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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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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477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05.30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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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
추천
17
글자
11쪽

전쟁의 피스

DUMMY

간단한 아침 식사가 차려진 테이블에 제일 늦게 나타난 건 역시 시이나였다. 처음 보는 두 사람이 앉아있는 걸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질문을 요구하는 것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아, 시이나 씨? 이쪽은 류셀 씨가 데려온 린 씨와 가름 씨예요.”


이스가 대신 소개하자 시이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그 귀, 웨어울프구나? 직접 보는 건 꽤 오랜만이야, 반가운걸.”

“네... 가름 씨, 라고 하셨죠? 실례지만 두 분은 어느 종족이신가요?”

“나는 헬하운드. 누님은 펜리르야.”


어제 둘이 왔을 때는 말하지 않았던 종족명이었지만 이스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화들짝 놀라 넘어질 뻔한 건 시이나 쪽이다.


“그런...! 대전쟁ㆍ라그나로크 때 멸종했던 게...!”

“어쩌다보니 살아있게 됐네. 그렇게 신기해?”

“신기해할 것 없습니다. 시이나라고 하셨죠. 오늘 일, 잘 부탁드립니다.”


린이 먼저 시이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스 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이스도 그걸 느꼈는지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네... 그런데 오늘 일이라니, 뭘 말씀하시는 건지...”


린이 말해도 되냐는 물음을 담아 나를 본다. 나는 대뜸 시이나에게 말을 걸었다.


“시이나.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일? 뭐야, 갑자기...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행정 업무라면 이스에게 맡기는 게ㅡ”

“마족이 사는 구역에 오늘 방문할 예정이다. 용건은 대충 짐작 가겠지.“

“역시 그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업무는 이스에게 맡겨두었다. 이스를 제외한 넷으로 마족의 거주지구로 향한다.”




마족은 왕국에서 시민 대접을 받지 못한다.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할뿐더러 구할 수 있는 직장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길 한복판에서 납치당해 노예로 팔린다 해도 누구에게도 호소하지 못한다.



효율대비 가격이 저렴한 마족 노예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가사노예, 노동노예, 그리고 성노예다. 그 중에서 제일 수요가 높은 건 성노예였다.


지난 수년간 경제가 바닥을 치는 와중에 성노예를 살 여력이 있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생활의 고충 때문에 생긴 억압된 분노를 풀기 위해 성노예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문자 그대로 ‘무엇을’ 해도 좋은 마족 성노예가 잔뜩 윤간당하고 뒷골목에 버려지는 광경은 왕국에서는 이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유별난 취향의 고객들 손에 걸리면 구석구석 날붙이에 찢기고 온 몸의 뼈가 부러지거나, 수인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들개와의 성행위를 강요당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태어나면서 부여받는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을 박탈당한 마족은 짐승보다 아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런 이유로 인간을 피하여 자연히 그늘진 곳에서 살게 된 마족들은 절도나 밀수 따위의 범죄 행위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자신들의 출신을 저주하고, 인간을 저주하며.


“국왕이 바뀌었다는데 이 바닥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네.”


제이드는 돌멩이를 손바닥 위에 놓고 굴리며 혼잣말을 했다. 그가 있는 건물은 한때 교회로 쓰이던 곳으로, 지금은 아인을 포함한 마족들의 은신처로 사용되고 있었다. 더 이상 종교적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이곳은 모두들 교회라고 불렀다. 최근 들어 교회 안의 마족들이 부쩍 불어난 것은 제이드의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고양이 귀를 한 소녀가 살랑살랑 걸어와 제이드의 맞은편에 앉았다.


“왜 그래, 제이드? 고민이라도 있어어?”

“별로.”


제이드는 이 소녀 모습을 한 마족과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얘기하면 할수록 내면이 파헤쳐지는 것 같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또 그런다~ 얘기하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나아?”


요망하게 웃는 소녀의 이름은 마타고트. 검은 고양이 귀가 뾰족 솟아있는 가련한 소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방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녀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제이드는 알고 있었다. 2주 전 교회에 나타났을 땐 비명을 지를뻔 했다.


