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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3,057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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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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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권 (6)

DUMMY

"멀지 않다니요?"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낸다."


치사하게 끝까지는 말을 않았다.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진실을 밝혀도 덧나지 않는지 밀고 당기기를 설레게 잘하는 라데르였다.


"다만, 이렇게 빨리 끝내도 나는 이 교탁에서 일어날 수 없단 게 문제다."

"그러면 굳이 안 가르쳐 줄 이유가 없지 않나요."

"수업에 관련된 내용은 미리 가르쳐주기 싫다."


선행 학습이라는 체계를 모르는 것에 라데르가 정감이 갔다. 하루에 모든 걸 알면 내일이 기대가 안 되니까 여기서 끝낸다는 것의 장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라데르의 깊은 뜻에 공감을 했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단 것은요?"

"종이 치기 전까지 있어야 하는 게 정석이기 때문이다."

"아까는 정석으로 안 했잖아요."

"아까는 아까고, 어기기를 연속해서 하자는 건 반역이다."

"1번은 괜찮고요?"

"괜찮다."


이건 공감이 안 갔다. 1일 1회로 반항을 하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순 변덕이라는 게 정론이었다.


"언제 치나요."

"좀 걸린다."


출입문이 나무인 것과 창이 유리로 덮여 있는 것 말고는 철창 안과 분위기는 비슷했다. 그러나 그 안에 홀로 있는 것과 한 명 더 있는 것은 비슷하면서 철창과는 차별되게 하였다.


"질문 같은 거 되나요."

"수업 외에는 된다."

"좋아요."


매우 친절하다고 칭찬할 만했다.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이든 사람이든 누구에게서 정보를 얻는 게 필수불가결이었다. 난 내가 왜 병사가 되어야 하는지도 제대로 이해가 안 되었다. 나를 마취시킨 사람이 한 말이라고는 날 용사라고 부른 것밖에 없었다. 그 밖의 이미지 정보는 기억나지도 않았다. 단지 그것만 떠오르면 입술을 깨무는 걸 반복할 따름이었다.

고로 제일 첫번째로 물어봐야 할 사항은 이것이었다.


"지금 전시인가요."

"그래."


군사력에 최대한 개입시키려는 노력이 이런 추측을 불가피하게 했다. 15세 소년을 군대에 영입시키려는 악랄한 환경이 뒷받침되어 진실은 언제나 하나였다.


"어디와 어디죠."

"어떻게 예상하냐."


어떻게 예상한다고 해도 국가 이름은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대답이 불가능했다. 종족으로 따지려고 해도 바실리스크, 아라크네, 그리고 인간까지 총동원하는 전쟁이란 절대 추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상상력도 한계가 있었다. 이런 조합에서 명분이랄 것을 구현해내기가 벅찼다.


"모르겠어요."

"모른다는 게 정상일 거라 본다. 상황이 복잡해졌다."

"여기 밑에 역사는 없나요?"

"역사가 있어도 이 내용은 없지. 현재진행형인 사건을 교과서에 써놓을 여유가 있을까 보냐."


내 세대가 전쟁을 겪지 않았으니 잘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전시라고 치고는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시점이라 별로 와닿지가 않았다. 모든 전쟁 관련 정보는 기밀로 취급되기에 교과서에 못 넣는다고 치면, 적어도 그 말을 들어야 내가 이해를 할지 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발단은 딱히 없었다. 잘 알았으면 대체를 했겠지. 허나 지금은 알아도 하지를 못하는 게 현실이다."

"통수를 친 건가요."

"응?"

"배신했다, 고 알아들으세요."

"그런 말인가."


은어를 쓰는 버릇은 되도록 빠른 시일내에 고치자고 다짐했다.


