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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비밀을 아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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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46
최근연재일 :
2015.10.2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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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2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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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퀴나성 전투

DUMMY

해가 질 무렵, 퀴나가 보이는 언덕에 플로라의 군대가 도착했다. 이들의 병력의 수는 거의 1만에 이르렀지만, 그 내용을 보면 군대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민병대가 태반을 이루는 집단에 불과했다. 전력의 차이가 워낙 심한데다가 퀴나 성이 수성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젤라는 상대가 요격을 나올 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는데, 퀴나의 군대는 철저하게 농성태세를 갖추고 있을 뿐 성에서 나올 기색이 없었다. 이에 플로라는 아침이 될때까지 전 부대에게 휴식을 주고, 경계만을 철저하게 세웠다.


"싸우려면 힘이 필요하니까요. 충분한 휴식을 취하되 야습에 대비하면 됩니다. 길이 험한 건 우리에게도 곤란한 일이지만, 저들에게도 곤란해요. 또한, 우리는 최소한 숫자상으로는 밀리지 않아요. 난전이 되면 도리어 승기를 잡을 수 있어요."


출전 경험이 거의 없는 데도 그녀는 백전노장인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히폴리토는 감탄하며 자진하여 경계부대를 이끌었다.


"노인이 되면 잠이 줄거든요. 허허,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그렇게 내일의 전쟁을 준비한 다음, 그녀는 헬레나와 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퀴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해가 진 후의 퀴나는 적막했다. 불이 켜져 있는 집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유독 광산에만 아름답게 불이 켜져있지만, 그것은 탐욕스럽게 달려드는 누군가를 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초롱아귀같이 보일 뿐이었다.


"돌아왔네요, 퀴나에."


헬레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플로라는 멀리 보이는 퀴나성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제이로 플라비오 장군님이 저기서 돌아가셨지요."


"예."


돌아오는 담담한 목소리. 플로라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조심스럽게 예스런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미망인에게 물었다.


"슬프신가요?"


플로라는 곧 자신이 매우 바보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분이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니, 설령 한참 지난 후라도 슬픈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헬레나는 플로라가 자책하는 표정을 짓자 후후, 소리내어 웃고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플로라님은 운명을 믿으시나요?"


플로라는 그녀의 의도를 읽어보려고 하다가 3초만에 포기하고 한숨을 쉬듯이 대답했다.


"아뇨... 솔직히 전 안믿어요."


"왜죠?"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직접 개척할 수 없잖아요."


"역시 진취적이시네요."


헬레나는 대견하다는 듯이 플로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쓸쓸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저 역시 믿지 않았답니다. 나덜론님을 만날때까지는요."


"에?"


"하지만 운명은 있었어요. 제 남편이 이 곳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도 운명의 하나였지요."


헬레나의 슬픈 표정은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확고히 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플로라는 묻고 싶은 말을 꾹 삼켰다. 대신 나덜론을 만나면 목을 잡고 흔들어서라도 물어볼거라고 다짐했다.


당장 몇 시간 후면 전투가 벌어질텐데도 아직 나덜론은 오지 않았다. 지주들 사이에서도 그가 도망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병사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헬레나와 엘리사는 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한번 퍼진 불안은 쉽게 사그라들줄 몰랐다.


그 불안은 플로라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만 믿고 시작한 전쟁이니만큼 당사자가 없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이쯤되면 나덜론이 원망스럽기까지 한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염려하실 것 없어요."


"염려하는 건... 아니에요."


"그 분은 매우 시간을 소중히 하거든요. 반드시 나타나실거에요."


그녀는 아까까지의 쓸쓸한 표정 대신 평소의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플로라는 그 웃는 얼굴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그래... 내일이 되면 나타날거야. 처음 그랬던 것처럼... 만약 제때 안오면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어야지.'


그녀는 굳게 다짐하며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막사로 돌아왔다.




새벽. 사자보는 초조해하고 있었다.

전령을 보냈음에도 세인트에일린에서는 답이 없다. 아무리 그 잔혹하고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여자가 자기밖에 모르는 극한 이기주의자라고 해도 퀴나가 점령되는 것을 놔둘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군은 고사하고 편지 한 장 돌아오질 않는다.


"젠장, 멍청해서는... 적을 섬멸할 기회를 놓치고 싶은건가."


그렇지만 멜비나에게서의 원군이 없다고해도 질 리 없는 싸움이다. 성을 끼고 싸우는데다 상대는 이제 막 무기드는 법을 배운 민병이다. 솔직히 크게 호통한번 치면 개미새끼처럼 흩어질 것이다. 사자보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접힌 턱을 문질렀다.



