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타자씨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머리 용병은 군주가 되기로 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타자씨
작품등록일 :
2024.03.07 20:13
최근연재일 :
2024.05.20 19:00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108,554
추천수 :
3,553
글자수 :
172,543

작성
24.04.28 18:49
조회
4,008
추천
122
글자
12쪽

3. 결정은 내가 한다. (1)

DUMMY

3. 결정은 내가 한다. (1)


이 세상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달이 사라졌으니, 시간축이 뒤틀리고, 지상도 박살 났겠지.

그러나 마법까지 사라졌다는 말을 듣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그럼 너는 뭔데?


내 앞에 앉아서 마법이 사라졌다고 입을 털고 있는 남자부터가 자칭 마법사다.

마법사와 대화하고 싶다고 했더니 야쿠프가 데려온 사람이었다.

야쿠프 상단의 서기를 겸하고 있는 마법사로 오시에크에서는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는 설명이었다.


“당신, 마법사가 아니었나?”


“마법사 맞습니다. 오시에크에서 아티팩트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수선까지 가능한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겁니다. 아티팩트의 사용법 몇 가지 아는 것이 전부인 주제에 마법사랍시고 행세하는 자와는 다르지요. 저는 마법이론까지 공부한 진짜 마법사입니다.”


좀 더 대화를 나누어 보고서야 단어의 정의에 혼란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테라에서 마법사라고 하는 자들은 과거에 만든 마법 유물을 사용하고 수선할 줄 아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었다.

마법 자체를 연구하고 사용할 수 있는 학자가 아니라 아티팩트를 다룰 줄 아는 기술자란 이야기였다.


······그건 마법사가 없다는 소리잖아.

그럼 차원이동마법진 연구는 누구와 하지?


예상했던 가능성 중에서도 최악을 뛰어넘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야 했다.


“3백 년 전처럼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는 없냐고요? 없습니다. 없어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나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마나가 너무 희박해져서 임계점을 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나를 지배하는 법칙 자체가 사라진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랬으면 아티팩트가 작동하지 않았겠지요.”


임계점을 넘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마법 사용도, 새로운 아티팩트를 제작하는 것도 불가능.

마법진은 이미 만들어진 것이든 새로 만드는 것이든 모두 작동하지 않는다.

가능한 것은 이미 만들어진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것뿐.

그것도 출력이 강할수록 작동을 하지 않을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진다고 한다.


야쿠프가 데려온 베르티오라는 자는 오시에크에서 제대로 된 유일한 마법사를 자처하는 사람답게 아는 것도 많고 입도 잘 털었다.

금화 2개를 받은 이후로 말이 더 많아진 감이 있기는 했지만, ‘현재의 상식’이 부족한 내게는 오히려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베르티오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암담하기만 했다.

나는 귀를 연 채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달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 대격변 이전에는 마나가 세상을 이루는 근본 요소라는 설이 정설이었습니다. 그러나 달이 사라진 이후에 마나도 사라진 것 때문에 마나는 달에서 온 것이다. 이렇게 정리되고 있습니다. 단지 마나가 입자냐 파동이냐 하는 부분을 놓고 아직 논쟁 중이기는 한데.”


“잠깐만.”


“예?”


“마나가 달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달이 사라진 지금, 마나가 아예 사라진 것도 아니고 희박하다는 말은 뭐요?”


“아! 그것은 달이 사라지면서 달의 조각이 몇 개 테라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아직 희박하게나마 마나가 남아있는 이유가 그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달의 조각이 떨어졌다고?”


“예. 기록에 의하면 산처럼 거대한 조각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피해가 컸다고 하더군요. 이곳 레슈나만 보더라도 영지 외곽에 있는 체르니마스의 마경 지역이 당시 떨어진 달조각 때문에 만들어진 곳이니까요. 당시의 기록을 보면 폭음이 레슈나를 지나서 폴레비아의 중심부까지 들렸고, 며칠 동안 밤이 낮처럼 환했다고 합니다. 그때의 충돌로 그 지역 전체가 완전히 사막으로 변했다지요. 지금처럼 숲이 생긴 것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그런 달조각이 하나도 아니고 몇 개나 세상 이곳저곳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달의 조각을 확보하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이를테면 마경 같은 곳에서.”


“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저런 얼굴을 하고 있으니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베르티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피해가 너무 적었습니다.”


“피해가 너무 적었다니?”


“다른 곳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경우만 보면, 산처럼 거대한 달의 조각이 떨어졌다는데도 불구하고 피해는 레슈나의 외곽 지역뿐이었습니다. 이것은 달조각이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아마 유성처럼 중간에 타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다른 곳에 떨어진 달의 조각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나는 마나가 희박하게나마 세상에 퍼진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꼭 옳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 타지 않은 작은 조각이 땅에 떨어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나로서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달의 조각을 찾아서 마경을 헤매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사람.

