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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3,027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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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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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권 (9)

DUMMY

"오늘의 마지막이다."


오늘의 마지막이라면, 내일의 시작도 있다는 얘기였다. 미래가 아무렴 어둡더라도 오늘도 어두운데 신경이 전혀 쓰이지 않았다. 낙관적이게 쓰나 내용은 낙관적이지 못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세계를 넘는 마법이 존재한다면 어디 시간을 느리게 하는 마법이 있을 수도 있다고 궁금해졌다. 자기 직전에 걸어서 1시간에 7시간을 잘 수 있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발검술 말고 다른 건가요."


코 한숨보다는 거칠게 숨이 불어나왔다. 이 정도는 구별하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이건 코웃음이라고 알 수 있었다.


"또, 발검술이다."

"나중엔 누워서 발검술을 할 수도 있겠네요."

"두 번째 것을 누워서하면 그렇게 되지."

"그러네요."


발검술이라는 점에서 기대는 저버렸다. 지긋지긋하게 검집에 넣는 것만 몇 번째인지 팔은 멀쩡해도 어깨는 말썽이었다. 그 전에 기초도 못 딴 느낌이라 처절한 열등감이 솟았다. 잠시 후에야 그건 느낌이 아니라 진실임을 깨달았다.


"3번째 배울 기술은 발검술이긴 하지만 발검술 중의 하나가 아니라 연계한다는 의미가 크다."

"연계?"


없는 기대에서 조그맣게 빛이 발했다. 드디어 검술다운 검술을 하나 익히는 것으로 하루를 끝낼 수 있다고 설레었다. 그나저나 검술다운 검술이라고 해도 모두 검술이긴 했지만 말이다, 라데르의 말로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정식 명칭은 발검 후 기본 태세다."

"이제 기본이군요."

"발검도 검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발검은 검술 중의 기본이고, 지금 하는 것이란 태세 중의 기본인 것이다."


그래봤자 발검에서 별 반 다른 바가 없다고 예상했다. 발검 후 기본 태세라고 하면 화려한 동작일 리가 없겠다. 휘두르는 동작 하나 없을 거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거예요?"

"맨 처음에 했던 기본 발검을 해봐라."


200번을 넘게 했던 동작에 진절머리가 났다. 하는 것은 식사와 함께 휴식을 가졌기에 별 탈 없었지만, 혐오감이 근육에 배겨 검을 잡는 순간 어깨가 거부반응이 있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도 정직하게 잘한 자세가 나왔다. 속도는 더 이상 뵈기 싫은 동작이라 빨랐던 것 같았다.


"꺼낸 상태에서 잠시 대기해라."

"이 상태로요?"


따로 지시가 없고 움직이고 있었으니 맞는 것 같았다. 차라리 고개를 저었으면 바로 죽도를 내리꽂는 것이었는데, 버티는 자체가 처음이라 묵직한 죽도의 무게를 이제 맛 볼 수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얘기해도 흔들거리는 손목은 안마기 수준이었다.


"날 부분이 전방을 향하도록 내리고, 왼손으로 손잡이를 마저 감싸쥐어라."


이 정도면 전방이라고 자세 수정을 안 하다가, 라데르가 와서 손목을 틀어버리니 죽도가 내 몸의 정중앙에 오게 되었다. 그렇게 하니 좀 더 편한 것을 깨닫고는 이래서 메뉴얼이 중요하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른손과 왼손의 균형은 참 좋은 것이다.


"검이 명치를 찌르게 잡는 게 정확한 자세다."

"네."


앞으로 순순히 라데르의 말을 듣도록 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라데르가 숫자를 차근차근 세렸다.

밥심의 힘이 큰일을 해냈다. 얼마 못할 것 같았더니 단숨에 70회를 넘겨버리고 실수없이 100회를 다 채웠다. 반복 때문에 빨간 끈과 검집의 방향을 맞추는 것은 이젠 보지도 않고 감각으로 해낼 수 있게 되었고, 어쨌든 여러 가지 면에서 나는 발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면 내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다고 빛으로만 존재했던 멀리 있던 미래는 광년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꽤 잘 적응하는군."

"운동 따위 안 해도 할 수 있으니까요."

"내일 것까지 계속할테냐?"

"아···."


