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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617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9.2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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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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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7쪽

한국인의 정서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30화



습하고 따스한 바람이 잠이 덜 깬 내 얼굴을 주무르고 지나갔다.


고작 2일차인데 플로리다의 아침이 어색하지 않았다. 의외로 나는 해외가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최고급 호텔에서 갓 짜낸 과일음료를 마시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고.


침대가 좋아서 그런지 장기간 비행으로 쌓인 여독을 모두 덜어낼 수 있었다. 나는 옆자리에서 침을 흘리는 미르를 흔들어 깨웠다.


“미르야. 아침 먹자.”

“좀만 더 자겠습니당...”

“해가 동천이야. 빨리 일어나.”


해는 원래 동쪽에서 뜬다. 그러니 동천, 즉 해가 동쪽에 있는 건 아침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


그러나 아직 꿈나라를 헤매는 중인 미르는 별다른 의심 없이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녀석을 끌고 가 세수를 시키고 머리를 가다듬은 뒤 호텔 라운지로 향했다.


경호실장 태호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옆자리엔 딱 적절한 온도의 커피가 보고서와 함께 놓여 있다. 간밤에 조사한 내용을 정리해 둔 모양.


주로 우혁의 인간관계. 그 중에서도 이권을 노리는 주요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항상 느끼지만 경호실장은 일처리가 참 깔끔한 것 같다. 이 자료는 계획을 세울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대단하네요. 감사합니다. 잠은 좀 잤어요?”

“그래. 충분히 잤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긴. 내가 전력을 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몇 안 되는 괴물이다. 걱정을 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 낭비다.


그는 자신의 커피를 들이키며 플로리다에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단 네 곁을 호위하는 인원과, 정보를 수집하는 인원. 이렇게 두 그룹으로 나눌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세 그룹으로 나누죠. 호위, 정보수집, 관광.”

“... 우리보고 놀라고?”

“하하. 대부분 저보다 약한데요. 뭐.”


어떻게 보면 도발로도 들릴 수 있는 말이다.


호위를 줄인다는 뜻은 인원이 많으나 적으나 별로 다를 게 없다는 뜻 아닌가. 의지가 안 된다며 무시하는 걸로 보여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기엔 우리가 같이 단련한 기간이 짧지 않았다. 내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태호도 잘 알고 있었고.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그 이면에 경호 팀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너무 일만 하셨잖아요. 플로리다가 그렇게 관광하기 좋대요.”

“흠. 애들이 좋아하긴 하겠다만...”

“정 걱정되시면, 총 한 자루 챙겨주시던가요.”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마.”


결과적으로 평소 호위는 통역을 포함하여 3명. 나머지는 정보수집. 그 중 가장 성과를 높게 올린 인원에게 관광 허가가 부여되는 걸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일정을 논의하고 있자니 우혁과 아름이 라운지로 내려왔다.


“애들아. 일찍 일어났구나.”

“네. 좋은... 아침이네요.”


좋은 밤 되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만족스러움이 흐르고 있는 걸 보아하니, 내 배려가 꽤나 도움이 되었던 모양.


우혁의 다리가 미묘하게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못 본 척 해 주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하면 그의 에너지는 다른 무언가로 치환이 되었을 테니까.


“좋아. 그럼 우리 식사 같이 하고 회사로 가자꾸나. 아빠 회사가 뭐하는 곳인지 구경시켜주마.”


호텔에서 식사를 든든히 마치고, 우혁의 오일 트레이드 컴퍼니로 향했다.


오일 트레이드 컴퍼니는 마이애미 중에서도 주요 번화가에 위치했다.


아침에는 느긋하다가 퇴근 즈음에 바빠지는 한국과 다르게 우혁의 회사는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가 사장실로 들어가자마자 비서가 프로젝트의 진척 상황을 보고했다.


한없이 가벼워 보이던 우혁도 그 순간만큼은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폼으로 석유를 캐고 다니는 건 아닌 모양.


참고로 통역이 된 말을 들어도, 업계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왔기에 알아듣기 힘든 것은 똑같았다.


그래도 영특한 두뇌 덕에 간신히 대강의 상황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탐색을 통해 매장량을 측정하는데 주력했고, 초입 부분 시추만을 끝마쳤다.


2차 시추는 더 깊게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회사를 구하려 하는데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우혁은 업무 시간 대부분을 사람을 만나는 데 소비했다.


자유분방한 나라답게 자기 PR 방법도 다채로웠다. 대부분 회사에 와서 발표를 했지만 식사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며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있었다.


덕분에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지루하지는 않았다.


우혁을 따라 다니다 보니 시내 구경도 하고,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즐겼으며, 야구 경기까지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가 뉘엿뉘엿 해질 즈음, 오일 트레이드 컴퍼니 탐방이 끝이 났다.


