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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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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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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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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권 (7)

DUMMY

받아들이기는, 당연히 무리였다. 뭔가 일방적으로 당한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더니 그리 사상 주입식의 교육이 아니었다. 모든 걸 적나라하게 밝히는 매우 객관적인 역사 이야기, 좋긴 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게 과연 좋을지는, 난 아니라고 보았다. 군대라는 게 일치단결과 단합으로 굴러가는 집단인데 이리 이실직고 하는 라데르의 의도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라데르의 말로 치면은, 저쪽도 나쁘고 이쪽도 나쁘다는 소리였다. 분명 일으킨 것은 저쪽이 맞다. 여기서 변호를 해보자면 먼저 소환법을 발견하고 실행하고, 그걸 이용해서 전쟁에 써먹으려고 하다가 진짜 사건을 일으켜 조용하던 세계에 불을 질러버린 장본인은 적국이 맞다. 그러나 내 기준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1년 전의 그 청년은 어떤 의도로 그런 짓을 벌였을까. 가끔씩 있는 반동분자? 오직 그 생각만으로 반대편에 서서 자신의 나라였던 곳을 함락시키자고 한 것인가? 그렇다고 모국이 벌인 일과 똑같은 방식으로 말인가?

뭔가 다 미쳤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해는 갔다. 불법으로 벌어들인 돈을 뺏어서 내가 쓰는 것도 그런 기분이기에, 현실에 있지는 않았지만 드라마로 접한 이 경험은 꽤나 상식적인 교훈을 주기에 사례로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무도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하겠다. 다들 누구의 자식이긴 하지만, 그 누구는 어차피 다른 세계의 인물일 테니 동정이 일어나지 않겠다. 동족애, 생명 윤리? 이런 전쟁에 있어서 남는 것은 어느 쪽이 더 많이 잃고, 더 많이 얻는지 결과만 중요할 테다.

난 단지 소모품으로 보일 것이었다.


"모두 소환하는 것 자체는 꺼리지 않는 거군요."

"······."

"뭔가 숨기는 것보다는 후련해서 좋긴 해요. 괜히 나중에 흑막이 되는 것보다 낫겠죠. 뭐, 이런 제가 나중이라고 해서 대단한 일을 벌일 것 않겠지만요. 그렇게 보이지 않으세요? 수많은 희생양 중에 하나니까요?"

"충격이 크겠지."

"크죠. 너무 커요. 하지만, 마음 놓고 화낼 수는 없죠. 왜냐 하면, 저는 학생이고 교관 님은 교관 님이잖아요."

"그러나 화가 나지 않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라데르의 말에 도리어 차분해졌다.


"화가 나도, 만약 제가 크게 되어 가질 것으로 도전이나 할 수 있을까요?"

"없지."

"고작 해야 목숨 하나가, 설령 그게 목숨 여러 개로 변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을까요?"

"없지."


그러다가 라데르는 말을 바꿨다.


"없다기보다는, 안 할 거다."


새장 안의 새는 아무리 새장을 바꿔봐도 새장 안에 있을 뿐이었다. 실수로 문을 열었다고 쳐도 새장 안에 살다가 밖으로 뛰쳐나온 이상 어떻게 야생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냥 새장 안에서 사는 게 이득일 것이라고, 라데르는 이렇게 말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내용 자체는 참혹했을지언정 진리 같은 명언이라 나는 고개를 젓는 게 아니라 끄덕였다.


"아직도 복수심은 남아있나."


기본적으로 깔려 있긴 했다. 매우 희미하게나마. 언제라도 시련이 닥치면 사라질 것 같지만, 막상 그 시련이 끝나면 다시 살아날 생존성을 보장받는 복수심이었다. 어쨌든 남아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아직은요."

"그럼 내기를 할까."

"내기요?"


내기라고 하니 매우 예민해졌다. 아까 말했듯 나에게 남은 것은 고작 목숨 하나뿐인데, 내기라 함은 대가를 내고서 잃든지 얻든지 하는 경쟁 아닌가? 당연히 거절하자는 마음으로 일단 라데르의 말을 끝까지 듣기로 했다.


"3주, 아니 2주 안에 그 복수심을 유지하고 있다면 소원 하나 가능한 선에서 들어주겠다."


솔직히 라데르의 입지를 생각하면 그 가능한 선이란 매우 좁을 거라 예상했다. 그도 그럴 게 아라크네에게 찍소리 못하고 구박에 긍정의 대답만 주구장창 해야 했던 것을 보면 신용이 안 갔다.


"지면요?"

"지면, 내가 알아서 판단한다."

"그거 사기거든요."

"알았다. 훈련 강도를 2배로 높이지."


