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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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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472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03.2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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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10쪽

피의 연회가 열렸다

DUMMY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단 네 명을 제외하고 연회장은 암시에 걸렸다.


우아하게 차를 마시던 귀족 도련님은 스테이크 나이프로 자신의 어머니를 찌른다. 머리를 땋아 산을 만든 여부인은 황금촛대를 들고 남편의 머리를 찍는다. 충실하게 접객하고 있던 웨이터와 메이드들은 접시를 깨고 그 파편으로 무차별적으로 상대의 살점을 탐한다.


상급 모험자라는 놈들 중에도 내 암시에 걸리지 않은 놈은 단 하나도 없었다.

금의 장미도 포함해서 전부 정신줄을 놓고 내 명령에 따라 살육에 참가했다. 그곳엔 지난번까지 비치던 조금의 동료애도 없었다.


내게 주어진 '역할'이 지나치게 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단상 아래에서 피를 뒤집어쓰지 않은 자는 없다. 결국 상급 마물이라는 드래곤을 오랫동안 퇴치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저 벌레들은 그 치졸한 쓰레기급도 되지 못했다.


여러 종류의 마법이 사방에서 터지는 건 폭죽을 방불케 했다. 근위대는 잘 닦인 검으로 지켜야 할 국왕의 시신 대신 높으신 분들의 머리를 잘랐다. 황금 접시에는 스테이크 대신 사람의 목이 놓였다.


피의 광란이다.


인간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옆의 사람을 죽이려 하고, 상대 또한 마찬가지다.


“류셀... 이건... 도대체...”


한순간에 펼쳐진 지옥도에 시이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걱정마라. 셋은 타겟에서 제외시켜 두었다.”


시이나는 계단을 끝까지 오르려다 내 대답을 듣고 발을 멈췄다.


“이스, 잘 봐라. 이게 알트레아 왕국의 끝이다.”


잽싸게 수라장을 피해 이쪽으로 대피한 이스가 머리를 살짝 숙이며 예를 표했다.


“새로운 국가의 수장은 류셀이 되는 건가요?”

“아니. 표면상의 허수아비는 필요하다. 단장.”

“예.”


자신을 붙잡고 있던 근위대가 서로 죽여 댄 덕분에 풀려난 기사단장이 계단 밑에서 내게 무릎을 꿇었다.


“기사단장은 차기 국왕으로 일 해줘야 할 거다. 알았지?”

“예, 블레이크 각하.”


이쪽에서 손을 쓸 필요도 없다. 이번 판의 모든 피스는 갖췄다.


기사단장 직속 왕국기사단은 이번 일에서 손을 떼도록 해두었다. 그들에게 있어 단장은 실패했지만 끝까지 국왕을 위해 싸운 영웅이 되는 것이다. 국왕 암살의 죄는 다른 왕족과 귀족들에게 뒤집어씌울 예정이다.


잔챙이 중에도 그나마 강한 게 왕국기사단이라고 시이나가 말했었으니 이제 왕도 점거는 쉽다.


문제는 시민들. 그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둔 계획이 있다.


“너무 이 능력에만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겠지.”


나는 붉은 마안을 해제하며 혼잣말을 했다.


내 암시는 무적이 아니다.

나의 역할 중 일부로써 그곳에 있는 능력일 뿐이다. 고급 정신계 대항마법을 쓰는 자는 암시가 걸리지 않고, 이미 걸린 자의 암시를 풀 수도 있다.


70년 전의 인마전쟁에서는 인간이 이겼다. 쇠퇴한 왕국의 이것들이 인간 측 최전선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강한 자는 있겠지. 나 같은 마왕이 있다면 그에 준하는 용사가 있어야 앞뒤가 맞는다.

모든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내 계획을 막아서는 그런 놈이 나타날 수도 있다.


허나 만에 하나 기사단장의 암시가 풀리더라도 그는 겨우 얻은 왕권자리를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의 각오는 그때 재확인 했다. 내가 적절한 순간에 재차 암시를 걸지 않아도 기사단장, 아니지, 새 국왕은 국민을 먼저 생각할 테니 국민 전체를 인질로 잡으면 된다.


