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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비밀을 아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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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46
최근연재일 :
2015.10.23 16:27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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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수 :
85,862

작성
15.07.0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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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0화. 있을 수 없는 계략

DUMMY

티에세로 이르는 길은 크게 둘이었는데 실제로 쓸 수 있는 길은 한정되어 있었다. 에이크를 통해 티에세 서쪽으로 이르는 길은 넓고 대부대를 운용하기 좋았고, 상대적으로 성벽이 낮고, 공성병기를 설치하는 것도 유리했기 때문에 티에세에서 교전이 벌어지면 항상 이 서쪽 루트가 전장이 되었다.


반면 북쪽 쇼쇼츠에서 이르는 길은 두겹의 성문을 제외하면 높은 절벽이 성곽처럼 펼쳐져 있고, 절벽 위로 80미터의 성벽이 이어져 있는, 자연과 인간의 합작 요새로 통했다. 이 길은 비전투시에는 상인들이 애용하는 루트지만, 전쟁이 벌어지면 쥐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성벽을 뚫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성을 지키는 쪽이나 공격하는 쪽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쇼쇼츠 루트로 입성하게 될 겁니다. 플로라님은 부대의 대부분을 이끌고 에이크로 가주십시오. 적들과의 교전은 5일 후인 7주 3일 오전 3시부터 시작하시면 되며, 준비된 공성병기를 적에게 보이기만 할 뿐 실제로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단, 궁수들에게 쉼없이 사격을 시키시고 2시간에 한번 씩 군대를 좌우로 움직여서 시선을 교란해 주십시오. 안젤라님과 히폴리토님께 좌군과 우군일 맡기시면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입니다. 전 500의 병사와 함께 쇼쇼츠로 가겠습니다."


"겨우 500명이요?"


플로라가 놀라서 물었다.


"상장은 엘리사로 정했습니다. 쇼쇼츠에서도 어느 정도의 교전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번 세인트 에일린을 점령할 때 사로잡았던 사람 중에 한명을 데려가겠습니다."


"그 때 적의 장군급은 모두사망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제가 데려갈 사람은 일반병입니다."


플로라는 나덜론의 의중을 묻고자 했지만 여느때처럼 나덜론은 자기 할 말만 마치고 자리를 떴다. 헬레나는 그런 플로라의 곁에서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전...이럴때 놀림받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플로라가 한탄 아닌 한탄을 하자 헬레나는 그런 소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요. 나덜론님은 진심으로 플로라님을 염려하고 있답니다."


"그런 걸까요?"


"그분을 믿어주세요. 나덜론 님은 누구보다도 플로라님을 위해 싸우고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헬레나님께 그렇게 말을 들어버리나 더 이상 할말이 없네요."


플로라는 입을 비죽 내미는 것으로 심정을 내보였다.




나덜론은 엘리사와 함께 포로 수용소에 가자마자 구석에서 자고 있는 청년을 지목했다. 그들의 앞에 끌려온 청년은 둥글둥글한 눈을 꿈뻑이고 있었는데, 키가 작고 뚱뚱하여서 전투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빠, 이 사람 맞아요?"


"음. 틀림없어."


나덜론은 끄덕였다. 청년은 나덜론을 힐끔힐끔 올려다보며 "왜 날 부르셨수?"하고 질문했다.


"생쥐르 브룸. 텅크스와 쇼쇼츠 근처의 도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멜비나의 아래에서 일한지 1년이 채 안되었고... 맞습니까?"


"그야... 맞수. 난 그래도 약탈만 하고 누굴 죽이거나 하지는 않았다구. 진짜야."


생쥐르는 두려운 표정으로 대답하자 나덜론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죄를 물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힘을 빌리고 싶어서 왔죠. 도와주신다면 당신의 죄를 모두 지워드리고 우리 군으로 편입하겠습니다. 멜비나 때보다 당신의 취미에 맞을 겁니다."


"어? 내... 취미?"


"당신은 무기공학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 어떻게 알았지?"