생각보다 더 괜찮게 보였다.

단순히 말 많은 마법기술자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하는 방식이 학자로 성공할 만한 자질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쓸만한 마법사로 성장할 만한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나노가 멀쩡했다면 이 사람에게 좋은 선생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베르티오의 말은 내가 테라로 온 이유를 하나둘 지우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래서는 테라에 조난당한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테라에서 마법이 사라지다니.”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자가 나를 갖고 노나 싶어서 베르티오의 눈을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속셈은 없어 보였다.

그냥 신이 나서 떠들고 있을 뿐.

말 많은 사람에게 거금을 안겨주었더니 아예 자리를 펴고 공연까지 하는 느낌이었다.


“달의 조각을 가지고 있는 마탑도 있거든요. 그곳의 마법사들은 마법진을 발동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직까지 비공선이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기는 하지만, 비공선이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놀라운 이야기로군. 한 번 가서 견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야.”


“그것은 아마 안 될 겁니다. 너무 먼 곳이고, 굉장히 폐쇄적이거든요. 평범한 귀족은 상대도 안 해 준다고 들었습니다.”


아하.

그렇단 말이지.

그러나 나는 그것에 대해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내가 어디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명확하게 다른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평하기에는 그렇지만 나 정도면 쓸만한 칼 아닌가?

미끼를 내밀며 나를 사용하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내가 관심을 더 이상 보이지 않은 이유가 한가지 더 있었다.

변경에서 아티팩트 수리로 먹고사는 마법기술자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소문이 퍼진 곳이면 바닥까지 털렸다고 봐야 할 테니까.

3백 년이다. 3백 년.

이렇게 멀리까지 소문이 퍼져 있는데 과연 그들이 소문 그대로 남아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부정적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욕심이 저지르는 일은 상상을 불허하기 마련이니까.


아마 진짜는 소리소문도 없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을 거다.

아니면 터무니없는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마법이 사라진 세상에서 마법을 가졌다는 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해 보라.

전기가 사라진 현대 지구를.

그런데 특정 도구나 물질을 가지면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치자.

그것을 독점한 집단이 있고 말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장담컨대, 내가 못 가지면 너도 못 가져라는 식으로 구는 자들이 한둘이 아닐 거라는 데에 올인할 수도 있다.

그걸 피하려면 적극적으로 숨거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애매하게 폐쇄적으로 구는 것은 최악이다.

아주 맛있어 보일 테니까.


“유감이군. 한 번 정도는 구경하고 싶었는데.”


“마법에 관심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마법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지. 놀랍지 않은가. 마법이 사라졌음에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았다니. 마법사는 발길에 차일 정도로 많았고, 모든 것이 마법에서 시작해서 마법으로 끝난다는 세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


“무너지지만 않았다 뿐이지요. 어쩌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릅니다. 3백 년 전의 일을 기록한 서적들을 보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그 시절로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렇겠지.

이 사람을 마법기술자라고 낮춰부르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가진 기준이 높아서였을 뿐이다.

베르티오 정도면 이 시대에서는 지식인이다.


그런 사람이니 상실한 과거의 문명이 아쉬울 수밖에.

지구로 치면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시기의 문명이 중세 암흑기로 회귀한 꼴이니 이쪽 사람들에게도 그 충격이 보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시궁창이지. 레슈나는 더 심각한 것 같더군. 한 사람을 치우겠다고 용병까지 동원해서 상행 전체를 공격하는 꼴을 보니 정말 이게 뭔가 싶었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야쿠프 님께서 습격을 당하셨다고요. 누가 영지의 계승자가 될지만 결정되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도대체 누가 영지의 계승자가 될 것 같소?”


“아직 모릅니다. 대리 영주님만 결심하시면 되는 문제인데, 돌아가신 영주님 생각이 난다면서 오시에크에 칩거 중이시라서.”


정말 무책임한 처사였다.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하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모양인데, 좋게 보기 힘들었다.

많이 늙어서 거동도 불편하다고 들었는데 욕심이 지나치다.


“대리 영주만 결정하면 끝이오?”


