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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비밀을 아는 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46
최근연재일 :
2015.10.23 16:27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1,956
추천수 :
14
글자수 :
85,862

작성
15.04.2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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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2화. 슬픈 봄날

DUMMY

슬픈 겨울이 지났다. 1027년의 겨울은 오제의 시민 모두에게 괴로운 시기였다. 끔찍한 학살이 있었지만 플로라는 냉정하게 상황에 대처했다. 그녀는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왕실로 사자를 뽑아 보냈다.


오제의 성주 에드가르도 히폴리토 백작은 플로라에게 부탁을 받고 왕실에 직접 방문하여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레프그루츠의 부하들은 이야기를 듣기는커녕 그를 공격하였고, 히폴리토 백작은 데리고 갔던 호위병을 모두 잃으면서도 어떻게든 수도를 탈출할 수 있었다. 늙은 몸을 이끌고 오제로 돌아온 그는 플로라에게 도시의 전권을 넘긴다고 선언한 다음, 오제의 병력을 이끌고 전쟁에 합류하였다.


"이미 왕실은 레프그루츠의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이대로라면 우리 모두는 처참하게 능욕당하겠지요. 플로라님, 당신에게 이 도시를 맡기겠습니다."


플로라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즉시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갓 20대에 접어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행동력으로 도시를 발전시켰다.


오제는 작은 도시였지만, 경제적으로 빈곤하지는 않았다. 상업도시로써의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플로라는 이 점을 적극 활용하여 근처의 농업지대들과 연계하여 소규모 상단을 조직했고, 에드가르도와 페델리코에게 그 운영을 맡긴다음 직접 군량과 병력을 모았다. 한편 병사의 훈련은 원래 오제의 용병출신인 안젤라 벨린다에게 맡기고 나덜론을 고문으로 삼았다. 나덜론의 훈련방법을 본 안젤라는 아주 간단히 그에게 모든 일을 일임했다.


"그렇게 대단한가요?"


플로라가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안젤라에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로는 불가능한 수준이에요. 그는 진짜로 전쟁을 치뤄본적이 있어요. 그것도 엄청난 규모의, 많은 전쟁을요."


"그런 전쟁이 최근 있었나요?"


안젤라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고, 결국 플로라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 해 겨울, 오제에서는 세 번의 합동장례식을 치루었다. 시신을 찾지 못한 이들의 장례식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중에는 백성들을 위해 끝까지 저항한 플라비오 장군도 있었다. 장례식 내내 플라비오의 미망인과 어린 딸이 나덜론의 곁에 서서 영령을 위로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은발의 장군은 플로라의 막사를 찾았다.


"저는 지금부터 이 곳을 떠나겠습니다."


그는 평온한 얼굴로 통보했다. 플로라의 얼굴에 슬픈 기색이 떠오르자마자 그는 재빨리 말했다.


"내년 첫째주에는 돌아올겁니다."


"아..."


플로라는 자신이 착각했다는 것을 알고 약간 얼굴이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나덜론은 기쁜듯이 웃었다.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전 플로라님을 도와 이 모든 전쟁을 끝낼겁니다."


나덜론이 너무 환하게 웃어서 플로라는 도리어 쑥쓰러워졌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나덜론은 본명이 아니죠?"


"예."


즉답.


"저... 가명을 써야하는 이유가 있나요?"


"예."


다시 한번 즉답.


"그럼 본명이 뭔지 알려줄 수 없나요?"


"때가 되면 모두 알게 되실겁니다. 다만 지금은 무리로군요."


나덜론이 플로라의 진형에 온지 몇주가 지났지만 이렇게 사적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기에 플로라는 조금 흥미가 동했다.


"저, 실은 저 궁금한게 매우 많아요."


"어떤 것이 궁금하신가요?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만."


나덜론은 당연하다는 듯이 화답했다. 플로라는 "음, 그럼,"하고 많은 질문중에 가장 신경쓰이는 것을 골랐다.


"저, 왜 가명이 나덜론... 인가요?"


"큭..."


나덜론은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는 듯이 웃음을 꾹 참았다가 결국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그.. 그렇게 재밌는 질문이었나요?"


플로라가 얼굴을 붉히고 묻자 나덜론은 웃음을 참기위해 노력했다.


"아뇨, 다만 첫 질문이 그거라니, 역시 플로라님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우... 저 다운 건가요?"


"이건, 죄송합니다. 기분이 상하지 않으셨길 바랍니다."


"아뇨... 우... 하지만 정말 신경쓰였는걸요."


플로라가 우물쭈물 말하자 나덜론은 미소지었다.