생쥐르가 깜짝 놀라 물었지만 나덜론은 계속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티에세를 얻기위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멜비나 때보다 두배의 수당을 드리죠."


"그래도... 뭘하는지 몰라서야... 알겠다구... 알겠지만..."


생쥐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나덜론은 주저없이 그에게 그가 할 일을 상세히 일러주었다. 짧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생쥐르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매우 기발하군. 아무렴, 기발해. 세인트 에일린 때도 깜짝 놀랐지만, 이번엔 더욱 놀랄만 하군. 당신의 그 작전은... 그야 가능하긴 하지. 하지만 당신, 조금만 잘못되어도 죽는다구. 날 믿어도 괜찮은거야?"


나덜론은 대수롭지 않은 듯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사람 좋은 양반이로구만. 전장에서 그렇게 막 믿으면 안돼지. 그런 사람일 수록 일찍 죽는 법이야."


생쥐르가 혀를 차며 나무라자, 나덜론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1028년 7주 2일이 되어서야 그렘은 티에세를 공격하는 부대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티에세의 성벽 위에서 보일 정도로 가까이 위치한 시민 연합군을 보고 그는 껄껄 웃었다.


"이 곳은 티에세다! 이 성벽을 저놈들이 넘는 일은 세상이 뒤집혀도 없을 것이다!"


그렘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전병력을 에이크 방면으로 모으고 전투를 준비했다. 병사도, 무기도, 화살도, 식량도 충분했다. 다만 그에게는 상상력이 부족했다.


쇼쇼츠 방면에 도착한 나덜론은 이끌고 온 병사를 엘리사에게 맡겨 숨겨두고 가벼운 복장을 꺼냈다. 오른손에는 갈고리가 달린 장갑을 끼고, 신발은 발끝에 가죽을 두번 댄 얇은 천신발로 갈아신었다.


그는 양 손에 찬 팔찌를 다시한번 꾹 쥐었다. 이 팔찌는 이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마도 도구. 선대 마후라나가 공들여 만든 도구로, 영원한 마력을 품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한다. 지금은 찾을 수 없는 유니콘의 뿔을 녹여 만든 팔찌와, 은사를 이어주는 이름 모를 보석은 사용자의 의지를 담아 움직이는 것을 돕는다. 궤도의 수정과 은사의 길이 조절이 가능한 이 도구는 암벽 등반을 하는 데에는 최적의 장비이니, 적극 활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절벽부터 성벽 위까지의 높이는 100피야메세(=220미터)가 넘었다. 그렘이 쇼쇼츠 방면을 수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기까지 했다. 발 딛을 곳조차 없는 성벽을 넘는 것은 불가능했다. 처음에 나덜론의 이야기를 들은 생쥐르가 무릎을 치며 단언했을 정도였다.


"이보시오, 형씨. 거기 성벽은 벽면이 석영과 흑요석이야. 마도 방벽으로 쓰였을 때 마력을 흐르게 하려고 만들었었지. 밟을 곳이 없는게 아니라 아예 미끄러 질 정도라고. 거미도 그 성벽은 못올라가."


"그렇겠지요."


나덜론은 끄덕였다.


"그래서 미리 사다리를 만들어 뒀습니다."


"하, 사다리?"


생쥐르는 코웃음을 쳤다.


"100피야메세의 사다리를 거기에 만드는 걸 병사들이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는건가?"


나덜론은 고개를 젓고 품에서 둥근 나무 쪼가리같은 것을 꺼냈다.


"그건 뭐야?"


"진흙 담쟁이의 씨앗입니다."


"진흙 담쟁이라구?"


그가 눈을 꿈뻑이며 되묻자 나덜론은 "1년 전에 티에세 성벽 아래에 심어뒀지요."라고 대답했다.


"지금 쯤이면 성벽 위까지 자랐을 겁니다. 진흙담쟁이는 제법 질기죠. 최소한의 발판은 될겁니다."


생쥐르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형씨, 이 작전을 1년 전부터 생각해뒀다는 것인가? 그래도 그 정도로 성위까지는 못올라갈텐데."


