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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빼미 님의 서재입니다.

스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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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돌빼미
작품등록일 :
2016.08.05 15:38
최근연재일 :
2017.12.23 23:50
연재수 :
2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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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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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글자수 :
1,433,061

작성
17.12.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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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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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8쪽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13)

DUMMY

스완은 걸어나갔다. 방사능으로 가득한 죽음의 통로를 묵묵히 걸어나갔다.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질 때마다 트레인이 제공했던 큐어를 몸에 주사하면서 걸어나갔다.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기에 스완이 큐어를 투약하는 과정도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텅 비어버린 빈 병들이 그녀가 걸어온 길을 따라 쭉 나열되어 있었다. 마치 어릴 때 읽었던 동화에서 나왔던 장면처럼 자신이 걸어온 길을 잃지 않으려고 일부러 뿌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동화…. 그 동화의 제목이 뭐였더라…?’


스완은 방사능으로 인한 붕괴와 큐어로 인한 회복이 몸 안에서 싸우는 상황 속에서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듯 보였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남매가 마녀와 만나게 되고, 그 마녀를 죽이는 동화였었다. 분명 자신이 제일 좋아하던 동화였었는데. 내용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도, 제목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그녀가 기억하고 있던 것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많이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특히 사라진 것 중에는 트레인의 집에서 살았을 때의 기억이 많았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들. 실패작으로 처분되었던 기억 때문에 트레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 했던 기억. 그런 자신에게 아이처럼 행동해도 된다고 인자하게 웃으며 말해주었던 트레인. 그 모든 기억이 큐어를 맞을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스완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현재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둔 그녀에겐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기억들이 있었다. 아담의 노예로서 자신에게 두 번의 버림받음이라는 고통을 안겨줬던 트레인. 아담에게 복수하기 위한 도구로서 자신을 거둬들였던 트레인에 대한 기억은 스완에겐 별로 중요한 기억이 아니었으니까. 그 시절의 기억은 블락과 메리 등의 형제들과 함께했던 추억만 남아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잃어버리면 안 되는 기억들도 있었다.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떠올리고 싶은 기억들. 오랫동안 혼자서만 간직했던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짧은 순간이나마 자신을 누나라고 불러준 귀여운 동생들. 혼자서 악마에게서 떨어져나와 동생들이 받을 고통을 외면하고, 그들과는 다르게 고통받지 않는 삶을 살아온 자신을 마지막에 누나라고 불러준 착한 동생들. 그들에 대한 기억들만 잊지 않으면 되었다.


아담이 오거 시리즈의 계획을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은 그에게 실패작으로 버려졌을 때도 인지하고 있었던 사항이었지만, 자신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변명으로 삼아 동생들이 받을 고통스러운 운명을 외면해버렸었다. 아담에 대해 뒷조사를 시행하고, 그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아낸 후에. 그녀는 깊은 죄책감을 느꼈고, 그들을 잊고, 도망치려 했던 자신에 대한 강한 혐오감이 들었다.


그래서 검은 성벽에서 동생들과 재회했을 때. 그녀는 진실과 감정을 숨겼었다. 그들이 진실을 알고, 자신을 비난하는 것을 겪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릴 때 자신을 지탱해주었던 동생들을 잊으려 애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증오하게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녀는 그들의 증오를 받으면서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을 증오하지 않도록 자신의 정체를 숨겼었다. 정말이지 두 눈 뜨고 봐주기 힘든 이기적인 생각이었고, 그녀는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였다. 자신 또한 악마와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그들의 곁에 머물지 않고, 최대한 멀어지려 애썼었다. 또다시 그들에게서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녀의 마음은 멋대로 몸을 움직여 윤성과 로그의 곁을 맴도는 모순을 저질렀었다. 그것이 피로 인한 것인지, 만들어진 자들끼리의 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그들의 곁을 맴도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끔찍한 일을 겪었던 윤성은 자신을 경계하고, 가시 돋친 반응을 보였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고, ‘BIRD’가 되고 나서. 아니, 트레인에게 거둬졌을 때부터 본심을 숨기는 일에 능숙했던 스완은 그의 곁에 있기 위해. 그의 경계심을 풀려는 지나친 접근을 하지도 않은 채로 아리송한 거리를 유지했었다. 그 결과. 그녀는 동생의 곁에 있을 수 있었고, 함께 아담의 추종자들을 추적하면서 남매의 관계가 아닌,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동료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었다.


