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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비밀을 아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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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46
최근연재일 :
2015.10.23 16:27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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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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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수 :
85,862

작성
15.05.2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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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화. 되찾은 세인트 에일린 -2

DUMMY

세인트 에일린의 복구 작업은 역사의 어디에도 기록된 적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졌다. 아모스 저택에는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멜비나의 횡포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보답으로 기꺼이 성실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아모스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인 플로라는 그 중심에서 구심점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하지만 그녀는 농담으로라도 자신의 공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오제에서 출전한 지 겨우 60일."


또 다시 어디론가 사라진 은발의 미청년을 찾아 헤매는 대신, 플로라는 달력을 펼쳐 그간의 행보를 적었다. 지난 4주의 시간은 너무나도 바쁘게 흘러갔지만, 어느 날 하나도 잊을 수 없었다. 플로라의 오른손에 든 펜은 잉크병과 달력 사이를 왕복했다.


"오제를 지켜내고, 상인들을 설득해서 조합을 같은 편으로 만들었어."


그녀의 시선은 언뜻 성벽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에게 머물렀다. 그들은 이제는 제법 훌륭한 군인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몇 주 전만해도 좀도둑 순찰을 돌던 아저씨들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모두 나덜론이 직접 끌어모아 훈련을 시킨 병사들이었다. 소녀의 시선은 다시 달력으로 향했다.


"퀴나를 공격해서 성을 뺏은 다음, 광산 조합을 끌어들여서 치안을 안정시켰어."


그녀는 지나간 달력 위에 '퀴나 수복'이라고 또박또박 적어내려갔다.


"그리고 멜비나의 기습을 예견하고..."


예견이라는 말은 이상하다. 그는 틀림없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멜비나의 야간 기습이 실패하면서 세인트 에일린을 수복할 기회를 얻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멜비나를 축출하고 세인트 에일린을 점령.. 인가."


4주만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사건. 사실상 리베리아 대륙 서쪽의 최강 세력이었던 멜비나의 군대는 용병단을 끌어모은 민병 수준의 병사들에게 패하여 이젠 모조리 흡수되어버린 상황인 것이다. 아무런 불협화음도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덜론의 수완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이익을 원하는 이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했고, 필요에 따라서는 충성심마저도 이용했다. 그 결과 시민 연합은 이제 새로운 세력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이상해."


가장 기뻐해야할 사람은 플로라이겠지만, 그녀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달력책을 탁, 소리나게 덮었다.


"이번에야 말로 직접 물어보겠어. 대답을 할 때까지 계속 물어볼 거야."




결심을 한 플로라가 나덜론의 방을 방문했을 때는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늦은 밤의 방문은 왠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지만, 낮동안은 그의 위치를 알 수가 없다며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그녀는 심호흡을 한 후 문을 두드리기 위해 손을 들었다.


그러나 가볍게 주먹을 쥔 그녀의 손은 문에 닿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은발의 기사가 정중하게 그녀에게 저녁인사를 전한 것이다.


"좋은 밤입니다."


"아..."


그녀는 뺨이 잔뜩 붉어져서는 그를 올려다보다가, "저, 들어가도 되나요?"라고 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손짓하여 들어올 것을 제의했으므로 결국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라모스 저택의 3층 구석의 작은 방은 작은 책상과 두개의 의자, 그리고 침대 하나뿐만이 있는 초라한 장소였다. 하지만 그 작은 책상위에는 단 과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따뜻한 물로 씻은 찻잔이 놓여있었다.


"제가 올 것을 알고 있었나요?"


플로라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는 빙긋 웃어보일 뿐이지만 충분한 대답이라고 생각한 플로라는 각오-이번에야말로 원하는 답을 듣겠다는-를 굳히고 다시 물었다.


"나덜론님, 당신은 미래를 알고 있죠?"


청년은 솜씨좋게 찻잔에 호박색 액체를 따른다음 그녀의 앞에 두었다.


"... 저, 제가 이 차를 마실지 안 마실지도 알고 있나요?"


"드시겠죠. 맛있는 차고, 플로라님은 정성을 다해 끓인 차가 차갑게 식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실테니까요."


나덜론은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찻잔을 들었다. 그의 평온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기에 플로라는 그의 앞에서 꼭 물어볼 거라는 각오조차 잊고 멍하게 그의 입술로 넘어가는 홍차를 바라보았다.


"히폴리토님이 좋은 홍차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원래는 파는 물품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기뻐해야 할 시기니까요."


"에...?"


"세인트 에일린은 오랜 고향과 같죠.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플로라님께도요."


플로라는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움, 하고 숨을 삼켰다. 그리고 겨우 그녀는 자신이 방문한 이유를 기억해냈다.


"저, 나덜론 님. 대답을 일부러 회피하고 있으시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전 플로라님께 모든 것을 말씀드릴 겁니다."


"그럼 대답해주세요. 미래를 알고 계시는 것 맞죠? 예언같은 건가요?"


그는 다시한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플로라님, 제가 만약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면 이렇게 팔을 다치지 않았겠지요."


