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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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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연재수 :
314 회
조회수 :
139,861
추천수 :
3,298
글자수 :
1,753,096

작성
19.09.12 00:35
조회
471
추천
10
글자
9쪽

장로회의

DUMMY

하이엘프들이 산다는 신비의 섬은 뱃사람들 사이에선 종종 회자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라고 해봤자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파도에 휩쓸려 나온 대양에서 엘프가 탄 배를 멀리서 보았다는 정도로, 술이 거하게 들어가면 나오는 헛소리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수수께끼의 종족에 대한 기록은 서고를 뒤져보면 전설 비스무리한 것에 나오긴 하지만 그것 뿐. 그 이후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인마대전에 참가했다는 설도 있었으나 무슨 영문인지 그때의 기록조차 전혀 남아있지 않다. 운 좋게 그들을 직접 보았다는 자들은 세월의 흐름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해버렸고 말이다. 지금은 마왕군의 후방에서 거대한 불덩이를 쏘아내던 게 그들이 아니었을까, 추측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피부는 백옥처럼 하얗고 금발을 늘어뜨린, 동화책에나 실려 있을 법한 생물이 실은 멀쩡히 살아남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작은 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턱이 없다.


그러니 바람의 정령이 섬의 위치를 알고 찾아온 것에서 이미 섬의 장로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사중결계로 보호되어있는 섬이 발각되기란 불가능할 터였던 것이다. 제아무리 영겁의 세월을 산다는 정령조차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철저한 비밀유지 때문에 새로운 마왕이 강림했을 때도 그 정령과 연락했던 건 대륙에 나가있는 연락책. 하지만 얼마 전 정령이 그 마왕이 직접 방문하겠다는 소식을 스스로 들고 섬에 찾아온 것이다. 그게 류셀의 탐지 마법 덕분이라는 걸 까맣게 모르는 섬은 어떻게 대응해야할지를 놓고 갈등하고 있었다.


“저번 대전에 참가했을 때도 우리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 바람의 정령을 들여보낸 보초에게 책임이 있다고 봐도 되겠나?”


검은 로브를 입은 장로가 입을 열자 중앙회관의 실내가 울렸다.


하이엘프들이 암묵적으로 '섬'이라고 부르는 그곳엔 다섯 명의 장로들이 있다. 엘프 중에서 제일 지혜로운 자만이 앉을 수 있는 장로직은 섬의 통치자이자, 재판관이자, 우상이다. 그런 그들이 전원 모이는 건 섬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뿐이다.


칠흑의 마왕이라고 불리는 신 마왕이 제발로 찾아온다는 것은 당연히 그 중대사에 속했다.


“분명 그때 보초를 서던 건 나프였지? 그 무능한 놈. 감옥에 처넣든지 해야지 안 되겠어!”


아까부터 불만이 가득한 것처럼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다른 장로가 소리를 높였다.


“자자, 슬로겐. 괜히 화내봤자 의미 없어.”


열을 내는 장로ㅡ슬로겐에게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건 곰방대를 든 레야. 스물 초반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외모지만 그녀 또한 장로직을 맡은 지 100년이 넘었다.


“레야, 우리의 방침을 잊었나? 바깥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도 알면 안돼. 그러라고 있는 방어마법 체계다! 이제 언제 바깥의 간섭이 들어와도 놀랄 게 없다고! 이 땅을 개척한 선조들의 희생을 전부 물거품으로 만들 셈인가?!”

“이미 그 정령은 이곳에 대해 알고 있었잖아. 그때부터 계속 숨는다는 선택지는 없어진 거야. 정령을 섬에 들여보내준 덕분에 불필요한 마왕군과의 충돌을 방지했다고 보면 어때?”

“그렇게 말해도...”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마왕은 찾아온다고 우리에게 선언했다.”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장로가 둘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멈췄다. 명목상으로는 다섯이 대등하다는 장로 중에서도 제일 막강한 권력을 가진 그의 말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최고장로로 불리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이러니저러니 발각된 건 사실. 이번 마왕은 그만큼 유능하다는 것이 되겠지. 지금은 책임을 추궁하는 것보다 결정을 내리는 게 급선무라오. 정령과 직접 말했던 건 분명 레야, 당신이었지?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지 않을 텐가.”

“저쪽의 요구는 단 하나야. 하이엘프가 마왕군에 참전할 것. 그것 말고는 별다른 요구를 해오지 않았어.”


레야는 강조하는 것처럼 검지를 들어보였다.


“몇 명이 참전하는지조차 말이야.”


레야는 다른 장로들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이야기를 속속 진행시켜갔다.


“그래서 말인데, 나로서는 들어줘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참전하는 대신에 우리 걱정거리도 하나 해결해 달라하면 되잖아.”

“레야, 설마 그건...”

“슬슬, 봉인이 풀릴 때가 된 거야.”


레야가 말하는 걱정거리라는 건 섬의 엘프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섬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영겁의 평화가 자리 잡은 섬. 엘프들만의 낙원.


그런 건 전부 허울 좋은 소리일 뿐이다.


언제나 섬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사중결계가 무색하게 시한폭탄은 태초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주위에 해를 끼치고, 오로지 파괴만을 행하는 거대한 마수. 그야말로 세계급의 위협.


푸른 비늘을 두른 용과 같은 형상이었지만 입에서는 불 대신 눈보라를 뿜어대어 살아있는 모든 것을 얼려버린다. 영원의 얼음이라는 이명도 있었다.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하는 섬에 어째서 그런 마수가 생겨났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섬에 잠들어있었던 것이다.


라그나로크에서 살아남은 하이엘프의 선조가 마주해야했던 것이 바로 그 괴물.

