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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461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11.07 00:31
조회
347
추천
11
글자
11쪽

사소한 충돌

DUMMY

같은 시각, 류아는 들떠서 밤이 늦은 것도 잊고 그날 있었던 모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글쎄, 에델가르드가 동네 강아지처럼 보이더라니까! 아무리 공격해도 마왕님은 생채기 하나 없는 거야, 믿어져? 그냥 가만히 서계시더라고!”

“응...”

“그래서 그래서, 갑자기 마법검을 소환하시더니ㅡ”

“류아... 나, 슬슬 돌아가봐도 돼?”


억지로 붙들려 말상대를 해주던 라이네스는 입에 손을 얹고 하품을 했다. 그야 처음에 마왕이 혼자서 에델가르드를 쓰러뜨렸다고 들었을 때는 조금 놀랐지만,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듣다보니 아무래도 좋게 되어버린 것이다.


“잠깐 라이, 내가 하는 말 듣고 있었어?”

“처음 얘기했었을 때 다 들었어. 그 다음에는 참격을 날리는 내용이지? 류아, 나 슬슬 졸리다고...”


라이네스가 졸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렇게 류아의 방에서 둘이 잡담을 하며 시간을 때우는 건 흔한 일이었지만, 다른 날 같았으면 벌써 집에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다.


“괜찮아! 라이네 부모님한테는 하룻밤 자고 간다고 이미 얘기해놨으니까.”

“멋대로?!”


라이네스는 숨을 길게 내쉬며 침대에 올라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벌써 자게?”


류아도 그를 따라 침대 옆에 누웠다. 둘 다 아직 어린데다 친남매에 가까운 사이만큼 같은 침대에 눕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라이도 마왕님은 낮에 잠깐 봤지? 근데도 별로 관심 없는 거야?”

“별로. 엄청나게 강하다는 거잖아. 나는 류아가 무사히 돌아왔으면 그걸로 됐어.”


류아가 마왕 일행을 칼란츠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했을 때 라이네스는 속으로 끙끙 앓았다. 접근이 일체 금지된 위험한 설원에 가서 무슨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말이다. 물론 류아는 자신이 걱정을 끼쳤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으이구, 기특한 녀석 같으니!”


류아는 장난스럽게 라이네스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정말,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생각 안 해봐서 몰라.”


라이네스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구석이 있는 천방지축 소녀는 그가 기억하는 아주 오래전 순간부터 그의 삶에 있었다. 곁에 있는 게 너무나도 당연해진 지금, 류아가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실은 이건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라이니까 특별히 얘기해줄게.”


엿듣는 사람이 있을 리 없는데도 류아는 작게 속삭였다.


“돌아오고 나서 잠깐 레야 언니랑 다른 장로가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내일 에델가르드 토벌 기념 연회를 열고 마왕군에 보낼 지원병도 모집을 시작한대. 나는 당연히 지원할거야.”


벽을 바라보고 누운 라이네스는 대답이 없었다.


“빠르면 나흘 안에 섬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나봐.”


라이네스가 듣는 류아의 목소리에는 흥분과 기대가 섞여있었다.


“라이 너도 지원하지 그래? 같이 가게 되면 좋잖아.”

“난 그렇게 마법 실력이 특출하지는 않으니까. 지원해도 아마 떨어질 거야.”


반론하려던 류아는 바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라이네스의 마력이 하이엘프 사이에선 잘 쳐줘봐야 평균인 건 사실이었다.


마왕군에 보내질 하이엘프들은 밖에 보일 섬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제일 능력이 높은 순으로 뽑겠지.


“괜찮아. 괜히 내가 따라가 봤자 방해만 될 테니까.”


라이네스는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몸을 더 웅크렸다.


“라이...”


류아는 풀죽은 소꿉친구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끝내 생각해내지 못했다.


목이나 축일까 하고 방을 나와 1층의 주방으로 내려온 류아는 잠시 멍을 때리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조금 신경 쓰이던 걸 기억했다.