"저에게 중요한 말입니다. 그걸 잊지 않기위해 계속 말하다보니 입에 익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름으로 쓰고 있는 겁니다."


"Not alone... 인가요?"


"예. 혼자가 아니다. 라는 뜻이죠."


그는 기분좋게 웃었다. 플로라는 우음... 하고 신음소리를 내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신기한 무기를 쓰시더라구요... 어디서 배우신건가요?"


"제가 잘 아는 사람에게 배웠습니다. 아마 지금 이 세상에서 이 기술을 쓰는 건 저뿐이겠지요."


"저.. 그럼 저, 스승님은 돌아가신건가요?"


"예. 오래전에요."


쓸쓸한 이야기에 플로라는 말을 잊었지만 나덜론은 미소를 잊지 않았다.


"저... 그럼 다음 질문을..."


플로라가 다시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플라비오 장군님의 가족분들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좀 전에 바로 옆에 서있었죠...?"


나덜론의 시선이 잠시 플로라를 떠났다. 그는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제 가족입니다. 엘리사는 지금 제 딸과 같은 사람이며, 헬레나님은 제 아내와 같은 사람입니다."


"... 에?"


"플라비오님의 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지키기로 약속했습니다."


"플라비오님과 알고 있었나요?"


"예. 오래된 관계입니다."


플로라는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덜론은 그런 플로라를 미안한 듯 바라보다가,


"플로라님."


하고 천천히 그녀의 머리위로 손을 올렸다.


"에?"


그녀는 반응하지 못했다. 부드러운 손이 그녀의 금색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당신은, 휴식이 필요합니다. 제가 다시 돌아오면 곧 퀴나와 세인트에일린을 다시 얻게될 겁니다. 그러니 잠시 백성들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쉬십시오."


"... 저.. 저기..."


플로라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플로라님은 강한 분이지만, 가족을 잃고, 괴로운 일을 이겨내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플로라가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을 안다는 것처럼 나덜론은 손을 떼고 고개를 숙여 무례를 사죄했다.


"1주 마지막 날, 퀴나의 해방을 목표로 정한 군대를 일으켜야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그가 막사를 떠난 뒤 한참이 지나서야 플로라는 그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문뜩 그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테르센트에 다시 봄이 왔다. 플로라는 이 계절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줄곧 우울했던 기분이 나아졌다.


'봄은 부드러운 음악소리와 같아서 만물을 안도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


다만 그녀의 생각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겨울의 마지막 동안 세인트 에일린의 정찰대가 몇 번 오제의 외각 요새에서 발견되었다. 사사로운 교전도 몇 차례 있었다. 전투가 확대될 것을 염려한 안젤라는 전투를 적극적으로 회피하면서도 적이 오제를 약탈하지 못하도록 지키기 위해 매일 출전해야했다. 전쟁이 임박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도시의 지주들은 매주 열리는 회의때마다 승리를 의심했다. 차라리 이대로 항복하자는 의견도 뒤를 이었다. 하지만 플로라는 완강했다.


"왕실에게 반란군 취급을 받는 지금 항복을 해봐야 결과는 뻔합니다. 우린 지지않아요."


그녀의 승리선언에도 다른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전력차는 엄청났다. 상대는 무장한 보병이었고, 오제의 병사라고 해봐야 다수의 민병과 소수의 기병대뿐이었던 것이다. 이대로 계속 지키기에는 오제는 고립되어있었고, 너무 작았다. 반대로 쳐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지주들이 플로라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플로라는 자신감을 잃은 목소리로 "계속 지켜낸다면..."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플로라의 왼쪽을 지키고 있던 모녀는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린 선제공격을 해서 퀴나와 세인트 에일린을 회복할거에요."


헬레나의 느긋한 목소리는 너무 황당했기 때문에 도리어 모두를 침묵시켜버리는 위력이 있었다.


"아빠가 돌아오면 즉시 출격해야해요. 군 조직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어요."


엘리사가 부연설명을 하자 그제야 사방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우리가 방어를 해도 모자랄 판에 먼저 공격을 하다니!"


"그는 무명의 장수일 뿐인데 우리가 어찌 그를 믿겠소!"


"나덜론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소?!"


결국 신년 첫째주의 회의는 늦은 밤까지 비난 일색으로 이어지다가 결론없이 끝났다. 막사로 돌아온 플로라도 착찹한 기분을 벗어낼 수 없었다.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 자신의 뺨을 찰싹, 소리나게 때렸다.


"아직이야. 안 울거니까."


그녀는 자신의 레이피어를 허리에 차고 조용히 막사 밖으로 나왔다. 전쟁을 앞둔 그녀는 항상 군대 곁에서 지냈다. 같이 싸우는 이상 같은 곳에서 자고, 같은 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가 배워온 것이었다.