“나를 위하는 척은 하지마, 마타고트. 네가 악한 존재라는 건 알고 있단 말이다. 네 꾀임에 넘어갈 것 같아?”

“참 평이 박한걸~ 나는 딱히 항상 해치거나 하지는 않는다구? 잘 챙겨주면 행복을 불러올지도 몰라아.”


마타고트는 고양이처럼 움켜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다, 저만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족들을 가리켰다.


“저 아이들한테는 행복이 필요하지 않을까냥?”

“대가로 줄 먹이는 없다. 나라가 뒤집힌 판국에... 이제 단두대로 끌려가는 건 우리 마족들이 될지도 몰라. 네가 이곳에 나타난 건 불행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냐?”

“정답~!”


환하게 웃으며 박수치는 마타고트였다.


“응? 그렇게 쳐다보면 섭섭해. 나라고 비웃으려고 온 건 아니야~ 그냥 이곳이라면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온 거야아.”

“우리가 주는 대가가 마음에 안 들었을 때는 저주를 내릴 거잖아. 몇 번을 얘기해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이드는 이 상황을 타파할 타개책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야 민심의 분노가 귀족과 기득권층에 향해있지만 그 화살이 언제 마족으로 돌아설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사실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다.


“제이드는 여기 있는 마족들 전부의 리더인 거잖아아? 슬슬 결정을 내려야 되지 않을까아?”


마타고트는 영악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나라면 어떻게 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구?”

“그건...”


덜컥.


그 순간, 교회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를 맡은 제이드가 발톱을 세웠다.


탁, 탁.


천천히 걸음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은 소년이었다. 흥미가 없다는 눈으로 교회 내부를 훑어보는 소년과 제이드의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쳤을 뿐이지만 웨어하이에나의 본능으로 제이드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 반응은 제이드에 한한 것도 아니다. 아흔 두 명의 마족들은 하나같이 소년을 피하는 것처럼 뒷걸음질쳤던 것이다.


단지 양손을 코트 주머니에 꽂고 있을 뿐인 그 소년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났다. 먼저 용건을 말하려는 것 같지도 않다.


그 용건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이유로 제이드와 모두를 죽이려 온 것이다. 그렇게 직감적으로 이해한 제이드는 주위를 살폈다. 다 지레 겁먹고 주눅 들어있다. 자신이 먼저 달려들어 시간을 버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ㅡ”


제이드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방금전까지는 옅게 느껴지던 검은 공포가 갑자기 목을 죄는 것처럼 닥쳐왔다. 숨을 쉬기도 곤란했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동공은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계속 경련한다.


“ㅡ류셀.”


그 말이 들리고 공포는 눈 녹는 것처럼 없어졌다. 고개를 든 제이드는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두가 엎어져있다는 걸 깨달았다.


“설득하러 오기로 한 거잖아. 갑자기 그렇게 마법을 쓰면 미움받아.”


소년 뒤에서 아는 얼굴이 나왔다.


“시이나...?”

“어라, 제이드잖아!”


시이나는 반가운 얼굴을 하고 제이드에게 오려했으나 소년의 팔이 그걸 제지했다.


“아직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위협을 배제할 때까지 섣불리 움직이지 마라, 시이나.”

“류셀? 하지만 제이드는 나랑 아는 사이ㅡ”

“아는 사이라고 방심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하나.”


류셀이라 불린 소년이 고갯짓을 하자 기묘한 검은 옷을 입은 수인 둘이 그 옆에 나란히 섰다. 검은 머리의 남자와 파란 머리의 소녀였다. 여자 쪽이 제이드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그쪽의 당신. 어째서 보스에게 적의를 품었습니까.”

“나... 나?”


귀를 봐서는 시이나와 같은 웨어울프라고 생각됐지만 제이드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발톱을 세운 건 전부 이 눈으로 봤습니다. 마족이라고 한들 그런 적대 행위, 제가 가만히 놔둘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제이드의 착각일까, 소녀의 희푸른 머리가 타오르는 것처럼 넘실거리는 것 같았다. 모든 걸 태워버릴 푸른 불꽃.


