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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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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13,963

작성
19.12.1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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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위화감

DUMMY

하이엘프까지 가세한 제국 침공군을 지휘하는 건 내가 아니다. 그 역할을 맡은 건 스키잔. 나는 아직 남아있는 골칫덩이를 해결하러갈 예정이었다.


상급마족 중에서 유일하게 참전을 거절하고 있는 건 드래곤. 원래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는 습성은 아니지만 드래곤 중에서도 유독 강력한 개체 밑에 모여 살고 있다고 했다.


그 거대한 크기와 힘 때문에 오랜 경외의 대상인 그들은 하이엘프들마냥 서식처를 숨기지 않는다. 황국과 모종의 맹약을 나눈 덕분에 인간과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맹약은 인간의 국가가 대놓고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그들도 인간을 해코지하지 않는다는 불가침 조약이었다.


인간과 공존한다는 선택지를 고른 건 현명한 판단이었지만, 드래곤처럼 강력한 힘을 갖지 않은 마족은 같은 선택지를 택할 수 없었다. 인간들은 드래곤이라는 거대한 전력이 빠진 마족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 본 것이다.


사실 아군도, 적군도 아니라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마전쟁이라는 거사를 앞둔 현 상황에서 세력 구도가 확실하지 않은 마족이 있으면 마침내 인간들로부터 대륙을 되찾는다는 대의가 흐려진다.


마왕군에 찬동한다면 반갑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겠다면 인간의 편을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내가 드래곤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본인들도 알고 있겠지. 그럼에도 중립을 고수한다는 건 힘에 자신이 있다는 소리다. 강제로 굴복시키려면 해보라는 거겠지.


개체 하나하나가 흉악한 파워를 가진 드래곤들을 힘으로 꺾을 여력이 있는 마왕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만에 하나라도 드래곤이 인간의 편을 든다면 전세는 기울어진다. 아예 그러십니까, 라고 놔둘 수는 없다. 용사 후보가 제국에 도사리고 있는 걸 확인한 지금, 더 이상 마왕군 편성에 할애할 시간은 없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석조 건물에 들어갔다. 잘 배치된 책상들 앞에 병사들이 앉아 서류더미를 뒤적거리며 일과에 몰두하고 있었다.


“보스?”


일하는 병사들을 살피던 린이 놀란 눈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워낙 살풍경한 내부다 보니 하늘처럼 푸른 린의 머리는 유독 눈에 뜨였다.


“제2계층까지 내려오신 건가요. 혹시 맡기실 일이 있으시면 바로 받들겠습니다.”

“별거 아냐. 떠나기 전에 군의 상태를 내 눈으로 봐두고 싶었을 뿐이다.”


군사훈련은 최소한도로 받으면서 서류 업무에 집중하는 이들은 전투에 특화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마왕군에서도 특수한 위치에 있는 병사들이다.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건 정보.


여기 있는 건 첩보 수집과 대전략을 담당하는 대대다. 적의 대화를 엿듣거나 은닉 마법 등 정보 수집에 유용한 마법을 쓸 수 있는 쉐도우 이터나 정령들이 대부분인 첩보 대대는 이미 제국이 최근 보이는 움직임을 상세하게 기술하여 매일 보고서를 올리고 있다.


“저번에 확인한 용사 후보에 대한 소식은 있나?”

“유리에 말씀이시군요. 그녀의 존재는 제국 윗선에서도 워낙에 극비사항 이다보니 조금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소 얻은 정보는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린이 돌돌 말린 서류 뭉치를 하나 펼쳤다.


“업무상 제국 정보부와 밀접하게 엮여있는 관계라는 건 금방 알아냈지만 용사인지의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황실이 앞서서 할 수 없는 암살 같은 더러운 일들을 정기적으로 맡는다고 하네요.”