자만은 이쯤에서 그만두었다. 그건 조금 무리에요, 라고 하면 무리인 거지 결코 못한다는 뜻은 아니었기에 확고하게 고개와 함께 죽도를 가로저었다. 단호한 거부의 의사로 라데르는 결정했다.


"그래."


뒤돌아서서 가는 라데르를 보며 겨우 안심했다. 자만이란 이래서 위험한 것이었다. 자신을 사형대에 보낼 수 있다는 점, 전정에서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이도 어쩌면 교육의 일환이 아닌지 의심해 보았다. 그냥 라데르의 성격상 촐싹대는 게 싫은 것일 수도 있었다.




팔은 그렇다 쳐도 계단이 제일 싫었다. 오늘 밥을 너무 많이 먹었는지 살이 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만 생각을 해도 내가 아직 철판때기를 벗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체력은 멀쩡한데 비몽사몽인 상태였다. 몽유병이었을 수도 있고, 과장이긴 하다.


"탈의는 너 알아서 해라."


어차피 입을 때도 친히 입혀주지도 않았으니 기대란 전혀 안 했다. 가장 마지막에 달았던 허리와 허벅지 사이의 갈고리와 6시간만에 재회했다. 몸통에 달린 철판을 분리시키는 작업은 시도만으로도 희열을 선사했다.

해방감은 엄청났다. 번데기를 탈피하는 나비였다. 그래도 날개뼈는 날개뼈였다. 종족은 여전히 인간이라 꾜리뼈도 꼬리뼈였다. 아무렴 모든 철판은 제거했더라도 그러했다. 내 저질체력은 이런 의식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미래가 희망 차도 공포는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그러나 오로지 희열만 있지는 않았다. 분리되는 사이 통풍이 되면서 얼마나 땀에 절여져 있는지 체감이 났다. 땀이 점액 마냥 끈쩍끈적했다. 한 번 흙탕물에 굴렀다고 해도 좋을 촉감이었다.

이제 잠옷은 더 이상 잠옷이 아니었다. 빨래를 해도 회생이 가능할지 갑자기 옷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그만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오만상을 지었다. 그렇다고 모든 옷을 다 벗는 변태는 되고 싶지 않아 입은 채였다.


"다 벗었으면 일어나라."


지긋지긋한 죽도까지, 허리에 묶인 줄을 풀면서 검집을 세게 쥐었다. 철판은 못 던지더라도 이 놈만은 꼭 던져서 넣겠다고 열린 창고 문 안의 통 속에 던졌다. 벽에 한 번 튀기고 운 좋게 들어갔다.


"창고에 다 집어넣으면 씻을 거다."

"정말요?"


허겁지겁 유사 갑옷까지 한꺼번에 들어올려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에 놓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어차피 혼자 쓰는 것 꺼내기 손쉽게 문이 닫히는 정도로만 밀어넣었다. 그리고 문을 꽝 닫고 라데르에게 기쁜 마음으로 물었다.


"탕인가요?"

"탕이지. 세숫대야 시절은 아니다."

"역시 성 같군요."

"성 같은 게 아니라, 성이다."


여기에서는 단순한 훈련병을 키우는 데에도 성을 이용하는 게 보편적인가. 중세에 대해서 아는 것이란 검과 방패나 투석기를 이용한다는 것이 전부였으니 잘 몰랐다. 그냥 복지가 좋다고 생각해도 낫다는 게 정론이었다.

그나저나 성이라 해도 자동적으로 물이 분수처럼 솟아질 것은 아닐 테니까 수질은 어떨지 걱정이 되었었다. 반대로 수작업으로 하니까 깨끗할지도, 솔직히 자동이 좋은지 수동이 좋은지 내 입장에서는 자동이 훨씬 질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성이라 느낀 곳이 탕에서가 아니라 복도에서였다. 운동장까지는 얼마 안 걸렸으나 복도만은 오래 걷는다는 게 확 느껴졌다. 길게 뻗은 복도를 보면서 저 중에 있는 문 안에 들어갈 거라 믿었지만 설마 그 복도를 다 둘러볼 줄은 몰랐다. 끝에서 끝까지, 계단은 올라가서 2층에 위치한 탕의 입구로 가는 데에도 복도의 3분의 1을 걸어야 했다.

그래도 씻는다는 전제가 있어서, 철판만 몸에서 떼어도 행복한 사람이 되었는데 뭐가 불평이었을까.

