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타자씨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머리 용병은 군주가 되기로 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타자씨
작품등록일 :
2024.03.07 20:13
최근연재일 :
2024.05.17 18:59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70,300
추천수 :
2,452
글자수 :
156,681

작성
24.04.21 11:05
조회
6,165
추천
105
글자
12쪽

1.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1)

DUMMY

1.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1)


나는 다시 한번 차원이동에 성공했다.


* * *


숨을 쉴 수 있어?

숨을 쉴 수 있다고!


허공에서 뚝 떨어졌지만,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저 게걸스럽게 공기를 들이켤 뿐.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시야는 흐릿하고, 머리는 멍했다.

제대로 생각이 이어지지도 않았다.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나서 어리둥절한 기분이랄까.

아니면 사고로 의식을 잃었다가 눈을 뜬 직후의 느낌?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방금 차원이동을 했으니까.


물질과 비물질 사이에서, 내가 나인 듯 아닌 듯 기묘한 상태로 시간의 흐름조차 느끼지 못한 채 흘러 다녔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면서.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차원이동의 부작용은 점점 사라져갔다.

정신이 맑아지고 시각과 후각, 촉각까지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간단한 덧셈과 뺄셈도 헷갈리던 머리가 비로소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주변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차가운 새벽의 공기.

습기 찬 풀에서 느껴지는 축축함.

흙과 나뭇잎이 함께 어우러져 발산하는 숲의 냄새.

손에 쥔 검의 손잡이까지.


살았구나.

차원이동에 성공했구나.


나는 기쁨과 안도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쁨과 안도감은 잠깐이었다.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무엇인가가 거슬렀다.


뭐지?

차원이동은 성공한 것이 아니었나?


나는 내 눈에 들어온 모든 것을 다시 훑었다.


어두운 밤하늘, 별, 달.

달.

달이 둘?


왜 달이 둘이야!!


순간 정신이 번쩍 깨어나는 느낌으로 눈을 크게 떴다.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나는 검을 지팡이 삼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내가 무엇인가 착각했기만을 바라며 밤하늘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달은 여전히 둘이었다.


셋이 아니잖아!


흑마법사인 말론으로부터 얻은 정보대로라면 이곳, 테라의 밤하늘에 떠 있어야 할 달은 셋이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달의 숫자는 둘.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야?

······설마 차원이동에 실패한 건가?


공간마법에 대한 권위자임을 자처했던 흑마법사 말론.

지금도 내 머릿속에 있을 나노머신 기반 인격AI인 나노.


이번 차원이동을 설계하고 시뮬레이션 한 자들이었다.

둘 모두 자신만만하게 차원이동의 성공을 장담했다.


나는 그들의 설계도에 따라 차원이동마법진을 건설했다.

조금의 오차도 없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달의 숫자는 둘.

그들이 뭐라고 하든 결과는 실패였다.


그들이 설계하고 내가 건설한 차원이동마법진은 달이 세 개인 말론의 고향 행성 테라가 아니라 엉뚱한 곳으로 나를 보내버렸다.


도대체 어디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일까?


속이 부글거렸다.

일회성이라고는 하지만 차원이동마법진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막대한 양의 금속과 인력은 개인이 감당할 만한 규모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거기에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그런데 그 고생을 하고도 엉뚱한 곳에 떨어지다니!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다니!


당혹감과 허탈함,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러나 이대로 화를 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예정했던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왔다면 과연 내가 이곳에서 생존이 가능할지부터 따져야 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호흡?

호흡은 가능했다.

그렇지 못했다면 벌써 죽었겠지.


그렇다면 물은? 식량은?

숲이 있고, 풀에 이슬이 맺힌 것을 보니 설마 목이 말라서 죽는 일은 없을 것 같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확신은 아직 일렀다.

무엇보다 사람이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한 생명체가 있기를.

이왕이면 문명을 건설했을 정도로 발달했기를 바라지만 과연?


