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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455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20.02.16 00:26
조회
288
추천
8
글자
8쪽

난입

DUMMY

하아, 하아.


후욱, 후욱.


거칠어진 호흡을 다시 가다듬는다.


확실히 머리가 뜨거워져있었다. 무엇이 그리 화가 나서 열을 올렸던 걸까.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


잔뜩 파이고 무너지고 불타고 얼은 지면을 피해 선 내 발치엔 회색 머리를 한 청년이 쓰러져있었다.


그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처투성이에, 두 다리는 부러지고 팔은 이상한 쪽으로 꺾여있다. 아직도 창을 쥐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마치 기차에 치이기라도 한 것 같은 중상이지만 상처는 그쪽만 입은 게 아니다.


내 왼팔이 있던 자리에는 붉은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흥분이 가시면서 어깨가 짓이기는 아픔이 돌아오는 참이었다. 아무리 마나로 이루어진 몸이라 해도 감촉은 확실하게 있으니까.


나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내 왼팔을 주워들었다. 언제 팔을 잃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일단 치유마법으로 봉합을 손쉽게 완료.


고유스킬을 해제한 상태에서 싸우는 건 확실히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으로 의태한 용이 선보이는 창술은 반응을 못 할 정도로 재빠르고 예리했다.


피하는게 조금만 늦었더라면 팔 대신 목이 떨어졌을 것이다.


내가 이 세계에 보내지고 나서 맞선 적 중엔 제일 강적이었다. 숙련된 용과의 싸움은 이런 것이군.


처음 들었을 때는 부풀려진 게 아닌가 싶은, 용 한 마리는 충분히 나라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멈... 춰.”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 건 내 발치에서다.


“심장을 뚫었는데, 아직 살아있을 줄이야. 정말 튼튼한 몸이군. 아니면 오기로 버티고 있는 건가?”


그의 끈질김에 이유 모를 미소가 지어졌지만, 나는 바로 표정을 지웠다.


“이렇게까지 분발해줬어. 여동생 쪽은 그나마 자비로 고통없이 목숨을 끊어주지.”

“안... 안 돼...!”


버스트의 발동을 위해 검지로 로그의 이마를 가리키는 나를 저지하려 그가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지만 그래봤자 다 죽어가는 놈의 발악이다.


“다시 말하지만 먼저 덤벼온 건 네 여동생이다.”


세상은 약자에게 상냥하지 않다. 일평생을 압도적인 강자로 살아온 용에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겠지, 이거. 이렇게 가까이서 소중한 이를 잃어야 한다니.


계속되는 출혈로 이젠 아예 정신을 잃은 채인 로그의 이마에 검지를 대며 내가 말했다.


“약자는 결국 지키지 못하는 거다. 너도, 나도.”

“진!”


일대에 우렁차게 울리는 목소리에 나는 귀찮아하며 손을 거두었다.


덩치가 산만한 드래곤이 이쪽으로 쏜살같이 날아오고 있다.


“소리와 시각정보를 차단하는 결계는 쳐두었을텐데.”


적의 원군을 막기 위해 대처를 해두는 건 당연하다. 결계의 중심이 되는 마법진을 확인하자 역시 싸움 도중에 부서졌는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해된다. 풀캐스트ㅡ윈드 카타스트로피.”


모기라도 잡는 것처럼 손을 내두르자 강풍이 발생. 날갯짓을 하며 낙하하던 용을 반대쪽으로 날려버렸다.


로그를 죽이면 드래곤을 산하에 넣는다는 계획에 차질을 빚을지도 모르지만 여기까지 와선 뭐 상관 없다.


애초에 이 오빠라는 놈을 상대한 시점에서 내 생각은 바뀌어 있었다.


이건 부하로 두기에도 너무 강력한 힘이다. 비록 고유스킬을 해제한 채 싸웠다고는 해도 리타이어하기 전에 내 팔 한쪽을 가져가는 것엔 성공했다.


유독 이 놈이 강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정도의 힘을 갖고 영겁의 시간을 살아온 긍지 높은 용들이 완전히 굴복할 것 같지도 않다. 강제로 마왕군에 넣어봤자 틈만 나면 배신을 생각할 것이다. 나와 뜻이 맞아 충성을 맹세한 린과 가름과는 경우가 다르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여동생을 지키려 한 이 놈이 제일 좋은 예다.


나는 다시 검지를 로그의 이마에 가져갔다.


“버스트.”


...


.


.


?


어째서 나가지 않지?


버스트가 발동되지 않은 것에 의아해하며 손을 거둔 나는 어느새 들판에 새로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보았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은 상시 발동 중인 내 탐지마법에도 걸리지 않았다. 전이마법이 발동된 것 같지도 않았다.


“싸움은 금지라고 했을 텐데요, 블레이크 씨.”


이전처럼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건 도저히 생물같지 않은 여인, 디였다.


“제때 와서 다행입니다.”


현자 디는 부드럽게 말해왔다.