"그래서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모자란 길이의 사다리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사다리라고?"


"당신은 철화살을 10개 만들어 주십시오. 화살촉부터 화살대까지 이음매없이 한번에 제련한 화살이 필요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리지만 당신이라면 가능하겠지요."


"그야 만들 수야 있지만... 만드는데 시간도 많이 들고 투속도 느릴텐데... 전투용으로는 무리야. 설마 그걸로 성벽이라도 뚫어보겠다는건가?"


"성벽의 두께는 4미터. 대포로 쏴도 외벽만 파일뿐입니다. 발리스타로 쏜 철화살로 벽을 뚫는 것은 당연히 무리겠지요. 하지만 화살을 벽면에 박아넣을 수는 있습니다."


나덜론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생쥐르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오른 팔 근육은 두개가 끊어져 있다. 악력은 반, 근력은 그 이하이다. 섬세한 움직임도 어렵다. 나덜론은 오른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해보았다. 힘이 부족하면 은사의 정교한 투척은 불가능하다. 단순히 던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목표물을 휘감아야 하는 이 작전에 오른팔은 쓸 수 없는 것이다. 이 팔로는 단단히 매달려 있는 것도 쉽지 않을테니 왼팔 투척 역시 큰 제약을 받는다.


실수는 단 한번도 용납될 수 없다. 상처가 없을 때는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티에세를 공략할 유일한 작전은 반드시 성공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잘못된 판단에 의한 자취가 남아있었다. 지금부터 이 앞은 미지. 벌어질 현상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다시 계약을 할 여지도 없이 끝나버린다. 그래서야 플로라를 지켜낼 수 없다.


'해낼 수 밖에 없어.'


나덜론은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 시각은 3시. 성벽위의 병사들이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곧 그들은 몇명의 경계병만 두고 플로라의 본대를 막기 위해 쇼쇼츠 방면의 성벽을 잠시 떠날 것이다. 하늘은 어둡다. 달빛은 구름에 가려진다. 곧 비가 온다는 것을 나덜론은 알고 있었다.


과학자는 새벽에만 폭우가 쏟아지는 특수한 서식지에서 자라온 진흙담쟁이가 물방울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뿌리 부분의 접착강도가 조절되도록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진흙담쟁이는 새벽녘이 되면 뿌리가 더욱 단단하게 벽에 달라붙는데, 그 때에는 줄기에 수직압력이 증가하면 뿌리 역시 접착력이 증가하는 기이한 습성이 있는 것이다. 새벽, 거기에 폭우까지 오는 날이면 진흙담쟁이는 아무리 당겨도 뽑히지 않기 때문에 티프소 과학자들의 진화론은 제법 힘을 얻었다.


하지만 처음 이 작전을 고안한 그는 말했다.


"신은 이 전쟁을 이기기 위해 이 식물을 만들었다."


나덜론은 어설픈 진화론보다 그의 맹신론이 더 와닿았다.


"여신 엘리츠나여."


나덜론은 어둠 속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천천히 왼팔을 내밀었다. 넝쿨은 그가 당길 수록 더욱 단단히 벽에 달라붙었다. 그에게 주어진 새벽 시간은 겨우 1시간 남짓.


담쟁이는 거의 45피야메세(=100미터) 가량 뻗어있었다. 하루 종일 버티고 있는 것이라면 한 손으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르는 것의 피로는 비할 바가 못된다. 쓰지 않는 오른팔이라는 짐은 매달릴 때조차도 사용할 수 없다. 나덜론은 발을 딛고 숨을 죽여 오르기 시작했다. 시야는 제로. 어둠에 익숙한 그가 아니고서야 이런 곳을 기어오를 생각을 할 수는 없다. 비는 계속 쏟아지고 있다.


'느려.'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가야 할 구간에 손을 대며 그는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번개가 치기 전에 올라가야 하는데...'


한참 전에 성벽부근에 도착해서 경계면의 틈에서 쉬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직 절벽의 반조차 이르지 못했다.


'조급해서는 안 돼.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된다.'