"발단은 없었지만 명분은 적나라하게 있었다. 휴먼 대 괴물이라는 식으로. 사상이 매우 극단적이고 얄팍해서 농담이 아니었는지 의심했다. 다만, 웃을 만큼 상황이 쉽사리 정리되지 않았다. 결국 종전은 꿈으로 변해만 갔고, 아직도 전투는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듣고 나야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들었다. 기왕 싸울 거면 인간이 독립해서 싸우는 것보다 여러 종족끼리 전쟁을 일으키는 게 인간에게 훨씬 유리할 것이다. 개체 특성을 살린 이상 괴물 진영 쪽이 압도할 텐데 영문 모를 선택이었다.


"사람에게 유리한 게 있나요."

"휴먼을 사람이라고 하는 거냐."

"어, 네."


이런 걸로 꼬투리를 잡힐 줄 몰랐다. 맹렬히 가슴을 꿰뚫는 꾸지람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야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괴물이란 말을 썼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쓰지는 마라. 그리고 사람도 말이다. 엄연히 각자 종족이 있고, 이성이 있고, 문화가 있다. 다 사람이다. 휴먼만이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마치 자기 종족만이 우월하고 남들은 괴물, 짐승이라는 소리가 된다. 종족 자체를 비하하는 발언인 셈이다."


같은 휴먼이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었다면 무시하고 반항을 했겠지만, 절대로 쓰면 안 된다는 것이 뇌리에 딱 박혔다. 이것이 카리스마인가, 압도적인 위력인가. 라데르는 교관으로서 만점이었다.


"···네에 ···그리고 다른 질문을 해도 되나요."

"뭐냐."

"여기에 사, 가 아니라 휴먼들은 저와 다른 체격인가요."

"······미안하다.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라데르에게는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이 말 말고는 정확히 표현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 따로 의미를 전달할지 고민했다가 고안해낸 것은,


"그러니까··· 휴먼들이 교관 님처럼 크기도 하냐는··· 그런."

"아니, 15세의 휴먼들이라면 모두 너와 같다. 성장한다고 내 목에서 그친다."


의도와는 다르게 얻게 된 정보였다. 바실리스크는 목이 꽤 길구나, 라데르가 목을 표현하기 위해서 쓰다듬는 부위의 넓이를 보고 생각했다.


"그러면, 휴먼들이 불리한 거 아닌가요? 개체 수가 많은 건가요?"


거의 상시 열려 있었던 입이 이 질문을 기점으로 굳게 닫혔다. 라데르의 시선이 잠시 나에게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보아하니 당황했다는 눈초리였다. 불안정하지는 않았다. 결심 앞에 선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휴먼이 다른 종족에 비해서 전투력이 떨어지는 편이 아니다."


체격은 다른 종족에 비해 떨어진다면서 전투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조합에 나는 이상한 상상을 했다. 그럼 여기의 휴먼들은 모두 아령을 한 손에 50kg 씩 짊을 수 있다는 소리인가. 같은 종족이라고 해도 초인들만 사는 세계라면 나도 그 정도를 따라가야 살 수 있을 거라, 암담한 미래를 직시했다.


"제 세계에서는 바실리스크만한 사람이 없었는데요······."


내 말을 무시하고 라데르는 자기 할 말만 계속 이어갔다.


"그렇다고 압도적인 편도 아니다. 번식 능력 또한 우수한 것도 아니다. 성장 수준도 평균이다. 조금은 이기적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고작 사상만으로 동요하는 종족은 아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계기는 찾기가 힘들었다."


라데르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휴먼이라 바실리스크의 어디가 불편했었는지는 감이 안 잡혔다. 그리고 동족이라도 남의 불편함을 찾기란 쉽지도 않다.


"원인을 찾기 위해 선발대가 많이 파견 되었었다. 의심스러운 점을 여러 발견되었다. 의심뿐이었다. 확증까지는 아니었다. 비무장의 장정들이 다수 포착되었다는 점이었다. 다만 그들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 경계대상이었지 그게 정녕 계기의 핵심이라고는 바로 판별할 수 없었다."

"다수의 비무장?"

