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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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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8.24 22:47
연재수 :
313 회
조회수 :
139,553
추천수 :
3,295
글자수 :
1,745,900

작성
19.09.09 01:28
조회
489
추천
11
글자
11쪽

항구도시 프냐르

DUMMY

전이마법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최소 한번은 가본 적이 있는 곳이다.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로 이동하는데 쓸 수는 없다.


말을 타고 달리기만 해도 한달은 걸린다는 북방의 땅까지 가기 위해 내가 전이를 쓰는 건 불가능했지만, 이미 가본 적이 있는 스키잔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한 번에 여럿을 전이시킬 수 있는 중급 전이를 스키잔이 알고 있었다는 게 행운이겠지. 우리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건 알트레아 왕국에도 한참 못 미치지만 나름 문명의 흔적이 보이는 땅이었다.


푸른 식물들이 가득했던 평원지대와는 달리 어딜봐도 갈라진 황야였으며, 집의 흉내를 하고 있는 천막들이 아직 인간이 살고 있다는 걸 겨우 알려주었다.


대지의 신에게 저주받았다고 불릴 정도로 척박한 땅을 가진 레윤케. 하지만 조금 멀리 시선을 옮기면 같은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180도 다른 광경이 펼쳐져있다.


건물들은 우뚝 솟아있고 사람들은 북적인다.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과 선원들을 유혹하는 창부들이 한데 뒤섞여 아우성을 떤다. 해안에서 부는 바람에 소금냄새가 담긴 그곳은 대륙에서 제일 많은 재화가 오간다는 항구.


항구도시 프냐르다.


레윤케가 무너지지 않고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것은 항구도시 프냐르 덕분이다. 머나먼 동방의 땅에서 들여오는 상품들은 대륙의 재력가들이 환장하고 달려드는 물건이었으니까.


향신료. 보석. 의류. 주류. 마약. 뭘 더 말하랴. 돈만 지불하면 동방의 노예들까지 거래되는 곳이다. 프냐르의 창관의 여자를 안으려고 머나먼 레윤케까지 온다는 귀족들의 소문도 있었으니.


“항구는 더 앞에 있지만 주의를 끌지 않는 이곳에서 진입하는 게 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왕님.”


다크엘프인 카니앗은 단연 이목을 끄는 외모다. 그 미모 때문에 엘프 노예 수요가 많을 정도니 사람들이 많은 항구도시에서 들키면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겠지.


“카니앗, 이걸 써주세요.”


스키잔이 내민 후드를 받아쓴 카니앗은 조금 불편해보였지만 귀를 가린 덕분에 마족 느낌을 많이 지울 수 있었다.


“그리고...”


망토를 집어든 스키잔이 난감한듯 가브리엘을 쳐다보았다. 대하기가 아직도 껄끄러운 거겠지.


“가브리엘, 날개를 접고 망토를 걸쳐라.”

“알겠다, 주인.”


가브리엘은 순순히 망토를 둘렀다. 날개가 보이지 않으니 인간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왕님, 저는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투명화 마법을 쓰겠습니다.”


스키잔의 모습이 흐려졌다. 내 눈에는 제대로 보이고 있지만 이제 다른 인간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


“지체할 시간은 없어. 수배해둔 배를 타고 바로 출항한다.”


엘프들의 섬까지 날아가는 방법도 물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카니앗은 비행 마법을 쓰지 못한다. 마왕이 아무것도 타지 않고 홀몸으로 오는 건 별로 좋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스키잔의 의견까지 더해져, 작은 배를 타고 가는 것으로 정해져있었다.


우리들은 딱봐도 외지인이었지만 애초에 프냐르는 모든 이방인들이 모이는 나라. 생각했던 것만큼 눈에 띄지는 않았다.


“어라, 젊은 오빠 우리랑 놀고가지 않을래?”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드러낸 창부 하나가 뻗는 손을 피하며 나는 탄식했다.


“정말이지, 이런 문화는 어느 세계를 가도 바뀌지 않는군.”


토라진 척을 하며 몸을 돌리는 창부보다 더 신경쓰였던 건 다른 창부와 다르게 목에 뭔가를 차고 있는 여자였다. 머리는 두건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짧은 치마 사이로 동물의 꼬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저 여자...”


중얼거리고 있으니 카니앗이 거리를 살짝 좁혔다.


“성노예로 잡힌 마족입니다. 도망쳐서는 곤란하니 저렇게 목걸이를 채워둔 거죠.”