듣기만 해도 오싹한 내기에 다른 의미로는 그게 목숨값이 아닌가 싶었다. 차라리 즉시 목을 쳐서 죽으면 고통이야 없겠다. 저건 그야말로 고문이라고 보았다. 훈련 한 번 받아보지도 않고 하는 추측이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가능한 선이라면 어디까지 가능한 거죠?"

"그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생각한다는 식으로 말없이 팔짱을 낀 채 나를 대기시켜놓았다. 무척 심심하던 찰나 라데르 뒤에, 교탁 뒤에 있는 창문을 바라보며 첨탑에 달린 종을 발견했다. 어마어마한 크기는 아니지만 음량은 기대되는 크기였다. 저 종소리가 건물 전체에 퍼진다면 어떤 감각이 전해올까, 디지털 시대의 기대였다.


"잘하면 제명도 가능하다."

"제명이요?"

제명이라고 듣는 순간 평소에는 주로 안 좋은 의미로 들은 단어라 상이 아니라고 받아들였다.


"다른 말로는 제대다."

"그렇게 말을 하셔야죠."

"내가 너희들 사고를 어떻게 아냐."


다행이 사형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쩌면 인생의 새 출발을 알릴 수 있는 포상이었다. 그래도 막막하긴 했다.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지내는가. 놀이는 다시 시작하기가 쉬워도 인생이 그렇게 만만한가. 사실 14년을 살면서 제대로 인생을 살아보자고 했던 적은 없지만서도. 난 만 14세의 갓난아기라 불려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곧 울리겠군."

"네?"


라데르의 기습적인 대사에 마치 라데르가 지휘한 것 같이 청량한 노란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벽면이 서서히 흔들리는 게 보이며 공기가 춤추는 형상을 보였다. 햇빛을 타고 내려오는 선율인지 절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종에서 발생한 소리라고는 안 보였다. 그토록 내 감각을 조작하여 나의 모든 신경을 다 잠재우려고 했는지 괘씸한 테러에 곱게 사고는 정지되었다.

아마 처음 겪어봐서 이런 것일듯, 라데르는 그 사이 아랑곳않고 기운 차게 교탁에서 벗어났다.


"이제 나갈 수 있다."


저게 기운 찬 목소리구나, 나는 라데르에 관한 정보를 또 하나 알아냈다. 숨 쉬는 소리, 코 한숨 소리, 기운 찬 소리, 이 3가지만은 구별해낼 수 있을 기분이었다.


"내기 하겠냐."

"안 하면 손해죠."


하지만, 내기 내용은 그렇다 치고 나에게서 복수심이 사라졌다고 판별할 수 있는 수단은 내가 말하는 것뿐이라 사기를 걸 수 있지 않을지 악의 싹이 트고 있었다. 간단히 이런 걸로 이 귀찮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시도해도 합법이었다.

그래도 그런 짓은 못할 거라 단언할 수 있었다. 이래 봬도 자존심이 목숨만큼 중요한 사람이라 없으면서 있다고는 생각은 하되 입으로는 내뱉을 수 없을 것이었다. 은근히 공정하게 된 내기에 나는 필사의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그리고 라데르에게라면 거짓말을 못 할 것 같았다. 소리를 구별하더라도 저 눈동자에게는 못 당했다. 볼 때마다 나를 스캐닝하는 듯이 어디를 쳐다보는지도 잘 모르는 형태였다. 왠지 진실의 눈 같기도 해서 추할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다.


"다음 시간으로 넘어간다."

"예?"


방금 체력 측정도 그렇지만, 쉬는 시간이 아예 없다는 사실 하나에 내기 내용은 즉시 잊혀졌다. 그보다 쉬는 시간도 그렇고 일어나서 식사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충격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야 이 교실이 지겹고 짜증났는데, 여기서는 정반대였다. 부디 여기에서 다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바로 라데르가 책을 들고 나오라고 하니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되면 복수심이 사라질 일이 없을 거라 내심 만족스러웠지만, 2주 지나기도 전에 과로사할 운명이라고 스스로의 팔자를 의심해 보았다.

한편, 기록 시점에서 보건대, 하찮고 유치찬란한 약속이었다. 어느샌가 라데르도 잊어버린 약속이라 하나도 내 인생에 작용된 게 없던 약속이었다.




바깥으로 나가기 전, 라데르와 창고에서 챙겨야 할 것이 있었다. 책과 함께 갔다. 왠지 나중에 다시 창고로 와서 또 옮겨야 할 낌새였지만 절대 딴 길로 새는 걸 거부했기에 따라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인내도 어느 선이란 게 있다. 처음에 준 죽도에는 참을 만했다. 중세니까 검술을 배우겠지, 라고 양보를 했다. 그렇지만 그 다음부터 철판을 동반한 천 의류를 보면서 먹은 것도 없는 배를 가지고 구역질을 할 뻔했다. 쓰임새가 짐작이 가니 간곡히 부탁을 했다.


