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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466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11.24 01:00
조회
341
추천
9
글자
10쪽

인간 대 지옥개

DUMMY

황제의 검 셋의 총공격에도 끄떡하지 않던 가름에게 처음으로 들어간 타격이었다.


검은 후드를 벗어서 붉은 머리를 드러낸 유리에는 난장판이 된 알현실을 천천히 둘러보다, 반죽음 상태로 뻗어있는 판테온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성격 좀 고치라니깐. 욱하고 바로 달려드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


쓰러진 동료를 비웃는 발언에 데네브가 발끈하기도 전에, 뒤통수를 문지르며 가름이 일어섰다.


“이거이거, 누군가 했더니 저번에 보스랑 한판 뜨고 간 꼬맹이잖아. 제대로 발차기를 먹여줬어.”

“어라? 당신은 그 오빠의 부하인거야?”


오랜만에 지인을 만난 것처럼 유리에가 반갑게 물었다.


“강아지 치고는 꽤 튼튼하구나! 힘 조절은 안 했으니까 보통이면 머리가 터져 없어졌을 텐데.”


유리에가 방금 전 발차기의 위력을 시험해보듯 바닥을 차자, 상당한 크기의 구멍을 내며 대리석 판이 내려앉았다. 도저히 저런 작은 몸에서 나올 위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에 더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겨우 숨을 돌리는 참이었던 레스트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리에, 명령이다. 판테온을 저런 꼴로 만든 마족을 처리해라. 알겠지, 성에 피해가 얼마나 가든 상관없어.”

“좋아! 마침 손이 근질거리던 참이었거든~”


가름의 시선이 완전히 유리에에게 집중된 틈을 타 데네브가 질질 끌다시피 판테온을 옮기고, 레스트는 티아레트와 함께 왕좌 뒤편 문으로 사라졌다.


“아직 이야기 도중이었는데, 황제는 어디로 가는 거지?”


낮게 으르렁 거리며 가름이 불쾌함을 드러냈다.


“뭐, 황제는 지금 상관없잖아. 죽여도 된다고 허락 받았으니까 그렇게 할게?”


유리에를 바라보는 가름의 눈이 점점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 늘 만들고 다니는 재미있는 걸 보는 것 같은 눈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바뀐다.


“너에 대한 건 보스한테서 충분히 들었지. 복수의 혼을 다루는 영매.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할 마음 가득하네? 좋아, 우선은 실력을 좀 볼 테니까. 루코브!”


꼭두각시 인형의 줄이 끊어진 것처럼 유리에의 고개가 살짝 떨어지더니, 고개를 든 그녀의 입가는 방금 전까지의 해맑은 미소 대신 능글맞게 ㅅ자를 만들고 있었다. 전혀 다른 영혼이 유리에의 육체에 들어왔다고, 가름은 이해했다.


“오호, 지옥개 헬하운드인가. 태초에 쓰러진 괴물이 살아숨쉬는 걸 다시 볼 수 있다니, 이 계집도 아예 쓸모없는 그릇은ㅡ아니군 그려. 망자를 감시하는 개에게는 뭘 선사해줄까.”


가름은 의미 없는 헛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소녀의 가녀린 목을 꺾으러 바로 달려들었다.


움직이고 있지 않은 상대에게 휙, 하고 팔을 휘두르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유리에의 모습이 사라져있다.


대뜸 가름의 머리 위에서 어린아이 답지 않은 고상한 말투가 들려왔다.


“성질 한번 급하기도 하군. 짐승이니 어쩔 수 없는 겐가, 킬킬.”


대답 대신 가름은 위를 향해 거대한 화염을 뿜었다. 실내에 걸린 깃발과 천 장식 따위가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타버린다. 가름이 입을 다물었을 때는, 알현실이 화려하게 불타고 있었다.


“절대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꼬맹이야.”


그만큼 화염을 퍼부었는데도 불구하고 흰 방어막을 두르고 멀쩡하게 부유하고 있는 유리에를 보며 가름이 중얼거렸다.


“꼬맹이?”


호칭이 거슬렸는지 유리에는 진심으로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아무리 그릇이 이래도 그렇지 꼬맹이라니, 지금 나를 모욕하려는 겐가 자네!”