“안타깝지만 그 둘의 목숨을 빼앗는 건 이 마을을 지켜보는 자로서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마법이 나오지 않는 건 네 짓... 이군.”


물으려던 나는 들판을 감싸는 형태로 세 개의 마법진이 멀리 떠 있는 걸 보고 범인을 확정지었다.


마법의 봉인이 가능한 건 어느 한쪽이 일대의 마나를 다 긁어모아 대마법을 시전하고 있을 때 뿐이라 생각했지만, 딱히 그런 느낌은 없다. 도대체 무슨 수로 봉인한 거지?


나는 고유스킬이 제대로 발동되는 걸 확인하고 시험 삼아 다른 마법들도 사용해보았다.


내 손안에서 작은 화염구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바람이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위로 올라갔다.


봉인된 건 암 속성 마법 뿐이다. 고유스킬 및 기타 속성의 마법은 정상적으로 시전 가능하다.


하지만 몸을 구성하는 마나부터가 암 속성으로 물들어있는 나로서는 꽤나 큰 패널티였다.


여기서 현자까지 쳐야 하나? 상대의 능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익숙하지 않은 마법으로 상대하라고?


“앞뒤 사정은 대략 짐작이 가요. 분명 그 아이가 무책임한 제안을 꺼낸 것이겠지요. 그 교훈은 이미 본인도 충분히 얻었을 테니 여기선 노여움을 풀어주시지 않겠나요.”


가능하다. 특기인 속성 마법을 봉인 당했다고 해도 내게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건 변함이 없다.


이 자리에서 라드레이드 전체를 돌려도 내게 리스크가 없다. 단지 걸리는 게 있다고 한다면, 이스와 시이나를 완벽히 지키면서까지 전투를 벌일 자신이 없다는 것이겠지.


“칫.”


나는 손을 거두었다.


아까 바람 마법으로 날려 보냈던 드래곤이 다시 돌아와, 나와 현자가 이야기하는 걸 봤는지 현자 뒤에 착지했다.


“현자님! 이 둘은 역시 이 놈에게 당한 겁니까? 진과 로그가...”


바로 적의를 드러내는 용. 회색보다 짙은 색이었지만 파충류를 아무리 본다 해도 그것 말고는 구별이 되지 않는다.


“물러나세요.”


이글이글 타는 것처럼 뜨거워지던 공기가 디의 한 마디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요, 블레이크 씨?”

“처음부터 먼저 덤벼온 걸 적당히 상대해줄 뿐이었다.”


용들을 처리한다고 해도 이스와 시이나를 왕국에 전이시킨 뒤여야 하니 나는 못마땅하게 현자의 말에 동의했다.


“그럼 일단 로그를 풀어주시지 않겠나요? 당장 응급처치하지 않으면 저 아이는 죽습니다.”


로그를 묶고 있던 금색 밧줄이 구속을 풀더니 허공에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로그의 몸이 힘 없이 들판에 털썩 쓰러졌다. 워낙 출혈양이 많다보니 자신의 피가 만든 우물에 빠진것처럼도 보였다.


“제랄드, 둘을 신당까지 옮겨주세요.”

“옙...!”


나를 치지 않는 것에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인 용이었지만 서둘러 쓰러진 둘에게 전이마법을 걸었다.


“블레이크 씨.”


둘이 그렇게 험한 꼴을 당했다고 하는데도 디의 얼굴은 평온하다.


“이걸로 저희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건 저도 원치 않습니다.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당사자들의 마음 속에 묻어두는 게 어떠실지요.”


지상에서 온 일개 모험자를, 그것도 용을 두마리 반죽음을 만든 자를 대하는 것 치고는 꽤 조심스러운 태도.


그런가. 이 현자는 이미 눈치챈 건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손을 코트의 주머니에 찔러넣고 나는 등을 돌렸다. 전이마법진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정하는 건 너니까 말이지.”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쑥대밭이 된 들판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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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임무 실패 +1 20.01.23 297 9 9쪽
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0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296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03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03 8 9쪽
99 적발 +1 20.01.05 292 9 9쪽
98 잠입 +1 19.12.29 310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25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14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3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14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0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4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35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0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8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1 9 10쪽
87 난투 +2 19.11.21 33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2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39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4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47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4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79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84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1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88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06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80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16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1 12 11쪽
73 빙결의 마수 +1 19.10.03 410 11 11쪽
72 설원 +1 19.09.29 436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68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51 13 11쪽
69 대화의 시작 +1 19.09.19 449 12 10쪽
68 해제 +1 19.09.15 446 12 7쪽
67 장로회의 +1 19.09.12 467 10 9쪽
66 항구도시 프냐르 +1 19.09.09 482 11 11쪽
65 짧은 여정의 출발 +1 19.09.08 510 11 9쪽
64 하이엘프 +1 19.09.04 553 12 9쪽
63 사전 준비 +3 19.09.01 542 1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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