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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공모전 참가]히어로즈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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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E
그림/삽화
없음
작품등록일 :
2020.06.16 14:32
최근연재일 :
2020.08.24 01:13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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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2
추천수 :
18
글자수 :
403,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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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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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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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권 (5)

DUMMY

이런 상황이 되고 나선 자유라는 것은 덧없는 거라 보이기도 했다. 어차피 6년 후에 이렇게 될 거였다면 내가 바라던 세계란 살아있는 한 가질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몰랐다. 마침 살아있으니까 살아보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곳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면 내가 가야 할 세계는 다른 곳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로 그런 세계가 있을까. 이쯤에서는 죽어서도 갈 수 없다고 발표하는 게 옳았다.

살아있다는 것은 하나의 증명이다. 살아있기에 이런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바실리스크나 아라크네가 실존하지 않는 종족이라고 치부했지만, 만났다. 만난 이상 증명이 가능한 것이었다. 살아있지 않았다면 증명이 불가능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차라리 살아있는 게 낫지 않을까. 죽어서 있을 자유가 분명하다면 살아서 있을 자유를 갈망하는 게 나에게는 더 가까울 것이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얻은 게 아니라면 의미란 없다. 물론 군대라는 게 자유와는 거리가 멀지만, 난 여기에서 섞어 죽고 싶지 않다.

어쩌면 이게 진정한 해방일지도 몰랐다. 이전 세계가 자유를 갉아먹는 곳이었다면, 이번 세계는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이곳을 나갈 수도 있을 테니, 이전에 만들었던 인연은 족쇄처럼 보이기도 한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난 이 폐쇄적인 곳이 더 희망 차 보였다. 전화위복으로 삼아 마음을 다스렸다.

다만,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에 당황은 필히 해야 했다.


"이게 뭐죠?"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라데르의 짓이라고, 애초에 여기에는 지목할 만한 범인이라고는 라데르뿐이라 그거야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추측이었다.

아니, 어린아이라면 마법이라고 치환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에게 남아있는 창의력이란 현실에서 비현실을 볼 만큼 환상적이지 않았다.

책, 책들이었다. 한두권이 아니라 서너권.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하나마다의 두께가 평범 이상이라 난 책에 살해당할 뻔했다. 운동부족이 들 수 있는 무게가 얼마나 될까. 뮬니르를 가슴 위에 올려두면 바로 함몰 당할 종이 인간이라 허리 디스크가 올 것만 같았다.


"들고 따라와라."


이 책이 어디에서 나았는지만 묻고 싶었다. 문제는 그 전에 무책임하게 뒤돌아서 걸어가고 있었단 것이었다. 맨몸으로도 보폭을 맞추기가 힘든데, 이 상황이면 얼마나 힘든지 가늠할 수 있을까.


"교관 님!!"


크게 부르면 장땡인 줄 알았건만 절대 그러지 않았다. 보폭을 좁게 하지도 않아 괘씸하였다.

하지만, 이대로 그만 쫓아가는 걸 관두고 떼쟁이가 되라고는 할 수가 없었다. 이 무거운 책들과 함께 성 안에서 길을 잃은 것만큼 두려운 것은 없었다. 휴식이라는 꿀은 엎질러도 좋으니 봉변을 당하기 싫은 나머지 라데르를 죽자고 따라갔다.

책상이 여러 개 있는 교실에 덩그러니 나 혼자만 있었다. 그래서 앞의 칠판에서 먼 책상에 앉기로 했다. 여태껏 그런 자리선정을 했던지라 본능이었다. 그것도 그런데, 지금은 책을 어떻게든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선두에 섰던 것 같았다.

막상 책상에 앉긴 했으나 학문을 익힌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땀으로 적셔진 잠옷을 입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의자에 앉으니 고문에 익혀진 느낌이 강했다.