그는 조금 씁쓸한 얼굴로 다친 팔을 살짝 움직여보였다. 붕대를 묶어둔 그의 팔은 아직도 상처가 낫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완쾌에 1년이 필요한 중상이다. 플로라 역시 그가 부상으로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기억하기에 다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플로라가 침울하게 그녀의 찻잔으로 시선을 떨구자 나덜론은 몸을 일으켜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다만 제게는 정보가 있습니다. 미래의 조각이라 부를만한 것들이지요."


"미래의... 조각이요?"


그의 손은 그녀의 머리칼을 향했다. 플로라는 피하는 대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전 저의 선택에 의해 가혹한 운명과 맞서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미래의 조각은 그 보상과 같은 겁니다."


"죄송해요, 전...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나덜론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를 안았다. 매우 느린 움직임이었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따뜻한 향기가 그녀를 감싸안았다. 나덜론의 목소리는 너무 부드러워서, 플로라는 손을 들어 그의 허리를 천천히 끌어안았다.


"플로라님, 전... 당신을 지켜내겠습니다."


그는 이제 웃고 있었다.


"반드시, 당신을 지켜내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입니다."


플로라는 그제야 그가 말하는 뜻을 알고 그의 품안에서 중얼거렸다.


"나덜론님, 당신은... 말할 수 없는 거였군요."


청년은 그녀를 조금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플로라는 그의 팔에 안겨서 그가 지금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이렇게 뜨거운 물방울이 그녀의 뺨에 떨어지는 것일까.


그는 꿈을 꾸지 않는다. 너무 오랜 시간 꿈만 꾸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거라는 소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꿈은 살아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거라서 그럴거야."


그 역시 살아있다. 따뜻한 몸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플로라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눈물이 맺히고, 깊은 밤에는 식은 땀을 흘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것은 틀림없는 살아있음의 증거. 그럼에도 그는 말했다.


"꿈은 살아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니까. 나에게는 과분하지."


소녀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나덜론은 그 웃음에 따라 웃어보였다.


"염려할 것 없어. 내가 할 일을 한다. 반드시 해낼 것이다."


"무리하지 마세요."


"무리하지 말라고?"


나덜론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외쳤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어! 난 아직도 내가 뭘 해야하는 지도 모르는데도...!"


"이럴 때일 수록 천천히 해야해요."


푸른 머리칼의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분명 진심에서 우러나온 충고인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이번에는 리프베아체를 돕겠어. 시민연합을 보존하는 편이 좋겠지. 쿠안은... 그리고 쉐릴은 너무 약했으니까."


"선택은 오로지 당신의 것이에요. 그리고..."


"책임도 나의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건가?"


그는 소녀의 무책임함을 비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꾹 하고 목의 중간에서 걸린 목소리는 '난 무엇을 하면 좋지?'라고 묻고 있었다.


"쉬세요. 하루라도 좋아요. 편히 쉬어보세요."


소녀는 노래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사람은 당신의 곁에 있잖아요."


그건 그럴 수 없다. 그는 생각했다. 이 시간은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계속될거라는 착각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아직 새벽인데도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밤새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플로라를 웃는 얼굴로 돌려보낸지 3시간 정도 지났을까? 그녀가 곁에 없는 것이 견딜 수 없게 슬펐다.




"시간이 없어."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것은 그에게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가 기다린 시간은 영겁(永劫)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그 기다림의 결과로 얻은 것은 모래시계만큼의 흘러감. 제나가 생각하는 여유를 그가 가질 수 있을리 없다. 애시당초 그는 영웅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소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는 범인(凡人)에 불과하다.


"반드시 해내야만 해."


그런데도 그의 의지는 비할 데가 없을 정도로 강했다. 한낱 소년에게 지워진 짐은 보통이라면 견딜 수 없는 것. 시련의 결과 미쳐버리거나 영혼부터 소멸해버려도 이상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견뎌냈다. 그 긴 시간, 제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플로라님, 당신을 지켜내겠어요."


그는 선잠을 자고 있다. 그러니 이것은 그의 꿈. 제나가 보는 것은 그의 의식의 잔상에 불과하다. 아침이 되면 그는 이 꿈을 기억할리 없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나도 오랜시간 꿈 속에 있었기 때문에, 꿈을 꾸는 법을 잊어버렸으니까.


'불쌍한 사람이야.'


제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든 소년을 그저 내려다보았다.


작가의말

에일린 황녀의 딸은 엘츠인 티프소의 3차, 4차 침공에 맞서 리베리아 군을 이끌었습니다. 지금도 시민들은 엘츠가 진정한 테르센트의 여황제라고 칭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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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티에세를 향하여 15.07.02 158 1 9쪽
8 8화. 사자의 방문 15.06.26 148 1 3쪽
» 7화. 되찾은 세인트 에일린 -2 15.05.29 110 1 11쪽
6 6화. 되찾은 세인트 에일린 -1 15.05.29 124 1 11쪽
5 5화. 지켜진 적 없는 약속 15.04.29 108 1 6쪽
4 4화. 실수 15.04.20 140 1 14쪽
3 3화. 퀴나성 전투 15.04.20 144 1 13쪽
2 2화. 슬픈 봄날 15.04.20 167 1 21쪽
1 1화. 홀로 남은 소녀와 홀로 남은 남자 15.04.20 267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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