유리에는 어느새 손에 든 나무 지팡이를 휘두르며 버럭 성을 냈다.


“나는 과거 대륙 8할을 독차지했던 마군주, 루코브 드 안타레스! 지금 이 계집의 몸을 빌리고 있다고 해서 이 나를 무시해도 좋다는 게 아닐세!”


상대가 길길이 날뛰고 있는 사이, 가름은 공격할 틈을 보았다. 저 방어막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몰랐지만 무적일리는 없으니까.


“풀캐스트: 공간 절단.”


가름이 조용히 중얼거리자 보이지 않는 참격이 날았다.


영창하는 즉시 발동 대상을 절단해버리는 피비린내 나는 마법. 아직도 공중에 떠있는 유리에 뒤에 깊은 칼집이 났다.


3급 절단 마법을 맞고도 방어막이 끄떡없는 걸 보고 가름이 눈썹을 올리자, 웃음이 돌아왔다.


“외부로부터의 시공간 간섭은 차단ㅡ해두는 게 당연하지! 요즘 시대에 널린 마법사 나부랭이라고 생각하면 큰코다칠 거야.”


역시 거리를 두고 싸우기엔 까다로운 상대다. 아예 본래 형태로 변해서 근접전을 시도하는 건 어떨까.


선택지를 재던 가름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개의 형태를 취하면 몸이 훨씬 커지고, 실내처럼 한정된 공간이라면 그 몸집 때문에 회피 또한 둔해진다. 무슨 마법을 숨겨놓았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과거의 군주를 자칭하는 놈의 공격을 그대로 맞고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이 쓸 수 있는 불, 암속성 마법으로 적당히 대치하다 빈틈을 봐서 물어뜯으면 된다.


“그럼, 저승의 문지기의 실력ㅡ한 번 보도록 할까?”


유리에의 말을 신호로, 계속해서 일렁이며 형태가 변화하던 방어막은 무수한 빛의 화살이 되어 가름에 빗발쳤다. 가름은 유연한 회피동작으로 그것들을 피해갔다.


어느 정도 강력한 마수라면 빛 마법, 즉 신성마법에 대한 면역력은 있기 마련이다. 마수에 대항하는 인간들은 보통 신의 힘에 의지하기 마련이니까, 토벌당하기 싫은 마수도 게을리 하지 않는 게 그 신성마법에 대한 대비라고 하면 이해하기 쉽겠지.


과거 10만의 신도가 기도해서 모은 신성력으로 쏜 '천벌'도 가름의 몸에 생채기 하나 입히지 못했다. 하물며 개인이 쏘는 빛의 화살이 의미가 있을까?


회피 도중, 화살 하나가 기이하게 방향을 틀더니 가름의 어깨를 스쳤다. 피가 살짝 솟으며 전신에 격통이 내달렸다.


“면역이 통하지 않아?!”


가름은 놀라면서도 훌쩍 뛰어 뒤로 물러났다. 벌써 다음 화살들이 발사되기 일보직전이었다.


“플레게톤!”


유리에와 가름 사이에 거대한 불벽이 세워지고, 기세 좋게 날아들던 화살들은 혀를 날름거리는 불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알현실 한가운데 천천히 흐르는 불의 강을 보고 유리에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오오, 망자의 혼ㅡ을 정화하는 불의 강 플레게톤인가!”


공격이 무효화 된 것에 동요도 않고 유리에가 탄성을 냈다.


“저승의 5대강 중 하나를 지상에서도 불러내다니, 가히 장관이군?”

“한번 발이라도 담가보는 건 어때? 이 불길 속에서는 그 썩은 혼이 철저히 정화될 텐데.”

“호기심이 동하긴 하지만 아직 성불할 수는 없어서 말일세, 킬킬.”


유리에는 손에 든 작은 나무지팡이를 휙휙 휘둘렀다.


“이건 생각지도 못했군. 허나 불을 가라앉힌다면 얼음이 제격 아니겠나. 나는 저승을 다스리는 자가 아니니 얼음의 강 코키토스를 불러낼 순 없겠지만ㅡ 이건 어떤가?”


유리에가 가리키는 곳마다 파사삭, 하고 얼음덩어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의 팔뚝 정도로 적당히 크기를 불린 얼음은 살아있는 독수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엔찬트: 고열 내성, 내구력 증가.”


