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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448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20.02.0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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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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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1쪽

용족 소녀

DUMMY

“그 현자라는 여자, 정말 용이 맞기는 한 건가.”


나는 찻잔을 금세 비우고 중얼거렸다. 내 앞에는 다 비우지 않은 접시들이 있었다.


“류셀 씨,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판타지 소설 따위에 묘사되는 것과 달리, 이 세계의 용은 식물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 어느 먹잇감도 두동강 내버릴 사나운 이빨은 적을 찢어발길 때만 쓰일 뿐. 음식을 잘게 씹는 용도가 아니다.


그런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마나를 고도로 농축시킨 에너지원이다.


마나를 음식으로 먹는다니 가능하냐싶지만 봉인마법을 깃들인 반투명한 막으로 마나를 가둬둔다는 모양으로, 마나의 종류에 따라 식감이나 맛도 천차만별이라는 소리다.


그에 쓰이는 막은 라드레이드에서만 자라는 식물로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하이엘프 때와는 달리 불편한 얼굴로 내 접시를 내려 보고 있었다.


“어디서 가져온 지도 모르는 마나를 내 안에 들이는 건 사절이다.”

“그런가요...”


이스는 도넛처럼 생긴 막을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그래도 이거, 굉장히 신기한 맛이에요.”


용의 특제 봉인마법이 걸려있다고 해도 정작 대상을 가두는 막이 약하면 봉인은 금방 깨진다.


살짝 깨무는 것으로 얇은 막은 깨지고 마나가 입 안 가득 퍼진다. 모아두는 힘이 없으면 금세 흩어지는 마나의 특성상 일반 음식처럼 식도로 넘어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대로 흡수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흡수된 마나만으로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마족과 달리 마나를 체내에 저장할 수 없는 인간인 이스가 맛있게 이 '식사 아닌 식사'를 즐기고 있다는 건 의외였다.


용들도 우리 일행에 인간이 섞여있는 걸 고려했는지 채소 위주의 식사도 준비해주었지만 이스는 서툴게 구현한 지상의 식사보다 용족의 식사에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한편 시이나는 거부감 없이 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아무리 마법을 쓰지 못하는 웨어울프라도 체내 마나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건 가능하니까.


“고소공포증은 좀 나았나, 시이나?”


내가 농을 던졌다.


식사와 함께 안내받은 곳은 라드레이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그 밑의 낭떠러지까지 같이 시야에 들어오는 구조물이다.


바닥도, 벽도, 천장도 유리창마냥 훤히 내다보이는 재질로 구성되어 있기에 높이에 익숙하지 않은 시이나는 밑을 내려다보자마자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튀어 오른 것이다.


“이런 거에 안 놀라는 류셀이나 이스가 이상한 거라구...”


나는 빈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밖에 펼쳐진 라드레이드의 전경을 보았다.


탐지마법의 도움으로 거주하는 용의 숫자는 대강 파악했다.


정체가 의심스러운 디를 제외하면 37마리다.


국가규모의 재앙들이 그 정도로 모여 있다는 소리였지만 어차피 그런 건 별 상관없다.


역대 최대 규모가 될 이 전쟁에 중립이라는 건 없는 것이다.


누군가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탕!


테이블이 갑작스레 흔들리는 바람에 식사에 집중하고 있던 시이나가 다시 튀어오를 뻔했다.


이스는 무슨 일인지 훤히 보인다는 것처럼 신경 쓰지 않고 차를 홀짝였다.


“너, 나한테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테이블을 치며 내게 화난 얼굴을 들이민 건 적색 머리를 트윈테일로 나눈 여자아이다.


배꼽이 그대로 드러난 짧은 반팔셔츠와 마찬가지로 짧은 반바지. 나름대로 포인트를 준건지 스키니 타이를 느슨하게 매고 있다.


조금 노출이 과하다 싶은 의상이었지만 머리의 뿔과 어깨에 감긴 붕대, 그리고 뒤에 달린 파충류의 꼬리를 보고 나는 이 소녀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나는 손바닥을 탁 쳤다.


“붉은 덩어리군.”

“덩...어리? 내가?”


자신을 그렇게 부른 것에 잠시 충격을 받은 소녀는 금세 회복하더니 빼액 소리를 질렀다.