“처음부터 이 곳을... 알트레아 왕국을 먹을 생각이었던 거야, 류셀? 나한텐 그런 얘기, 한 마디도...”


시이나의 말이 내 생각을 비집고 들어왔다.


“물론. 마족의 부흥을 위해선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렇다고...! 그렇다고 해서!”


시이나는 죄책감으로 얼룩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전부 죽일 필욘 없었잖아? 류셀!”

“썩은 잡초를 제거하는 중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국왕의 폭거를 눈 감아왔으니.”

“그래도 가족끼리 전부 죽이게 할 필요까진! 죄 없는 사람들까지...!”


내 곁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단장은 시이나의 말투에 눈을 찡그렸다.


“네 년, 아무리 각하와 아는 사이라지만 이 이상의 폭언은 용납하지 않겠다!”


기사단장의 검술은 시이나보다는 위다.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자가 내뿜는 노기에 시이나는 움츠렸지만 굽히지는 않았다.


“나는 류셀과 할 이야기가 있어요. 거기서 비켜주지 않겠어요?”

“이 년이 끝까지ㅡ”


검을 뽑으려는 기사단장.


“됐다. 단장. 의견 상신은 좋은 일이지. 말투 같은 건 사소한 일이다.”

“예, 각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기사단장이 다시 열중쉬어 상태로 돌아가자 나는 왕좌에서 꼰 다리를 바꾸며 본래의 질문에 답한다.


“시이나는 인간이 미운 게 아니었나? 죽은 건 전부 인간 뿐이다만.”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어!”

“살려둘 이유가 없으니 죽였다. 그 뿐이다.”

“큿,”


시이나가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내 방식이 맘에 안 드는 거겠지. 아무리 말해 봐도 그 가치관의 차이는 좁히지 못한다.


나는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나머지 왕족은 내일 동이 트고 나서 바로 공개처형해라. 전임시켜두었으니 실망시키지 말도록.”

“예, 각하.”


무조건 명령에 따르라는 암시에 걸린 기사단장은 왕을 대하는 충직한 부하로서 내 명령을 받든다.


이 모든 게 오류 없이 흘러갈 수 있었던 건 왕성 내 통신마법 사용의 부재다.

왕국은 마족을 떠오르게 한다는 마법을 천대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거다.


“오늘밤 연회에는 고위 관리들이 대거 참가했다. 이제 나머지만 처리하면 더 이상 왕국이 아닌, 마족의 나라가 된다. 네가 원하던 평등한 나라가 생긴다. 그거로는 불만인가, 시이나?”


“저들 중엔 죄 없는 자들도 있었어!”


시이나는 얼굴을 싸쥐며 자신의 뺨에까지 묻은 핏자국을 만졌다.


“그 양아치들. 기사들. 도적들은 이해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반인을 말려들게 하는 건 마족의 도리에서 어긋나... 나는 적어도 그럴게 알고 있었어. 하지만 류셀은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거구나? 기억상실로 인한 정보수집이라는 건 이런 거였어?”

“인간은 마족의 적이다. 반대로, 마족은 인간의 적이다.”


나는 그렇게 운을 뗐다.


“이 세계에서 두 종족 간 통합은 이루어진 적이 없다. 오랜 역사로부터 퍼지는 갈등은 전란의 불씨가 된다. 마족이 다시 부흥하게 된다면 그걸로 돼. 수십, 수백, 수천, 수만, 아니 수억의 생명이 죽어도 내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나... 나는...”

“나에 대해 어떠한 인상을 품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게 현실이다, 시이나.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내게 살인에 익숙하냐고 물어봤었지? 그에 대한 진실한 대답을 이제 들려주지.”


온갖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참석자들이 서로를 죽여 대는 걸 보며, 나는 왕좌 받침대에 얹은 손에 턱을 괴었다.


“이전 직업이 평범함과는 거리가 좀 멀어서 말이지. 저 정도의 죽음은 별것도 아니다. 꽤 맛있는 안주가 나왔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안주...?”


