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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3,028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작성
20.06.1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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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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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권 (4)

DUMMY

운동장이었다. 그 밖에 꺼낼 말이 없다. 모래만 펼쳐진 구역에 선이라고 대못에 박혀있는 밧줄이 운동장 말고는 못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운동장이라고 하기엔 고작 2명만 있는 장면은 황야 이상의 가관이었다. 이런 운동장이면 별로 감흥이 없었다. 다들 햇빛이 내리쬐는 날씨 중에 실내에 있다고 보면 서운하고 부러웠다.

이런 억울함을 악어 사내가 대신 코 한숨으로 풀어냈다. 코골이 같은 소리를 좋게 치환한 단어다. 하지만, 단어를 만들어냈다고 해서 그리 무심코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익숙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악어 사내의 코 한숨과 숨 쉬는 소리를 완벽히 구별하기 힘들었다. 분위기로 판단하기로 했다.

운동장에 나와서까지 멈추지 않는 악어 사내를 따라가다 보니 땀범벅이었다. 어느덧 레인 위에 서 있는 자신도 모른 채. 나는 육상이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간간이 학기마다 측정하는 50m 달리기 때만 서본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마저도 빠르지 않아 계주 등의 체육 행사에서 나는 언제나 제외였다.

그래서 몹시 싸했다. 아직 준비가 안 되어 멀뚱멀뚱히 출발점에서 떨어져 있었다. 그걸 눈여겨 본 악어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한 손으로 날 집어올려 출발점에 강제로 올렸다. 웬만한 폭력보다 무서운 행위였다.


"뛰어."

"···."

"직진."


그걸 묻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묻진 않았다. 어쩌면 이쪽 세계로 넘어와서 하는 가장 쓸데없는 질문이 될 거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자찬하는 현재다. 그래도 이후에 후회할 게 한참 남았기에 그리 칭찬할 거리는 아니다.


"하나, 둘,··· 셋!!!"


시작이란 말도 없이 마지막 '셋'을 강하게 울리게 하여 내가 소리에 쫓기듯 출발하게 하였다.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사실 그러면 영원히 출발을 안 했을 거라 본다. 악어 사내가 하는 게 올바랐다. 저런 굉음이면 이 세계에 공포탄이라는 것은 개발이 안 될 수도 있겠다, 남은 소감은 그러했다.

도착점이라고 보는 밧줄 위를 지나고, 난 나름 잘 달렸다고 흡족했다. 운동을 아예 안 하는 사람 치고는 잘 달리지 않았나, 초시계가 없어서 확인 못 하는 걸 이용하여 조심스레 기분을 조작했다.

문득 초시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초시계가 없는 이상 달리기 기록을 잴 수 없지 않나? 딱히 기록 도구로 보이는 게 악어 사내에게 없었는데, 순전히 감으로 기록을 측정할 수 있단 말인가? 궁금증은 풀리지 않고, 악어 사내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툭 면장갑이 던져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써."


명령하지 않더라도 쓸 의사는 있었다. 그런데, 참 면장갑이 고왔다. 공장에서 찍어낸 대량 생산품 마냥 마감이 덜 되어있다는 것 없이 깔끔했다. 합성 섬유가 아니고 100% 면장갑이라는 게 문화재로 둘 만하다고 과장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숨조차 고르지 못하는 지금에서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래서 이후의 말에 대하여 바로 인지를 하기가 힘들었다.


"팔굽혀펴기."


도무지 쉬는 시간도 안 줬는데 시키는 이유는 무엇이었나. 당장에 때려치고 쉬고 싶었지만, 눈빛으로는 지금 하지 않으면 호된 일은 당하게 만들 거라는 속셈이 있는 거 같아 자세는 일단 취하였다.

20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팔이 아파서가 아니라 숨이 차서 힘이 들어가지 못했다. 13개에서 끝난 기록은 나에게 한계를 직면하게 해주었다. 솔직히 20개를 했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운동부족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윗몸일으키기."