“붉은 덩어리가 아니야! 내 이름은 로그라고!”

“급소는 피했을 작정이지만 벌써 회복한 건가. 용의 회복력은 역시 남다르군.”

“남을 격추시켜놓고 하는 말이 그거?! 오빠가 구해주지 않았으면 나,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과연. 회색 드래곤이 그렇게까지 화가 났던 건 자신의 여동생이었기 때문인가.


씩씩거리는 로그를 보던 나는 무심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불합리한 공격이었다는 건 인정한다. 화가 풀린다면 똑같이 나를 한대 쳐도 좋아.”

“오? 오오? 정말이지? 현자님이 그러진 말라 하셨지만 계속 한방 날려주고 싶었는데.”


표정이 밝아진 로그와 달리 시이나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잠깐, 혼자 그런 거 마음대로 결정하지 말라구. 용한테 맞는 일격이라니, 몇 번 죽어도 이상하지 않잖아.”

“이런 꼬맹이한테 맞아도 가렵지도 않다, 시이나. 괜한 걱정이야. 워낙 화난 것 같으니 그 정도는 괜찮겠지.”

“서로 한대씩 주고받는다. 공평한 처사긴 하네요.”

“이스는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고...!”


늑대 소녀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답답함을 토로한다. 내가 자칫 잘못될 것을 그렇게까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시이나의 근심은 대부분은 내가 원인인 게 아닐까.


일단은 같이 행동, 이라는 알 수 없는 계약 조건을 내걸은 녀석도 잘못이 있긴 하진 말이야.


로그는 내 어깨를 잡더니 시선을 정면으로 맞췄다.


“이제 와서 말 바꾸기 없다? 그런 마법 쏘아댈 정도면 너도 꽤 강한 것 같지만 용의 진심 펀치는 꽤 아프다고?”

“나야 거절할 이유는 없지. 그 현자님이라는 것의 허락은 받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


현자 디는 우리에게의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100퍼센트 확률로 이전 같은 싸움이 일어날 테니까.


라드레이드에서의 현자의 말은 절대적인 건지 우리를 흘겨보는 드래곤은 있어도 싸움을 걸어오는 놈은 없었다.


로그도 분이나 풀러 온 것이겠지.


“네가 괜찮다고 한 거잖아? 그니까 괜찮은 거 아냐?”

“그래도 만일을 위해 확인을ㅡ”

“뭐 괜찮겠지!”


상큼하게 웃어넘기는 로그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녀석, 생각이 지나치게 짧다. 아니, 바보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이랑은 아직 인사를 못했네? 나는 로그! 플레임 드래곤이야!”


나를 향해 씩씩거리던 것이 거짓말처럼 로그는 시이나와 이스에게 활짝 웃어보였다.


“지내는 동안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얘기하기 쉽게 이 모습으로 있을 거니까.”

“저기,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로그의 태도에 악의가 없는 걸 느꼈는지 시이나가 주저하면서도 말을 꺼냈다.


“말 편하게 해! 라드레이드에서는 내가 제일 어리니까 나한테 존댓말 쓰는 사람은 없는 걸?”


최연소 드래곤이라고 해도 나이는 수백에 가까울 테지만 로그는 겉모습처럼 어린아이 그 자체였다.


“그래도... 저는 웨어울프고 당신은 드래곤인데...”

“에이~ 신경 쓰지 말라니까! 너는 생각보다 낯가림이 있는 아이구나?”


거리감이라고는 전혀 없는지 로그는 시이나 옆의 빈자리에 털썩 앉는다.


“나도 다른 종족이랑 이렇게 가까이서 얘기하는 건 처음이거든. 밑에 세계 이야기는 많이 듣긴 했는데 자세히는 몰라. 아래선 뭐하면서 지내는지 좀 알려주라, 응?”


이렇게까지 친근하게 다가오면 제아무리 시이나라 해도 거절하긴 어렵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로그. 아까 물어보려던 거 말인데...”


시이나는 앙증맞게 솟아나있는 로그의 뿔을 보았다.


“현자님도 그렇고 용은 누구나 다 그렇게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거야?”