단 한 가지가 빼면 그랬다.


"갈아입을 옷은 있나요?"

"아직 없다."

"그럼요?"

"가운으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여름철에 가운이라 충분하다고 보았지만, 한 가지 있고 있었던 게 여름이라는 점이었다. 제 아무리 덥다고 해도 가운만으로 지내야 한다면 노출된 피부에 어떤 벌레가 달라들지 모르는 일이었다. 되도록 빨리 조치를 취했으면 좋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도대체 이 큰 문은 무엇인가 바라보았다. 걷다가 유난히 신경 쓰이기만 하는 철창 그 이상의 높이의 커다란 문, 그 안에는 어떤 게 있기에 이러한 구조로 태어났는지 물어보려고 했었다. 게다가 아치형이 아니라 사각형이란 특징도 잊지 않고 말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문을 묻기도 전에 열어버리니 곧장 알게 되었다. 여기가 탕으로 가는 길이었다. 별로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에 얼얼하게 한 대 맞아버렸다. 잠시 조금만 더 문에 설명하자면 손잡이가 높이마다 3개 달려있었다. 종족의 차이를 고려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내가 열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목욕탕 구조같이 바로 탕이 있지 않고 탈의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4m가 되는 수준이라면 락커는 2m였다.(눈대중인 치수다.) 왜 그런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면 휴먼들은 밑의 칸이 다 차면 어떻게 옷을 벗으라는 뜻인가. 1인 1락커일 텐데 이래서는 마치 공동 사용하라고 만든 것 같아 불편했다. 굳이 불편할 이유는 없었지만, 쓸데없는 상상력이 자학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상상에 불과한 게 아니라 라데르가 아무렇게 던져 놓아도 락커 하나의 공간은 10% 밖에 차지 않았다. 과장된 구조가 틀림없었다.

별로 안 궁금해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마침 이런 때라 따로 기록할 시기 없을 것 같아서 하는 것이다. 간혹 발생할 수 있는 질문에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고, 약간 수위가 높아지더라도 의문이 풀리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에 불쾌감을 가지지 않으면 좋겠다.

일단 생물이니까, 세포에 의해서 형성되어있는 이상 번식이라는 게 있을 거 아닌가. 그러니까 생물학적으로 종족마다의 생식기라는 게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 얘기해 보면, 내 생각에는 대부분의 이성체는 다 포유류라고 판단된다. 인간이야 내가 인간인데 인간이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서 모를 리는 없었다. 초등학생부터 성교육을 하는데 학이 물어다 주겠나. 글쎄다. 사실 다 포유류 특성인지는 들은 바가 없어서 모른다.

경험상 말할 수 있는 것은 바실리스크나 휴먼이나 인체 구조는 다른 게 없다고 본다. 꼬리와 그··· 1.7배 큰 것 말고는 말이다. 진짜 1.7배인지도 어쩌면 허언일 수도 있다. 왜냐 하면, 라데르 게 바실리스크 기준에서 평균인 건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이다. 평생 바실리스크만 연구한 것도 아니고··· 알게 뭔가. 집어치운다.

···하여튼 100% 통풍이 되는 알몸이 된 이상 얼마나 땀범벅이었는지 제대로 느낌이 왔다. 재빨리 탕에 들어가서 이 더러운 것들을 내보내고 싶었다.

그 전에 주춤했던 것은, 락커도 저렇게나 큰데 탕은 어떨지 두려웠다. 탕으로 향하는 문을 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 놓고 뛰어가지도 못하고 어슬렁 다가가기만 했다.


"네가 그 늦둥이구나?"


늦둥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걸 직감했다. 그러나 바로 뒤에 있는 라데르의 목소리는 전혀 아니었고 보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꼭 동족이라 잠깐 생각했었다. 들리기만 그럴 뿐, 은근히 수증기가 깔린 탕 안에서의 시야는 온전치 못했다.

그나마 알 수 있었던 것은 목소리가 동족 같더라도 기척이 라데르와 같았다. 명백히 다른 타종족과의 교류라고 기대감이 커졌다.


"우리 같은 왜소한 체격은 여기란다."


뭔가 비언어적 표현을 사용한 것 같으나 바로 발견을 못했다. 천천히 고개를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서, 그제서야 탕이 가로로 길게 뻗어있는 걸 알고 오른쪽의 그를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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