그래도 암살자나 보안을 위해 본인의 막사주변에는 항상 자갈을 깔아두었다. 자갈을 밟는 소리로 타인의 접근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자박, 자박, 하는 자갈을 밟는 소리를 내보았다. 조금 걷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걸어보았다.


왠지 소리를 내지 않고 걸어보고 싶어졌다. 그녀는 아주 조심조심 자갈밭을 걸었다. 발 밑에서 아드득, 하는 나약한 소리가 났다. 그렇게 계속 걸었다. 조금은 넋을 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달빛이 들지 않는 수풀의 벽 앞까지 이른 것이다.


그때 그녀는 풀숲너머로 작은 말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그녀가 잘 아는 사람들의 목소리. 고개를 내밀고 인기척을 내야겠지만 플로라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두 사람의 작은,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험멜이 반란군을 일으키겠죠."


"1주 마지막날이 되면 발페아케이르를 향해 진격할테니까, 우리는 그때에 맞춰 퀴나와 세인트에일린을 공격하면..."


"아빠는 누군가 희생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건 그렇게 좋은 이야기가 아니구나.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걸까."


"라빈 그라나드로 가신거죠?"


"리베리아가 험멜과 맞설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어쩌면 그 이상을 바라고 있으실지도 몰라요. 재앙과 맞설 수 있는 동료를..."


"쉿."


헬레나가 하얀 손가락을 입술에 가볍게 댔다.


"작은 새가 듣고 있어."


덤불이 바스락거리더니 달빛이 다시 들어왔다. 갈라진 나무 사이로 앳된 소녀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 플로라님. 안녕하세요, 산책하기 좋은 밤이네요."


엘리사는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플로라는 잔뜩 긴장해서 억지로 따라 웃었지만 얼굴의 반만 겨우 웃는 형태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엘리사는 걱정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녀의 등뒤로 헬레나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헬레나는 플로라를 향해 가볍게 목례해보일뿐이었다.


"... 저... 저기... 바.. 방금의 이야기는..."


"후후, 비밀이에요."


"에?"


엘리사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플로라님은 알면 안되는 이야기랍니다."


"어째서요?"


플로라는 사상최강의 얼간이가 되어버린 기분으로 반문했다. 대답은 헬레나가 대신 해주었다.


"플로라님은 모르는 편이 더 좋다고 나덜론님께서 말씀하셨어요."


플로라는 뒷통수를 모닝스타로 얻어맞은 기분으로 어영부영 인사를 마무리하고 막사로 돌아왔다. 막사로 돌아오며 그녀는 있는 힘껏 자갈을 걷어차고 괴성을 지르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고 겨우 레이피어를 풀어 침대 옆에 놓았다.


험멜은 리베리아의 영웅이다. 그가 반란을 일으킨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1주 마지막날이라니, 열흘 후의 일을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 테르센트의 마법 중에 "예언"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렇게 정확한 일시를 맞춘 일례는 없다. 나덜론이 왕성에? 어째서? 재앙이란 도대체 무슨 뜻이지?


"... 두고봐. 뭔지 알아낼거야."


나덜론이 돌아오면 멱살을 잡고 흔들면서라도 물어볼거라고 다짐하며 그녀는 침대에 누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1주 마지막날, 세계에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발라 모다스가 거병하고 랑시에 영지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험멜의 반란군의 티프소 침공을 선언했다. 학생이 주축이 된 호운타의 군대가 움직였고, 3년 전에 유명했던 쿠안의 용병부대가 험멜과 맞서기 위해 재결성했다. 역사의 중심은 아니었으나 오제에서도 그런 거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플로라의 반란군이 퀴나의 해방을 선언하고 출격한 것이었다.


이 출격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나덜론의 설득이었다.


"네?! 나덜론님이 어제 지주님들을 찾아왔다고요?"


플로라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플로라에게 병력 지원을 약속하러 온 지주들에게 이 반응이 의외였기 때문에 그들은 어리둥절하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플로라님이 보낸 줄 알았습니다만..."


"아뇨, 전... 그게..."


플로라는 우물우물 대답을 찾았지만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듣고 확실히 알았습니다. 우린 이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 상단과 광산 사람들도 모두 개별적으로 설득당했죠. 허허"


"... 저..."


뭐라고 했는데요? 라고 묻고 싶은 것을 꾹꾹 억누르고 플로라는 이 완고했던 반대파들이 찬성으로 돌아선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대신 그녀는 더욱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래서 나덜론님은 어디에 계시죠?"


"잘 모르겠습니다."