로그는 윤성보다 쉬운 편이었다. 무서운 외모와는 다르게 로그는 윤성보다 밝은 성향이 있었고, 윤성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 이빨을 들이대는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에서 벗어나 버린 그의 형태는 스완에게 깊은 슬픔을 주었었다. 그들을 외면한 결과가 이런 식으로 나타날 줄은 전혀 몰랐기에. 인간의 형태에서 어긋나 버린 로그를 볼 때마다 깊은 죄책감이 들곤 했었다.


스완은 동생들을 외면한 대가가 어떻게 돌아왔는지 똑똑히 보았다. 자신이 그들을 외면한 죄는 그녀에게 심적 고통과 죄책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주었다.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고통스러웠고, 스스로의 의지를 끊고, 그들에게 본인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의 용서를 구하고 싶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진실을 숨기다가. 삶의 마지막에 와서야 그들에게 정체를 밝혔다.


“하하하!”


자신의 정체를 고백했던 순간을 떠올린 스완은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의 증오를 받기 싫어서, 자신이 희생하는 상황을 연출해놓은 꼴이라니. 그것도 자신은 피해자일 뿐이라며, 그들의 동정을 받기 위한 말들을 줄줄이 늘어놓은 꼴이라니.


비련의 여주인공 행세를 하면서 동생들이 자신을 증오하지 않을 상황을 완벽하게 만들어 버렸다고 여긴 스완은 자신이 이토록 이기적인 쓰레기 같은 존재였다는 것에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멈출 수 없었다. 통로를 걸어나가는 간단한 작업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때, 큐어가 하나 떨어졌다. 아담을 죽이기 전까진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스완은 무의식적으로 떨어진 큐어를 집어 들었고, 그 근처에서 푸른 빛을 발산하는 기계로 이루어진 바닥을 보았다. 그제야 스완은 자기혐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기계를 더듬으면서 까맣게 잊고 있던 마티의 단말기를 꽂아 넣은 스완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웃기는 짓 하지 말고 일어나…. 이제와서 비련의 여주인공 행세는 하지 마…. 역겨우니까…. 너는 죄인이야…. 동생들을 지옥에서 구해주지 못한 죄인일 뿐이야….”


자기혐오에 빠져 맡은 일을 잊고 있었던 스스로를 책망하듯이 스완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내 죄를 되새길 시간 따윈 없어…. 너 스스로 결정한 일이잖아…. 네가 갈망했던 복수잖아…. 동생들을 구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주…. 아주 작은 속죄일 뿐이잖아…. 후회할 시간조차 아까워…. 일어나…. 걸어…. 동생들을 위해서…. 이번…. 이번 한 번이라도…. 제대로 좀 해봐….”


바닥에 떨어졌던 큐어를 주사한 스완은 몸을 일으켜 다시 통로를 따라 걸으며 계속 중얼거렸다.


“걸어…. 걸어야 돼…. 바닥에 웅크리고 있을 시간 따윈 없어…. 가야만 해….”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떠올린 스완을 반겨주듯이 통로의 저 끝에서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도망칠 수는 없어….”


