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457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12.22 00:19
조회
314
추천
10
글자
9쪽

침공 준비

DUMMY

“휴, 이걸로 대충 끝이려나?”


류아는 꼼꼼하게 포장된 꾸러미를 창고 안에 내려놓으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았다. 지난 일주일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바빴다.


선박을 이용해 가까운 프냐르의 항구에 엘프들과 물자를 실어 나르고, 마왕이 직접 설치해준 전이 게이트를 통해 마왕군의 주둔지까지 옮기는 작업은 워낙에 활동적인 류아도 지치게 할 정도의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광맥지대의 오크 병사들이 무거운 짐을 옮기는데 큰 도움을 준 것이겠지.


섬을 떠나 마왕군에 합류한 500의 하이엘프들은 따로 명령이 있기 전까지 제5계층에 살게 되었다.


광맥지대는 비록 지하이긴 했지만 널찍한 공간이 있는 덕분에 탁 트인 지상에 익숙한 하이엘프들이 생활하는데 별 불편함이 없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드워프들이 발 벗고 나서서 거처를 지어줘서 번듯한 주거지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류아, 여기에 있었네.”


숨을 돌리고 있자니 레야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류아는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항상 자신을 친동생처럼 챙겨주는 레야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 레야 언니! 작전 회의는 다 끝난 거예요?”

“별 내용은 없었어. 침공 일자가 확실하게 정해진 정도일까.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사흘 후 진군이라네.”


섬의 장로 중 유일하게 마왕군에 파견된 레야는 하이엘프들과 마왕군을 잇는 일종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이엘프가 다른 마족들에 비하면 마왕군에 비교적 늦게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마족들과 아무런 마찰 없이 잘 어울릴 수 있는 건 그녀의 수완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전장으로 가기보다 좀 더 대륙을 둘러보고 싶었을 텐데. 미안하게 됐어, 류아.”

“괜찮아요. 어떻게 보면 이번도 제국을 살필 기회니까요. 마왕님이 제 능력을 필요로 하신다면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게 도리예요.”


하이엘프 중에서도 마력이 뛰어난 류아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마도중대의 중대장을 맡게 되었다. 그 어린 나이를 감안하면 다른 중대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건 놀라운 성과다.


물론 직책에 따르는 압박감은 있었지만 기왕 하는 이상 제대로 해내겠다는 결의를 다진 지 오래였다.


“어라, 라이네스는 같이 있지 않네?”

“라이는 보병 소대와의 합동 훈련에 불려갔어요.”


오로지 하이엘프로 구성된 5개의 마도중대는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적에게 우선순위로 노려질 것을 감안해서 다수의 보병 소대의 호위를 받게 된다. 라이네스가 불려간 곳은 그를 대비한 합동 훈련인 것이다.


“슬슬 돌아올 때가 됐는데... 아, 저기 오네요.”


멀리서 라이네스가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진이 다 빠진 듯한 걸음걸이로 미루어보아 오늘도 훈련의 강도가 높았던 것이겠지.


“수고했어, 라이네스 군.”


레야가 말을 건넨 후에야 라이네스는 장로의 존재를 깨닫고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레야 장로님! 죄송합니다, 바로 인사드리지 못해서.”


허겁지겁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라이네스. 레야는 인자하게 물었다.


“훈련은 어땠니?”


대답을 바로 하지 않고 조금 고민하다 라이네스가 꺼낸 대답은 류아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귀가 얼얼해요...”

“귀가?”


류아가 먼저 눈썹을 모았다.


“뭘했길래 귀가 아픈 건데?”

“보병들이 쓰는 무기 있잖아. 그거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 커서 아직도 귀가 울릴 지경이야. 납을 쏘아대는 철 막대기 말이야.”


류아가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자 레야는 곰방대를 쥐지 않은 손으로 낯선 철제 장치를 꺼내들었다.


“이걸 말하는 거네. 류아는 남은 물자를 정리하느라 아직 보지 못했었지? 한번 들어보렴.”


이 광맥지대에서 오고 가는 다른 병사들이 차고 있던 것과 동일한 물건이었다.


직접 만져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류아는 조심스럽게 은색 무기를 들었다. 꽤 묵직했지만 그렇게 무거운 것도 아니다. 두 손을 쓰면 어린아이도 들 수 있을 정도의 무게.


“이거, 어떻게 쓰지...?”


류아가 무기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살피고 있자 레야가 살며시 총구를 다른 쪽으로 틀어주었다.


“다룰 때는 조심하렴. 그 기다란 끝의 구멍에서 납이 발사되는 거란다.”

“아, 위험해라.”


날카롭지도 않은 막대 끝이 위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류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 오고 나서부터 몇 번 시연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상급 방어 결계를 뚫지는 못하지만 못해도 하급 방어막을 상대로는 충분히 효과가 있어.”


하급 방어 마법ㅡ로우 실드는 고위의 마법은 아니지만 별다른 강화마법이 걸려있지 않은 검이나 화살쯤은 간단히 막아낼 수 있다. 그걸 뚫는다는 건 적어도 기존의 무기보다는 위력이 높다는 말이다.


“마력을 채워서 쓰거나 하는 건가요?”


레야는 고개를 저었다.


“화약, 이라고 하는 것의 폭발의 추진력을 이용해서 납을 쏘아 보낸다는 이야기야. 마왕님이 개인적으로 만들어내신 발명품이라고 해. 겨냥하고 그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네.”

“에, 그게 전부인가요?”

“전부야. 신기하지?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마왕님도 참 신기한 분이시라니까.”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라.”


