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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씨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머리 용병은 군주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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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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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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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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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오해하는 사람들 (4)

DUMMY

2. 오해하는 사람들 (4)


“제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가문의 이름이 ‘이’ 맞습니까?”


“?”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으로 가볍게 불쾌감을 표시했다.

말론에게서 읽어낸 테라의 관습과 예의에 의하면 이것은 상대방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

야쿠프는 내 요구를 금방 이해했다.


“제가 아는 범주 내에서 말씀드리자면 ‘이’라는 성을 가진 분은 이제 없습니다. 30년 전이라면 한 분이 계셨었습니다만.”


억지로나마 평정을 가장했던 야쿠프의 얼굴이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니면 그럴 여유가 없거나.


나 역시 내 성이 가져온 상대의 반응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야쿠프는 설명하듯 내게 말을 계속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곳 레슈나 영지는 대격변 이후로 3백 년 동안 레슈나 가문이 다스렸습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있어서 영주는 곧 레슈나 가문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레슈나 가문에 더 이상 후계로 삼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30년 전에 피우트 이 레슈나 남작님께서 행방불명되면서 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이지요.”


뭔가 이상한 이름을 들은 것 같았다.

미들 네임이 ‘이’?


“귀족이라면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있고, 가문을 뜻하는 성이 있지요. 영지를 가진 귀족이라면 통치하는 지역을 의미하는 성까지 해서 3개의 이름을 가집니다. 피우트 이 레슈나 남작님의 이름으로 짐작했겠지만 레슈나 영지를 통치하는 가문의 성은 ‘이’, 동방에서 사절로 왔다가 대격변으로 돌아갈 길이 막혀서 이곳에 정착한 귀족 가문입니다. 그런데 귀하께서는 자신의 성도 ‘이’라고 말하는군요.”


오해를 받았다.

아니, 아직은 아니다. 오해 받기 직전이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나마 들은 것들이 있다.

개척 마을 사람들, 상단 사람들, 심지어 상단을 습격해 온 용병들의 뒷담화까지.


그중에는 상단주 야쿠프와 레슈나 영지에 대한 것도 있었다.

계승권 분쟁에 휩싸인 이 지역에서, 레슈나 가문에 충성하는 이 사람에게 내 성이 어떤 의미로 들릴지는 자명하다.


사기꾼 아니면 어그로꾼.


이런 오해를 받으면서 이 지역에 머무르면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다.

되도록 빨리 레슈나를 떠나야 한다.

야쿠프의 오해는 그것으로 다 풀릴 것이다.


그러나 영지를 이어받고 싶어서 정신이 나갔다는 자들.

만약 그들이 내 성을 듣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레슈나를 떠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은데?

골치 아프게 됐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와 야쿠프의 대화를 들을 만한 거리에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길을 떠나기 위한 준비에 열중하고 있을 뿐.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우선 야쿠프의 오해부터 조금이라도 풀어주기로 했다.


“모르던 것을 또 하나 알게 되었군요. 그런데 한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내 성은 이곳의 귀족 가문과 연관이 없을 겁니다. 나는 이곳, 레슈나에 처음 방문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곳에 오래 머무를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아도 됩니다.”


내 말에 야쿠프는 비로소 자신의 실태를 깨달은 듯 다시 얼굴에 미소라는 가면을 썼다.

그러나 눈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말을 아끼며 내 얼굴을 보다가 한숨을 쉬고 그냥 수레로 돌아갔다.


그가 내게 다시 접근한 것은 하루가 지난 후부터였다.

생각이 정리됐는지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은 채 종종 내게 다가와서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주로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는 잡담이었지만, 가끔은 슬쩍 떠보는 질문으로 훅하니 찔러왔다.

주로 이런 식이었다.


고향이 어디입니까?

- 대답하기에 곤란합니다. 아주 먼 곳이라서 말해도 모를 겁니다.


되도록 거짓말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피치 못할 경우라면 차라리 대답을 거부하는 것이 더 낫다.