어느 혼에 빙의된 유리에가 휘두르던 검은 높은 신성력을 두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용사라는 단정을 내리긴 어렵겠지만 위기의 순간, 천계의 비호까지 받았으니 유력한 후보라고 할 수 있었다.


“출신은 불명. 나이도 불명. 알려진 게 이상하리만큼 적어요. 제국의 명령을 따르게 된 계기를 알고 있는 자도 없습니다. 그녀를 지금 부리는 정보부도 정작 그녀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이 대륙에 붉은 머리는 없으니 바다를 건너왔을 지도 모릅니다.”

“빙의에 대한 건? 그런 주술에 대한 기록은 있었나?”


유리에와 맞닥뜨리고 난 이래 왕궁 도서관에서 빙의에 관한 기록을 샅샅이 찾았지만, 유령 따위를 몸에 들여보내 그 생전 능력을 쓴다는 기술에 대한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직접 눈으로 본 게 아니었으면 그런 게 있다고 믿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빙의에 관련된 건...”


린이 말을 흐렸다.


“아무래도 황실이나 정보부는 그녀의 기행을 단순한 정신병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타인의 혼을 몸에 정착시킨다는 걸 그대로 믿는 관계자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겠지요.”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붉은 유령에 대해 걸리는 건 빙의시킬 수 있는 혼이 몇 체나 되는지의 여부였다. 즐겨 불러 쓰는 혼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어느 혼이라도 쓸수 있다고 한다면 위험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인간종의 혼에 그치지 않고 고대 마수의 혼을 정착시키기라도 한다면 그걸 상대할 수 있는 자는 마왕군에서도 극히 한정된다.


어느 마법서에도 기술되어있지 않은 주술. 유리에가 용사고 빙의는 고유스킬이라면 간단히 설명되겠지만 아직은 그렇게 결론지을 증거가 부족했다. 천계가 직접 개입한 적은 이 세계의 역사에서 없었으니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이유로 유리에를 지켰는지는 알 수 없다.


단순히 생각해서 용사이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지킨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인가.


“바로 없애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붉은 유령과의 결판은 당장 짓기는 힘들겠군.”


인마전쟁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마족이 싸우는 전쟁. 머리 위와 발밑의 초월적인 존재들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전쟁의 궤도를 틀 뿐이다. 그건 태초부터 지금까지 불변한 규칙이다.


허나 이번만큼은 다르다. 지상의 주민이 아닌 천계가 노골적으로 참견한 시점에서 이미 과거의 전쟁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어때, 지옥으로부터의 지원은ㅡ”


있을 것 같냐고 물으려던 나는 그만두었다. 린이나 가름은 사실상 그쪽 주민이니 이미 지원이 온 거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내 사역마로 되살리긴 했지만 린은 태양을 집어삼킨 전적이 있는 펜리르, 그리고 가름은 지옥의 문을 지키던 헬하운드다.


이 둘이 충직한 아군으로 있어주는 이상 배부른 소리는 할 수 없다.


물론 천계가 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빛의 화살을 쏘아대는 아군이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지옥은 지상에 대한 주도권을 천계에 잃은 지 오래다. 전쟁에서의 패배자는 그런 것이니까.


“신들은 초조해하고 있어. 자신들의 영원한 지배에 종지부가 찾아오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우리를 막으려하고 있지.”


나는 굳은 얼굴을 한 린의 뺨에 손을 대어 입가를 풀어지게 했다.


“뭐, 너희의 소망이 곧 이 전쟁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소리다. 인간을 무찌르는 건 어디까지나 전 단계에 불과해. 결국 신을 직접 치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을 테니까.”

“명심하고 있습니다.”


린이 홍조를 띄우면서도 다짐하듯 말했다. 라그나로크에서 실제로 신살에 성공한 그녀는 신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비록 오딘을 먹어치우는데는 성공했지만 그의 아들인 비다르에 의해 바로 살해당하고 말았으니까.


“그 최종전에 관련해서는 가브리엘에게 좀 더 캐물어둬야겠어. 저 위에서 살아남은 신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아두지 않으면.”