유리에가 얼음 독수리들에 강화 마법을 걸자, 가름은 플레게톤의 화력을 더욱 높였다.


단지 혼을 깨끗이 정화할 뿐인 플레게톤의 불길은 영혼이 아니면 통과시키지 않는다. 그 점을 이용하면 일시적으로나마 방패 대용으로 쓰는 것이 가능하다.


얼음 독수리들이 쏜살같이 낙하.


유리에는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지만 전원 불벽을 통과하지 못한 걸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망자가 아니면 통과하지 못하는 건가. 성가시군.”


자신이 든 마법 지팡이를 내려다보더니, 유리에는 큰 소리로 말했다.


“어이, 계집. 마법으로는 안 통한다. 슬슬 이곳의 마나도 바닥나고 있으니 티리온을 부르는 게 좋을 것이야.”


다음 순간, 그 손에는 지팡이가 아니라 붉은 창이 들려있었다.


자신의 몸의 두 배는 족히 넘는 길이의 창을 익숙하게 쥐고 뛰어드는 유리에.


공격 경로를 예상하고 불길을 확장시킨 가름이었지만 순간 상대의 윤곽이 흐릿해지더니, 등이 서늘해졌다.


“큿!”


어느새 뒤로 돌아온 창끝을 아슬아슬하게 손톱으로 쳐내며,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창대를 밟아 밑으로 내렸다.


“이걸로ㅡ”


승리를 거의 확신하던 중, 창이 묘하게 가볍다는 걸 깨닫는다.


“창을 버렸다?”


유리에는 등에 매고 있던 검을 꺼내며 찌르기를 그대로 베기 동작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검에 느껴지는 신성력은 없다. 빛 속성을 띤 마법이나 무기라면 몰라도 일반 날붙이로는 피부에 흠집하나 나지 않을 터.


자신만만하게 공격을 받아내려던 가름은 철과 철이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몸의 균형을 잃었다.


베이지는 않았다지만 말도 안 되는 힘이다. 저 괴력도 빙의를 통해 쓰고 있는 건가?


“멀었어, 멀었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검을 8자로 휘두르며 유리에가 소리쳤다.


“오빠의 부하면 좀 더 분발해주지 않으면!”


낚아채려 해도 묘한 움직임으로 재빠르게 도망 다니면서 얄밉게도 공격은 제때 해온다.


“빌어먹을 꼬맹이가.”


신체의 움직임에 영향을 줄 정도의 데미지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고작 꼬맹이 하나에 애먹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름은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가브리엘이 건네줬던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여차할 때 쓰라며 그의 주인이 준비해준 물건. 하지만 정작 쓰는 것은 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이 정도 일 하나 알아서 처리하지 못하고 손을 벌려야하다니.


아니.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너무 큰 소란만 피우지 않으면 된다고 했으니 조금의 '진심'이 나와도 괜찮겠지.


“이쯤이면 백작도 슬슬 대피했겠지. 손대중해줄 필요도 없다.”


가름은 바닥에 세게 주먹을 내리쳤다. 그의 손을 타고 마법진이 흐르듯 움직여 알현실의 바닥을 빼곡히 채워갔다.


“마법대결할거면 루코브를 부를까, 페리스?”


태평하게 혼잣말을 하고 있는 소녀를 보며 가름은 일그러진 웃음을 뗬다.


“깨어나라 망자들, 싱싱한 고기를 맛볼 때가 됐다.”


가름의 말에 답하듯 바닥이 일렁이더니 질척이기 시작하고, 이윽고 잿빛 늪으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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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3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14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0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4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35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0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86 10 11쪽
»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2 9 10쪽
87 난투 +2 19.11.21 33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2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39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4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48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4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79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84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1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88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06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81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16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1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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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설원 +1 19.09.29 436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68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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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대화의 시작 +1 19.09.19 449 12 10쪽
68 해제 +1 19.09.15 446 12 7쪽
67 장로회의 +1 19.09.12 467 10 9쪽
66 항구도시 프냐르 +1 19.09.09 482 11 11쪽
65 짧은 여정의 출발 +1 19.09.08 510 11 9쪽
64 하이엘프 +1 19.09.04 553 12 9쪽
63 사전 준비 +3 19.09.01 542 1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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