직관이나 감이 뛰어난 자들은 상대의 거짓말이나 신뢰도를 예민하게 알아차리는데, 마법사는 그런 면에서 특출난 존재였다.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한 나로서는 평소에도 신뢰라는 자산을 충실하게 쌓아둘 필요가 있었다.


저런! 아주 먼 곳이라니. 가족이 보고 싶으시겠군요.

- 나는 혼자라서.


이 사람.

혹시나 하는 기색이 엿보인다.

30년 전이니 남작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얼추 나이도 맞아떨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나는 백인이 아닌데?

지구에서는 혼혈이 아니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들과는 이질적이다.

어떻게 봐도 이들은 백인이었다.

개척 마을과 상단의 구성원들을 보면 덩치 큰 동유럽인이 연상된다.

덩치는 바이킹을 연상시키는 북유럽인, 생김새는 오밀조밀 잘생긴 동유럽인이라고 하면 대충 맞아떨어진다.


교육을 잘 받으신 것은 말투만 들어도 알겠습니다. 모친께서 교양이 뛰어나신 모양입니다.

- 마법사에게 배웠습니다.


말론의 두뇌를 싹 다 다운받아서 분석하기는 했지.

나노가 한 번 걸러서 내게 필요한 지식을 업로드 했으니 마법사에게 배웠다는 말은 100% 사실이다.

생략한 것은 있을망정 거짓은 조금도 섞지 않았다.


오! 마법사. 그런 사람들이 있지요. 찾아보기 힘들기는 하지만, 학문이 정말 뛰어난 자들입니다.

- 여러모로 배울 바가 많았습니다.


언어와 풍습에 이론적인 마법까지.

정말 여러모로 다양한 지식을 업로드하기는 했다.

그런데 저 말은 마법사가 드물어졌다는 소리 아닌가?

발길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는 마법사는 다 어디로 간 걸까.


검이 정말 좋아 보입니다. 어디서 만든 건가요?

- 선물 받은 겁니다. 둘 다.


검을 보는 시선이 심상치가 않은데?

무슨 생각이지?


각 잡고 앉아서 나눈 대화가 아니라서 처음에는 별로 티가 안 났지만, 오다가다 한두 마디씩 나눈 대화를 합쳐보니 나를 떠보려는 것이 너무 명확하게 보였다.

더구나 점점 선을 넘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아무래도 야쿠프와는 거리를 둬야겠다 싶을 때, 마침 적절하게도 목적지에 도착했다.


소스노비.

야쿠프의 상인 조합이 자리 잡고 있다는 소도시였다.


그런데 이거 도시 맞나?

내 눈으로는 아무리 봐도 시골 촌동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 기준으로는 분명히 도시라고 한다.

인구도 자그마치 1만 명이 넘는다나.

규모는 작아도 당당한 도시라는 설명이었다.


1만 명의 도시라니.

사람이 바글바글 넘쳐나던 곳에서 와서 그런지 정말 이상하게 들렸다.


외곽의 경작지를 지나자 도시의 중심까지는 금방이었다.

도시의 중심이라고 해봐야 포장도 되지 않은 흙길을 중심으로 블록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몇 개의 건물이 전부였다.


그곳에 도시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몇 종류의 상점, 여관을 겸하는 술집, 상인 조합의 건물과 창고까지.

시의회는 술집에서 열리고, 시의 업무는 여기서 좀 떨어진 시장의 자택에서 본다고 한다.

도시라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한 모습이었다.


이곳은 내가 생각하는 도시가 아니었다.

경작지를 관리하고, 상단의 물품을 보관하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곳에 머무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런 소도시 말고 도시다운 도시는 어디입니까? 학자가 있고, 마법사가 있고, 교육기관이 있는 도시 말입니다.”


“이한 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장 가까운 곳이라면 오시에크가 있습니다. 레슈나에서 두 번째 가는 도시이고, 제 상단의 본부가 있는 곳이지요.”