만약 실패한다면 여기에서 떨어져 죽는 멍청이가 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티에세 공성전의 실패 역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가 죽으면 다음 기회를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플로라는 영원히 구할 수 없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리하게 양 다리를 박차서 절벽의 굴곡 하나를 뛰어넘었다. 압력을 견디지 못한 담쟁이 몇줄기가 흔들렸다.


'침착하자. 침착해.'


나덜론은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 차가운 빗방울이 머리칼을 타고, 눈썹을 타고 뺨으로 흐른다. 아직 차가운 새벽바람에 체온이 떨어지고 있다. 그건 안 좋다. 급격한 온도 변화로 근육이 위축되기라도 하면 실수할지도 모른다. 단 한번도 보지 못한 미래를 위해 나덜론은 차분히 줄기를 따라 올랐다. 곧 벼락이 칠 것이다. 그 전에 성벽 앞까지 오르지 않으면...


하늘이 번쩍였다. 나덜론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번개가...!'


곧 이어 천둥이 쳤다. 시야안의 어둠을 가르는 무언가가 공기를 흔들었다.




"오늘 밤 아주 잠깐 폭우가 옵니다. 생쥐르, 벼락이 보이는 순간 화살을 쏴주세요."


"벼락이 보이는 순간?"


"화살은 천둥소리가 울릴 때에 성벽에 박힐겁니다. 성벽위의 적병은 쇠막대가 성벽에 박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거에요."


생쥐르는 입을 쩍 벌리고 "그... 그런 묘기는 무리인데..."라고 말을 흐렸다.


"작은 오차는 괜찮아요. 하지만 가급적 시간을 기억해주세요. 35초 간격으로 열번 천둥이 칠겁니다. 10개의 화살을 성벽 맨 아래부터 8미터 간격으로 박아야 합니다."


"천둥의 시간?"


생쥐르는 눈을 꿈뻑였다.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거지?"


"그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도록 하죠."


나덜론은 지켜질리 없는 약속을 하고 웃어보였다.




'망할... 어디에 박힌 거지?'


나덜론은 눈을 부릅뜨고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날아오는 순간을 보지 못한 그에게 철화살의 위치를 아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가 두 걸음을 다시 옮겼을 때, 다시 번개가 쳤다. 공기를 관통하여 날아온 화살은 천둥소리에 맞춰 성벽에 박혔다.


나덜론은 성벽을 올려다보았지만 역시 화살의 궤도를 보지 못했다. 덜컥하고 그의 몸에 힘이 빠져나가서 자칫하면 그대로 미끄러질 뻔했다.


'틀렸어. 화살을 볼 수가 없어.'


다음 번개가 쳤다. 화살은 또 다시 성벽에 박혔으리라. 하지만 그 화살이 어디에 있는지 그는 보지 못했다. 나덜론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최대한 빠르게, 그러나 신중하게 그는 담쟁이를 밟고 위를 향했다.


겨우 성벽 아래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비는 그쳐 있었다. 어둠이 걷히면 병사들에게 발각될 것이다. 올라갈 사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무리한 등반을 한 왼팔은 당장이라도 경련이 일어나려고 한다. 체력은 이미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내려가서 새로운 수를 내야하는 건가?'


비는 이미 그쳐있고 새벽은 거의 끝나간다.


'진흙 담쟁이가 과연 견뎌줄 수 있을까?'


무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버텨줄 수 있을지 보장이 없으니 내려갈 수 없다.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보이지 않는 사다리를 찾기 위해 은사를 던져봐야 하나?'


그것 역시 무리다. 은사의 강도를 잘못 조절했다가는 쇠막대를 잡기는 커녕 그대로 조각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작전은 끝난다.


'아냐, 방법은 있어.'


나덜론은 기억을 더듬었다. 이 장면은 과거에 본 일이 있다. 횟수로는 6번이나 그 이상. 화살은 항상 같은 곳에 박혔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머리속 어딘가에 있다면 물고 붙잡을 수 밖에 없다. 나덜론은 천천히 오른 손의 장갑에 이어진 갈고리를 절벽 끝에 끼웠다. 왼손을 두어번 털었다. 뭉쳐있던 혈액이 서서히 순환되고 있다.


