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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3,049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7 15:40
조회
20
추천
2
글자
12쪽

1권 (11)

DUMMY

바실리스크의 확연한 특성이라고 한다면 매우 육중한 체구에 평균 근육량도 휴먼을 웃돌 것이며 꼬리도 만만치 않게 두껍고 비늘이 있다는 것, 하피라 하면 당연히 날개가 중점적일 테니 나름 최선의 고뇌 후에 나는 대답을 날렸다.


"교관 님은 최전방에서 밀고 나가 휩쓰는 선봉장이었을 것 같고, 부대장 님은 원거리에서 지원에 힘 썼을 거라 봐요."


유난히 산만하게 박수를 치는 게 올바르게 축하를 받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절반을 맞았을 거라 꽤나 낙관적인 기대로 정답인지 오답인지 확인을 받았다.


"맞는 게 없네. 다 틀렸어."


기대를 한 게 잘못이었다. 의아함 없이 나는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 보편적인 유추가 아닌가요?"

"특성을 보라고 했지 이미지를 상상하라고 하진 않았어. 우리가 그런 이미지라는 게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는 몰라도, 너무 많이 들은 나머지 놀랍지도 않네. 어떻게도 비슷하지 않은 역할 설정이란다."

"그런가요?"

"우리가 그런다고 유리할 것 같니? 아군 입장에서도 적군 입장에서도 어떻게 이 종족을 활용해야 이점이 작용할지 조금 더 시간을 가지렴. 자신이 지휘관이 된 것처럼 대응을 해보렴."


대응이란 말에 재차 고민해 보았다. 우선 라데르가 최전방에 섰다면, 적이 이를 대응할 수단은 아무래도 기동전이 아닌가 싶다. 굳이 근접전에서 바실리스크를 이기려고 하지 않겠다.

때로는 무시할 수 없더라도 그건 전장이 다 가름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바실리스크는 큰 몸덩어리 때문에 화살받이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겠다. 더군다나 적군의 후방 지원뿐만 아니라 신체가 시야를 가릴 수도 있으니 아군의 후방 지원 또한 방해할 수 있겠다.

파논은 더 예상이 쉬웠다. 원거리 지원을 할 것이면 굳이 하피를 쓸 이유가 없었다. 한순간 공중에 날면서 저격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공중을 날면서 저격한다는 것 자체가 궤변이었다.

저격이라는 말은 곧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고 적의 궤도에서 안전한 상태에서 상대를 쓰러뜨린 것일 텐데 하늘을 날면서 쏘는 것만큼 관심 끌기 좋은 것이란 없다. 오히려 그런 하피가 진짜로 있다면 바로 함정일 거라 의심할 정도로 이색 전략도 아닌 패전의 지름길이겠다.

전부 온갖 픽션 미디어들이 만들어 낸 고정 관념에 놀아난 것밖에 안 되었다. 선입견 범벅인 망언만 늘어놓은 것이었다. 내가 고뇌했다고 구실을 삼을 게 없었다.


"그렇군요."

"뭐가 이상했는지 알았으면, 정답을 알려줄게."

"두 번째 기회는 없나요?"

"나도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어서."


라데르를 동경한 것인가? 그럴 거면 똑같이 교관이 되면 되는 것 아니었는가, 라 의심했지만 왠지 모르게 파논이 교관이 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 납득하고 몰래 끄덕였다.


"저 형씨 전방에 설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지. 일부 좁은 공간에서의 난전만 제외하고 주로 하는 일은 기계무기 보호였지. 조금만 피해를 입어도 오작동 혹은 고장 나는 게 다반사인 투석기나 대포 등을 바실리스크와 대형 방패로 보호하자는 취지지. 이렇게 말하니 불쌍해 보이기도 하네."


그렇긴 했다. 기껏 검술을 익혀도 정작 상대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하늘 일이 방패를 들고 전투가 끝나기까지 내내 서 있어야 한다면 보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승전이라도 해도 영 미덥지 않을 것이라 본다. 유동적인 생물 방패라는 게 독특해 보이더라도 거기에서 그칠 뿐이다.


"나는, 활에 재능이 없기로 유명하고, 그래서 부대 전체가 활을 쓰는 녀석이 거의 없긴 하지. 물론 그것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하피들은 활을 쓰도록 명령을 받는 일이 거의 없어서 말이야. 하피 말고도 다 쏠 수 있으니까 애석하게 궁병이라 하라면 충분히 인원은 많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란, 활은 검보다 훈련속도가 느릴 뿐더러 오히려 숙련 속도도 더 느리지. 너도 웬만해서 안 배울 걸?"