새벽, 오전 5시. 서서히 떠오르는 해가 북소리와 섞였다.

플로라는 지휘관을 불러 작전을 설명했다. 하지만 공성전인 이상 특출난 작전이 있을 수 없다. 플로라는 부대를 둘로 나눈 후 정공법으로 나서기 위해 사다리와 임시 충차를 배치했다.


"북문과 동문을 동시에 공격하겠습니다. 북문은 안젤라에게 맡길게요. 동문은 제가 직접 공격합니다. 부디, 피해를 최소한으로 해주세요."


그녀는 몇 번이고 "피해를 최소한으로."라고 당부한 다음에 말 위에 올랐다. 피해를 최소한으로라는 건 말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들은 모두 그저 시민들이다. 지금 이 넓은 평지를 채우고 있는 모든 이의 목숨을 플로라가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말고삐를 쥔 손에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는 것을 깨달았다.


"... 긴장하면 안돼. 작전대로... 어라?"


그녀는 자신의 손이 잘 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나덜론이 없다. 이렇게 불안한데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 어?"


그리고 손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당장 병사들에게 말해야하는데, 싸워야 한다고 말해야하는데... 몸조차 움직여지질 않는다.


"플로라 님."


헬레나가 다가와서 손을 쥐고 천천히 펼쳐주었다. 손바닥에는 가죽끈 자국이 진하게 남았다.


"... 괜찮아요. 플로라님은 할 수 있어요."


그녀는 평소대로 웃어주었다. 플로라는 꾹 이를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웃어보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울면 안되기 때문에.


"아직 괜찮아... 응. 괜찮아..."


그녀는 중얼거리며 철판을 댄 나무 투구를 썼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말 고삐를 돌렸다.


"우리는 퀴나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성다웠지만 갸냘프지는 않았다. 도리아 웅장하게 전장을 울렸다.


"저들은 우리의 많은 것을 빼앗았습니다! 가족, 집, 그리고 우리의 도시!"


그녀는 레이피어를 뽑아들었다.


"이제, 우리의 것이었던 것을 되찾을 때입니다! 우린 저들에게 우리의 분노를 보여줄 것입니다!"


병사들의 얼굴에서 불안이 사라지고 있었다. 동시에 분노가 드리워졌다. 플로라가 기대를 걸고 있던 바로 그것. 이 전쟁은 복수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불안해할 여유가 없다.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돌격! 퀴나를 되찾자!"


긴 나팔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병사들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했다. 그리고 플로라는 보았다. 아니,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퀴나의 동문과 남문에 모든 적의 시선이 쏠려있는 바로 지금, 외벽 위에 한 장수가 서 있었다. 너무 멀어서 잘 알수 없지만, 그는 떠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고 있었다.




나덜론의 무기는 팔찌에서 이어지는 긴 끈과, 그 끝의 보석이었다. 제작자의 의도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강도를 가진 금속이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금속이 터무니없이 귀하여 이 보석이 되었다, 라고 그의 스승이 말했다. 길게 뻗으면 50피야메세까지도 닿을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분리할 수도 있는 요긴한 물건이지만, 원래 사용법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거의 채찍과 같이 휘두르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낙하를 할 때 매달리거나 하는 여행자 물품에 불과했다. 그 무기를 나덜론은 양손검처럼 휘둘렀다.


보통 사람들은 본적도 없는 물건을 기괴하고 정교하게 휘두르는 그의 기술은 가히 신기라 부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 이상으로 불안요소가 많았다.


일단 무기의 생김새만 알면 반격이 가능한데다가 공격 속도가 검이나 창에 비해 늦었다. 긴 거리를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지만, 지근거리에서는 일반 검보다도 활용도가 낮았다. 심지어 무거운 무기가 상대라면 막아내는 것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의 무장이라면 결코 택하지 않을 만한 무기였다.


다만 암살자가 쓰게 된다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나덜론은 그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성의 외벽을 단숨에 타고 올라간다음 그는 그에게 시선이 몰리기 전에 경계병 두명을 동시에 쓰러뜨렸다. 즉시 성 안으로 뛰어내린 그는 내벽을 몇 걸음에 지나치며 순찰병 한명의 목을 베어냈다. 나덜론이 향한 곳은 마을 광장이었다. 대부분의 병력이 외각에서 공성전을 준비하는 동안, 광장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1개 분대정도만이 머물고 있었다.


전쟁 나팔과 함께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성을 울리는 순간, 은발의 청년은 광장 한복판까지 질주했다. 대기 있던 병사들이 무기를 뽑기도 전에 두명을 처리했고, 접근전을 벌이지 않고 다시 두명을 쓰러뜨렸다. 도망치는 한 명의 뒤통수를 꿰뚫은 다음, 그를 향해 덤벼오는 병사의 검을 피해내며 발로 걷어차서 쓰러뜨렸다. 넘어진 병사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 병사의 목에서는 붉은 선혈이 치솟았다.