돌연히 푸른 화염이 자신을 향해 닥쳐오는 그 순간에도 제이드는 움직이지 못했다.


“누구시길래 남이 점찍은 사람에 손을 대려는 걸까아?”


제이드가 눈을 살며시 뜨니 마타고트가 손을 벌리고 그의 앞을 막고 서있었다. 푸른 화염이 직격한 곳은 제이드의 뒤에 있는 지휘대로, 꺼지지도 않고 퍼지지도 않는 불이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입니까. 처음부터 그를 맞출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계속 저항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곳에서 비키세요.”

“싫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건데에?”

“보스.”


소녀가 한 발짝 물러서서 소년의 의향을 묻듯이 고개를 돌렸다. 소년은 마타고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느닷없이 다른 말을 꺼냈다.


“가름. 저건 단순한 검은 고양이가 아닌 것 같다만. 틀린가?”

“아, 그러네요 보스. 누님의 말도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순 없지만 저건 마타고트 아니겠습니까? 보통 악하다고들 하는데 항상 그런 건 아닌 알쏭달쏭한 녀석입니다.”

“강한가?”

“글쎄요...”


검은 머리의 남자가 대답하는 걸 들은 소년이 고개를 혼자 끄덕였다.


“린, 잠시 물러나 있어라.”

“예, 보스.”


푸른 소녀가 물러나고, 시이나가 뒤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게 보였다. 소년은 다섯 걸음 정도 걷더니 손을 들어 제이드를 지키고 선 마타고트를 가리켰다.


“고양이. 원래 왕국에 살던 놈이 아니지? 네 용건을 말해라. 어째서 이곳에 있나.”

“이상하네에... 그쪽부터 먼저 말하는 게 예의라구? 쳐들어온 건 그쪽이잖아아?”


날이 선 대답을 돌려주는 마타고트를 보고 눈앞이 잠시 하얘진 제이드였지만, 소년은 의외로 화를 내지 않았다. “그것도 그런가.”, 라고 혼자 말하며 수긍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흥미가 생겼다. 마타고트라고 했지? 린의 화염을 막으려고 한 걸 보았다. 그건 막을 자신이 있어서 그런 건가?”

“그 정도의 불꽃, 못 막는 게 곤란한 거얼.”


제이드는 마타고트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겠지. 문제는 상대가 그걸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는 점이었다.


“그럼 한 번 증명해주지 않겠나. 내가 쓸 수 있는 불 계통 마법은 린의 것보다는 약하니까 말이지.”


소년이 핀 손바닥 위에 타닥, 하고 검은 불씨가 피어나더니 곧 주먹만 한 불꽃 덩어리로 바뀌었다. 제이드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으나 왜인지 마타고트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검은 불꽃...? 잠깐... 굳이 여기에서ㅡ”

“막아봐라.”


그 직후, 교회는 반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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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초전 +1 19.08.03 623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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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첫 번째 함락 +1 19.07.22 647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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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살인 청부업자(11세) +1 19.06.02 808 17 9쪽
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798 17 11쪽
» 전쟁의 피스 +1 19.05.30 808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69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02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48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67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36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14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07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65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32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5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1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22 32 10쪽
31 앞으로의 연재 공지 및 1권 후기 +3 19.03.25 1,447 21 1쪽
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11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17 38 10쪽
28 명령을 내리다 +4 19.03.23 1,395 35 8쪽
27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2 19.03.23 1,448 37 9쪽
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02 34 8쪽
25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24 36 9쪽
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67 36 8쪽
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21 38 8쪽
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16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29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66 38 8쪽
19 광맥의 던전에 가다 +3 19.03.15 1,547 37 8쪽
18 그는 시비 걸어야 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 +2 19.03.12 1,562 37 9쪽
17 사슬은 묶었다 +3 19.03.12 1,604 43 7쪽
16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2 19.03.11 1,605 40 8쪽
15 대련을 하다 +2 19.03.11 1,727 37 8쪽
14 몰살은 성공적이었다 +6 19.03.10 1,722 36 8쪽
13 도적 소탕전을 시작하다 +3 19.03.09 1,777 3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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