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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3,047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6 14:38
조회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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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권 (3)

DUMMY

"이거네요."


뒤에서 2번째 열쇠였다. 운이 안 좋았다고 넘어가기로 했다. 악어 사내는 한숨을 코로 쉬는지 코고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자물쇠는 해제되고 사내의 높이를 거뜬히 넘는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문 앞에 서서 악어 사내에게 물어봤다.


"구속 같은 거 없는 건가요?"

"···하고 싶냐?"

"안 할 거라면···괜찮아요."


여기서 문화 차이가 있었다. 보통은 수감수도 위협의 여지가 있어 구속한 채로 이동하는 게 정석이라고 알고 있었다. 문화라고 할까. 그냥 나는 아무런 위협이 안 되니 주의를 안 표하는 것일 수도 있어서 조금 시무룩했다. 검이 있더라도 저 피부에 흠집이 날지 궁금했다.


"···."


악어 사내는 명령 하나 취하지 않고 든든한 등을 보이며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 석방인지 기대를 하면서 등으로 눈빛을 보냈다. 악어 사내는 얼마 안 있어 고개만 뒤로 돌려 째려 보았다. 말을 않고 바삐 쫓아갔다.

그 사이 곁눈질로 지켜 본 다른 철창들의 상태에 기가 막혔다. 사람이라도 있을 줄 알았던 옆방들은 사실은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화났었다. 나에게 말이다. 이래서 편견이 무서운 것이다. 괜히 쉐도우 복싱을 한 것이었다.




악어 사내가 등장했던 문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나갔다. 거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이동했다. 이동이라 해도 제 집 드나들 듯이 하여 발은 일체 고생을 하지 않았다. 복도가 이동거리를 다 해먹었다.

그냥 중앙이 아니라 편하게 제일 처음에 배치시켰으면 훨씬 이동거리가 줄었을 것인데, 답답함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었다.

방 안에 들어간 후에 악어 사내는 내 옆구리를 툭툭 쳤다. 친 건데 민 것 마냥 거의 옆으로 튀어나온 상태였다. 허리에 쥐가 난 듯이 고통이 찾아왔다.

그에게는 살살이겠지만 다소 불친절한 대우였다. 약간 절름발이처럼 기우뚱해진 자세를 의지로 버텨냈다.

몸을 제대로 피려는 노력을 하다가 머리에 뭔가 닿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박은 것일지도 몰라 다시 머리를 밑으로 내려 피하려고 하였다. 촉감으로는 털 같은 게 붙어있는, 생물체의 피부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갑자기 시선이 혼미해졌다. 천장과 바닥이 번갈아 보였다. 한 3바퀴 돌고 나서야 내 몸이 공중을 날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믿을 수 없었다. 이유 모른 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발이 땅에 닿는다는 감각이 들자, 그제서야 내가 아까 날았었구나, 하며 인정했다. 무게중심을 못 잡는 건 덤이었다. 시야가 온전치 못해 다시 바닥과 마주할 뻔했으나 한 번 더 버텨내었다.

아니, 버텨낸 게 아니라 누가 버텨준 게 한 것이었다. 나를 정자세로 만들게 하여 줄자를 들이댔다.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길어지는 줄자를 보다가, 다시금 내 머리를 세워버렸다. 키를 재는 것이라고 알 수 있었다. 그 밖에 가슴, 배, 허리 둘레를 재는 여러 개의 손길에 느닷없지만 정중하게 임했다.


"나이는?"


결코 악어 사내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약간 갈라지고 우아하고 부드러웠다.


"15, 입니다."

"만?"

"만··· 만은 14세-"

"으음."


만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단 것에 놀라긴 했으나 그럴 새는 없었다.


"생일은?"

"12월 5일, -"

"조금 아슬아슬하다."


자꾸만 문미를 잘라내어 의도치 않게 반말로 승화되었다.


"아슬아슬하다는-"

"아직 얘기 마."

"네."


아무런 말도 감정도 섞지 말자고,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간단하게 질문 하나, 어떻게 살고 싶니?"