······이곳이 테라일 가능성은 정말 없는 것일까?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가 필요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이십 미터가 넘는 높이의 나무들이 방사형으로 쓰러져 있었다.

공중에서 거대한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차원이동의 영향으로 생긴 충격파 때문에 벌어진 일이 분명했다.


나무가 쓰러져서 생긴 공터의 반경은 수백 미터에 달했다.

그 너머로는 계속 숲이었다.

인간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눈에 닿는 범위 내에서 인공적인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명이 없지는 않았다.

멀리서 다양한 새소리가 들리고, 종류를 알 수 없는 짐승의 소리도 들려왔다.

바람이 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소리, 풀이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평범하게 들을 수 있는 숲의 소리였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걸으면서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확인했다.

나무, 풀.

모두 눈에 익은 형태였다.

지구에서도 한제국에서도 보았던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가 오랜 세월을 보냈던 한제국은 내공을 기반으로 하는 무공이 있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지구와 무척 닮은 꼴이었다.

심지어 역사까지 흡사할 정도로 말이다.

말론은 테라 역시 마법이 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사람이나 자연은 한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무엇인가 착오가 생겨서 차원이동마법진이 엉뚱한 곳으로 나를 보내기는 했지만, 아주 터무니없는 곳으로 보낸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한제국이나 테라처럼 이곳 역시 지구와 닮은 꼴의 평행우주일 가능성이 높았다.

적어도 물이나 식량을 구하지 못해서 죽을 일은 없을 듯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바로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옷이 바스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잠깐 움직인 것만으로도 옷이 사각거리며 찢어지는 모양새가 얇은 종이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다.


보호대와 흉갑 역시 쿠크다스와 별로 다르지 않은 꼴이 되어 버렸다.

누르면 누르는 대로 뚝뚝 부러지고, 세게 쥐면 가루로 변해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유일한 예외는 검뿐이었다.

정확히는 검신만 멀쩡했다.

검집이나 검손잡이처럼 검신과 다른 재질을 가진 부분도 변질을 피해가지 못했다.


내 육체와 검신을 제외한 모든 것의 물성이 변화한 것이다.

아무래도 차원이동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이래서는 나뭇잎으로 스커트부터 만들어야 할 판이다.

다행히 이곳이 숲이라서 급한 대로 대충 몸을 가릴 수는 있었다.


그 과정에서 버섯뭉치를 발견한 것은 우연.

식량으로 써도 될 만큼 분량도 제법이었다.

화려한 모양새가 아무래도 독버섯처럼 보였지만, 붉거나 노란 색의 버섯이라고 해서 반드시 독버섯인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독버섯이라고 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치료용 나노머신이 있는 이상 독은 내게 위험이 되지 않으니까.

그래도 차원이동을 겪은 후이니 전문가의 의견을 묻기로 했다.


“나노, 이거 먹어도 괜찮겠지?”


조용했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버섯을 향해 내밀던 손이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설마? 또? 진짜?


사실 이곳에 온 이후로 아무런 말이 없었던 나노가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말을 걸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나노머신이 차원이동에 취약하다는 것은 이미 경험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나노는 내 질문에도 불구하고 대답이 없었다.

만능비서 시스템의 특성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노. ······나노? 이런 젠장. 또 다운이냐? 나노!”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하지만 나노는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먹통이 되어 있었다.

내가 한제국으로 떨어졌던 최초의 차원이동 과정 중에 다운 되었던 것처럼, 이번 두 번째 차원이동 과정에서도 같은 문제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두 개의 달을 접한 순간 느꼈던 당혹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혼란하고도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한제국에서 경험했던 온갖 기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좋았던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불쾌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것들이었다.


한제국은 내공과 무공 그리고 무림까지, 상상만 하던 무협 소설 속의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현대 지구에 비해 문명 수준이 떨어졌을 뿐 확고한 신분제를 바탕으로 굴러가는 행정체계가 제법 치밀한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내공이 없는 일반인의 처우가 어떨지는 약간만 상상해도 금방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피지배자.

