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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3,048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7 15:22
조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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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권 (10)

DUMMY

"오른쪽이야."


그런 말을 하기도 전에 발견하기는 했다. 다만, 다른 종족인지 같은 종족인지 긴가민가 했다. 머리만 내밀고 있는 실루엣은 함정인지 궁금했다. 아니, 함정이고 자시고 그 때의 나는 확실히 동족이라 착각했다.

그러나 그걸 부정하는 날개짓에 종족 명을 정확히 부를 수 있었다.


"하피?"

"오호, 제대로 알고 있구나."


바실리스크야 같이 유명하더라도 하피를 따를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 악어라고 명시되어 있었던 라데르에게 양해를 구한다. 그래도 나만 그러지 않을 거라 믿고서 좀 더 당당히 쓰려고 한다.


"내 옆에 앉으면 되겠네. 한 5척, 조금 못 넘나? 155cm겠네."

"그게 눈으로 가능한가요?"

"너희들이 여기에 와서는 쓸모없는 지식들을 익히려 시간을 쏟아부을 때, 우리는 이런 감각적인 것만 익힐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반은 찍었는데, 정답이구나?"


척도 쓰고 cm도 쓰는 요상한 계산법이지만,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잰 기록에서는 154cm였기 때문에 정답이라 해도 되었다. 그러면 그 아라크네가 쟀던 줄자에는 어떻게 기록되어있을까.

솔직히 저쪽이 155cm라고 하니 기계가 영 못 미더워졌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신장을 늘릴 수 있었기에 나는 155cm에 편을 들었다.

올라간 텐션으로 뛰어든 탕의 온도는 텐션을 뛰어넘었다. 발가락이 뼈까지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현실에서의 해탈이라 할 수도 있었고, 살아있다는 대가의 고통이라고 받아들였다.

이 열탕의 기운 내 몸 속을 침투하는 감각에 힘껏 심취했다. 아킬레스 건까지 마저 빠짐없이 넣어 신화를 재현 않기로 힘을 썼다. 의자 같기도 하고, 혹은 가마솥 같기도 한 발판에 미지근한 엉덩이를 딱 붙였다. 이대로면 아킬레스 건 대신 엉덩이가 약점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얇은 자신감 때문에 엉덩이만은 사수하기로 결심했다.

라데르는 저 멀리 10m 떨어져서 앉고 있었다. 3m의 체격은 저쪽인 것이었다. 그나저나 저만한 신체가 목만 내밀 정도면 까딱 미끄러져 빨려 들어가면 익사하는 게 아닌가. 언제 꼭 과목 중에 수영이 있기를 원했다.

교관과 학생이 떨어져 있다, 이만큼 학생에 타인이 접근하기 좋은 때는 없었다. 어느새 하피와의 거리는 타의에 의해서 좁혀져 있었다.


"1:1 교습에는 만족하니?"


대답하려던 찰나에 라데르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라데르에게 안 들리게끔 험담을 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하려던 말은 라데르에게 들리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강도가 이리 센 거 정상적인 거예요?"

"적어도 빼먹지 않고 수행시킨다고 할까, 융통성이 없다는 대충 그런 느낌이지."


1:1 교습법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감히 내가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그렇지 않나. 1:1의 장점이라 함은 다수를 대상으로 교육하기보다 훨씬 체계젹으로 단계별 학습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라데르의 위상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내 탓을 하기 시작했다. 군대라 함은 똑같은 수준의 병사를 키우기 위함인데 내가 못 따라가는 게 아닌지 죄송하단 마음이 들었다. 하도 쓰러져서인지 내면도 쓰러져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제가 못났군요."

"못났다? 꼭 그렇지는 않아. 교습 내용에 차질이 없는 건 틀린 말이 아니야. 다만, 1:1이란 점에서 네가 받고 있는 그 수업이 빡빡하기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

"그런가요?"