그들의 먼 조상이 이 섬에 정착했을 때 꼬박 사흘 동안 그 마수와 싸웠다는 건 학교에서도 빠지지 않고 배우는 역사다.


마수 에델가르드.


오랜 시간에 걸쳐 봉인이 많이 약해져있다는 것은 다섯 장로 모두 알고 있었다. 언제 깨어나서 횡포를 부려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도.


섬 주민의 대부분이 모르고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패닉을 막기 위한 정보통제에 불과했다.


“이미 뒤집을 수 없어, 슬로겐. 마왕은 이쪽에 오고 있는걸. 잘 설득시키기만 한다면 일이 무척 쉬워질 거야.”

“그건 우리들끼리도 퇴치할 수 있어! 제대로 퇴치팀을 꾸리기만 하면...”

“하지만 에델가르드를 섬의 수호신으로 떠받드는 놈들도 있잖아. 걔네들 조용히 시키려면 꽤 수고가 들 텐데.”

“윽...”


슬로겐은 레야의 말이 지당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이엘프는 대륙처럼 유일신 루미아를 숭배하긴 했지만, 고대의 괴물을 추앙하는 자들도 적지만 있었다.


섬이 지금처럼 평화로울 수 있는 건 그 안에 잠자고 있는 에델가르드 덕분이라는 헛소리를 당연하게 해대는 놈들이다. 장로회 주도로 그 마수를 퇴치하려고 했다가 내란이라도 일어나면 곤란했다.


“게다가 전면전으로 가면 섬의 인구 3할이 죽을 거란 보고도 나왔고. 여러모로 우리가 나서기 껄끄러운 상황이야.”

“즉, 마왕에게 에델가르드의 퇴치를 부탁하자고. 마왕의 힘은 믿을만한 겐가?”

“칠흑의 마왕에 대해 들려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없을 거야.”

“음.”


이야기를 들은 최고장로도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었다. 그 반응에 힘을 얻은 레야가 말을 이어갔다.


“골칫거리를 하나 덜 수 있다면 마왕군에 협력한다는 것도 꽤 좋은 거래잖아?”

“지금 네가 하는 소리가 뭔지 알고나 있는 건가? 마왕군 나부랭이를 이 섬에 들여놓자고? 저번 전쟁을 생각하라고, 레야!”


슬로겐이 참지 못하고 다시 버럭 호통을 쳤다.


“선대 마왕도 그랬지. 대륙을 인간들로부터 되찾겠다고 설레발은 다 치더니만, 결국 인간들에게 졌잖아! 또 같은 과오를 반복할 생각인가? 그런 놈들의 호언장담을 언제까지 믿자는 건가!”

“슬로겐. 레야가 하는 말도 일리는 있어.”


이번엔 초록 로브의 장로가 끼어들었다.


“저번에 대륙에서 귀환한 다나에게서 받은 보고는 자네도 들었잖아. 마왕이 알트레아 왕국을 손에 넣었다고 하는데도 인간들은 그가 강림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네. 그의 편을 들면 우리에게도 나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몰라.”

“타지인 대륙에서 무슨 소문이 도는지는 몰라도 나는 절대 반대일세!”


슬로겐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중앙회관을 그대로 나가버렸다. 당연한 것처럼 따라나가는 한 장로의 뒷모습을 보며 레야는 중얼거렸다.


“드디어 장로회에서도 파벌이 나뉘기 시작했네.”


다른 장로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온 레야는 중앙회관 뒤편 언덕에 앉아있는 인영을 발견하고 웃음 지었다.


언제 봐도 호기심이 참 많은 아이다. 섬의 바깥에 있는 세계에 제일 큰 흥미를 보이기도 했고, 마왕군에 힘을 보태준다는 자신의 의견이 통과된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지원할 인재기도 했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할게, 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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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해제 +1 19.09.15 452 1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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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항구도시 프냐르 +1 19.09.09 490 11 11쪽
65 짧은 여정의 출발 +1 19.09.08 516 11 9쪽
64 하이엘프 +1 19.09.04 561 12 9쪽
63 사전 준비 +3 19.09.01 553 15 10쪽
62 그들의 이야기 +1 19.08.29 565 12 10쪽
61 신의 사자 +1 19.08.25 568 12 10쪽
60 제물 +1 19.08.22 558 13 9쪽
59 반격 +4 19.08.18 598 13 10쪽
58 승전 +3 19.08.15 619 15 10쪽
57 기폭 +3 19.08.11 571 12 9쪽
56 습격 +2 19.08.08 594 13 9쪽
55 초전 +1 19.08.03 631 13 9쪽
54 군복 +2 19.07.25 611 12 10쪽
53 첫 번째 함락 +1 19.07.22 654 13 10쪽
52 제국의 침공 +1 19.07.18 698 1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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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아침 +3 19.07.11 750 17 10쪽
49 잃어버린 기억 +2 19.07.06 756 33 9쪽
48 노트북이 고장나서 잠시 휴재합니다 +3 19.06.18 829 12 1쪽
47 빙의 능력자 +1 19.06.06 773 17 9쪽
46 살인 청부업자(11세) +1 19.06.02 817 17 9쪽
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805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6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77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4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2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22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14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3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40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6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8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32 32 10쪽
31 앞으로의 연재 공지 및 1권 후기 +3 19.03.25 1,474 21 1쪽
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46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26 38 10쪽
28 명령을 내리다 +4 19.03.23 1,403 35 8쪽
27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2 19.03.23 1,459 37 9쪽
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17 34 8쪽
25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38 36 9쪽
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76 36 8쪽
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43 38 8쪽
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38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45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76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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