체험 삶의 현장을 마친 아름의 눈은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다.


매번 궁핍하게 지내던 남편이 멋지게 일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고, 또 행복했겠지.


미르 역시 마찬가지. 역시 자신의 아버지는 위대하다며 어깨를 피고 슈퍼맨 포즈를 취해 보였다.


반면 나의 눈동자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내 아빠도 아닐뿐더러, 오늘 삶의 체험 현장이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없는 일을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좀 더 바쁘게, 과장하여 표현하기는 한 것 같다.


세상 어느 대표가 하루 종일 일을 핑계로 바캉스를 즐긴단 말인가.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게 마침 오늘이라는 사실은 공교롭고.


단순하게 우혁이 가족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계획했을지도 모르지만... 냄새가 났다.


꿍꿍이를 꾸미는 사람들 특유의 음습한 냄새가.


아니나 다를까 우혁이 입을 털기 시작했다. 자로 잰 듯한 타이밍이었다.


“오늘 하루 어땠니?”

“멋졌어요! 최고에요!”

“정말 자랑스럽고 고마워요. 여보.”


그는 가족들의 찬사를 만끽하고는, 답지 않게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워. 둘 다 잘 알겠지만 어렵게 일궈낸 자리야. 정말 보람되고 즐거운 일이고. 앞으로도 수익이 점차 늘어날 보물창고지. 나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단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일부러 바쁜 모습을 보여준 것은 가족들에게 동정과 존경을 받기 위해.


플로리다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이곳에 잔류하겠다는 발언의 당위성을 얻기 위해서였다.


사업을 좋은 가격에 팔아 치우고, 한국에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가족의 권유를 사실상 거절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마케팅이나 설득은 ‘이성’보다 ‘감성’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해외에서 일하는 멋진 ceo 아빠의 모습은 가족들의 감성을 두드리기 적합했다.


아름이 눈물을 흘리며 우혁의 품에 안겼다.


“여보.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미안하긴. 아름씨를 혼자 두는 내가 더미안하지.”


상황이 안 좋았다. 이 자리의 인물 중 우혁에 대한 입김이 가장 강한 인물이 홀라당 넘어갔다.


우혁은 기세를 놓치지 않고 미르의 손을 붙잡으며 물었다.


“아들. 아빠가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한국에 돌아가지는 못할 것 같아.”


미르의 눈동자에 진도 3.0 지진이 내려앉았다.


당황스러워 보인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낀 바와 나의 경고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다.


머리로는 아빠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멋진 아들이 되고 싶은데, 자꾸만 행동을 멈추게 된다.


그럴 만도하다. 나 박상혁은 미르에게 신이나 다름이 없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녀석의 코를 짓눌렀으며. 말한 바를 모두 현실로 만들어낸 사람이었으니까.


녀석의 ‘돈으로 실력을 사는 사기꾼’ 이미지를 벗겨내 준 순간. 미르는 내 말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게 되었다.


자신의 세계를 180도 바꿔준 사람이니, 신이나 다름이 없겠지.


그 때문에 미르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빠가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가만히 나두면 망한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고개를 끄덕였다가 아버지가 망하기라도 하면 끔찍할 테니까.


“미르야. 많이 서운하니?”

“아뇨.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흠. 역시 저 아이가 신경이 쓰이나 보구나.”


미르는 답을 하지 못하고 나만을 보고 있었다. 우혁도 이를 눈치 채고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의 눈동자에 약간의 번거로운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젯밤 내가 호감을 1스택 쌓았다지만, 그래봤자 어제 처음 만난 사이. 가족의 일에 끼어들어 왈가왈부하는 내가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이 선한 건지 우혁은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물었다.


“상혁이는 오늘 별로였니?”

“...”

“상혁아?”


별로였냐고? 나쁘지 않았다. 오늘 하루 동안 내 머리를 맴돈 두 가지 생각 중 하나가 ‘관광 잘 했다’였으니까.


나머지 하나는 바로... ‘저 양반을 어떻게 구워삶지’였다.


플로리다의 오일 재벌? 좋지. 멋지고. 남자의 로망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망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저 공허하고 위태롭게 느껴질 뿐이다.


원래 감성적 접근이라는 게 그렇다.


축제에 가서 기념품을 사오면 한동안은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 날의 추억이 다시금 떠오르니까.


그러나 방에 다른 물건들이 가득 차, 발 디딜 곳이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


기념품은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쓰레기가 되고 만다. 감성이라는 것은 여유가 있을 때나 쓸모가 있는 거다.


그러니 뺨을 때려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이 홀랑 넘어갔으니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고.


혹여나 아무 일도 없을 가능성도 있지 않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신이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다가 모은 돈을 잘도 나한테 넘기려 하겠다.