“그렇습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레슈나 가문의 상속제도를 알아야 합니다. 레슈나 가문은 원래 폴레비아의 귀족이 아닙니다. 동방 제국의 귀족으로 3백 년 전에 사절로 방문했다고 하지요. 당시에 일어난 대격변으로 레슈나 북부가 초토화되었고, 동방 제국으로 이어지는 교역로 역시 완전히 사라지면서 이곳에 눌러앉은 것이 레슈나 남작가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상속제가 폴레비아의 일반 귀족 가문과는 좀 다릅니다. 직계만 인정합니다. 직계가 끊어지는 경우는 가문의 합의에 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고 있지요. 합의해야 할 가문의 구성원이 대리 영주 한 분뿐이거든요.”


“가까운 친척이 없다는 거요?”


“놀랍게도 그렇습니다. 계승권에 대해 발언할 만한 자격을 가진 분이 대리 영주님뿐입니다. 먼 친척은 있습니다. 서로 영주가 되겠다고 다투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지요. 하지만 다투는 자들에게까지 발언권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모든 것은 오로지 대리 영주님의 의향에 달린 일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대리 영주가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할 문제였다.

야쿠프와 관련이 있어서 그런지 영주에 대한 충성이 확실해 보였던 상단 사람들 중에서도 다른 곳에 줄을 선 사람이 나올 정도니 말이다.


PMC 시절에 보았던 군벌의 내부 분쟁이 떠올랐다.

단순히 이익에 관련된 것이라면 냉정하게 타협을 보는 자들도 후계자나 2인자에 대한 문제에서는 파멸적인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욕심에 눈이 가리고, 정에 이끌려서 그러는 거다.

그러다가 2인자에게 뒤통수를 맞고 골로 가곤 했다.


본래 있던 도시를 떠나서 다른 곳에 칩거하는 것을 보니 뒤통수를 맞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이대로는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떠날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보이는 것을 평생을 귀족으로, 영주로 살아온 사람이 모르지는 않겠지.


나는 레슈나 가문의 계승권에 대한 설명에 이어, 누가 영주가 되기 위해 누구에게 선을 대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베르티오에게 집중했다.

이 사람의 정보와 지식은 정말 방대했고, 입은 멈출 줄 몰랐다.

금화 2개가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금화를 2개나 써 가며 베르티오가 마음껏 떠들게 한 어제의 나에게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대리 영주의 호출이 온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은 머리 용병은 군주가 되기로 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은 저녁 7시입니다. 24.04.29 189 0 -
공지 글의 방향성에 대해. +2 24.04.24 2,989 0 -
31 7. 이제 진짜 영주가 되었다. (4) NEW +5 16시간 전 1,080 73 12쪽
30 7. 이제 진짜 영주가 되었다. (3) +5 24.05.19 1,629 86 13쪽
29 7. 이제 진짜 영주가 되었다. (2) +4 24.05.18 1,743 92 13쪽
28 7. 이제 진짜 영주가 되었다. (1) +4 24.05.17 1,936 89 12쪽
27 6. 영주가 해야 할 일 (6) +4 24.05.16 2,124 92 12쪽
26 6. 영주가 해야 할 일 (5) +7 24.05.15 2,342 103 12쪽
25 6. 영주가 해야 할 일 (4) +6 24.05.14 2,450 110 12쪽
24 6. 영주가 해야 할 일 (3) +4 24.05.13 2,569 100 12쪽
23 6. 영주가 해야 할 일 (2) +2 24.05.12 2,724 96 13쪽
22 6. 영주가 해야 할 일 (1) +3 24.05.11 2,912 113 12쪽
21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5) +6 24.05.10 2,866 111 12쪽
20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4) +3 24.05.09 2,883 111 11쪽
19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3) +2 24.05.08 2,946 113 12쪽
18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2) +1 24.05.07 3,164 112 12쪽
17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1) +3 24.05.06 3,267 110 12쪽
16 4.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4) +6 24.05.05 3,295 122 12쪽
15 4.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3) +4 24.05.04 3,326 123 13쪽
14 4.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2) +3 24.05.03 3,340 113 12쪽
13 4.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1) +6 24.05.02 3,502 115 12쪽
12 3. 결정은 내가 한다. (4) +4 24.05.01 3,633 115 12쪽
11 3. 결정은 내가 한다. (3) +4 24.04.30 3,713 118 12쪽
10 3. 결정은 내가 한다. (2) +6 24.04.29 3,796 127 12쪽
» 3. 결정은 내가 한다. (1) +4 24.04.28 4,009 122 12쪽
8 2. 오해하는 사람들 (4) +4 24.04.27 4,082 130 12쪽
7 2. 오해하는 사람들 (3) +6 24.04.26 4,156 130 12쪽
6 2. 오해하는 사람들 (2) +6 24.04.25 4,339 129 12쪽
5 2. 오해하는 사람들 (1) +4 24.04.24 4,715 133 14쪽
4 1.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4) +6 24.04.23 5,142 145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