그런 때에 신기하게 책의 제목을 보고 싶었다. 그냥 보고 싶었다. 흐릿한 초점 사이로 그나마 비치는 게 그것이었다. 척추가 망가졌는지 들려지지 않는 고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행동이 그것밖에 없었다. 마침 그러니까 제대로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척추가 망가지면 눈으로 보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당시의 지식상에 없었다.

어쨌든 세 번 깜빡여서 맞춘 초점으로 본 책의 제목은, 예상했어야 했었지만 못했기에, 읽을 수 없다는 것에 충격을 먹었다. 반점 뒤의 문장이 제목이 아니라 제목을 읽을 수 없었다는 소리다. 말만은 통하나 문자는 통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현상에 역시 세상 사는 법이야 쉽게 익힐 수 없다는 것이라는 이치로 너그럽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정신은 살아있냐."


살아있긴 하나 쉬는 시간을 벌기 위해 미동 않고 몽롱한 척했다. 다행히 이 작전은 먹혀들어 10초 후에 라데르가 다시 말하게 만들었다.


"이걸로 기절하면 안 된다."


한 17초면 충분하다고 느꼈다. 눈가에 맺혀 안구로 들어가기 직전의 땀방울을 닦고 싶기도 했고, 땀은 짜니까 말이다.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움직이기에는 진부하지 않나. 그렇긴 했다. 진짜 이유는 라데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행태를 취했기에 그랬다.


"마음이 내킬 때 가장 얇은 책을 펴라."


마음이 내킬 때는 라데르가 강요하기 직전을 말하는 것이겠다. 일방적인 협박에 지나지 않는 명령에 나는 가장 얇은 책을 구별하기 바빴다. 그러다가 교묘하고, 지독하고, 치밀하고, 비열한 수법에 의해 나는 맨 밑의 책을 빼내야 했다. 가장 얇은 책을 먼저 쌓았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게 무슨 책인지 알고 있냐."


변함없이 한글로 적혀 있지 않은 책이라 투덜대며 반론했다.


"제목도 못 읽는데요."

"감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정답에 접근하기 전까지 말하지 않을 것임을 전면에 예고한 것이었다. 야속한 교관의 태도에 학생에 가까운 나는 땀 흘리기를 울듯이 하면서 한 페이지를 넘겼다.

문자 하나를 두고 꽤 큰 정사각형 칸이 여러 개 있었다. 문자를 그리는 순서까지 기재되어 있었다. 약간 추억에 잠기게 하긴 하지만 너무 옛날이라 잘 떠오르지 않아 바로 대답했다.


"국어?"

"그래."


말로만 듣던 재사회화의 첫걸음이었다. 재사회화의 기초이자 핵심은 당연 언어이긴 하다.

그런데, 당연이라고 해도 약간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회화가 가능한 것 자체가 해독이 안 되어도 재사회화에는 무리가 없지 않은가.

전장에 나가서 싸울 거면 굳이 문자가 중요한 것이 있는가. 언제 라데르 같은 인물이 될 것인지 오래 걸릴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렇다고 학교 공부처럼 우습게 여겨 볼 일은 아니라고 보았다. 하나하나 라데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1:1 교습에서 성적이 좋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모를 터였다.


"연필을 들어라."


뜬금없는 명령에 나는 아랑곳 않고 요구했다.


"없는데요?"


그러자 기가 막힌 답이 날아왔다.


"찾아."

"이 책상들에서요?"

"그래."


라데르가 미리 숨겼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전의 학생들이 놓고 간 펜을 찾으라는 것 같았다. 꼭 놓고 간다는 보장이 없기에 가능성은 있더라도 무리한 명령이 아니였는지 되새겨 보았다. 불편한 표정으로 일단 내가 앉은 책상부터 뒤져보았다.

그런데, 예상과 정반대로 바로 그 책상 속에 있었다.


"어."

"연필은 공공재다."