뜬금없이 나온 질문인데 비해, 그리 간단한 질문이 전혀 아니었다. 인생 설계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떻게 산다는 것, 도대체 어찌 대답해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나마 적당한 방안을 하나 골랐다.


"적절히 살고 싶습니다."

"그거 좋은 대답이네."


중요한 부문이었는지는 영 모르겠다. 설문조사였다고 치고 생각 않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을 가다듬었다.

대신 가장 앞선 생각은 대화를 하는 상대의 정체가 무엇인지, 였다. 악어 사내는 인간형이라 무난했지만 아까 당겨질 때의 느낌으로는 팔 또는 다리 부분이 비교적 긴 종족이라 보였다.

촉수라고 치면 크라켄이면 좋겠다고 약간 욕심을 부렸다. 솔직히 크라켄은 해상 동물이라 말도 안 되는 욕심이긴 했다.


"저기···."

"왜?"

"말해도 되나요?"

"해."


'요'자를 써도 반응없는 것을 보고 그대로 쓰기로 했다.


"뒤돌아봐도 되나요?"

"나름 배려인데?"

"보고 싶어서요."

"소란을 안 피울 자신이 있으면 해."


일단 허락이라는 신호였다. 어떤 종족이기에 안 보이는 게 배려라는 걸까. 메두사라도 되는 걸까? 그건 돌이 안 되더라도 징그러울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나는 바로 돌아보았다. 소란이야 걱정이 없었다. 악어 사내의 비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징그러운 것임을 나는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악어 사내를 보자마자는 어렴풋이 떠올린 단어가 있었다. 이 때는 당장에 내뱉을 수 없었긴 했으나 아마도 리자드맨이었다. 악어 사내인데 도마뱀이라고 칭하는 건 모순되긴 하나 도마뱀이나 악어나 비슷한 생김새가 아닌가. 생물학자들에게는 양해를 부탁드리는 망언이었다.

그러나 악어 사내 말고 내 신체를 측정해준 분의 종족은 바로 정의할 수 있었다. 아라크네라고, 악어 사내와 동일하게 말하자면 거미 인간이었다.


"호···."

"징그럽다고?"

"아뇨,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럼?"

"그저··· 잘 어울린다고 할까요."


징그럽다는 소감이 약간 있었긴 해도 면전에 대놓고 내뱉으려니 공중에 들어올려진 사실을 떠올렸다. 저 다리 하나하나가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악어 사내든 거미 인간이든 나를 묵사발 낼 수 있는 괴물 사이에 있다는 자각에 조심스러워졌다.

그렇지만 말한 잘 어울린다는 소감도 욕 보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원래 의도는 다리가 여러 개이니 문서 작업에 매우 적합하다는 칭찬이었으나 이런 곳에나 쓰일 신체 구조라고 종족을 욕 보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참 강심장이었다.

아라크네에 대한 묘사를 하자면, 하체가 거미이고 상체는 인간 같은 모습이었다. 켄타우르스가 하체가 말이고 상체가 인간인 것처럼 그랬다. 거미는 기본적으로 8개의 다리, 8개의 눈, 그걸 아라크네는 6개의 다리와 2개의 팔, 2개의 주안(主顔)과 6개의 소(小)안으로 구별되어 있었다. 이런 글귀로는 징그럽다고 할 수 있으나 그리 혐오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신비로웠다. 마치 서커스 같았다. 어디까지나 놀이가 아닌 걸 알지만, 팔다리 총8개가 각기 따로 업무를 나눠서 하고 있어 굉장한 볼거리로 충분했다. 다리 2개는 끝에 고무보호대를 달아 책과 종리를 넘기고 있었고, 4개는 양펴에 쌓인 가지각색 상자를 분류하고 있었고, 팔 2개는 사인과 도장 찍기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이건 종족의 차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종족 중에서는 이런 특기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잘 어울린다고?"


그러다가 내 말을 듣고는 그 8개의 팔다리가 멈추었다. 하나만 멈추어도 겁이 가는 걸 8개가 다 멈추니 내 연기력으로는 얼마나 겁이 났는지 표현해낼 수가 없었다. 단지 내 목숨이 촛불처럼 가소로웠다고 문장으로 대채한다.