예상했던 대답에 그녀는 힘이 쭉 빠져버렸다.




"그래도 그 사람은 약속을 지켰군요."라고, 페델리코는 기뻐하며 말했다.


"이걸로 공격계획이 수월해졌습니다. 상단을 설득해준 것이 매우 컸어요."


그러나 플로라는 농담으로라도 웃지 않았다.


"지금 나덜론님은 어디에 있는거죠?"


"뭔가 다른 일을 하러 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페델리코가 지당한 의견을 냈다.


"여기까지 왔는데 왜... 절 만나지 않고..."


플로라가 조금 말을 흐렸지만 페델리코는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버렸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겠지요."


플로라는 결국 그날 밤에도 혼잣말-주로 누군가에 대한 비난-을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녘, 플로라는 자신의 기병을 선두로 전 병력을 출동시켰다. 백작의 지위를 버리고 시민측에 합류한 에르가르도 히폴리토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병을 이끌고 전쟁에 따라나섰다.


"내가 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오제를 위해서만이 아니야. 여신 엘리츠나님의 이름을 걸고 저 도적같은 놈들이 내 성 근처에 있는 것을 용서할 수 없을 뿐일세."


히폴리토 백작의 참전으로 오제에서는 많은 의용군이 합류했다. 그들은 제대로 된 무기는 없었으나 사기가 충만했고, 의기가 넘쳤다. 플로라는 제법 고민하다가 참모로 헬레나를 임명했다.


"어째서 절?"


"플라비오 장군님의 곁에서도 자주 자문역을 하셨던걸로 알아요. 지금은 그 경험이 소중합니다."


"후후, 그 외에 묻고 싶은 것이 있는 건 아니구요?"


플로라는 정곡을 찔렸지만 모른체했다.


한편 후군으로는 그나마 가장 군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안젤라를 세웠다. 또한 안젤라의 추천과 엘리사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엘리사는 군대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15세였다. 입대 조건으로 걸었던 엘리사의 격식에 맞는 검무를 본 후에도 플로라는 선뜻 응낙할 수 없었다.


"겨우 15세의 아이를 전장이 투입하는 것은 내키지 않는군요."


플로라가 안젤라에게 볼멘목소리로 말하자 안젤라는 쿡쿡 웃었다.


"이계의 악마와의 전쟁에서 세시아스 윈프래드는 겨우 13세였답니다. 그녀는 10살때부터 검을 휘두르고 말을 탔었죠."


"하지만 세시아스라면 전설의 무신이잖아요."


"엘리사도 그렇게 될지도 모르죠."


안젤라가 미소를 머금고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결국 엘리사는 후군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 것은 플로라의 어리광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대부분의 군대는 민병대였고, 이중에는 15살 정도밖에 안된 소년병도 섞여있던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무기의 보급이나 화살을 나르는 일이었지만, 전장위에서 위험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플로라의 계산대로라면 지금의 병력으로도 이길 가능성이 저조했다. 상대는 훈련받은 병사이며, 이미 피를 보는데 익숙했고, 매우 잔혹했다. 한번이라도 사기가 꺾이면 아군은 공포에 질릴 것이고 제대로된 싸움은 해보지도 못할 것이다.


용맹한 아군 장수의 분전, 군주에 대한 충성, 작전대로 흘러갔을 때의 흐름 등 사기를 올리는 방법은 많았지만 플로라의 군대는 그 어떤 것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이겨내야 해. 아직 울면 안돼."


그녀는 이를 꾹 악물었다. 페델리코에게 도시의 단속을 맡기고 나서야 그녀는 전병력을 이끌고 출격했다. 숫자상으로는 양쪽이 비슷한 전력이었지만 플로라가 이끄는 병사는 대부분 민병대로, 창기사 200여기, 오제 수비병 300여명을 포함한다 해도 제대로 된 병사가 아니었다. 한편 퀴나 주둔군은 보병, 창병, 궁병을 포함한 정규군이었다.


퀴나를 지키던 사자보 파르는 플로라가 이끄는 민병대가 출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겨우 스무살 꼬맹이의 군대라고? 우릴 너무 얕보고 있는걸. 즉시 세인트 에일린에 지원병력을 요청해라! 이대로 놈들의 뒤를 치면 이 기회에 놈들을 뿌리부터 뽑아주지!"


사자보의 판단은 옳았다. 세인트 에일린의 병력까지 출격하면 플로라가 기대하는 그 작은 가능성마저 무너지게되고, 오제마저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의외의 전략적 능력은 플로라에게는 독이었던 것이다. 다만 사자보가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딱 하나 있었다.