"그렇게 힘든 것인가요?"

"할 테면 해, 라고 해도 형씨도 활은 못 쏘거든. 근데 못 쏴도 이렇게 있잖아? 안 그래?"


그 말에 활은 절대 안 배우겠다는 야심이 솟았다. 배워도 쓸모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면 그래왔듯이 포기할 준비는 언제든 만반이었다.


"나는 똑같은 부대만 통솔하지 않아. 통솔하는 부대의 종류는 2가지, 보급과 공습이란다."

"보급과 공습···."


보급은 듣자마자 어울리다고 확 느껴졌다. 도로가 평지화 되어 있고, 아스팔트가 깔려있어 마차가 편하게 굴려갈 수 있는 길이 갖추어져 있는 게 아닌 이상 이 시대에 산은 그림자처럼 가득 깔려있을 게 당연하다. 비상시에 맞춰 보급로를 바꿔야 하기도 하기에, 하물며 절벽으로라도 보급을 해야 전력을 보존할 수 있을 테니 하피를 보급에 쓴다는 전략은 대찬성이었다.

그렇기에 공습에도 어울린다. 언제나 어디에서도 적들의 보급을 차단시킬 수 있어야 하기에 예상이 충분히 가능한 개활지뿐만 아니라 험난한 지형에서도 공습하게 해주는 날개는 이점으로써 너무 컸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으로, 날 수 있다는 말은 그만큼 날개에 작용하는 힘이 자기 무게 만하다는 것이라 날개로 치는 것으로도 적들에게 위협이라고 본다.


"병법에 너무 몰랐네요."

"그 나이에 모든 걸 다 안다는 것은 재능이 있다는 것을 넘어 천재라고 불리겠지. 뭐, 그 정도면 평균 이상이긴 해. 귀하다는 자녀들이 다 그러면 신분제도에 이상이 없을 텐데 말이다. 그 이하면서 떵떵거리면서 사는 게 눈엣가시라니까."


하지만, 신분제도에 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역시 이 자리가 어울리는 것이겠다. 재능이 있든 지능이 평균 이상이든 이민자라는 낙인인 찍혀 있는 지금 노예라 해도 좋다고 자각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어떤 종족과는 차별점이 없는 무척 평범한 휴먼이라는 점도 이에 한 몫했다.


"그렇지만 저 같은 종족에게는 그런 장점이 없지 않나요?"


잠깐 흐른 정적에 파논은 고개를 서서히 움직이기만 하고 다른 말은 없었다. 이에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더 이어붙였다.


"휴먼은 같은 훈련을 받아도 다른 종족이 압살할 것 같은데요?"


빤히 쳐다보는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조금 더 당돌해졌다는 게 어색했고, 나는 당황했다. 내 뒤를 꿰뚫는 시선 같기도 하였다.


"무난한 게 장점이지."

"무난한 것이요?"

"우리 같이 부위가 여러 늘어난 종족에게 있어 이 부위의 활용에 따라 가능한 전술이 늘어난다는 게 이치이긴 하지. 그러나 그에 맞게 부피와 면적이 늘어나니 급소가 늘어나있는 거나 마찬가지지, 태어날 때부터."


그 논리는 의혹 없이 받아들였다. 논리 자체에 불만을 들 수 없었다. 다른 종족이 전사로서 훈련을 받는다고 친다고 한들 휴먼이 받는 것에서 그리 이탈하지 않는다. 휴먼이 아니면 더 받지 그 이하는 아니다.

그렇다면 똑같은 실력에서 휴먼이 나은가, 다른 종족이 나은가? 실적은 후자일 것이다. 물론 휴먼이 갖지 못한 특성을 쓴다는 필수조건 아래에서 그게 성립되는 것이긴 하다. 파논의 하피의 경우에는 특성을 쓰지 않으면 휴먼보다 더 불리한 게 맞다. 그런 의미에서 파논의 주장에는 결점이 딱히 없었다.