“그 다크엘프, 저녁 식사에 없었지... 지금쯤이면 일어났으려나.”


요리에는 그리 자신이 없었지만 류아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 ◆ ◆ ◆ ◆ ◆ ◆ ◆



“어이, 백작. 슬슬 다 왔어.”


네이아르 백작은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다는 통에 겨우 들었던 잠에서 깼다.


“아... 미안하군.”


백작이 눈을 뜬 걸 확인하고 맞은편의 검은 머리 사내는 다시 불량하게 앉은 자세로 돌아갔다.


일국의 백작을 깨우는 것 치고는 조금 거칠었지만 그와 함께 사절로 선발된 사내는 '각하'의 부하. 가름이라는 사내는 왕국의 사람이라면 계급, 직급에 관계없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가 입고 있는 검은 군복은 정작 왕국군의 것도 아닌데 왕국을 대표하는 입장이라는 게 그 증거다.


“어디...”


작은 창을 통해 마차 밖을 보니 정말 국경 검문소다. 아직 출발한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리 일찍 도착한 건지 의문스러웠다.


“슬슬 눈치챘나보네. 마중 나오고 있어.”


가름은 밖을 확인하지도 않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제국군 병사 몇이 마차에 박힌 알트레아 왕실의 문장을 확인하고 다가서고 있었다.


“백작, 나가서 우리 용건을 간단히 전달해줘. 괜히 시간 끌면 누님한테 혼나니까. 볼일만 해치우고 돌아가야지.”


네이아르 백작은 사절을 보낼 것을 알리는 친서를 꺼내들었다. 잔뜩 경계한 채로 마차를 노려보는 병사들을 보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사전에 이야기가 오가지도 않고 적국에 사절을 보내는 것이다. 환대는 받지 못할 거라는 것쯤은 각오해둔바다.


문을 열고 마차를 나온 백작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 적병을 보았다.


“나는 페르난도 폰 네이아르 백작. 알트레아 왕국의 사절로 제국에 입국하려 하니 통과시켜주길 요청하네.”

“신분을 증명해라.”

“여기 내 이름과 방문 사유가 적힌 친서가 있지. 확인해보게.”


병사 하나가 낚아채듯 친서를 가져가더니 감시탑 옆에서 어슬렁거리던 장교와 뭐라 이야기한다.


“뭐야, 무슨 일이야?”


가름이 창문을 열고 고개만 빼꼼 내밀어 물었다.


“아무래도 방문이 예정되어있지 않다보니 제도에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 같네.”

“마차에 달린 문장으로 충분하지 않아? 그냥 들여보내줘도 될 텐데, 꼼꼼한 놈들이로구만.”


가름은 마차에서 나와 기지개를 폈다. 그 머리에 쫑긋 솟은 귀는 개의 것이다.


“자네, 괜히 트집잡힐지도 모르니 일단 마차에 들어가 있게. 저 병사들, 인상이 좋지 않아.”


백작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가름은 그게 무슨 문제냐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딴 거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어, 백작. 저 인간들은 그렇게 강한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본인들을 무시하는 말이 들린 것이겠지. 병사들의 얼굴이 더욱 더 험악해져갔다.


30분쯤 지났을까, 지휘를 맡은 듯한 장교가 걸어오더니 백작에게 말을 걸었다.


“제도에 통신으로 연락을 넣었습니다. 왕국으로부터 사절을 보낸다는 사전 연락은 전혀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거라면 친서를ㅡ”

“읽었습니다. 일단 백작의 입국은 허가하겠습니다.”


장교가 입가를 살짝 일그러뜨리더니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저 남자는 제외입니다.”


장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건 가름.


“어째서인가? 그는 나와 같은 왕국의 사절이네. 동행할 자격이 있단 말일세.”

“아쉽지만 친서에는 백작, 당신의 이름만 적혀있습니다.”

“동행인을 포함해 두 명이라고 쓰여 있지 않은가?!”

“그게 누구인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내가 직접 신분을 증명해줘도 안 된다고?”