내 옆에서 소스노비를 안내하던 야쿠프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시에크로 갈 것을 권했다.


“오시에크로 가는 길을 안내할 사람이 있습니까?”


“마침 저와 제 상단이 바로 내일 오시에크로 출발합니다. 같이 가시지요.”


이런.

아무래도 야쿠프와는 좀 더 시간을 보내야 할 모양이었다.


* * *


“레슈나에 평화를. 대리 영주님을 뵙습니다.”


야쿠프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의를 표한 사람은 곱게 늙은 여인이었다.


검은색 하나 없는 하얀 머리와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은 그녀가 얼마나 나이가 많은 사람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영활한 눈빛은 젊은 사람 못지않았다.


“오랜만이구나. 야쿠프. 예정보다 빨리 온 것 같은데?”


“몇 가지 일이 생겨서 도중에 상행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하나도 둘도 아니고 몇 가지나?”


“그렇습니다. 대리 영주님.”


영주가 아니라 대리 영주.


그렇다.

레슈나에는 지금 영주가 없다.

30년 전에 젊은 영주 피우트가 행방불명된 뒤로, 그의 어머니인 밀라가 대리 영주를 맡아서 통치하는 중이었다.


정상적이라면 새로운 영주를 세워야 했지만, 몇 가지 사건이 꼬이면서 시간을 질질 끌다 보니 30년째 계속 대리 영주 체제가 되어버렸다.


첫 번째는 새로운 영주로 세울 적당한 인물이 없다는 점이었다.

레슈나 가문은 방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피우트 이외에는 가문에 남자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레슈나의 영주가 되어야 할지에 대해 합의를 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피우트 영주의 어머니인 밀라의 격렬한 저항이었다.

피우트의 죽음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새로운 영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그녀의 주장을 영지의 유력자들 대부분이 받아들였다.

물론 반대하는 자는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세 번째는 외부에서 간섭할 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레슈나는 언제나 친국왕파였고, 폴레비아의 국왕은 밀라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다.


그 결과가 30년에 이르는 대리 영주의 통치였다.


그러나 30년은 너무 긴 세월이었다.


밀라는 늙었고, 밀라를 지지해 주던 국왕은 죽었다.

인심은 변해 갔고, 밀라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그녀가 영지의 중심 도시인 던니스를 떠나 오시에크로 와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수도의 귀족과 손을 잡은 영지의 유력자들이 날뛰는 던니스보다는 오시에크가 훨씬 안전했다.

이곳은 북방으로의 개척을 외치며 영지의 개발에 매진하던 피우트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당시의 인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오시에크에 머물러서 살아가고 있었다.

야쿠프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야쿠프는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개척 마을의 내통과 습격.

보그만이 배후로 의심되는 습격.

그 와중에 사로잡은 포로까지.


“포로로 잡은 자의 증언은 소용없을 걸세.”


“그렇습니다. 집행할 수 없는 판결은 의미가 없지요. 어차피 조작이라며 무시할 겁니다.”


“그걸 알면서 왜 쓸데없이 포로를 끌고 왔나?”


“판결을 제대로 집행할 수 있을 때를 위해서입니다. 지금 대리 영주님께서 판결을 집행할 수 없는 것은 레슈나의 영주가 누가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 나는 늙었네. 언제 죽을지 모를 나이지. 당장 오늘 밤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만약 보그만이 영주가 된다면 판결에 관여한 사람은 모두 위험해지겠지. 아마 자네가 가장 위험하지 않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차기 영주가 누가 될지 명백해진다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무슨 소리인가?”


밀라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한해 두해 점점 많은 사람들이 밀라의 곁을 떠났다.

설마 언제나 충직하기만 했던 야쿠프까지 변한 것일까?

분노와 슬픔이 교차하려고 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피우트 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하게.”


분노와 슬픔은 싹 사라졌다.

피우트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밀라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 * *


“달이 사라진 것이 3백 년 전. 그리고 마법도 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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