안 그래도 승부에서 패배했는데 노략질까지 당하게 생겼으니, 버선발로라도 나올 게 분명하다.


저 돈을 다 날려먹고 나서야 신은 한숨을 돌리겠지.


그러나 어림도 없다. 이미 내 손에 들어온 돈을 내줄 생각은 없다.


우혁 돈이 곧 미르 돈이고, 미르 돈이 곧 내 돈이니. 내 돈이 걸려 있는 문제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설득을 해야 한다.


“... 상혁아?”


세상 걱정 없이 편한 저 양반을 설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뭐라고 설득을 하지?


이번 사태의 경우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다.


문제가 생기는 건 분명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 모르니 뭐라 나서기가 참 애매하다.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 유전이 사실 윗부분만 실속 있고 아랫쪽은 깡통일지도 모른다.


큰 사고가 일어나 하루아침에 유전이 사라질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 우혁이 죽을지도 모른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보니 내가 행동에 나서기가 애매하다. 다짜고짜 멱살을 붙잡고 뒤지기 싫으면 협조하라고 할 수도 없고.


경호 팀이 밤낮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그 정도의 고급 정보는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황.


이곳이 한국이었으면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고 아가리라도 털었을 텐데. 이 몸은 K-회귀자이기 때문에, 미쿡 플뤄리다가 2002년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한다.


상황이 매끄럽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처럼 진정한 실력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하는 법.


감성이 주도하는 판이라... 감정의 둑이 허물 정도로 쉴 새 없이 몰아쳐주마.


대답까지의 텀이 길었기에,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상황이다. 우혁은 기다리다 지쳤는지 미간에 그늘이 졌고.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오늘 일정. 누구랑 상의하신 거에요?”

“... 누구라니?”

“케인 아저씨죠?”


이번에는 우혁이 입을 다물 차례였다.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것 같다.


케인은 경호실장의 레포트에 요주의 인물로 기록되어 있는 사람으로, 2차 시추에 참여한 한 회사의 임직원이다.


그는 한국을 그리워하던 우혁에게 접근하여 플로리다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맛보여주었다고 한다.


애국심이 강하던 남자가 플로리다에 함락되기까지는 한 달이면 충분했다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이전까지 한국을 그리워했던 것은 세계를 돌며 받았던 차별과 홀대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부자가 되어 어딜 가나 환영을 받고, 좋은 문화만 쏙쏙 골라 누릴 수 있으니 플로리다 러버가 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렇긴 한데. 갑자기 케인은 왜 찾는 거니?”


왜기는. 조져야 할 사람이니까 찾는 거지.


케인이 어떻게든 우혁을 플로리다에 남기고 싶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몇 달 동안 공사치며 아부했던 것들이 그대로 날라갈 까봐 걱정된 거겠지.


시추 계약을 따지도 못한 상황에서 유전 주인이 바뀌면, 새로운 주인의 곁에서 또다시 알랑방구를 떨어야한다.


그렇다고 유전 주인 자리를 노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추만을 담당하는 회사에 그런 돈이 어디 있겠나.


그렇기에 케인은 끈질기게 우혁의 곁에 붙어 그를 쥐고 흔드는 것이다.


운명의 하수인이든, 정말 목숨이 걸린 직장인이든. 최우선적으로 넘어야 하는 상대임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나는 연기한다. 눈빛은 아련함을 담아. 시선은 저 바다 너머 한국을 향해. 목소리는 조금 우수에 젖은 채로.


“아뇨. 너무 좋은 대접을 받아서요. 케인 아저씨랑 친분이 있다고 들어서 혹시 그 아저씨한테 도움을 받으셨나 했어요.”

“아. 아하. 하하하. 그래. 고마운 친구지. 많은 도움을 받았어.”


그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올라갔다. 긍정적인 답변을 듣긴 했는데, 정작 내 표정은 좋지 않았으니까.


이대로 넘어가도 되는지 아닌지 감이 안 잡히겠지.


그는 조심스레 플로리다 잔류 선언을 뱉으려고 했으나 내가 더 빨랐다.


“그럼...”

“그런데 너무 좋은 대접을 받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한국 생각이 나는 거 있죠?”

“한국?”

“네. 한국.”


나는 눈을 감고 저 멀리 떨어진 한국의 풍경을 읊조렸다.


“플로리다의 따뜻한 날씨도 좋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초여름을 더 좋아해요. 알록달록한 세상이 짙은 녹색으로 물들며 한층 더 또렷해지고, 그 틈으로 불어온 미지근한 바람이 삶을 더 선명하게 인식하게 해주거든요.”


우혁의 눈이 조금 커졌다. 설마 이 상황에서 고향 땅의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이.