“누구나? 라는 건 아니야. 의태술을 배워야만 할 수 있는 건데 나는 제일 처음으로 배웠어. 이 모습이 귀엽고 좋잖아. 인간들이 입는다는 옷을 나름 바꿔본 건데 어때?”


고작 그런 이유인거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살이 조금 많이 보이는 것 같지만 귀여운 걸요? 시대를 앞서간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스가 부탁하지도 않은 감상평을 늘어놓자 로그는 잔뜩 신이 났는지 방방 뛰었다.


“그렇지 그렇지? 나도 이렇게 의태하고 지상에 내려가 보고는 싶은데 아직 뿔이랑 꼬리를 감추는 게 힘들거든. 밑에는 더 다양한 옷들이 있겠지? 언제 한번 보고 싶다~”


아무리 낙원이라고는 해도 한 장소에 처박혀 있으면 못 본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드래곤이라도 해도 그런 면에선 별 차이가 없군.


“이거 무슨 재질로 만든 건가요?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연약하지도 않은 것 같고요.”


이스는 스스럼없이 로그의 셔츠 자락을 만져보고 있었다.


“마법으로 만들었는데? 이 정도 창조 마법쯤은 나도 할 수 있어.”


나는 로그에 대한 평가를 조금 올렸다.


자신의 마나로 물체를 만들어내는 건 어지간히 숙련된 마법사쯤 되지 않으면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보통은 단발성의 화염구를 쏘거나 날카로운 얼음조각을 날리는 정도로 끝난다.


짧은 지속시간이 끝나면 사라지는 종류의 것들이지. 비슷한 경우로 사역마를 불러내는 것도 술자의 몸에 꽤나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시간제한을 두고 사역하는 것이 보통이다.


린이나 가름을 상시 불러낸 채 있는 건 내 체내 마나가 워낙에 방대해서 가능한 것이지, 다른 마법사였으면 마나 공급의 부담으로 벌써 돌연사 했겠지.


그렇지 않고 불러낸 물체를 계속해서 존재하게 하는 건 단연 상급 중에서도 상급 마법이라 할 수 있었다.


제일 어린 드래곤이 이 정도라니.


“그런 것 보다! 여기 라드레이드는 신기한 게 정말 많다구? 들어가 있기만 해도 기력이 회복되는 온천도 있고, 누워있으면 잠이 들게 하는 언덕도 있고... 밤에는 들판의 라이든 꽃들이 빛나서 되게 이뻐! 내 등에 태워서 구경시켜줄까?”

“하늘을 날 수 있는 거야?”


시이나가 반색을 했다.


“그 정도는 문제없어~ 물론 이 녀석한테 한방 날려준 다음이지만!”


로그는 어깨의 부상을 쓰다듬었다. 그대로는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하아.”


나는 한숨을 쉬었다.


“질질 끌지 말고 바로 하지. 이런 시답잖은 걸로 시간 낭비하는 건 사양이다.”

“좋았~어!”


주먹을 불끈 쥔 로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하나 제안을 꺼낸다.


“여기에서는 건물이 무너질 것 같으니까 밖에서 하자.”

“좋다.”

“건물이... 무너져?”


나는 가벼운 걸음으로 나가는 소녀를 뒤따르고, 시이나는 멍하니 로그가 한 말을 되풀이했다.


작가의말

저녁 먹고 쿨쿨 자다가 지금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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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임무 실패 +1 20.01.23 297 9 9쪽
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0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296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03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03 8 9쪽
99 적발 +1 20.01.05 292 9 9쪽
98 잠입 +1 19.12.29 310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24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14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3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14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0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4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35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0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8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1 9 10쪽
87 난투 +2 19.11.21 33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2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39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4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47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4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79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84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1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88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06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80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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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1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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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류아 +2 19.09.26 468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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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대화의 시작 +1 19.09.19 449 12 10쪽
68 해제 +1 19.09.15 446 12 7쪽
67 장로회의 +1 19.09.12 467 10 9쪽
66 항구도시 프냐르 +1 19.09.09 482 11 11쪽
65 짧은 여정의 출발 +1 19.09.08 510 11 9쪽
64 하이엘프 +1 19.09.04 553 12 9쪽
63 사전 준비 +3 19.09.01 542 1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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