“그렇습니다.”

“그건 제도의 결정인건가?”

“제 재량입니다.”


백작이 아무리 항의해도 고지식한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는 동행인을 쳐다보았다.


“아, 정말 짜증나게 만드는구만. 인간들은 왜 알아서 일을 벌이는 건지.”


가름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쪽에서 모처럼 평화적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는데 왜 꼭 이렇게 되는 거냐고, 원. 일단 물어는 보겠는데 들여보내줄 생각은 없는 거 맞지?”

“아까부터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못 들으신 겁니까?”


여전히 비꼬는 말투를 고수하는 장교. 가름은 화를 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출출했는데 잘 됐어.”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은 말이었지만 그 순간, 백작의 등골이 갑자기 서늘해졌다.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가 그의 가슴을 압박하고 있었다.


“가, 가름. 우리는 사절로 제국에 온 걸세. 일단 좀 더 이야기를...”

“이건 틀렸어. 백작 혼자 보내는 건 계획에 없었거든. 어떻게 해서든 나를 통과시키지 않겠다는데 다른 방법이 없잖아.”

“바로 그렇습니다.”


백작이 만류하기도 전에 장교가 비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그렇단 말이지. 둘 넷, 여섯... 대충 스무 명 정돈가. 간식으로는 적당해.”


가름은 여전히 의미를 모를 말을 하며 국경을 감시하는 병사들의 수를 세었다.


“백작, 물러나있어.”

“자네... 뭘 하려는 겐가?”

“별 거 아냐.”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가름의 외형이 빠르게 바뀌어갔다. 훤칠한 사내의 모습이 악몽에나 나올법한 끔찍한 개의 형상으로 변하는 걸 병사들은 소리를 지르는 것도 잊고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었다.


뒤에서 그걸 보던 백작은 재빨리 눈을 감았다.


저건 단순한 아인이 아니다. 아직 전쟁터를 전전하던 청년 시절, 마족보다 훨씬 사악하고 강대한 존재에 대해 들었던 소문이 떠올랐다. 자신은 이런 괴물과 동행하고 있었던 것인가.


의심할 여지없다.


저건 보는 이에게 죽음을 불러온다는 지옥의 개, 헬하운드.


연한 살이 물어뜯기는 소리와 비명이 겹쳐 들린다. 백작은 귀를 막았다.


그 날카로운 이빨이 자신을 향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감촉에 백작은 흠칫했지만 눈을 뜨진 않았다. 헬하운드의 모습을 눈에 담으면 바로 지옥행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하, 백작은 전승을 믿는 성격이었던가? 저주 같은 건 걸지 않았으니 안심 하시라고.”


백작이 살며시 눈을 뜨자, 다시 인간의 형태로 돌아온 가름이 입가를 닦고 있었다. 주위를 확인했지만 국경을 지키던 병사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적병은...? 어디로 간ㅡ”


병사들이 서있던 흙이 불길한 검붉은 액체로 축축하게 적셔져있는 걸 본 백작은 말을 멈췄다.


“어디긴 어디야.”


가름은 재미난 농담을 들은 것처럼 실실 웃으며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여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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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3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14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0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4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35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0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8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1 9 10쪽
87 난투 +2 19.11.21 33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2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39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4 10 10쪽
» 사소한 충돌 +2 19.11.07 348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4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79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84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1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88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06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81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16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1 12 11쪽
73 빙결의 마수 +1 19.10.03 410 11 11쪽
72 설원 +1 19.09.29 436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68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51 13 11쪽
69 대화의 시작 +1 19.09.19 449 12 10쪽
68 해제 +1 19.09.15 446 12 7쪽
67 장로회의 +1 19.09.12 467 10 9쪽
66 항구도시 프냐르 +1 19.09.09 482 11 11쪽
65 짧은 여정의 출발 +1 19.09.08 510 11 9쪽
64 하이엘프 +1 19.09.04 553 12 9쪽
63 사전 준비 +3 19.09.01 542 1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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