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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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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449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06.01 00:49
조회
797
추천
17
글자
11쪽

대(對)인간병기

DUMMY

“시이나?”


소년이 중얼거리는 걸 제이드는 정신이 반쯤 나간채로 들었다.


“류셀, 허세인게 당연하잖아. 얕보이고 싶지 않아서 마타고트는 그런 말을 한 거야.”


시이나가 소년ㅡ류셀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 팔이 가리키는 곳을 눈으로 따라가 본 제이드는 입을 벌렸다.


마지막 순간에 조준이 빗나간 마법은 그대로 대각선을 그리며 천장의 왼편으로 날아가, 건물의 절반을 없애버린 것이다. 시이나가 아니었다면 교회의 마족들은 전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저 녀석은 아까 저 남자를 지키려 몸을 던지지 않았나? 막을 자신이 없다면 왜 그런 짓을?”

“자기 몸을 희생하려고 한 게 당연하잖아! 죽음을 각오하고 제이드를 구하려 한 거야.”


소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어본 것에 시이나가 일침을 가한다.


“눈물나는 자기희생이라는 건가. 그런 건가.”


소년은 그걸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처음부터 제이드와 교회의 마족들은 죽으나 사나 큰 영향이 없다는 듯이.


“보스. 저보다 불 계통 마법이 약하다는 건 조금 아니지 않습니까...? 방금 공격도 손대중하신 거였죠?”


푸른 머리의 소녀ㅡ린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태양을 삼킬 수 있는 늑대와 어떻게 견주겠어. 린이 그럴 마음만 먹으면 왕국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지 않나?”

“맞습니다, 누님도 충분히 규격 외라고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시이나와 달리 검은 옷을 입은 3인조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이드는 마타고트의 다리가 풀려 균형을 잃으려 하는 걸 부축해주었다.


“괜찮아?”

“이제... 무리이...”


허우적대는 마타고트를 본 제이드는 자신의 무릎에 그녀를 뉘인채로 류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됐잖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내버려둬. 모두도 무서워하고 있다고.”


몸을 웅크린채 바닥에 붙어 떨고 있거나 아예 정신을 잃은 자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반격하려고 하는 자가 없다는 게 제이드의 마음을 콕콕 찔러댔다. 저런 강대한 힘 앞에서는 저항할 의미조차 없다고 전부 포기해버린 것이다.


“정말이지 꼴사납군.”


아무렇지도 않게 모두를 죽여버릴 정도의 공격을 날린 소년의 검은 눈이 순간 붉게 빛난 것 같았다.


“시이나, 정말 여기가 마족의 피난소가 맞는 건가?”

“그러니까 말했잖아, 류셀. 다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폐해져 있다고. 그럴만도 해.”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다. 패배자들이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고 있을 뿐이야. 리더라는 놈은 도대체 뭘 하고 있지?”

“...”


제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그걸 힐난하는 눈으로 본 소년은 하, 하고 한숨을 쉬더니,


“여기 있는 아흔두명이 전부 겁쟁이들인가.”


류셀은 큰 목소리로 그렇게 비난했다.


“너희들은 인간에게 사육된 가축인가? 길들여진 애완동물인가? 팔다리가 있고 제각기 능력이 있다. 적을 후려칠 수 있고 마법을 날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서 싸울 생각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기만 하고 있군. 비참하게 말이야.”


제이드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해야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까 고양이에게 지켜진 거기 너. 시이나의 지인. 네가 리더지? 발톱을 세웠으면 달려들어야 할 것 아닌가? 뭘 기다리고 있어. 어서 덤벼봐라. 이대로면 전원 살해당한다.”


상대가 전혀 되지 않잖아, 라고 제이드가 마음 속으로 외쳤다. 방금의 마법은 왕정마법사 여러명이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합을 맞춰야 겨우 쓸 수 있는 레벨의 것이다. 그걸 혼자서 영창도 없이 쓰다니.


운 좋게 소년에 접근한다 해도 순식간에 잿더미가 될게 뻔하다. 승산이 없는 상대로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제이드가 움직이지 못하자 흥미를 잃었다는 듯 류셀은 등을 돌렸다.


