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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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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연재수 :
314 회
조회수 :
139,860
추천수 :
3,298
글자수 :
1,753,096

작성
19.09.15 00:28
조회
451
추천
12
글자
7쪽

해제

DUMMY

“과연,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할 만하군.”


유람선에 탄 관광객이 된 기분을 맛보며 앞바다를 바라보던 내가 한 말이다.


바람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스키잔이 배에 탄 덕분에 순항. 하이엘프들의 섬까지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달했다. 물론 우리들에게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단지 망망대해가 펼쳐져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저 앞에 섬이 있는 건가요?”


카니앗이 물었다.


“그래. 섬 전체를 네 겹의 마법이 막고 있다. 그것만 지나면 하이엘프의 왕국이 바로 코앞이라는 소리지.”

“마왕님, 하이엘프 측에게 마법의 일시적 해제를 요청하겠습니다.”


스키잔이 나선 것을 내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우리가 곧 도착하는 건 이미 알려져 있겠지? 마법이 섬을 보호하고 있어 들어갈 수 없다면 그대로 무효화시키면 된다. 나를 직접 이곳까지 불러냈으니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어야지.”


하이엘프들이 마왕군 참가를 꺼려한 것에 딱히 앙심은 품고 있지 않았다. 단지 내게 따를지 아닐지의 문제다. 그에 앞서 섬에 들어가는 데 거치적거리는 장해물은 걷어내면 된다.


“하이엘프의 유산이 그렇게 쉽게 깨질까요... 전설이 사실이라면 범상치 않은 마법식일 텐데요.”

“저만한 땅을 두르는 결계니 범상치 않은 것은 당연하다, 카니앗.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로는 범상함이 독이 될 때도 있으니.”


고대 엘프 술식은 매우 정교했지만 오히려 너무 세밀하게 짜진 덕분에 구조만 알면 타파하기는 쉬웠다. 정밀기계가 더 고장 나기 쉬운 것과 비슷한 것이다.


각각 섬의 주요 지역의 이름이기도 한다는 헤이스티아, 로아, 칼란츠, 그리고 브리기드. 외부인이 도저히 뚫을 방법이 없어 보이는 그것들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공통된 마력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결계를 친 엘프들의 조상은 이게 분명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조심히 숨겼겠지만 그걸 꿰뚫어볼 수 있는 탐지능력이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내 눈은 섬 밑에서 맴도는 마나의 기운을 한참 전부터 포착하고 있었다. 관리되지 않은 채로 수천 년은 훌쩍 흘렀겠지만 아무런 이상 없이 섬의 방위 마법을 지탱해주는, 이른바 에너지 저장소 같은 것이다.


동력원에 문제가 발생하면 기계가 멈추듯, 엘프의 마법에 방해를 넣기 위해서는 공급되는 마나의 중심원만 노리면 된다.


나는 검지를 들어 그곳을 정확히 겨냥했다.


“버스트.”


쏜살같이 발사된 검은 광선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런 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변은 곧 발생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마법이 걷히며 드러난 그것은 보는 사람을 바로 매료시킬 정도의 것.


“보이나, 카니앗.”

“...예. 아주 잘 보입니다.”


카니앗의 목소리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같은 뿌리를 가진, 어쩌면 동족이라고도 볼 수 있는 하이엘프들의 거처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그곳은 꿈에서나 나올법한, 바다 한가운데의 낙원이었다.


하늘처럼 푸르고 맑은 바다와 빽빽이 들어찬 숲도 장관이었지만, 섬에는 아름다운 자연 말고도 마법이 깃들어있었다. 고서에나 등장할 법한 공중정원이 섬 위에 부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 위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이어지는 바위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떠있었다.


전설에 과장은 없었다. 그야말로 낙원. 그 광경은 내가 일찍이 보았던 무언가와 닮아, 무심코 혼잣말이 나와버린다.


“느낌이 바하마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야.”

“바...하? 그건 무엇입니까?”


평소엔 말수가 적은 카니앗이 왜인지 질문했다.


찰랑.


“마왕님?”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눈부신 햇살. 투명한 바다. 그 속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 그려졌다. 나를 포함한 단 세 명의, 언제까지고 추억할 수 있는 휴양지.


전생에서 유일하게 후회하고 있는 것은 그 녀석을 다시 그곳에 데려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뿐이다. 나의 안일함이 있었기에 남은 후회에 비친 바다의 색은 야속하게도 아직까지 아름다운 채다.


“여기에서는 갈 수 없는, 아주 멀지만 그나마 좋은 추억이 담긴 곳이지. 하지만 이제 닿을 수 없어. 한번 잃어버린 건 두 번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거야.”


꿈꾸는 것처럼 말하던 나는 낯선 단어에 흥미를 보이는 부하들을 보고 이윽고 얼굴을 무표정으로 만들었다. 괜한 기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봤자 머리만 아파질 뿐이었으니까.


이젠 뛰지도 않는 심장이 오늘따라 조이는 걸 느끼며 나는 말을 돌렸다.


“마법의 중심부에 타격을 가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멈춘 것뿐이다. 우리는 하이엘프들에게 전쟁을 선포하러 온 것이 아니니 말이야. 그들의 마법을 일부러 부술 필요는 없겠지, 가브리엘.”


지명 받은 가브리엘이 무심하게 이쪽을 쳐다본다.


“마력원의 중심부를 타격해서 일시적으로 멈추긴 했으나, 우리들이 완전히 섬 안으로 이동하기까지 지체시켜두기에는 시간이 없다. 섬의 마력 소용돌이를 통째로 얼려버려라. 너라면 가능하겠지.”

“알겠다, 주인이여.”


가브리엘은 작은 몸에 달린 커다란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잠시 심장 부근에 손을 모으고 있던 그녀의 몸에 평소보단 강한 광채가 깃들기 시작한다. 천사들은 지상인들이 쓰는 마법 따위 쓰지 않으니, 좋은 구경을 할 기회였다.


마법식도, 주문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단지 가브리엘이 바라보는 것으로 섬 주변의 바다가 마치 그녀의 광채와 공명하는 것처럼 신비한 빛을 띠어갔다.


그 빛은 점차 푸른색으로 변하고, 출렁이던 파도의 움직임이 멎어갔다.


이윽고 섬은 얼음으로 둘러쌓여있었다.


마나의 개입 없이 있는 현실만을 뒤바꾸는 건 마법의 보다 원시적인 형태. 특정 속성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위력은 지상의 마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그것을 모태로 인간이나 마족들도 쓸 수 있게 오랜 세월을 걸쳐 변형시킨 것이 지금의 마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


“정말... 이렇게 쉽게 바다를 얼려버리다니...”


잔뜩 얼어버린 바다를 보며 카니앗이 신기한듯 자꾸만 아래를 내려본다. 그것도 무리도 아니다.


과연 대천사 가브리엘. 물 속성을 가진 예지의 천사라 할 법한 솜씨였다.


“섬에는 아무런 피해를 가하지 않았군. 잘했다. 방위마법의 마나 원천만 얼려버렸으니 이제 당당히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나는 그리 말하며 스키잔에게 눈짓을 했다.


“아직 얼지 않은 물을 타고 가까운 빙하에 가서 닻을 내리지. 제대로 된 손님맞이를 기대할 수 있을까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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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기폭 +3 19.08.11 571 12 9쪽
56 습격 +2 19.08.08 594 13 9쪽
55 초전 +1 19.08.03 631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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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805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6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77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4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2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22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14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3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40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6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8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32 3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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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43 38 8쪽
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38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45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76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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