당분간은 상식을 봉인하기로 했다. 전혀 다른 체계의 세상에서 재사회화전까지는 지니고 있는 지식들로 이해하는 건 영 어려울 거라고 상기시켰다.


"찾았으면 7장을 다 적어라."


연필이라고 하는 게 내가 알던 연필의 형상이 아니었다. 흑연 심을 좁은 원통에 집어넣어 쓰는 방식이라, 흡사 샤프를 떠오르곤 했다. 샤프와 비교해서는 선의 굵기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만, 못 쓸 건 없었다. 오히려 샤프보다 괜찮았다. 세개 쓰다간 부러지는 건 동일하다마는 부러지는 빈도 수가 훨씬 적었다. 특이한 문화에 남 모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한 페이지에 문자가 4개, 7페이지라면 28자라고 예상했으나 2자가 없어서 총 26개의 문자였다. 26개라는 사실에 알파벳을 떠올렸으나 우연의 일치라고 받아들였다. 그래도 알파벳에 대한 미련을 버리리가 힘들었다.

원래 세계에서도 러시아어와 불어와 영어의 공통점이 부분 있어가지고 문자 몇 개로 구별하기가 까다로웠다. 문자의 생성 역사가 뿌리가 비슷한 것들이라 따라 비슷하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긴 아예 다른 세계다. 뿌리를 같게 가질 이유가 없을 것이며 고작 문자 수가 똑같다는 걸로 알파벳과 같은 거라는 착각은 굉장히 미개했다.

라데르는 정확히 내가 7페이지의 마지막 칸을 채우자마자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이쪽으로 가져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곧바로 나는 일어서서 가져다 주었다.


"다음은 뭔가요."

"···."


책만 쳐다보더니 손가락 하나를 다시 까딱거렸다. 7페이지였던 면이 1페이지로 바뀌었다.


"어떻게 읽는지는 아냐."

"모르죠."


언어 책은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정작 읽는 법을 적었음에도 그 읽는 법을 읽기 위해서는 또 다른 언어를 익히고있어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독학을 전혀 불가능케 하는 이 특징에 다른 세계는 무척 난관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 세계에는 이것 말고는 다른 언어는 없는지 발음표기 따위 적혀 있지도 않았다.


"알고 싶냐."


솔직히 내 대답은 라데르를 위한 배려 차원이 아니었다.


"알면 쓸모가 있나요."

"아니."

"빼면 안 되나요."

"빼지."


발음이라고 해도 말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문자들의 발음에 포함되지 않을까, 자연스러운 추측이었다.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라데르와 마음이 통했다. 문자의 명칭을 모른다고 해도 시간 낭비라고 보았다. 어차피 언어란 발음이 전부인 과목이니까 말이다.


"발음만 알려주면 안 되나요?"


의외로 이런 곳에서는 마찰이 있엇다.


"야."

"네."

"너는 왜 혼자서 이걸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하루 늦게 일어나서가 아닌가요."

"반은 맞다."


진도의 차이라고 보았다. 하루나 늦어졌으니 급하게라도 진도를 나가는 게 정론이다. 보충이라고 치면 원래 하루 분량의 +로 가야 이탈이 없을 거라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제 진도라고 생각하나."

"오늘인가요?"

"너만 바로 수업을 받는 거지 우리라도 다짜고짜 일어난 애들 가지고 혹사시키지 않는다."


혹사라고 말하는 것에 비해서는 7페이지는 거뜬했다. 초면의 언어라고 해도 어렵지 않았다. 이건 개인차가 존재하겠지만, 어쩌면 재능이라는 자찬을 속으로 해버렸다.


"꽤 여유롭네요."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굳이 읽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디까지나 이것의 창조자는 너희와 멀지 않으니 말이다."


뚱딴지 같은 소리이긴 하나, 아까 반이라고 하지 않았나? 왜 이유가 3가지인가. 신경 써서 반론해도 달라질 건 없으니 넘어가도록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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