"몇 달 후였다. 우리는 항상 전투를 치를 때마다 포로를 잡아두었었다. 굳이 지시가 아니라도 해야만 했다. 이상했다. 너무나도 소모전을 치르는 적군의 조짐이 심상찮았다. 전쟁은 어디라도 이득이 있어야 하는 싸움 아닌가. 희생만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어서 전쟁의 발발 원인에 모든 게 숨겨져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잡힌 포로 중에서 묘한 신상이 확인되었다."

"역시 그건···."


매우 예측이 쉽게 이야기가 진행되어 안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너와 같은 이민자였다."


이민자, 이 단어는 어울릴 것 같으면서 약간을 뒤틀린 의미가 있었다. 이민자라는 건 아무리 외부 요인에 의해서 옮겨야 한다고 해서 자의가 아예 없지는 않다. 어디로 옮길지는 일단 자의인 것이다. 그러나 난 의사도 없었는데 끌려온 것이다. 사소하지만 단어 하나가 아니꼽긴 했다. 아, 그래서 괴물이나 사람을 쓰지 말라는 거구나, 깨달았다.


"최초에는 이걸 어찌 해결해야 할지 대처가 떠오르지 않았다."

"적도 아군도 아니라서요?"

"본래는 적국의 것이니 죽여야 하는 것이 정석이긴 하다. 일단 그래도 적국의 소유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막상 죽이라고 해도 저항도 없는 민간인을 살해하는 게 찝찝한 게 이성이다. 다른 세계의 민간인. 그런 판데믹이 병사 사이에 퍼지니 사기가 미세하게 떨어졌다. 전쟁에서 이런 미세한 차이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공문으로는 '그들은 적이 될 수 있다'라는 식으로 학살을 강요했다."

"허어···."


하기야 전력을 상실한다고 해서 적들이 안 쳐들어올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오히려 기회라고 치고 압박하면 패배만 남게 된다. 자기들은 명분이 없다고 해서 국가가 멸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군다나 잔악한 사상가들의 손에 넘어가는 일이 전쟁으로 인해 슬픔이 생기는 것보다 분개할 일이다.


"포로전은 앞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종족을 확고하게 가려 휴먼이면 죽인다, 아니면 살린다는 그야말로 살육전만이 남았다."


흐름이 끊긴 것에 의문이 들었다. 이런 걸로 끝내서는 안 될 이야기일 텐데 추후에 있을 이야기에 대해 추궁했다.


"이게 끝이에요?"

"1년 전이었다."


다시 말하기 시작한 라데르를 보며 흡족했다.


"전선에서 충돌하려던 때에 갑자기 적들의 항복 소식이 들려왔다."

"항복 소식이요?"

"종전의 신호가 아니었다. 그 항복은 그 전투에만 해당되었었지. 나를 포함해서 전장에 있던 모든 아군들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갔다. 부딪치기도 전에 상대가 포기할 전력이 아니었기에 일단 항복 의사가 진실인지부터 확인했어야 했다. 그러다가 백기를 든 청년이 와서 진실을 알고 싶냐고 전장에서 크게 소리쳤다."

"갑자기?"

"갑자기였다."

"반역자였군요."

"그것까지는 나는 모른다. 전장에 있었지만 그와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오로지 그와 대화를 한 자는 나보다 더 높은 직위에 있는 분들이었다. 그마저도 극소수에 달한 것 같지만."

"들은 정보는 있나요?"


예상 불능의 흥미진진한 전개에 다리를 약간 떨기 시작했다.


"있었다. 어딘가에 너희들을 소환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더군."

"어딘가?"

"불확실한 정보라 어딘지는 모른다. 하지만, 있다더군."

"증거 없이요?"

"······."


이제야 달아올랐는데 맥이 다시 끊겼다.

하지만, 아까와 같이 식은 게 아니라 확 얼어버린 것 같이 분위기의 온도는 영하를 넘어갔다. 햇빛으로는 감당 못할 상황이었다.

어째서 그런건지 순진무구한 나에게 라데르는 철창 안의 나를 바라보듯 얼굴을 내리며 코 한숨을 쉬었다. 이번 것은 구별해낼 수 있었다.


"증거가 여기에 있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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