이젠 내가 자세를 잡을 수가 없으니까 악어 사내가 한 손으로 내 몸을 뒤집고는 다리를 고스란히 붙잡았다. 혹시나 싶어서 다리에 빡 근육을 세워도 꿈쩍도 안 했다. 윗몸일으키기도 초를 세려야 하는 종목 아니던가. 그러니까 결국 악어 사내에게 맡겨야만 했다.


"그만."


저 말이 나올 때까지 꿋꿋이 7개를 할 수 있었다. 팔굽혀펴기보다 기록이 낮은 건 아마 숨이라는 게 폐로 쉬니까, 횡격막이 복근과 가까이 위치해 있으니까 서로 영향을 줬기 때문에 이러지 않을까. 근거 없는 변명이라 더 철저하다.

그래도 살 만했다. 달리고, 굽히고, 일으키고, 보편적인 3종목을 다했으니 더는 나를 혹사시킬 수단이 없을 거라 기대했다. 운동장이 마루바닥인 듯 누웠다.


"외다리 서기."


이건 뭘까, 하고 악어 사내를 쳐다보았다. 다른 건 해 본 적이 있어서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전혀 듣도 보지도 못한 종목이 튀어나와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어떤 것이라도 힘들 게 분명하니 쉬던 나에게는 날벼락 그 자체였다.


"일어서서 한 쪽 발 들어."


구체적인 지시에 저절로 움직일 수 있었다. 망가져 있다고 해서 의식을 잃은 게 아니니 응해야만 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이걸 한다고 해서 기절할 것도 아니라 도대체 쉬는 시간이란 언제 오는지 고달팠다. 명줄이 긴 게 고생이라고 푸념했다.

예상대로 발을 땅에서 떼자마자 안전장치가 발동되었다. 이대로는 선을 넘을 것 같다는 본능에 몸은 발을 다시 땅에 붙이게 만들었다. 양팔을 벌리기도 전에 휘청거리면서 자세가 기울어졌다.


"됐다."


재도전을 하라고 압박이 오기는 커녕 즉시 끝나버렸다. 그 후 나는 휘청거림에서 끝나지 않고 쓰러졌다. 역시 잠옷으로 땀을 흘리는 일은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체육복과 편의성을 비슷해 보여도 피부에 달라붙은 옷을 느끼면서 물이 아니라 땀이라는 점이 더럽다고 의식하게 만들었다. 또, 빨아도 앞으로 이 옷으로는 잘 때 불편할 것이라고 고정관념을 만들었다.


"위태롭다."

"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운동 부족은 자각하고 있어요."


변명할 것이 없었다. 평소 대중교통 이용을 외출할 떄마다 밥먹는 것 이상으로 하고 있어서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을 리가 없었다. 비행청소년의 일상에서 건강이 발을 들일 곳이 어디 있을까. 이대로 화제를 계속 진행하다가는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 간신히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악어-"

"악어가 아니다."


종족을 물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 얻어걸려서 악어가 선조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아니에요?"

"바실리스크다."


가물가물한 종족이라 반갑기보다 의아했다. 너무나도 생소했다. 세대 차이라고 보았다. 적어도 내 세대와는 인연이 없었다. 아류종은 그리 미디어에서 환영받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사람의 상상력은 위대했다. 어떻게 있는 것마다 속속 이 세계에 존재하는지, 마치 사람이 만든 곳 같지 않나.

그러나 희귀할 것 같은 생김새의 종족이 간수로도 쓰일 취급이라 얼마나 흔한지 감이 잡혔다.


"혹시 이름을 가르쳐 줄 수는 없나요."

"응?"

"아, 죄송해요."


주제넘는 짓이었다. 일개 졸병이 간수라는 상급자에게 성명을 내밀라는 부탁을 감히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바실리스크는 5글자라 너무 길었다. 악어 사내는 4글자고, 보통 2~3글자를 이름으로 쓰는 문화하고는 맞지 않아 불편했다. 정녕 그런 문화가 아니라면 받아들일 의향은 있었다.