"무게 조절은 불가능한가요."

"갑옷의 무게를 조절할 수 있다면 인정해주지."


연금술을 쓰라는 헛소리와 같아 나는 체념하고 그대로 뒤집어 썼다. 머리, 어깨, 허리, 종아리, 허벅지, 안 쑤시는 데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타구니 쪽에는 착용 안 해도 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보호구가 있긴 하다는데 불편할까봐 상체에 무게를 더했다고 한다. 다행인 건지 아닌 건지.


"그리고 죽도는 배려 차원이다. 진검은 이보다 무겁다."


나도 그걸 걱정하였다. 무릎을 꿇은 채로 착용했기에 아직 제대로 선 것도 아닌데, 여기에 허리춤에 죽도를 달아도 모자를 판에 진검이면 전장에 무릎 꿇은 채로 나갈 수 있다고 농담을 진담 삼아 상상했다. 그만한 추함도 없다.


"나가기 전에 쓰러지지 마라."

"쓰러진 채로 기어가면 안 되나요."

"그럴까."

"죄송합니다."


그래도 용케 라데르의 인심이 발휘되어 운동장까지는 아니고 창고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마당에 나갔다. 마당이라고 해도 운동장처럼 생명이 숨 쉬지 않는 곳이라 명칭이 애매했다. 대신 운동장보다는 작아 10m 되는 벽이 가까이 있다는 게 폐쇄 감각을 심화시켰다. 이와 더불어 라데르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효과가 나타났다.


"본격적으로 전투기술을 배우기 전에 한가지만 묻겠다."

"네···."


드디어 훈련이구나 싶어 최대한 기합을 넣어 대답했다. 그 전에 힘이 다 소진되어 쉰 목소리가 나갔다는 게 최선의 변명이다.


"전투기술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전투기술···, 전장에서 생존력을 높이고 적을 섬멸하기 위함, 이면 됩니까?"


도무지 어떤 대답을 유도하려고 했는지 궁금했다. 막 되는 대로 내뱉은 대답이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2순위에 해당한다."

"이게 2순위입니까?"


갑자기 라데르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뜨며 명령했다. 힘이 없어서 그런지 약간 반항하는 투로 대답했긴 했기에 이걸로 꾸지람을 들을 거라고 예상했다.


"야."

"네···."

"편한대로 말해라. 어색하다."

"네···."


말투를 바꿔 분위기를 내자는 게 라데르의 심기를 건드린 꼴이었다. 내가 쓰기에도 어색했던 터라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그래, 2순위다. 생존력, 제 아무리 무예가 출중한 병사더라도 단번에 1:다수로 공격이 들어오은 순간 당하기 일쑤다. 섬멸, 차라리 섬멸이면 검 말고 다른 무기를 쓰는 게 낫다. 폭발형 무기, 대포가 대표적이다."

"그러면요?"

"전투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그 두 가지를 일으키기 위한 정신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정신력···."


지극히 클래식하고 추상적인 대답이라 대답을 회피하고자는 의지가 강했다. 정신력이라 해도 칼에 베이고 몇 초 더 버티기 위한 능력에 불과하다고 하찮게 여겼다.


"병사들이 전장을 여러 번 겪는다고 하여 죽음에 대한 공포감과 일사불란한 정세의 혼돈을 완벽히 극복하는 것이란 거의 힘들다. 두 눈 뜨고 살아있는 이상 영광스런 죽음을 영광스런 귀환보다 높이 평가하는 이는 거의 없다. 죽어서 영웅이라 부르더라도, 그건 종전 때의 이야기지 수많은 전투 중 하나를 끝낸 수준이면 전력을 상실시켰다고, 무책임하다고 볼멘소리가 들려오기 마련이다. 전투기술은 실효성에 있어 불안정한 부분이, 있는 것만이 아니라 많긴 하다. 그러나 얼마나 연마했는지에 따라 생존력, 살상력을 확보함과 더불어 정신력을 키워주게 한다."


굉장히 긴 연설이었지만 당시에 금방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뒷부분이 다였다. 어쨌든 하다 보면 정신력이 키워진다는 소리였다. 반대로 오로지 정신력이 중심이 되는 것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전투기술이 하찮은 건 여전해 보였다.


"놀라울 수 있겠지만, 네가 오늘 할 동작은 고작 3개뿐이다."

"3개나 되나요."

"뿐이다."

"네."


관점의 차이라고 묻어두기로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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