“야구 경기도,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좋았지만 저는 아이들과 축구를 하는 게 더 좋았어요. 여름에는 비가 자주 오기도 하지만 애들이랑 비를 맞으며 진흙탕을 구르는 것도 즐겁더라고요.”


어느새 우혁의 눈꼬리가 푸근하게 내려가 있었다. 의심을 집어 던지고 나의 말에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골치 아픈 고민이나, 문제없이 공만 차도 즐거웠던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한창 뛰고 집에 돌아갈 쯤 되면 땀이 식어서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하죠.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따끈한 열기가 밖을 향해 흐르는 거 있죠? 그 흐름을 따라 풍겨오는 얼큰한 향기.”


꿀꺽.


비단 우혁만이 침을 삼키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이곳은 그리운 한국, 본가가 되어 있었으니.

“대충 머리를 말리고 밥상으로 가면 어머니가 끓여주신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지체 없이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입에 넣으면. 크으~”

“크으~”


탄성을 내뱉고는 괜히 아쉬워 침을 꿀꺽이는 사람들. 버터 범벅인 미국 음식은 감히 따라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얼큰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입천장이 뜨거워 입김을 호호 불어야 하지만 목구멍을 타고 흐른 국물이 몸을 뜨끈하게 데워주네요. 그 잠깐의 감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 위해 고슬고슬한 밥을 입에 밀어 넣고, 다시금 국물을 떠 마시는 거죠. 그런데 정신없이 먹다보면 어느새 밥 위에 듬성듬성 썰린 고기가 올라가 있는 거 있죠?”

“... 어머니.”

“네. 당신도 드실 것이지.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어머니께서는 계속 고기를 건져 주셨죠. 그리고는 뭐가 그리 행복한지 미소를 지으시고는 하셨어요.”


훌쩍. 킁!


사람들의 눈가가 촉촉하게 물들었다. 경호실장 태호는 아예 코를 풀기까지.


“그래서. 그래서 플로리다에서 좋은 추억을 쌓아도 자꾸만 한국 생각이 나는 것 같아요.”


플로리다에 남겠다는 사실을 말하려던 우혁의 말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그는 잠시 눈을 지긋이 감고, 벅차오르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김치와 어머니. 한국인의 얼이 담긴 정서가 잠들어 있던 그의 애국심을 일깨우는 중이다.


설령 이곳이 플로리다라도. 외국인 친구와 함께 몇 달을 향락에 빠져서 지냈다 하더라도.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절대 없어지지는 않을 영원한 그리움. 그것이 조국이고 추억이다.


케인을 데리고 와서 이 광경을 보여주고 싶다. 몇 달간 공들였던 탑이 와르를 무너지는 걸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임마. 감성팔이는 이렇게 하는 거다.


작가의말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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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왕인 줄 알았는데 종마였던 것에 대하여 22.10.25 361 5 16쪽
148 은총 더 많은 은총 22.10.22 359 7 20쪽
147 붕당정치 22.10.21 367 8 17쪽
146 귀족이 뭐라고 22.10.20 380 5 21쪽
145 왕이 나셨도다 22.10.19 385 8 26쪽
144 이제는 세계를 향해 22.10.18 396 6 18쪽
143 학생회의 일상 22.10.15 397 7 15쪽
142 선생 공아린의 수난 22.10.14 393 8 24쪽
141 내가 할 수 있는 것 22.10.13 395 5 19쪽
140 연설 22.10.12 402 8 21쪽
139 악몽의 밤 22.10.11 411 6 18쪽
138 모략이 가득한 선거활동 22.10.08 441 6 22쪽
137 학생회장 후보가 되다 22.10.07 443 8 19쪽
136 석유재벌의 금고 열쇠를 얻다. 22.10.06 445 10 21쪽
135 상승기류2 22.10.05 434 6 20쪽
134 상승기류 22.10.04 422 9 14쪽
133 Do you know 김치? 22.10.01 455 6 21쪽
132 플로리다의 중심에서 붉은악마를 외치다 22.09.30 459 9 21쪽
131 플로리다의 중심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다 22.09.29 458 9 24쪽
» 한국인의 정서 22.09.28 456 9 17쪽
129 플로리다에 가다 22.09.28 474 9 18쪽
128 형 노릇 22.09.27 489 6 18쪽
127 재활용 22.09.24 514 10 20쪽
126 역으로 돌려주다 +2 22.09.23 506 11 17쪽
125 마지막 실험 22.09.22 507 10 17쪽
124 스트레이트 한 방에 22.09.21 518 10 17쪽
123 vs 남미르 22.09.20 508 10 21쪽
122 대적자 해체, 분석 22.09.17 508 10 21쪽
121 전초전 22.09.16 547 1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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