그 빛을 향해서 스완은 묵묵히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빛이 가득한 방에 다다랐을 때. 스완은 무너지듯이 바닥에 쓰러졌다. 더는 큐어도 먹히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몸이 망가져 버린 것이었다. 스완은 이를 악물면서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몸 구석구석의 뼈와 근육이 망가지고, 온몸에서 피가 흘러나와 힘을 내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스완은 앞으로 나아가려 애썼다. 그리고 그런 스완을 조롱하는.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증오를 촉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로구나. 반갑다. 내 딸아.”


그 목소리를 향해 스완은 대답했다.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탑과 연결된 황금색의 의자에 앉은 금속으로 된 육체를 지니고 있는 왕. 스스로 신이라고 자부하는 표류하는 군도의 지배자를 마침내 두 눈을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대단하다고 해야겠구나. 드라이어드나 웬디고와는 다르게 능력을 발현시키지 못했던 네가 이곳에 다다를 줄은 몰랐다. 실패작 주제에 참으로 강인하구나. 아하하.”


변색한 피부와 몸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는 스완의 상태를 스캔한 아담은 그의 분신들이 보여줬던 교만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자신에게 도달한 것에 내심 공포를 느끼고 있던 아담은 처참한 스완의 모습에 그 공포를 잊은 채로 그녀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스캔한 결과. 현재 그녀의 상태는 아무리 큐어를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쉽사리 회복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마 몇 분 안에 그녀의 목숨을 끊길 것이 분명했다.


아담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승리감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인간과 다르지 않은 실패작인 스완이 스스로의 증오를 이기지 못한 것 때문에 자신에게 확고한 승리를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스완이 죽는 순간. 자신의 섬에 레이저가 쏟아져 내릴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은 아담에게 있어서 큰 호재였다. 자신이 나노 머신 구름을 조종해서 바깥에 있는 침략자들을 모조리 태워죽일 수 있는 완벽한 승리의 순간이었다.


“너는 참 효녀로구나…. 나의 승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사지로 던지다니…. 아하하!”


죽는 순간이 멀지 않은 스완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어리석음 덕분에 완벽한 승리를 얻게 된 아담은 이런 몸이 된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환희에 취해 웃어댔다. 그런 아담을 향해 스완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정말 웃기게 변하셨군요…. 겨우 실패작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환희에 빠져있는 꼴이라니….”

“웃지 않을 수가 없잖니? 너의 그 알량한 증오 덕분에 내 목숨을 유일하게 위협할 수 있는 웬디고는 이곳에 당도하지 못했어. 너의 그 알량한 증오 덕분에 난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그들의 목숨을 취할 수 있게 되었지. …그러니 이렇게 웃을 수밖에 없지 않겠니? 아하하!”


남아있는 큐어를 몽땅 주사한 후에 바닥을 기어가는 스완을 향해 아담은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기계가 된 후에 가장 좋았던 일은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 있다는 거야. 아무리 큐어를 주사한다고 한들. 너는 살아남지 못해. 트레인이 날 죽이는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고 한들. 실패작에 불과한 너 따위가. 내가 다가와 그 바이러스를 투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너는 그 전에 죽을 거야. 뭐. 내 계산에 따르면 이제 5분도 남지 않은 것 같구나. 아하하!”


아담이 조롱을 하든지 말든지 스완은 필사적으로 아담의 옥좌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스완의 필사적인 모습을 아담은 계속 조롱하면서 말했다.


“무리라니까. 너는 내 발밑까지 도달하지 못해. 그냥 죽음을 받아들이고, 쉬는 게 더 편할 거다. …너희들을 다 처리하고 나면. 그래. 이제는 본격적으로 생추어리를 내 손아귀에 넣을 시간이겠군. 본인을 황제라고 지칭하는 녀석부터 숙청하고, 내 추종자들이, 내 명령대로 그 제국을 움직일 거다. 이 작은 섬을 벗어나 온 세계가 내 손아귀에 들어오게 되는 거지! 아하하!”

“하하하! 웃기는 재주 하나만큼은 탁월해지셨군요. 아버지.”

“…무슨 뜻이냐?”