"플로라님의 부대가 왔습니다! 퀴나의 시민들이여! 이제 복수의 때가 왔습니다! 퀴나를 우리 손으로 되찾도록 합시다!"


나덜론의 외침은 광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첫번째 호응까지는 눈깜빡일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사자보 파르는 물론 플로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성의 안쪽에서부터 일어난 시민군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그 수가 단숨에 천명을 넘어버렸다. 성 곳곳의 병사들은 그대로 제압당했고, 성벽을 수비하던 주력군도 등뒤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플로라님, 적들이 이상합니다."


동문의 선봉에 섰던 히폴리토의 말에 플로라는 적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외벽 위로 뛰어올라오는 것은 적병이 아니라, 시민들. 내부의 호응이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는 뛸뜻이 기뻐했다.


"이길 수 있어요! 우린 이길 수 있다구요!"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승리를 목전에 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해주었다. 병사들은 더욱 거세게 압박했다. 플로라의 명령을 받은 오제의 병사들은 화살을 쓰는 대신 사다리를 걸었고, 사다리 바로 위는 시민병들에 의해 지켜졌다. 엘리사는 가장 먼저 사다리를 올랐고, 기다리던 시민들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 맡겨줘요!"


시민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내부에서 무기를 들고 나오는 시민들은 점점 늘어나 그 수가 어느덧 만에 이르게 되었다. 사자보는 무기를 내던지고 외쳤다.


"멍청이들아! 도망쳐! 이런 상황에서 싸울 생각이냐!"


대장이 그 모양이니 병사들이 싸울 의지가 있을리 없다. 대다수는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주했고, 성문이 열린 후로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항복하는 적병이 더 많았다. 세인트에일린의 군대는 겨우 세시간만에 괴멸되어버린 것이다.




퀴나에는 "시민 연합"의 기가 걸렸다. 세인트 에일린을 처음 세운 백작가의 사람들이 생각해낸 그들만의 문양이었다. 농사를 뜻하기 위한 녹색의 깃발에 의지를 뜻하는 성이 그려져 있었다. 검은색 동심원의 문양은 화합을 표현한 것이고, 붉은 검의 문양은 용기를 나타냈다. 이 문양이 다른 귀족들의 문양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점은 "왕에 대한 충성"이 그려져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어쩌면 먼 옛날부터 그들은 왕같은건 어찌되어도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퀴나를 되찾은 시민들은 기뻐했다. 안젤라는 포로들을 모조리 감옥에 가두고 군대를 동원하여 막사를 짓는 역할을 자청했고, 히폴리토는 시민들이 과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정돈하고 최소한의 치안을 유지시키기 위한 방범역을 맡았다.


플로라는 어떠한 일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성안을 돌면서 계속 그 사람을 찾았다. 그녀는 아직도 나무투구를 벗지 않았다. 벗는 것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성을 반바퀴나 돌고 나서야, 그녀는 퀴나성 중심에 있는 광장에 서있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울고 있는 헬레나를 끌어안고 나덜론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엘리사는 두사람의 곁에서 울상이 되어 투구를 안고있었다. 플로라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들이 드디어 제이로 플라비오 장군을 만났다는 것을 알고 발걸음을 돌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그녀는 결국 울지 않았다. 그 날 밤에는 나덜론에 대해서 한 마디 비난도 하지 않았다.


작가의말

테르센트는 티프소와 마찬가지로 위성이 하나입니다. 달의 크기는 티프소의 위성의 두 배에 이르러서, 밤이 되면 어둠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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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센트 연대기 ~ 비밀을 아는 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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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화. 마후라나 15.08.17 97 1 14쪽
12 언젠가의 이야기 15.08.12 163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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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티에세를 향하여 15.07.02 158 1 9쪽
8 8화. 사자의 방문 15.06.26 148 1 3쪽
7 7화. 되찾은 세인트 에일린 -2 15.05.29 110 1 11쪽
6 6화. 되찾은 세인트 에일린 -1 15.05.29 124 1 11쪽
5 5화. 지켜진 적 없는 약속 15.04.29 108 1 6쪽
4 4화. 실수 15.04.20 140 1 14쪽
» 3화. 퀴나성 전투 15.04.20 144 1 13쪽
2 2화. 슬픈 봄날 15.04.20 167 1 21쪽
1 1화. 홀로 남은 소녀와 홀로 남은 남자 15.04.20 267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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