사자보의 진형중에 가장 뛰어난 무장 세 명은 빠른 말을 타고 세인트 에일린으로 향했다. 밤이 깊어서야 퀴나를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들은 퀴나를 따라 흐르는 강가에서 걸음을 멈춰야 했다. 한 은발의 장수가 다리를 막고 서 있던 것이었다.


"비켜라! 우리는 사자보님의 사신들이다!"


"음. 알고 있다."


그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한발짝 다가왔다.


"이 멍청이는 뭐야?"


"죽여버려!"


세기의 기마가 그대로 밟아버릴 기세로 달려들었다. 동시에 그의 손끝이 움직였다.


날카로운 바람을 찢는 소리가 밤하늘을 울렸다. 두 기의 말이 울부짖으며 앞으로 넘어졌다. 말의 다리가 잘려나간것이다. 굴러 떨어진 장수들은 각자 검을 뽑아들었다.


"이놈, 마법사인가!"


"죽여! 적이다!"


나덜론의 날카로운 눈은 적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것은 마치 목표를 정하려는 듯한 행동. 그는 몸을 반회전 시키며 왼손을 뻗었다. 거의 20피야메세정도 떨어져있던 한명이 이마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이놈... 암기를 쓰고 있어!"


"저건 끈의 끝에 날을 달아놓은 거다."


남은 둘의 반응에 나덜론은 조금 놀랐다. 한번 선보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알아볼 줄이야. 상대를 얕본건가. 아니면 너무 거리가 멀어서 무기의 모습이 보인걸까.


그는 자체반성을 하며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타앗..!"


두 사람은 동시에 나덜론을 향해 장검을 내질렀다. 은발은 백색 달빛에 흩어져내린다. 내지른 검은 공중에 멈춰져있다. 나덜론은 어처구니 없게도 두 칼날을 끈으로 묶어버린 것이다. 두 자루의 검은 그대로 하늘을 날아 강물에 빠져버렸다.


"저건 무슨...!"


"보통 무기가 아냐!"


각자 단도를 꺼내는 사이 나덜론은 그의 왼팔을 다시 뻗었다. 마치 총알과 같이 뻗어나오는 뾰족한 금속이 한명의 미간을 노렸다. 하지만 우연이 겹친 덕분이었을까. 적이 꺼내드는 단검에 암기는 막혔고, 그 틈을 노려 다른 한명이 나덜론을 향해 돌진했다. 거리는 겨우 10보!


"죽어라!"


그의 외침은 떨어진 목에서부터 나왔다. 나덜론의 오른 손에는 또 다른 은사가 흩날리고 있던 것이다.


"양손 모두 암기를..!"


살아남은 적병은 이 이상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남아있던 말에 올라타서 퀴나를 향해 도주했다. 그의 판단은 옳았으나 나덜론은 그를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오른 손으로 끈을 짧게 잡고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바람을 찢어버릴 듯한 소음이 그의 오른손에서 멈추는 순간, 100보 거리에 떨어져있던 적이 피를 쏟으며 말 위에서 떨어졌다. 그는 암기를 "투척"해버린 것이다.


"... 휴우."


그는 그제야 숨을 고르고 살기를 풀었다.


'이제 퀴나는 올리 없는 원군을 기다리게 되겠지.'


여기까지 준비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승리 뿐. 나덜론은 그렇게 믿으며 플로라와 합류하기 위해 주인을 잃은 말위에 올라타고 어둠을 질주했다. 오랜 전쟁의 서장이 될 퀴나성 전투가 다가오고 있었다.


작가의말

티프소에서 쓰는 길이의 기본단위는 킬로미터, 미터, 센티미터, 밀리미터입니다.

테르센트에서 쓰는 기본단위는 메세, 피야메세, 피메세입니다.

1메세는 10피야메세, 1피야메세는 10피메세이며, 1메세는 22미터정도입니다.

테르센트인들은 티프소인과 달리 계산할 때 단위를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는 걸음, 키, 나무, 하루동안 보통 남자가 걸을 수 있는 거리 등의 애매한 기준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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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티에세를 향하여 15.07.02 15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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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되찾은 세인트 에일린 -2 15.05.29 109 1 11쪽
6 6화. 되찾은 세인트 에일린 -1 15.05.29 124 1 11쪽
5 5화. 지켜진 적 없는 약속 15.04.29 108 1 6쪽
4 4화. 실수 15.04.20 140 1 14쪽
3 3화. 퀴나성 전투 15.04.20 144 1 13쪽
» 2화. 슬픈 봄날 15.04.20 166 1 21쪽
1 1화. 홀로 남은 소녀와 홀로 남은 남자 15.04.20 267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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