시이나는 내 말의 뜻을 이해하고 공포감을 품었다.


“이게 전부 류셀에 있어서는 안주라는 거야...? 이렇게 사람들이 처절하게 죽어 가는데?”

“극상까지는 아직 아니지만 꽤 비슷하지.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 친한 친구. 친척. 같은 관리 동료. 연회에서 웃고 떠들며 자신감에 차있던 놈들은 이제 자아 없이 살육에만 몰두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 아이러니함이 재미있지 않나? 너무 고깝지도 않아서 웃음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저들은 분명 많은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관계에 자부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것들 전부는 고작 말 한마디에 의해 와해되어, 변질되어 버렸다.”

“류셀... 너는 마족의 편인거지?”

“오히려 이쪽에서 물어보고 싶다만. 진정으로 마족을 위한다면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인간 따위에 동정을 느끼는 너는 정녕 마족의 편인가?”

“나는... 나는...”


시이나가 혼란스러워져서 피 묻은 손을 내려다보고, 이제 아무도 살아있지 않은 연회장을 보았다.


“모르겠어... 나는...”

시이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달려 나갔다.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겠지. 생각보다 마음이 여린 시이나에게는 너무 충격이 컸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나, 기사단장?”

“훌륭하셨습니다, 각하. 제게 이런 도움을 다 주시고... 감사드릴 뿐입니다.”


기사단장에게는 무조건 내 명령을 따르게 하는 암시를 걸어두었다. 이걸 도움이라고 보다니, 어쩌면 단기적으로 봐서는 일종의 도움일 수도 있겠지.


“앗.”


아래를 관찰하던 이스의 목에서 붉은 띠가 빛나고 있었다. 고대의 문자로 구성된 띠는 한번 밝게 빛나더니 사라졌다.


“마의 계약은 성립됐다. 이제 너는 내 명령에 거역하지 못한다, 이스.”

“알고 있어요, 류셀 씨.”


이스는 자신이 노예로 전락한 걸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쪽 단장 분 말대로 훌륭한 작업이었습니다. 이걸로 제국이 걱정한 왕국의 불씨는 사라졌어요. 제국과 전쟁하려는 왕국의 수뇌부ㅡ과격파는 몰살되었으니까요.”

“어때, 네 자유를 바칠 만큼의 가치가 있었나?”

“물론이에요.”

“높으신 분의 귀감이군, 이스는.”


불특정 다수를 위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ㅡ그걸 당연시하는 이 소녀는 이념적인 면에서 나와 정반대에 서있다. 그래서인지 내 말에는 불쾌함이 살짝 섞여 있었다.


“그럼, 이제부턴 호칭을 주인님이라고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어. 평소대로면 좋다. 그럼 첫 번째 명령이다, 이스. 시이나를 찾아라.”

“네, 류셀 씨.”


이스가 떠난 연회장은 연회가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붉은 색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2퍼센트 부족하다.


“단장. 그 둘을 데려와라.”

“예, 각하.”


작가의말

1권 마지막 화는 내일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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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798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07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69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02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48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67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36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14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07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65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32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5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1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22 32 10쪽
31 앞으로의 연재 공지 및 1권 후기 +3 19.03.25 1,447 21 1쪽
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11 35 8쪽
»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17 38 10쪽
28 명령을 내리다 +4 19.03.23 1,395 35 8쪽
27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2 19.03.23 1,448 37 9쪽
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02 34 8쪽
25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24 36 9쪽
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67 36 8쪽
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20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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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광맥의 던전에 가다 +3 19.03.15 1,547 37 8쪽
18 그는 시비 걸어야 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 +2 19.03.12 1,562 37 9쪽
17 사슬은 묶었다 +3 19.03.12 1,604 43 7쪽
16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2 19.03.11 1,605 40 8쪽
15 대련을 하다 +2 19.03.11 1,727 37 8쪽
14 몰살은 성공적이었다 +6 19.03.10 1,722 36 8쪽
13 도적 소탕전을 시작하다 +3 19.03.09 1,777 3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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