 죽이겠다는 것처럼.


공중에 떠오른지라 회피가 용이하지 않았다. 따로 피할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이건 나 혼자 상대를 몰살시키는 느와르 영화가 아니지 않나.


적의 시선이 허공으로 쏠린 사이, 경호원들과 태호가 일제사격에 나섰다.


진영도, 대열도 무너진 무방비한 녀석들을 제압하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나는 유유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패배자들의 유쾌한 반란이 깔끔하게 종료되었다.


아군 측 사망자는 없고, 부상자는 경호원 하나. 가장 격렬하게 움직였던 나는 찰과상에 무릎이 까진 것이 전부였다.


반면 상대 세력의 대부분은 바닥을 기고 있다.


당장 손을 쓰지 않는다면, 생명이 위험한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주로 고간 사이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그러했다.


남은 건 랜들, 케인, 사무엘 단 세 사람 뿐. 그 중 사무엘은 별다른 액션이 없었고, 케인은 넉 다운 된 걸 감안하면 랜들 뿐이라 보아도 좋았다.


그는 눈을 뜨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숨을 쉬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패닉에 빠져 현실을 부정하는 중이다.


“오지마!”

“음. 총으로 이기는 건 멋이 없지?”


알량한 재능을 위시하는 차별주의자에게 한국 초등학교 3학년의 매콤한 주먹 맛을 보여주도록 하자.


“덤비세요. 여기서 이기면 계약서는 없던 일로 해드릴 게요.”


옆으로 총을 던지자 랜들의 동공이 흔들린다.


저래보여도 우월한 신장을 자랑하는 잔뼈 굵은 어른이다. 재능도 출중하다니 꼬마를 이길 자신은 충분하겠지.


흔들리는 눈동자로 주변을 살피던 랜들이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나는 경쾌한 스텝을 밟으며 어설픈 주먹질을 피했고, 곧바로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오뚝하던 콧대가 완전히 부러짐과 동시에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에이 더럽게.”


평소였다면 마운트 포지션을 걸고 떡이 되도록 반죽을 해주었겠지만, 그냥 차분히 손을 털며 등을 돌렸다.


“기분이 좋으니까 봐 준다.”


오늘은 좋은 날이었으니까. 내기도, 전투도, 운명의 장난질도 끝이 났다.


계약서를 주워들고 태호와 함께 내부를 정리하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멍하니 벙찐 표정을 짓는 사무엘이었다. 그는 일류 중에 일류만이 속할 수 있다는 MLB의 야구선수다.


몸은 노쇠했어도 보는 눈 하나만큼은 여전히 날카로울 터.


그는 내가 보여준 퍼포먼스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를 알아 본 것 같다.


“... 술이 덜 깬 건가?”

“술이 깨도 그쪽이 빚쟁이가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걸요?”

“어떻게. 어떻게 한 거지? 정체가 도대체 뭐길래...”


그의 시선이 천천히 내 얼굴을 타고 내려오다가 우뚝 멎었다.


직접 만든 불길한 색감의 자주색 셔츠는 어느새 피로 물들어 붉게 변해 있었다.


“Red Devil.”


그는 스스로 답을 찾았다.


손쉽게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처럼 유혹하고는, 덫에 걸린 사람의 목을 잔혹하게 죄여온다.


마치 신화 속 악마와 같은 모습. 사무엘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발끝부터 차례로 전신의 근육이 공포로 굳어갔다.


나는 그를 향해 히죽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 마요.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계약서대로 처리할 테니까.”


그래봤자 모든 걸 걸었으니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는 말이지만 말이다.


다음날, 플로리다의 지역 신문에는 한국이 이탈리아를 꺾고 역사에 남을 승리를 차지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는 플로리다의 아침을 떠들썩하게 만들 만한 역사적인 기록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한 손에는 신문, 다른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저 멀리 동방 국가의 선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 중 일부는 다른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플로리다에 붉은 악마가 나타났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가 모든 것을 앗아가리라. 겁에 질린 표정으로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


이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거치며 와전되고 부피를 키웠으며, 결국 부모들이 어린이에게 주의를 줄 정도로 뿌리를 내렸다.


그렇게 한동안 플로리다에서는 붉은 악마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다고 한다.


겁을 모르는 아이들은 악마의 이름을 거침없이 외치며 자신의 용맹함을 증명했다나.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 선호작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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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연설 22.10.12 402 8 21쪽
139 악몽의 밤 22.10.11 411 6 18쪽
138 모략이 가득한 선거활동 22.10.08 441 6 22쪽
137 학생회장 후보가 되다 22.10.07 443 8 19쪽
136 석유재벌의 금고 열쇠를 얻다. 22.10.06 445 10 21쪽
135 상승기류2 22.10.05 434 6 20쪽
134 상승기류 22.10.04 422 9 14쪽
133 Do you know 김치? 22.10.01 455 6 21쪽
» 플로리다의 중심에서 붉은악마를 외치다 22.09.30 459 9 21쪽
131 플로리다의 중심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다 22.09.29 458 9 24쪽
130 한국인의 정서 22.09.28 455 9 17쪽
129 플로리다에 가다 22.09.28 474 9 18쪽
128 형 노릇 22.09.27 489 6 18쪽
127 재활용 22.09.24 514 10 20쪽
126 역으로 돌려주다 +2 22.09.23 506 11 17쪽
125 마지막 실험 22.09.22 507 10 17쪽
124 스트레이트 한 방에 22.09.21 518 10 17쪽
123 vs 남미르 22.09.20 508 10 21쪽
122 대적자 해체, 분석 22.09.17 508 10 21쪽
121 전초전 22.09.16 547 1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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