"라데르."

"가르쳐 준 건가요?"

"들었냐?"

"네. 라데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요···."

"왜?"

"라데르뿐인가요?"

"이름을 묻지 않았냐."


우문현답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라데르, 다른 세계의 이름이라 해도 이국적인 분위기란 감상 말고는 특이한 게 없었다. 성이 남아있었지만 알더라도 성까지 붙여서 부를 일은 없을 예정이었다. 이 뒤부터는 라데르라 서술하겠다.

라데르는 그 자리에 곧바로 앉았다. 찰랑거리는 열쇠꾸러미를 보며 잘못 앉으면 엉덩이에 자국이 남을 수 있겠다고 걱정이 되었었다. 직후 어차피 바실리스크는 상식으로는 피부가 두꺼우니 괜찮을 거라 근심을 덜어냈다.


"내 직책이 무엇일 것 같냐."

"간수, 아닌가요."

"아니야."


왠지 그럴 것 같았지만 뻔히 유도된 질문에 걸려들어버렸다. 일부러 걸렸다, 고는 못한다.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었다.


"교관이다."

"교관."

"그 나이 대에는 선생님이 익숙한가."

"그 문제가 아니에요."

"알다마다. 교관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네."


다행히 이로써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님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얼마나 잤다고 생각하나."

"···10시간이라 대답하면 아니라고 답하겠죠."

"잘 이해했군."


일관된 문장을 보며 추측하기야 쉬웠다.


"최소 하루···."

"맞다."


24시간을 잔 적은 없었다. 수면제를 먹을 있도 없었고 언제 큰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은 적도 없었다. 원인이야 분명했다. 자기 직전에 당한 형용할 수 없는 술수의 마취법 때문이었다. 얼마나 독하게 했으면 의지와 상관없이 자그마치 약 30시간을 자게 만들었을까. 무척 희귀한 경험이긴 했으나 의도치 않게 당한 거라 매우 기분 나빴다.


"자랑스러워 할 일은 아니다."

"자랑스러울 수가 없는데요."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라데르한테요?"

"나한테만은 아니다. 그리고 이름을 가르쳐줬다고 막 부르진 마라. 아까 그 놈한테 들린다면 곤란해지는 건 나다."


학교처럼 만만한 환경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그 때까지는 아직도 이 공간은 그런 인상이었다. 방금 죽을 뻔한 것을 빼고는 선선한 환경이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대신 운동장의 돌벽이 교도소만큼이나 높게 쌓여있다는 게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쌓아올린 걸까. 장정들의 수고가 훤히 들어왔다. 종족 차이를 생각하여 설계한 것 같은데, 10m는 되는 게 위에서 돌맹이 하나 낙하시켜도 맞아 즉사할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교관이라는 단어에 유의하여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 군대인가요?"

"맞다. 병영이라 부르는 게 나을 거다. 그리고 너는 일개 훈련병사다."


조기 입대는 자의라도 있지 강제 징용은 웬만인지 뒤늦게 충격이 찾아왔다. 이제야 깨달았다. 날 재운 그 마술사가 말한 용사라는 게 이런 뜻이란 걸. 앞으로 6개월만 버티면 15세 이용가를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가득했었는데, 6개월이 아니라 6년을 훌쩍 생략해버린 것이었다. 좀처럼 깨어날 수 없는 부정의 늪에서 간신히 꼬투리를 하나 잡았다.


"이리 체력저질인데, 병사는 무리가 아닐까요? 그리고 저 성장도 덜했고, 이 체격으로 뭘 할 수나 있을까요?"


발버둥쳐서 어필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못 할 것 없지 않냐."


만일 행정병을 한다고 해도 아라크네의 작업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에 적당한 직책으로 빠지는 방법은 그만두었다. 아예 군대 자체를 빼버리는 게 현명한 판단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못 한다고 하면요?"


건방진 태도에 라데르는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못 하는 게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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