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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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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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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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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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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권 (2)

DUMMY

그나마 불분명한 진술을 밝히자면, 마취에 가까웠다. 바늘도 없고 거즈도 없고, 어쩌다가 빠져버린 무감각의 세계에서 느낀 것은 등에 서서히 접근하는 손길 비스무리한 것이었다.

살벌하면서 포근했다. 마취라는 것도 표현이 적절한지조차 내가 증명해낼 수가 없다. 마취를 당한 적이 없는 무사고의 나날이었다.

대신 前 중학생의 판단으로는 이런 마취 증상이 일어난 이상 할 수 있는 말은 한정되어 있었다. 엿됐다. 입으로 뻥긋 거리지도 못하고 오로지 마음에만 묻어둔 속된 단어였다.

진즉에 파란불빛을 보고 불길하다고 봤어야 했는데, 잠시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래봤자 내가 뭐할 수 있었냐고 자신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소서러라는 게 우스갯소리라고 착각한 게 큰 잘못이었다. 이상현상, 그래 이상현상을 조종할 수 있다면 이것 하나 못하겠나.

여기가 한계였다. 최대한 쥐어짜낸 기억상으로 이게 진실이었다. 그래서 몇 일인지는 잘 기억나지가 않는다. 그저 이렇게 마취 상태로 한 번 더 자게되었으니 다른 세계에서 한밤을 보냈다고 표현하는 게 옳은가? 잘 모르겠다. 한밤까지는 모르겠고, 한 잠은 틀림없었다.




처음 본 풍경이 새벽이었다면, 두 번째는 대낮이었다. 사실 잘 몰랐다.

시계가 아예 없으니 제대로 특정해 볼 수가 없었다. 대낮이라고 정해놓고 확인한 결과가 12~14시면 넘어갈 수 있었던 바로 하루 전이 그리웠다. 혹은 몇 시간 전.

여기서는 해시계를 쓰나 당장 유리창 대신 철봉으로 막힌 창의 그림자를 보고 특정 지으려고 했다. 그래봤자 건물의 방향을 알 수 없으니 의미가 없었다.

창문이 그 모양이니 아무래도 철창이라고 생각했더니 정말 철창 안이었다. 그런데, 철창 안이라는 현 상황보다 아직도 따끔거리는 등이 더 거슬렸다. 어떤 술수를 부렸기에 효과가 이렇게 지독한지 몸을 겨누기가 힘들었다.

혹시나 소아마비라는 진단도 해보았지만 이외에 이상이 없어서 투덜거리기도 민망했다. 아무도 없는 독방이긴 해도 옆방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좋은 점은 있었다. 덕분에 침대에서 자던 사람이 이런 돌바닥에 누워있었다고 해도 별다른 불편한 감각이 없었다. 그리고 독방 치고는 의외로 햇빛이 잘 들어와서 싸늘하지 않고 따스했다. 적절히 조화되는 돌+햇빛을 통한 자연 보온 시스템이라 저녁부터는 평가가 역전될 수 있으니 미리 칭찬을 해두는 바였다.

불필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정면의 철창을 흔들어보았다. 살짝 흔들었는데도 심각하게 덜컹거려 소음을 일으키기에 식겁했다.

안 하는 게 나았다고 후회를 했다. 갇혀있다는 걸 인지한 이상 허튼 짓은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니 말이다. 곧 이어서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쪼그려 앉아 방 정중앙에서 대기하였다.

알고 보면 내가 있던 방 자체도 복도의 정중앙에 위차한다고 가정할 수 있었다. 좌우로 고개를 최대한 빼어도 모퉁이는 보이지 않고 돌벽이 쭉 이어지는 풍경이었다. 철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 수 없더라도 촉으로 옆방도 똑같이 철창이라는 것에 확신했다. 그러면서 걱정이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복도 중앙이라면 한 쪽이라도 인원이 채워져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런 대낮이라도 뒤척이는 소리가 없다는 건 결코 편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바로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여 온 신경을 코에 쏟아부었다. 비염도 없는 몸이나 어째선지 무취, 무향이었다. 당장 철창의 쇠내음을 맡아보았는데, 다행히 코는 정상이었다. 그러면 무취도 정상적인 것이었다.