“이래서야 여태껏 펫으로 살아온 게 당연하게 보이는군. 이런 패배근성을 갖고 있다니. 실망이다. 인간들에게 짓밟힐 일만 남았군.”

“보스, 일없는 놈들이면 전부 태워버릴까요?”


흑발의 남자ㅡ가름이 어깨를 풀며 묻자 제이드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됐다. 놔둬도 조만간 알아서 죽을 놈들이다.”

“하핫,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잠깐.”


시이나가 떠나려는 소년의 어깨를 잡았다.


“류셀. 계획은 어떻게 할 거야?”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이미 플랜 B도 준비해 두었어. 적어도 너 정도의 각오를 다진 놈들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콩나물 덩어리들일 줄이야. 이쪽에서 제공해줄 수 있는 것과 수지가 맞지 않아. 비즈니스를 하기에는커녕 도구로 써먹을 수도 없다.”

“그런...”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의 승리는 확정되어 있다.”


이미 결론은 내렸다는 것처럼 딱딱한 말투였지만 시이나는 굴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 모인 모두는 도움이 필요한 거잖아? 저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할 거라구?”

“시이나, 잊었나.”


류셀의 눈이 너무나도 차가운 색을 띠어,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만 있을 뿐인 제이드의 몸에 오한이 돌았다.


“네가 구했던 상대가 이번 전쟁의 발단이 된 것을. 이타주의가 불러오는 결말이 다른 것보다 끔찍할 수 있다는 것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얘기하지는 않겠지.”

“큿... 잠시만 기다려줘. 그래도 이야기를 듣고 올게."


정확히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제이드가 들은 건 ‘이번 전쟁’이라는 구절이었다. 저들을 그냥 돌아가게 놔두면 자신들에게 있어 좋지 않은 일이 될 거라는 걸 제이드는 어렴풋이 느꼈다.


“제이드, 미안해. 피난처를 이렇게 부술 생각은 없었는데...”


종종걸음으로 시이나가 다가오자 제이드는 질문을 쏟아냈다.


“저기, 시이나. 전쟁이라는 건 뭘 말하는 거야? 이 자들을 이리로 안내한 건 시이나지...? 무슨 용건으로 그랬던 거야?”

“그건ㅡ”


시이나의 말은 입구 쪽에서 들려온 소년의 목소리에 의해 끊겼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알트레아 왕국의 마족 전원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마족 사이의 정보 전달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으니 말이지.”

“메시지라고...?”


단지 그것 때문에 저만큼의 인원을 대동하고 온 건가. 시이나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도 신경 쓰였다.


“제국과의 전쟁이 임박해있다. 살고 싶다면 나에게 협력해라, 라는 메시지다.”

“제국?!”


제일 먼저 제이드가 놀라 외쳤다. 그 충격은 곧 다른 마족들에게도 전해졌다.


“어째서 이런 상황에서 왕국이 제국과 전쟁을?!”

“이쪽이 쳐들어오는 게 아냐. 저쪽이 침공해오는 거다. 이미 선전포고문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확실해. 빠르면 금주에 적의 함성이 들려오겠지.”

“그런...”


너무나도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원래는 너희들이 살 길을 제공해주려 했었으나, 마음이 바뀌었다. 그나마 줏대가 있는 놈은 네놈을 지키고 뻗어있는 검은 고양이 뿐이다.”


류셀은 마타고트를 가리키며 잔뜩 주눅 든 마족들에게 신랄한 비난을 가했다.


“나라는 확실한 위협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걸 배제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현실 도피를 했다. 이 건물이 반파됐을 때도 말이지. 그런 놈들이 전쟁, 아니 운 좋게 이번에 살아남더라도 평생 인간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건 자명한 이치. 자립할 의지조차 없는 네놈들이 뭘 할 수 있나?”


“나... 는...”


“전쟁이 할 수 있는 좋은 일은 너희같은 쓰레기들을 없애준다는 점이지. 정보료는 교회를 부순 것으로 퉁쳐 주겠다. 도망치든,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든 마음대로 해라. 돌아간다, 시이나.”


“... 알았어.”


시이나는 제이드에게 고개를 한번 숙이더니 류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잠깐!”