'던질 수 있어.'


그는 꾸욱 하고 은사의 보석을 쥐었다. 목표는 기억 속의 장소. 강도도, 길이도 틀려서는 안된다. 눈을 감고 바라본다. 분명히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렇다면 믿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화살을 쏘고 내려온 생쥐르는 멀리 성벽을 바라보았다. 언뜻언뜻 보이는 나덜론의 그림자는 절벽을 모두 오르고 이제 성벽을 오르고 있었다. 그림자가 한번 흔들리더니, 수미터를 단번에 날아올라갔다.


"저건 뭐지?"


생쥐르는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날아오른 그림자는 생쥐르가 쏜 쇠막대에 몸을 의지하고 다시한번 팔을 휘두르고는 또 다시 몇미터를 날아올랐다.


"저것이 사용자의 의지를 받아들인다는 그 마도구인가... 어허, 대단한데. 암벽등반용이라더니 저런 묘기도 가능한 거였군. 길이 조종도 가능한건가? 나도 써보고 싶은걸. 가능하면 분해도 해보고 말이야."


말이 많아진 생쥐르는 신경쓰지 않고 엘리사는 나덜론의 그림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아빠가 어떤 각오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응원뿐이라는 것에 제법 분노까지 느끼고 있었다.


"꼬마 아가씨도 저걸 써본 적이 있나?"


생쥐르가 계속 말을 걸자 그녀는 짜증을 섞어 대답해 주었다.


"엄청나게 연습을 해야 가능해요. 보통 사람은 염파를 흘려보내는 것도 불가능해요."


"나도 연습을 하면 되지 않나?"


"30년은 노력해야 원하는대로 연파를 넣을 수 있다고 했어요."


"엥? 저 형씨는 아직 서른 살로는 안보이는데? 못쓸 사람이구만. 딸에게 거짓말이나 하고 말이야."


"거짓말이 아니에요."


엘리사는 힘주어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라구요."


서서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나덜론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그는 성벽 위로 뛰어 오르자마자 왼팔을 휘둘러 은사를 뻗었다. 성벽 위를 지키던 병사는 이 있을 수 없는 기습에 비명한번 못지르고 쓰러졌다.


"저 형씨, 정말 올라가버렸군."


생쥐르가 허허,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작전이 성공하다니... 마치 마법을 본 기분이야."


엘리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한손을 들어 병사들에게 진군을 지시했다. 500명의 병사는 숲에서 나와 당당히 성문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고, 10분 후 티에세의 성문이 열렸다.


작가의말

이계의 악마의 수장이었던 크무스 레드릭은 티에세를 점령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습니다만, 정작 그가 티에세를 점령할 수 있던 것은 정공법 덕분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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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센트 연대기 ~ 비밀을 아는 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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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휴식의 날 15.10.23 132 1 20쪽
13 12화. 마후라나 15.08.17 96 1 14쪽
12 언젠가의 이야기 15.08.12 163 1 22쪽
11 11화. 재앙을 막을 땅 15.07.10 92 1 10쪽
» 10화. 있을 수 없는 계략 15.07.08 109 1 17쪽
9 9화. 티에세를 향하여 15.07.02 157 1 9쪽
8 8화. 사자의 방문 15.06.26 148 1 3쪽
7 7화. 되찾은 세인트 에일린 -2 15.05.29 109 1 11쪽
6 6화. 되찾은 세인트 에일린 -1 15.05.29 124 1 11쪽
5 5화. 지켜진 적 없는 약속 15.04.29 108 1 6쪽
4 4화. 실수 15.04.20 140 1 14쪽
3 3화. 퀴나성 전투 15.04.20 144 1 13쪽
2 2화. 슬픈 봄날 15.04.20 166 1 21쪽
1 1화. 홀로 남은 소녀와 홀로 남은 남자 15.04.20 267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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