"아, 그······ 정말 죄송합니다."


꾸벅 허리를 숙였다.


"협박이 아니고 처음 들어본 말이라."


그것도 그러겠다.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라도 이런 소감을 쉽사리 내뱉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현지인은 더욱 그렇고, 나이가 적으니까 봐준 것일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처음인가요?"

"어울린다는 게, 우리는 이런 게 가능한 녀석들이니까 한다는 뜻이잖니. 그런데, 그걸 태어나면서부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 단지 내가 이런 개성이니까 이런 일을 한다고 인식한단다. 어울린다, 맞는 소리인데 화낼 필요는 없잖니."


입을 닫는 순간 팔다리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어 사내처럼 눈동자가 판별되지 않아 나에게서 관심을 뗀 것인지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보다 저 눈들이 다 따른 대상을 보는 것인가? 뇌에서는 그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 건가 신기했다. 철창 문이 열릴 때 마냥 어쩔 줄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

마침 똑같이 하는 게 없는 악어 사내에게 초첨을 바꾸었다. 다만, 내가 본다고 해서 그가 나를 바라봐주진 않았다. 대기 상태 그대로 입을 뻥긋 열었다.


"절차는 끝났어."


그러나 말을 한 것은 악어 사내가 거미 인간쪽이었다. 악어 사내도 뭔가 말하려던 것 같았는데 금방 입을 닫더니 굳었다. 자연스레 다시 거미 인간을 향하여 초첨을 두었다.

보자마자 날아다니는 투사체에 기겁했다. 나를 향해 던진 게 아니었지만 속도가 내팽겨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느 것 하나 탁상 위에서 장외되지 않고 멈췄다.


"신분증, 증명서, 허가증, 출입증, 전출서 모두 작성했어. 글자 하나 빠진 것 없이 절차대로 진행했다는 소리야."


아마 나에게 말한 것 아니었을 거라고 악어 사내를 보았다. 그랬는데, 입술 하나 움직이지 않고 고개만 살며시 숙이고 있었다. 이런 무뚝뚝한 반응에 웃을 뻔한 걸 억지로 참았다.


"아무리 1명이라고 쳐도 일부러 안 채웠다면 몰라도 족쇄를 아예 안 챙긴 것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니? "

"다음부터는 그러겠습니다."


문화 차이가 아니었다고 알 수 있었다. 여기도 매뉴얼이 골칫거리라는 게 공감과 정이 가는 부분이었다.


"1명이라도 절차에 맞게 행동해."

"예."


대화가 끝나자 악어 사내는 고개를 나한테로 돌렸다. 이 상태에서는 눈치 있게 말하기 전에 나가는 게 상책이었다. 탁상 위의 모든 것들은 내가 품 안에 들었다. 얼른 방에서 퇴실했다.

살금살금 거미 인간쪽으로 방향을 유지하며 뒷걸음질 치는 악어 사내. 나야 잘못한 게 없었다. 애초에 내가 구속해달라고 했어도 족쇄가 없었으니 이건 순전히 악어 사내의 잘못이었다.

무안할 부분은 따로 있었다. 내가 중간 철창에 갇힌 게 아니라 실은 24인 이상이 갇혀있었던 것이었다. 증명서를 보면서 내 번호가 24인 것을 보고야 나만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모종의 이유로 다른 인원보다 내가 늦었기에 악어 사내를 고생시킨 것이었다. 그건 다독여 줄 부분이었다.

어린 눈으로 악어 사내를 쳐다보았다.


"따라 와."


하지만, 막상 시간을 주지 않는 그 때문에 나는 쫓아가기 바빴다. 신장 차이만큼 보폭 차이도 2배라 그의 걷기는 나의 뛰기였다. 슬슬 걱정되었다. 악어 사내에 이어서 거미 인간까지, 다양해지는 생태계에 최강의 신체 조건은 무엇일까. 인간의 존재감이란 나약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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