저렇게 대놓고 간판걸 역할을 맡긴 걸 보아하니 마족을 불결한 것으로 취급하는 알트레아 왕국과는 다르게 이곳에는 호기심 많은 인간들이 꽤나 많은 모양이었다.


“왕국의 마족들은 전원 해방됐죠. 전부 마왕ㄴㅡ 보스 덕분입니다.”

“익숙하지 않으면 그냥 원래대로 불러도 상관없다, 카니앗.”


서둘러 고쳐말하던 카니앗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벌써 해가 져가는데도 프냐르는 인파가 줄어들 기미가 없다. 보석으로 온몸을 치장한 귀부인들이, 보따리를 짊어진 짐꾼들이, 정장으로 멋을 부린 신사들이, 까맣게 탄 선원들이 한시가 아깝다는 듯 바삐 돌아다녔다.


투명해진 스키잔은 그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공중에 뜬 상태로 있어야 했다.


스키잔이 안내하는대로 가자 해상조합이라는 곳은 금방 나왔다. 한가지 예상하지 못한게 있었다면 단단하게 잠긴 문이 우리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잠겨있군. 스키잔, 여기에서 배를 산 게 맞겠지?”


스키잔이 두꺼운 종이 하나를 넘겨주었다.


우편거래라고는 하나 제대로 배의 소유권도 양도받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약속을 잡아놨을 터인데...


스키잔은 어쩔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나는 역시 그냥 부숴버릴까하고 문을 쳐다보고 있자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유리가 깨지고 나무가 부러지는 게 합쳐진 소리였다.


쾅!


문이 활짝 젖혀지며 우락부락한 남자가 모습을 보였다. 술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에이구, 이놈의 술을 미리미리 사두라니까 이 망할 여편네가...”


수염을 긁적이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던 남자는 우리를 보더니 눈을 찡그렸다. 프냐르의 주민들은 외부인들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고는 해도 전혀 달가워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엥? 댁들 뉘쇼?”


고개를 비스듬이 해서 내민 남자가 따지듯이 물었다. 곱게 봐주기는 커녕 싸움을 걸려는 눈치다.


“여기가 프냐르 해상조합 맞나?”

“맞는뎁시요, 무슨 일 있소?”


남자는 영 기분이 시원치 않다는듯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침을 탁 밷었다. 그걸 보고 있던 스키잔과 카니엣이 굳었다. 그들이 모시는 주군에 대한 불경은 죽음으로도 무마할 수 없는 죄라는 것이다. 자신의 목이 언제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남자는 계속 입을 나불댔다.


“꼬마 하나에 계집애 둘? 아는 얼굴은 아니고, 오늘 장사는 이미 접었는데? 꼬마가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썩 돌아가쇼.”


마지막 문장은 의외의 충고를 담은 것 같았으나 안타깝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말 없이 카니앗에서 넘겨받은 배의 소유권을 알리는 종이를 내밀자 남자는 그걸 스윽 받아 미심쩍은 눈으로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의심쩍어하던 불량한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아이고오 누구신가 했더니 소문이 자자한 그 손님 아니십니까! 편지로만 얘기하다보니까 이거 실례를 끼칠 뻔 했네!”


남자는 허리를 굽히며 과장되게 인사를 했다.


“저는 프냐르의 해상조합장, 발트라고 합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앞서 무례를 끼친 걸 사과드리죠!”


태도가 완전히 변했다 해도 사방팔방 풍기는 술냄새가 여전했다. 과묵한 가브리엘은 물론, 카니앗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자를 보고 있자 불편한지 알아서 대화가 이어져갔다


“어흠... 구매하신 배를 찾으러 오신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프냐르 해상조합장ㅡ발트가 설레발을 떨며 조합의 문을 닫았다.


“원래라면 내실에서 계약서를 마저 작성해야겠지만 지금 이 안이 좀 지저분해서 말입니다~ 배는 선박장에 잘 모셔뒀으니 한 번 같이 가보시죠! 분명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해상조합의 문을 커다란 자물쇠로 잠군 발트가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며 멀어져갔다. 우리는 별 말 없이 그를 뒤따를 뿐이었다.


왠지 모르게 신나서 앞서가는 발트를 따라가며 내가 사념으로 물었다.


“스키잔. 이동하는 인원은 총 넷이다. 분명 작은 선박을 샀겠지?”

“예, 마왕님. 작은 배로 구해두었습니다.”


스키잔의 대답에 의문을 품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선박장은 해상조합의 바로 뒤편에 있었던 것이다.