아직도 바닥을 기고 있는 스완을 노려보면서 아담이 묻자, 스완은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대답했다.


“기계가 된 이후로 머리가 더 나빠지신 것 아닌가요? 우릴 보낸 것이 바로 당신의 추종자들입니다. 우리가 실패하면 이 섬을 태워버리려고 계획을 세웠던 것도 모두 당신의 추종자들이라고요. 이미 이 섬에 틀어박힌 후부터 그들은 당신의 영향력을 벗어났어요. …그것도 모르고 웃어대는 꼴이라니. 정말 웃기고 앉아계시는군요. 하하하!”


아담은 스완의 말을 듣고, 잠시 당혹스러워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그녀의 말에 반박을 시도했다.


“그래? 좋은 정보 고맙구나. 그렇다면 그 녀석들을 처분해야겠지. 너는 모르겠지만, 이미 생추어리에는….”

“당신의 세 번째 마기가 숨어있다는 것 말이죠?”

“어…. 어떻게 그걸?”


자신의 말을 끊고 충격적인 사실을 전하는 스완에게 기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경악에 빠진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아담은 당혹스러워했다. 그런 아담에게 상황이 바뀌었다는 듯이 스완이 그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정말 기계의 몸이 되고 나서 잃어버린 것이 많으시군요. 어떻게 그렇게 멍청해질 수가 있죠? 오랫동안 생추어리 아래에서 모든 흉계를 일삼던 당신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가요? 말했잖아요. 당신의 추종자들은 당신에게서 등을 돌렸다고. 그런 자들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존재를 내버려 뒀을 것 같습니까? 그들은 새로 얻은 정보인 것처럼 꾸며서. 이미 당신의 세 번째 마기를 손에 넣었습니다.”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는 눈과 코. 그리고 입을 움직이면서 스완은 승리감에 취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당혹스러움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아담을 향해 조롱을 이어나갔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죽지는 않았으니까. 당신과는 다르게 생추어리에 충성을 다하는 인재로 키울 것이라고들 했으니까요. …아마 지금쯤이면 세뇌가 완료되었겠군요. 하하하!”


여전히 자신을 향해 기어오는 스완을 향해 오랜만에 느끼는 증오라는 감정을 쏟아내려 하던 아담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면서 어떻게 스완은 고통으로 인해 말도 더듬지 않은 채로 또박또박 말을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현재 스완이 자신에게 다가온 거리는 본인이 계산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녀가 현재 도달한 위치보다 훨씬 멀리서 죽었어야 정상이었을 텐데. 대체 자신의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아담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런 아담의 의문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스완은 피부가 녹아내리고 있는 자신의 팔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내민 팔은 아담과 같은 기계로 이루어진 팔이었다.


“성능이 참 떨어지는 기계이시군요. 아무리 특수 코팅을 한 인조 피부를 사용했다고 한들. 내 팔을 비롯한 몸의 반신이 기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셨다니….”


바로 그 기계 팔을 통해서 그녀의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담은 그제야 좀 더 자세히 스완을 스캔했다. 그녀의 말대로 팔부터 이어지는 그녀의 상반신 일부는 기계로 되어 있었다. 기계로 된 그녀의 육체가 남은 부분을 잡아끌면서 아담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왜…. 왜 그런 짓을…!”

“네? 뭘 그런 걸 물으시는 거죠? 당연한 거 아닐까요?”


자신의 계산이 어긋났다는 사실에 아담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연기하던 신의 모습에서 벗어나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형벌을 눈앞에 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봐 버렸다. 그런 아담을 향해 스완은 말했다.


“악마를 죽이려면…. 나 자신도 인간임을 포기해야 하니까!”