"보통은 1명의 교관이 30명의 분대를 가르치게 되어 있지. 그 과정에서 30명이 전부 능한 수재로 졸업하지는 못하지. 어딘가 분명 부족하게 되어 있어. 하지만, 고작 1명을 보고 있는데 감히 놓치겠나? 네가 그걸 소화해냈다는 것은 그만큼 네가 저 교관님을 만족시키고 있다는 뜻이지. 그 30명보다는 네가 수준이 좋다는 뜻이야."


말 하나 놓치지 않고 다 칭찬이었으나 과분하다고 보았다. 실은 차라리 30명이었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눈을 피해서 편하고 엉터리인 자세로 넘어갈 수 있다면 제대로 된 전사 따위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관점이었다. 쓴 맛은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만으로 끝내고 싶었다.


"보나마나 어정쩡한 자세로 하다가 숫자가 안 올라가서 고생을 했을 거야."


첫 번째 자세 때는 그랬다. 처음 잡아 본 검을 가지고 어떻게 바로 적응할 수 있을까. 너무 당연한 대사에 진정성이 약간 새어나갔다. 두 번째, 세 번째부터는 오버 카운트가 된 것이 적었다. 세 번째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었다. 아무튼 그랬다.


"그다지요?"

"엉? 호오."


들어올린 날개 사이로 보이는 새 발 같은 손이 턱을 어루만지자 망토를 뒤집어 쓴 형태가 만들어졌다. 신체 특성임에도 하도 무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자리잡아 방금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지경이었다.


"저기요, 형씨."


정체 모를 하피의 호출에 거만한 육체의 라데르가 머리만 빼꼼 내밀어 돌리는 건 장관이었다. 맘대로 부를 수 있는 사이라면 도대체 이 하피 사내는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대화를 깨부술 욕망이 가득했다. 그래도 라데르 이상일 거라 끼어들지 않았다.


"설마 형씨가 대충한 건 아니지?"

"그것까지 편하게 넘어갈 정도로 타락하진 않았다."

"정말?"

"교관이 간수 짓을 못해도 교관 짓을 못하면 됨됨이가 안 되었다는 뜻 아니냐."


라데르와 하피의 대화가 끝이 나고 이후에 나는 일방적인 대화에 봉착했다.


"늦둥아, 재능이 있구나."

"재능이요?"

"다소 체력이 한계가 있을지라도 그건 얼마든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어. 그러나 검은 습관이 대부분이거든. 이것도 노력으로 교정이 가능하긴 해도 본래 갖추고 있다면 그건 재능이란다."


전체적으로 좋은 말들이긴 하나 그래도 걸리는 것은 '다소 체력의 한계가 있다'는 부분이었다. 습관이 그나마 적성에 맞게 잡혀져 있다는 것은 좋긴 해도 결국 체력 면에서는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뜻이라 모든 게 다 칭찬은 아닌 것이었다.

하지만, 오만이라 칭할 수 있었다. 무임이라 할 수도 있었다. 우연이라 할 수도 있었다. 어떤 단어를 곁들이든 축복이긴 했지만, 어떠한 비난을 받아도 마땅했다. 비난을 받더라도 무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필요로 없는 세계를 떠나 온 곳이 이리도 나와 어울린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 줄 아는 사람은 몇 명 없을 것이다. 나라나 문화를 떠나서 난 세계 자체를 잘못 타고난 것이었다. 이제야 빛은 본다고, 저주받은 세계에서 탈출한 것에 흐뭇했다.

그러다가도 라데르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내기 내용이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병사로 사는 건 싫기 때문이었다.

이런 재능도 있다면 다른 재능이 더 좋을 수도 있으니까 한시라도 난 이곳에서 탈출하고픈 마음이 굴뚝이었다. 재능과 의지는 엄연히 다르니까 말이다. 최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업은 영 갖고 싶지 않았다.


"라데르가 시켜서 온 것은 아니죠?"

"쟤가 왜 시켜? 아무렴 자칭 친하다고 해도 내 기준에서 친하단 거지 저쪽은 무진장 싫어할 걸? 그리고 오늘 만나는 것도 처음이란다."