몇 분만 지나자 대기하는 게 귀찮아졌다. 뭐라도 이득이 있는 일이 그리웠다. 한줄기 빛이 들어오은 창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나 철창이 괜히 철창이 아니다. 가두기 위한 공간인 만큼 창을 팔을 뻗으면 닿는 곳에 둘 리가 있을지. 제 아무리 키가 덜 컸다고 해도 너무한 높이가 아닌지 억울할 정도로 높았다.

그리하여 이리저리 수단이 없어진 후였다. 이부자리나 요강이 비치되어 있지 않은 공허한 철창 안에서 간수의 모습이라도 궁금해졌다. 갑옷으로 무장하고 창을 들고 경계하는 모습이 아닐까. 빽빽한 철창이라 이 안으로는 창이 들어갈 수 없을 텐데, 그것만으로 만족하려는 실상이었다.

그러자 듣기만 해도 큼지막한 문이 열리는 듯한 소리가 복도 끝에서 울려왔다. 상상 속에서는 그 문이 나무 아치형 문이라고 인식되고 있었다. 미디어의 만행이었다.

소리가 전달되고 나서 닫히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걸 듣고서 살짝 아쉬움과 안도감이 같이 들었다.

아쉬운 것이란 나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간수가 오지 않는다는 것.

안도한 것이란 고로 아무런 나쁜 일이 일어날 확률이 없어졌다는 것. 양자택일이라고 한다면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그냥 아무 일이나 일어나면 좋았다.

하지만, 혹은 다행히 인과란 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이를 입증하는 발소리가 문의 것과 비슷하게 들렸다. 잠깐 이로써 간수일 대상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었다. 꼼꼼한 정도는 아니라고, 여전히 눈앞에서 입에 담지 못하는 그 말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보다 발소리가 문의 경첩 및 그을림 소리에 맞먹는다는 게 시원찮았다. 적어도 사람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다른 세계라고 인식한 후라 아무래도 종족 차이가 있을 거라 사고를 진행했다. 그러면 말은 통하겠나? 매우 암울해지는 가설이었다.

우선 발소리가 들려오는 벽 쪽으로 몸을 밀착시켰다. 왼쪽이었을 테다.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보이게 만들 뾰족한 수를 동원했다.

나를 찾아온 게 아닐 거라 오기 전에 발소리가 멈추길 기다렸다. 철창만 깔려있을 복도를 생각하며 아직도 다가오는 발소리에 희망을 위한 기도는 커져만 갔다.

이에 쓸데없는 희망인 것을 강조하기 위해 점차 발소리를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조금 짜증이 났다. 눈앞에서 문을 세게 닫는 행위를 여러 번 보는 기분이었다. 내 실수도 있었긴 했다. 벽에 밀착하고 있으니 소리의 파동이 벽을 통해 느껴졌다.

이젠 다 틀렸다는 시점이었다. 어느새 눈을 감아 공포를 떨쳐내려 하였다. 부작용은 너무 세게 감고 있어 언제 떠야할지 갈피를 못 잡았단 것이었다. 발소리는 내 앞에서 멈추었다. 숨소리조차 명치로 꽂아내리는 기분이고, 인기척은 거대한 형상임을 경고하였다.

그래서 세운 대책이란 고개를 최대한 내리까는 것이었다. 밑에서부터 훑다 보면 어떤 종족인지 먼저 적응이 되지 않을까, 아무튼 그러했다.

뜬 눈에서 먼저 뇌리에 인식된 것은 물갈퀴와 비늘이었다. 일단 발은 악어였다. 하기야 생물과는 연관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 악어 말고 답을 내놓을 게 없었다. 상식 선에서 악어가 가장 무난하다고 보았다. 아니면 말고.

빤히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니 내가 눈 뜬 것을 알았을 테고, 아이 컨택은 피할 수 없는 절차였다. 이대로 확 들어올릴까. 강심장인 것 마냥 첫인상을 주기 위해서 큰 맘 먹고 고개를 젖히듯 올렸다.