단지 이는 희망이라 부를 수가 없었다. 도전의 용기만 있었다. 내가 과연 저쪽에 있는 라데르에 맞먹는 완력을 가질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어쨌거나 휴먼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역력히 있다. 최소치는 같을 수 있지 몰라도 최대치에는 아무리 그래도 다른 종족이 무조건 이긴다. 따라서 이 판국에서 휴먼인 내가 병사로서 성공할 수 있는지는 비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날 낙관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건 나랑 똑같은 휴먼을 만날 때가 아닐까. 죄다 휴먼이 아니다보니 비교 대상을 가지기에는 전부 상급자이면서 우월해 보이기만 하니 위축되기 마련이었다. 신장이 비슷할지언정 마음의 무게는 파논의 깃털의 100배였다. 저게 진화된 존재의 자태라고 우두커니 시샘이 났다.

문득, 그러고 보니 도대체 나 말고 최소 그 23인, 똑같은 휴먼이라고 하니 생각 난 본 적도 없는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왜 저만 여기에 남은 거죠? "

"늦둥이니까."

"그것뿐이에요?"

"어, 그것뿐이야. 마차는 이미 도착했고, 그렇다고 훈련 일정에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어린 아이를 태워갈 수는 없잖아? 의식도 안 들어온 사람을 흔들거리는 곳에 방치하는 건 살인미수지. 진짜 살인이 될 수도 있고."

"다시는 안 오나요?"

"네가 귀족 자제라면 오겠지."


따라서 안 온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그러면 다른 부분에서 공격해 보았다.


"그러면 교관 님은 어째서 저만 가르치는 거죠?"

"아···."


파논은 대놓고 말을 못 이었다. 아까의 그것과 비슷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조금은 감정이 서린 아련한 눈빛이 감돌았다.


"부상을 당했었지."


말한 것은 파논이 아니었다. 괜히 말 못하는 파논을 까는듯이 자기가 직접 말했다. 짧게 말한 탓에 탕 안에서 메아리치는 게 매우 감명 깊었다. 완력에 이어서 목청도 좋아 일으킬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만큼 내 귀를 파고드는 시간이 길어 파논의 기분을 이해했다.


"부상···."

"등을 많이 다쳤다. 생활에 지장이 없어도 전쟁에서는 치명적이다. 그래서 교관이라도 하는 거다."


몸집에 비례해서 보여준 등 뒤의 상처도 우람했다. 그렇지만 우람한 것에 비해 은근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소용없는 흉터였다. 짝 펴진 비늘 가죽과 대비해 색깔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원채 비늘이 회색과 갈색의 사이라 그런지도. 그을린 흔적이란 게 살가죽인 이상 갈색일 게 뻔하니, 결코 바실리스크는 태생이 나무가 아닌 것이다.


"포탄을 맞았나요?"

"맞았지. 그러나 적의 것이 아니라 아군의 것이었다. 일종의 사고였다. 전투에서는 한순간 정신이 흐트러질 수도 있기 마련이지. 훈련에서 호흡이 맞는다고 매번 완벽할 순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말했지 않냐. 훈련은 정신을 키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안전 사고의 희생자 앞에서 더 이상 훈련의 이유에 대해서 물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무언의 긍정으로 라데르의 훈담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편, 내 기준에서는 전장에 나갈 일이 줄어들었으니 어느 정도 생명 감수 부담이 덜어진 것이 아닌지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더군다나 안전 사고가 일어났다면 저절로 전투의 승패에 영향을 끼쳤을 것인데 생존한 것을 보면 정말 다행이라고 보았다.


"교관도 꽤 버거울지도 모르지. 지금은 교관이지만, 네가 오기 전에는 교관이 교관 일은 못하고 허드렛일만 거들었다."

"아."


그래서 간수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것을 떠올리며 퍼즐 조각이 맞아떨어지는 기분을 만끾했다. 그리울 상황이었겠다. 검을 잡지 못하고 다른 것들을 잡고 하루를 보내는 것은 적응하기 꺼릴 만했다. 검 대신 미세한 열쇠를 쥐고 다녀야 한다는 게 직업병이 얼마나 돋겠나. 모종의 동병상련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는 생각이 드니 살짝 기대되는 답변을 듣고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말이긴 한데요··· 제가 있어서 좋은신가요?"

"네가 하는 거에 따라서."


너무 기대했었다. 그러는 게 당연했다. 고작 하루 본 꼬맹이를 보고 하염없이 기쁠 리가. 무임승차 하려던 꼼수는 실패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학생이 훌륭히 잘 해내면 좋겠고, 어리숙하고 반항하면 화내는 게 진리다. 적어도 후자에 관해서는 내 전문이었으니 라데르의 입에서 기쁘단 말이 나올 거라고 감히 내가 예상할 수나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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