말을 마친 스완은 기계 팔을 길게 뻗어서 탑에 들왔을 때부터 작동시켜 놨던 포르-나인을 아담의 옥좌에 꽂아 넣었다. 눈이 부신 빛이 아담의 옥좌에서부터 뿜어져 나왔고, 마치 그 빛으로 아담이라는 악마를 정화하는 것처럼. 아담은 기계의 몸에서 나오고 있다고는 생각지 못할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그토록 듣고 싶었던 악마의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스완은 이제 진짜로 온몸의 힘이 다 빠진 것처럼 바닥에 쓰러진 채로 중얼거렸다. 기계 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피를 잔뜩 머금은 자신의 목과 입을 통해서.


“잘… 가세…요…. 아버…지….”


자신이 이 말을 중얼거림과 동시에 아담의 비명이 끊기고 그가 죽는다면 환상적이었을 테지만, 애초에 포르-나인에 깔린 프로그램은 아담이 다른 곳으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감옥에 불과했기 때문에 스완은 나지막이 욕을 내뱉으면서 기계의 몸에 저장되어 있던 자폭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이제 곧 죽음의 신이 다가올 것이었다. 많은 이들의 생명을 빼앗고, 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많은 이들의 운명을 농락했던 악마는 자신이 버렸던 실패작에 의해서 이렇게 허망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었다. 동생들의 고통을 외면했던 자신 또한 이렇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그 애들을 보고 싶어….’


추악하고 이기적이던 자신에겐 허락되지 않을 소망이었지만, 스완은 생의 마지막에 윤성과 로그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고 싶다고, 신에게 간청했다. 그리고 그 신이라는 존재가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 것인지. 스완의 눈에 신기한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한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형제로 이루어진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놀이동산과 동물원. 그리고 스케이트 장에서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가족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행복한 가족이 어떤 것인지 스완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갈망하던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행복에 감화된 미소를 지은 스완을 향해 두 형제가 다가왔다.


누나도 함께 놀자고, 어서 오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 형제의 모습을 보면서 스완은 미소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들이 내미는 손을 잡았다. 그 형제들의 손을 잡자마자 어린 모습으로 변한 스완은 형제들과 함께 놀면서, 웃으면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두 팔을 벌리며, 깊은 애정을 담아서 자신들을 안아주는 부모님의 따스함을 느끼면서 스완은 웃었다. 삶에선 짓지 못했던 행복함으로 가득한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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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3부 표류하는 군도 - epilogue 17.12.23 328 5 13쪽
243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8) 17.12.21 219 2 15쪽
242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7) 17.12.19 185 4 14쪽
241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6) 17.12.16 176 2 15쪽
240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5) 17.12.14 200 2 13쪽
239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4) 17.12.12 199 3 13쪽
238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3) 17.12.09 215 2 12쪽
237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2) 17.12.08 215 3 13쪽
236 3부 표류하는 군도 - 가라앉는 섬 (1) 17.12.05 169 2 13쪽
»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13) 17.12.02 191 2 18쪽
234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12) 17.12.01 218 3 16쪽
233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11) 17.11.28 205 3 12쪽
232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10) 17.11.21 184 2 17쪽
231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9) 17.11.18 201 3 14쪽
230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8) 17.11.16 214 2 16쪽
229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7) 17.11.14 209 2 15쪽
228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6) 17.11.13 221 3 15쪽
227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5) 17.11.09 228 2 15쪽
226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4) 17.11.07 201 4 13쪽
225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3) 17.11.04 210 2 13쪽
224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2) 17.11.02 210 3 13쪽
223 3부 표류하는 군도 - 치유되지 않는 상처 (1) 17.11.01 233 2 15쪽
222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12) 17.10.28 249 3 17쪽
221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11) 17.10.26 197 2 14쪽
220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10) 17.10.24 217 3 14쪽
219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9) 17.10.21 231 3 15쪽
218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8) 17.10.19 243 2 13쪽
217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7) 17.10.17 231 3 15쪽
216 3부 표류하는 군도 - 재회 (6) 17.10.14 23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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