큰 소리를 낸 제이드는 최대한 떨림을 막으려하며 말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였지...? 적어도 그게 뭔지는 알려주지 않겠어?”


순간 소년이 살짝 웃은 것 같았다.


“그렇게 보고 싶다면 보여주지. 가름, 그 인간을 데려와라.”


고개를 숙인 가름의 발 밑에 작은 마법진이 생겨나고,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전이 마법...? 그런 걸 쓸 수 있는 사람이 왕국에 있다고는...!”

“거기서 놀랄 게 아니다, 궁핍한 마족의 리더.”



류셀이 휙 하고 던진 물건을 제이드는 반사적으로 받았다. 작은 크기에 꽤 묵직한 철제 도구였다. 기이한 모습의 그건 도통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손잡이 같은 부분은 발견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제이드의 눈앞에 인간 남자 한 명이 던져졌다.


“시이나. 네것을 잠시 빌려줘라.”


시이나도 같은 철제 도구를 꺼내 류셀에게 건넨다. 버튼을 눌러 탁, 하고 원통 모양의 철덩어리를 꺼내 안에 있는 납덩어리들을 뺀 그는 보란 듯이 그 도구로 인간 남자를 가리켰다. 어째서인지 튼튼한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제국과 내통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기사다. 타인의 마족 노예를 납치해서 실컷 즐기고 죽인 재물손괴죄도 포함해서 말이지.”


류셀의 말에 제이드의 눈깔이 뒤집혔다.


“죽이고 싶지?”

“... 그래.”


제이드가 분하듯이 말하는 걸 보고 류셀이 웃는다.


“죽이게 해주지. 원래 그렇게 비쩍 마른 몸으로는 정규 기사를 상대할 수 없겠지만 그 도구를 쓰면 갑옷 따위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돼.”

“간단하다. 이렇게 겨누고 이 부분을 검지로 당겨라. 자세가 흔들리지 않도록 천천히 말이지.”


제이드는 그가 시키는 대로 따라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으면서도.


탕!


굉음이 울리고 인간 남자가 귀를 찢는 비명소리를 질러댔다. 귀가 멍멍했다. 마찬가지로 귀를 막은 마족들 중 하나가 이변을 발견하고 제이드를 불렀다.


“제이드, 저거 봐! 인간이 피를 흘리고 있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아래를 바라본 제이드의 눈이 흔들렸다.


정말이었다.

인간이 두른 갑옷에는 구멍이 나있고, 그 사이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 하하...”


제이드는 웃음이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토록 미운 인간이 이렇게 쉽게 죽어가고 있다.


“하하...!”


총성이 계속해서 울렸다. 방아쇠를 당겨대는 제이드의 입가엔 끔찍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죽어...! 죽어! 어서 죽으라고...!”


더 이상 그 큰 소리가 나지 않게 되고 나서도 제이드는 미친 것처럼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어때, 기분 좋지? 힘이라는 건. 정말 최고의 기분이 아닌가?”


어느새 그의 옆에 선 류셀이 조용히 말했다.


“넌 합격이다. 잔뜩 죽이게 해주지. 그 끔찍한 인간들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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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제국의 침공 +1 19.07.18 690 1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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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노트북이 고장나서 잠시 휴재합니다 +3 19.06.18 817 1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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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07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69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02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48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67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36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14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07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65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32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5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1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22 32 10쪽
31 앞으로의 연재 공지 및 1권 후기 +3 19.03.25 1,447 21 1쪽
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10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16 38 10쪽
28 명령을 내리다 +4 19.03.23 1,395 35 8쪽
27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2 19.03.23 1,448 37 9쪽
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02 34 8쪽
25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24 3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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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20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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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29 3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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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는 시비 걸어야 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 +2 19.03.12 1,562 37 9쪽
17 사슬은 묶었다 +3 19.03.12 1,604 43 7쪽
16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2 19.03.11 1,605 40 8쪽
15 대련을 하다 +2 19.03.11 1,727 37 8쪽
14 몰살은 성공적이었다 +6 19.03.10 1,722 36 8쪽
13 도적 소탕전을 시작하다 +3 19.03.09 1,776 3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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