유난히 길어서 한 글자를 검토해 보았으나 빈말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꼭 부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은 편견으로 확증되었다. 제대로 된 추정을 위해서 스무고개를 개시했다.


"아저씨라 부르는 게 좋을까요, 직책을 부르는 게 좋을까요?"

"아저씨라 불릴 나이는 아니고, 직책은 그냥 부대장이지."

"그냥이요?"

"그냥."

"부대명은 없나요?"

"하루만에 폐기되기도 하고, 하루만에 설립되기도 하는 것에 이름을 달아서 뭐하니."

그래서는 고작 해봐야 하피 형에서 그칠 것이라 개성을 확실히 구분지을 수 있는 게 필요했다.

"이름은 알 수 없을까요?"

"이름이라, 파논 형이라 불러."

"그게 끝인가요?"

"뭐가 더 있어야 하나? 파논만으로도 충분히 개성 있지 않니?"

"성이라던가요."

"성은 있긴 하지만 가르쳐주기는 싫거든."

"왜죠?"

"초면이잖아."


스무고개 자체가 억지스러운 전개였긴 했다. 초면에 대놓고 정보를 캐물으려고 한 것이라 수치심이 아예 없는 게 몹시 건방지긴 했다. 그 정도는 자각하고 있었다.


"사실 초면이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을 불릴 만큼이나 위대한 인물도 아니라서."

"성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지. 그 놈의 긍지라는 게 있다면 말이지. 용케 호적에서 파지지 않은 게 대수야. 뛰쳐나와서 이렇게 국가에 귀속되어 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다는 게 도저히 생각들을 못 읽겠단 말이지. 이렇게 된 이상 막 우리 가문의 명의를 들먹이면서 먹칠을 하고 싶더라도 그런 배려 때문에 이리저리 마음대로라는 게 제대로 안 된다."


민주주의에서도 그런 현상은 많이 일어나기 하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먼 나라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중복된 성이 너무 많은 나머지, 본가가 똑같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처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 남으로 취급하며 살기 때문에 그게 민주주의인 것일 수도 있다. 혈연이란 개념이 오촌을 넘어가는 순간 심히 약화된다. 조금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었던 관습의 파괴의 현장이었다.


"그럼 파논은 귀족 출신이란 거네요."

"진실은 그렇지. 출신이나 피나 한치 오차도 없지. 단지 귀족답다는 게 뭔지 모르겠네. 우아함과 고귀함이 뭔지, 그런 거 없어도 우리란 살 수 있잖아? 안 그래? 너도 말이야."


이래서는 스무고개의 진 의미를 되찾기란 글러먹었다고 보았다. 실시한 이유는 파논의 정체를 제대로 파헤치기 위해서였는데 너무 깊게 들어온 것이 아닌지 겉돌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부대장인지 알 수 있을까요?"

"어떤 부대장이냐고? 그건 네가 맞춰야지 진정 값지지 않을까?"


난 그냥 아는 것이 값질 것이었는데, 기왕 이렇게 흘러간 거 파논의 뜻대로 해보자고 나 자신을 시험에 빠뜨렸다.


"아, 그러면서 저 형씨 것도 맞춰 봐."

"교관 님 것도요? 그보다 교관 님은 원래 교관 님이 아니었나요?"

"언제나 오르기 위해서는 과정이 있는 법이잖아?"


숙제가 하나 더 늘어난 것에 불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한 명도 맞추기가 힘들 텐데, 두 명이라니요? 버거운데요."

"그리 어렵지는 않지. 우리의 태생을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은 문제란다."


다시 말해서 의외라는 것은 없고, 아라크네가 행정병인 것처럼 종족의 특성을 생각하면 유추하기 쉽다는 것을 돌려서 말한 것이었다. 그러면 어느 정도 할 만하다고 보아 나는 열심히 탕 속에서 열기를 통해 실컷 뇌를 굴렸다. 어떤 내기도 걸려있지 않은 심심풀이에 훈련보다 즐겁게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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