신들과의 싸움은 상정하고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거절'의 고유스킬 외에는 암 속성 공격 마법에 의존하는 나는 마력을 응용한 새로운 공격 수단을 생각해둘 필요가 있었다.


암 속성 마법은 신성 마법과 상성이 최악이다. 고유스킬 덕에 내가 아무런 데미지를 입지 않는다고 해도 상대에게 마찬가지로 피해를 못 입히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은 키루아 덕분에 아이디어가 번뜩 들긴 했지만 일단 실천해봐야 하겠지.


“이건 오늘 회의에서 보고 드리려던 내용인데, 하늘에서 천벌이 내리는 걸 보고 제국 안의 교회가 들썩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건 추측이지만 이미 황실과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교회가?”


대륙의 교회의 배후엔 유디트 황국이 있는 걸 아는 나는 의아해 물었다.


“제국이 황국의 접촉을 받아들였다는 소리인가?”

“공식 기록은 전혀 없었지만 정황상 분명 그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공식적인 교류는 확인된 바 없지만, 최근부터 묘하게 교회에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변두리 행정구역에서 황국의 짓으로 추정되는 살인사건이 다수 발생했지만 조사는커녕 함구령이 내려져있을 정도입니다.”

“타국의 범죄를 용인했다고...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


제국의 자료를 다 뒤져본 린이 내린 결론이 그것이라면 그 사실에 틀림은 없다. 문제는 갑작스런 제국의 변심 뒤의 배경이다.


“제국과 황국은 그렇게 쉽게 화해할 정도로 썩 좋은 관계가 아니었을 텐데. 감정의 골은 왕국보다도 깊었을 터다.”

제국과 유디트 황국은 과거 영토를 두고 이권다툼한 전적도 있을 뿐더러, 황제는 한결같은 대중의 지지를 업은 교회를 눈엣가시처럼 보고 있었다.


“만에 하나 동맹을 맺었다 해도 시기가 너무 이상한데ㅡ”


위화감을 눈치 챈 나는 불현듯 말을 멈췄다.


“눈치챘군.”

“보스?”


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과 황국, 그 중에 적어도 하나의 나라는 내가 마왕이라는 걸 간파했다.”


아무리 제국이 왕국을 견제하고 싶다고 해도 바로 황국에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군사적 동맹이라면 황국보다는 프랑 공화국이 훨씬 안전한 선택이다.


황국이 공화국에 비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신성 마법 정도밖에 없다. 즉,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마족에 제일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빛 속성의 마법이라는 소리.


나라는 마왕과, 내 휘하의 마왕군의 존재에 대해 깨달은 자가 있다.


“유디트 황국. 황국이라.”


나는 아직 어리둥절한 채인 린을 향해 말했다.


“내가 떠나있는 동안 손님맞이 준비를 해둬라. 재미있는 놈들이 찾아올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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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0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296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03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03 8 9쪽
99 적발 +1 20.01.05 292 9 9쪽
98 잠입 +1 19.12.29 310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26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15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3 8 9쪽
» 위화감 +1 19.12.14 315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0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4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35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0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8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2 9 10쪽
87 난투 +2 19.11.21 33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2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39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4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49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4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79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84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1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88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06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82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16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2 12 11쪽
73 빙결의 마수 +1 19.10.03 410 11 11쪽
72 설원 +1 19.09.29 436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68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52 13 11쪽
69 대화의 시작 +1 19.09.19 449 12 10쪽
68 해제 +1 19.09.15 446 12 7쪽
67 장로회의 +1 19.09.12 467 10 9쪽
66 항구도시 프냐르 +1 19.09.09 482 11 11쪽
65 짧은 여정의 출발 +1 19.09.08 511 11 9쪽
64 하이엘프 +1 19.09.04 553 12 9쪽
63 사전 준비 +3 19.09.01 543 1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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