류아는 별 생각 없이 벽에 무기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라이네스가 익숙한 동작으로 귀를 막고, 류아는 무기가 불을 뿜으며 낸 큰 소리에 놀라 넘어질 뻔 했다.


“죄, 죄송해요! 이렇게 클 거라고는 생각 못해서...”

“괜찮아, 비슷한 반응은 벌써 몇 번이나 봤는걸.”


웃고 있는 레야를 향해 급히 사과하던 류아는 벽에 작은 구멍이 생겨있는 걸 발견했다.


“이거, 제가 방금 한 건가요? 살짝 당겼을 뿐인데?”


빠르게 쏘아진다는 납덩어리가 단단한 암석을 뚫은 것이리라.


작동 원리를 설명으로 들었을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은 류아였지만 직접 위력을 보니 이 무기가 가진 살상력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에 대고 사용했으면 치명상을 남겼을 것이 분명했다. 인간의 연약한 살과 근육은 아무 문제없이 찢어발기면서 관통했겠지.


검을 휘두르는 훈련도 없이, 갈고 닦은 마력도 없이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물건이라니. 이런 게 존재해도 되는 걸까? 류아의 등골에 전율이 흘렀다.


“이 정도면 웬만한 방패는 그냥 뚫겠는데...”


귀를 막은 손을 뗀 라이가 류아의 혼잣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내가 보고 왔으니까 알아, 인간들이 쓰는 방패에 대고 고블린들이 쏘아대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뚫리더라고. 기사가 입는 두꺼운 갑옷도 문제없어.”


류아는 복잡한 기분으로 은색 무기를 내려 보았다.


“라이, 이건 보병한테 기본으로 지급되는 무기인거지? 같은 원거리 무기지만 위력이 활이랑은 비교가 안 돼. 인간들이 제대로 대항이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나서기도 전에 전멸할 거 같아.”


이번 인마전쟁의 준비는 류아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고 효율적으로 적을 죽일 수 있는 무기는 여태껏 없었다. 전장에서 일인분을 할 수 있는 검사, 궁수, 그리고 마법사를 양성하는 데는 항상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꾸준히 근력을 키우고 무기를 다루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비로소 적병과 동등한 조건에서 밀리지 않고 싸울 수 있는 병사가 탄생한다. 하지만 이 신무기는 그 과정을 거의 없다시피 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쇠 장치에 걸어둔 검지 하나를 당긴다고 하나의 목숨이 날아간다니,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 마왕님은 어떻게 이걸 만들어내신 걸까요. 이런 기술은 본적도 없어요.”


마왕이라는 건 마족 중에서도 강력한 힘을 보유한 존재. 압도적인 힘을 뽐낸 마왕이라면 셀 수 없을 만큼 있었지만 이와 같은 신기술을 발명한 마왕에 대한 기록은 없다.


칠흑의 마왕이라 불리는 류셀이 역대 마왕들과 근본적으로 어딘가 다르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직 놀라긴 이르단다, 류아. 회의에서 이것과 비슷한 새로운 종류의 총기에 대한 안건이 나왔는데, 훨씬 빠른 속도로 납덩이를 퍼부어댈 수 있다고 해. 제작 관련해서는 드워프들을 총동원한 모양이니 더 무시무시한 것들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어.”

“준비가 정말 철저하신 분이네요...”

“맞는 말이야.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아끼지 않으시니까.”


일단 하나는 확실했다. 제국은 이 무기로 무장한 마왕군을 절대 이길 수 없다. 납덩이의 세례 앞에서 제국군이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는 게 벌써 눈에 선했다.


“마도 3중대장을 맡은 류아는 분발해주렴. 우리가 마왕군에서 조금이라도 많은 성과를 올리면 전쟁 후의 하이엘프의 지위도 보장될 테니까.”

“네, 레야 언니.”


진지하게 대답하는 류아를 보며 레야는 웃음지었다.


“되도록 많은 인간의 피를 흘려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2 의외의 고백 +1 20.02.23 303 6 11쪽
111 온천 +1 20.02.20 285 7 10쪽
110 난입 +1 20.02.16 289 8 8쪽
109 분노 +3 20.02.13 307 8 9쪽
108 피바람 +1 20.02.09 302 8 9쪽
107 방아쇠 +1 20.02.06 281 10 9쪽
106 용족 소녀 +1 20.02.02 322 9 11쪽
105 현자 +1 20.01.31 282 12 8쪽
104 임무 실패 +1 20.01.23 297 9 9쪽
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0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296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03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03 8 9쪽
99 적발 +1 20.01.05 292 9 9쪽
98 잠입 +1 19.12.29 310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25 8 10쪽
» 침공 준비 +1 19.12.22 315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3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14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0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4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35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0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8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1 9 10쪽
87 난투 +2 19.11.21 33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2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39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4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47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4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79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84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1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88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06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80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16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1 12 11쪽
73 빙결의 마수 +1 19.10.03 410 11 11쪽
72 설원 +1 19.09.29 436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68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51 13 11쪽
69 대화의 시작 +1 19.09.19 449 12 10쪽
68 해제 +1 19.09.15 446 12 7쪽
67 장로회의 +1 19.09.12 467 10 9쪽
66 항구도시 프냐르 +1 19.09.09 482 11 11쪽
65 짧은 여정의 출발 +1 19.09.08 510 11 9쪽
64 하이엘프 +1 19.09.04 553 12 9쪽
63 사전 준비 +3 19.09.01 542 15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