악어든 아니든 포식자의 인상이라는 게 잘 드러났다. 아마 진짜 악어의 정면상도 이러지 않았을지. 그나저나 생각해 보니 악어를 만난 적이 없네? 이쯤에서 버킷리스트 하나가 추가되었다. 물론 이 세계에 악어가 있다는 전제가 확인되어야 했다.

사람의 동공 격으로 추정되는 눈동자 속의 초승달 하나씩, 매섭게 쳐다본다고 했는데 깜빡거리는 눈을 보고 저게 무표정인 거라고 느꼈다. 그리 각인시키니 그다지 무섭다는 인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험악하긴 했다. 굳이 따지자면 근육 있고 수염 기르는 서양 남자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 이러면 이종적인 분위기라기보다는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그치는 것이었다.

그를 보며 추측했던 것인데, 아무래도 이 철창은 사람을 기준으로 만든 게 아닌 것 같았다.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도 들어갈 수 있게 상향평준화를 한 것이었겠다. 철창 너머에 있는 상대만 해도 내 신장의 두 배가 되는데 내가 작은 창에 손을 댈 수 있는 게 불가능한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나는 전혀 겁내지 않고 있고, 간수인 악어 사내는 철창 앞에서 정지해 있고, 더할 나위 없는 어색한 상황이었다. 인상이 나쁘지 않다고는 하지만 안전하다고는 말 못했다. 안심하던 찰나에 간수라는 직업을 뽐내듯 열쇠꾸러미를 찰랑거리며 들이대고 있었다.

나한테는 큰 열쇠꾸러미긴 하나, 악어 사내에 비하면 처량해 보였다. 열쇠꾸러미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그저 열쇠만 쥐고 있음에도 그의 근육은 보디빌더를 압도했고, 그래서인지 열쇠꾸러미를 가지고 꼼지락거리는 모습은 바늘에 실을 집어넣는 섬세한 작업과도 같았다.

공무원은 참 피곤한 직업이었다. 철창을 휘어서 집어꺼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것은 결코 불법이 될 테니까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부간수로 체격이 작은 종족을 같이 보냈으면 일이 수월했을 터였다. 이런 겉치레로는 몸을 고생시키기만 한다.

딱해 보여서, 악어 사내에게 툭 말을 던졌다.


"여기 몇 번인가요."


슬쩍 보아하니 열쇠에 적힌 표시는 내가 아는 문자였다. 이런 세계에도 숫자가 있을 테니 문화가 발전했겠거니,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 같아서 말한 것이었다.

어처구니 없긴 했다. 내가 어떤 짓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문을 여는 것을 도와주나. 오직 근거는 살의 없는 저 눈동자를 본 나의 육감뿐이었다.

눈동자가 올라갔다. 초점이 열쇠에서 나로 바뀐 것이었다.


"어디에 있냐."


어디에 있냐? 저는 여기에 있는데요, 라고 농담을 던지는 것은 적절치 못해 그만두었다. 어떤 뜻인지는 알았다. 이 문에 맞는 열쇠가 어디에 있냐는 뜻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열쇠보다는 악어 사내의 보일듯 말듯 한 이빨에 눈이 갔다. 이빨로 물기만 해도 내 몸을 산산조각 낼 수 있다는 위엄가 잘 들어왔다. 고작 입술을 벙긋거리기만 했으나 견고하게 틈이 없는 이빨의 마디를 보고서 살짝 긴장되었다.


"몇 번인지 알려주세요."

"24번."


촘촘한 철창 사이로 검지 손가락을 하나 통과시켰다. 그에 맞게 악어 사내는 호응해서 열쇠가 손가락에 닿게끔 하였다. 하나하나 튕기면서 열쇠 손잡이에 적힌 숫자를 보았다.

I, V, X가 적나라하게 보이니 무조건 로마 숫자였다. 'XXIV'를 찾으면 된다. 빠르게 머릴르 굴려서 전력을 다해 열쇠들을 튕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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