가지각색의 모양과 크기의 선박들이 즐비한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발트가 자랑스럽게 가리키는 배를 보며 나는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스키잔. 작은 선박을 샀다는 게 확실한가?”

“예, 마왕님께서 쓰시기 에는 너무나도 초라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프냐르에서 제일 크고 화려한 놈입니다!”


스키잔의 설명과 정반대인 설명이 동시에 들려왔다.


“착수금까지 받자마자 레윤케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장인들을 전부 긁어모았습죠! 요청하신대로 기일 내에 맞추려고 몇날며칠을 밤을 내며 일했습니다! 이건 배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에 가까운 겁니다!”


어느쪽이 내 상식과 가까운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내 앞에 서있는 배는 웬만한 유람선 크기다. 뱃머리에 큼직한 여신의 조각상이 우뚝 서 있고, 금색 몸은 번쩍이는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돛까지 금색을 두른 호화로운 선박은 마치 디즈니랜드에나 있을 법한 놀이공원 같았다.


“넷이 타는데 이렇게 큰 배가 필요하다고?”


확인삼아 스키잔을 보니 굉장히 죄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런 뗏목밖에 준비하지 못해 송구하옵니다. 소녀?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신다면 마왕님에 걸맞은 선박을 준비하겠나이다.”


“됐다.”


확실한 거절의 의미를 담아 나는 답했다. 스키잔이 생각하는 마왕에 어울리는 선박이라는 게 뭔지 몰랐지만 상황을 더 악화시켜봤자 좋을 게 없다.


“뭐, 이미 사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그걸 자신에게 하는 대답으로 착각한 발트 해상조합장이 들뜬 얼굴로 뭐라 말하더니 서류를 꺼냈다.


“그런데, 선원은 필요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정도 크기면 최소 50은 필요하고말고요, 암암. 마침 한가한 놈들이 다음 일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떠십니까?”


선박의 이름을 정하는 서류에 대충 아무 이름이나 휘갈겨 적은 나는 종이뭉치를 발트에게 던졌다.


“필요 없다.”

“그, 그러십니까요... 따로 선원들을 챙겨 오신 거겠죠...”


조금 주눅 든 발트는 해상조합장으로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기억해냈는지 다시 물었다.


“출발은 언제쯤 하실 예정이십니까? 여기까지 오느라 지치셨을테죠, 마침 조합 근처에 적당한 숙소가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

“... 예?”


내 말을 신호로 한 것처럼 선박을 항구에 묶어두고 있던 두꺼운 밧줄이 알아서 풀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도 미풍 하나 없이 잔잔했던 항구에 동풍이 무섭게 몰아쳤다.

불가사의한 현상에 입을 반쯤 벌린 발트에게 나는 말했다.

지금 출발한다.


작가의말

오늘은 잠이 늦게 까지 안 와서 보너스 화 입니다. 


새로 작품을 하나 써봤는데 그 쪽도 관심 가져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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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장로회의 +1 19.09.12 471 10 9쪽
» 항구도시 프냐르 +1 19.09.09 490 11 11쪽
65 짧은 여정의 출발 +1 19.09.08 515 11 9쪽
64 하이엘프 +1 19.09.04 559 12 9쪽
63 사전 준비 +3 19.09.01 551 15 10쪽
62 그들의 이야기 +1 19.08.29 563 12 10쪽
61 신의 사자 +1 19.08.25 567 12 10쪽
60 제물 +1 19.08.22 556 13 9쪽
59 반격 +4 19.08.18 597 13 10쪽
58 승전 +3 19.08.15 618 15 10쪽
57 기폭 +3 19.08.11 569 12 9쪽
56 습격 +2 19.08.08 593 13 9쪽
55 초전 +1 19.08.03 630 13 9쪽
54 군복 +2 19.07.25 610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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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제국의 침공 +1 19.07.18 697 15 9쪽
51 환청 +1 19.07.14 665 14 10쪽
50 아침 +3 19.07.11 749 1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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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빙의 능력자 +1 19.06.06 771 17 9쪽
46 살인 청부업자(11세) +1 19.06.02 817 17 9쪽
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804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6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76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2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3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2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22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13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3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38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6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8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32 32 10쪽
31 앞으로의 연재 공지 및 1권 후기 +3 19.03.25 1,474 21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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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2 19.03.23 1,459 37 9쪽
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16 34 8쪽
25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37 36 9쪽
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75 36 8쪽
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41 38 8쪽
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37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43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75 38 8쪽
19 광맥의 던전에 가다 +3 19.03.15 1,562 3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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