그것도 저항 수단이 없는 피지배자다.

얼마나 뜯어먹기 좋겠는가.


그곳에서는 나 역시 일반인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기관에서 내 골격계를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소재로 갈아 끼웠다고 해도 내공이 없는 이상 튼튼하고 쓸만한 일반인 아무개,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지나가던 무공 고수의 손짓 한 번에 끝장나기는 마찬가지니까.

게다가 나노머신 시스템까지 다운되었으니 기댈 수 있는 것은 그때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뿐이었다.


나는 낯선 땅에 던져진 외노자답게 튼튼한 몸과 약간의 지식을 밑천으로 바닥부터 굴러야 했다.

생존과 귀환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명확했다.

거기에 하필이면 권력투쟁에 휘말리기까지 했었으니······


결국 나는 암습으로 인해 죽기 바로 직전까지 갔었다.

만약 그때 나노가 내 상태에 따른 기계적 절차로 긴급구조 프로토콜을 발동시키지 않았다면 분명히 죽었을 거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노머신을 잃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보호 마법진을 중첩했는데도 다시 이런 꼴이다.


물론 말론은 아직 시험 단계였던 기관의 차원이동과 달리 자신이 시도하는 차원이동은 절대로 안전하다면서 큰소리를 쳤었다.

이론적이기는 하지만 문제가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자신들이 무사히 한제국에 도착한 것으로 증명이 끝난 것이 아니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엉뚱한 곳에 도착한 이상 그의 주장을 신뢰할 수는 없다.


몇 차례 나노를 호출하던 나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두 번째 차원이동에서도 나노머신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차원이동자를 보호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음에도 같은 일이 또 벌어진 것을 보면 나노머신 자체가 차원이동에 취약하다는 것이 사실로 증명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나노머신이 완전히 소실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차원이동자를 보호하는 방식이 전과 달라졌으니까.

나노를 재부팅 시킬 최후의 수단을 두고 결정을 내려야 할 내게 가장 큰 고민거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노머신의 완전 소실 가능성.


긴급구조 프로토콜 1115의 발동?

못 할 것도 없다.

조건만 맞추면 된다.


죽기 바로 직전 상태.

그대로 방치하면 반드시 죽어버리는 위험한 상태.

그것이 조건이다.


하지만 그것을 시도하는 것이 맞을까?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나노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나노머신의 숫자가 너무 줄어서 외부 탐지기능조차 먹통이 되었거나 아니면 차원이동 과정에서 나노머신이 완전히 소실되어서 나노가 반응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때는 그냥 죽는 거다.

멍청한 짓으로 죽은 사람에게 준다는 다윈상의 수상후보가 될 정도로 어이없는 자살이 되겠지.


결국 나는 고개를 젓고 말았다.

너무 위험했다.

예상 밖의 장소에 떨어져서 곤란하기는 했지만 생명을 걸고 도박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별로 확률이 높은 도박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생존을 위해서는 나노머신 이외의 다른 수단에 기대야 할 것 같았다.


내공.

한제국에서 익힌 또 다른 가능성 말이다.


작가의말

오늘 자정에 한 편 더 올라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은 머리 용병은 군주가 되기로 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은 저녁 7시입니다. 24.04.29 142 0 -
공지 글의 방향성에 대해. +2 24.04.24 2,114 0 -
28 7. 이제 진짜 영주가 되었다. (1) NEW +3 3시간 전 378 40 12쪽
27 6. 영주가 해야 할 일 (6) +4 24.05.16 1,040 70 12쪽
26 6. 영주가 해야 할 일 (5) +6 24.05.15 1,379 83 12쪽
25 6. 영주가 해야 할 일 (4) +6 24.05.14 1,561 88 12쪽
24 6. 영주가 해야 할 일 (3) +4 24.05.13 1,704 82 12쪽
23 6. 영주가 해야 할 일 (2) +2 24.05.12 1,841 79 13쪽
22 6. 영주가 해야 할 일 (1) +3 24.05.11 2,002 90 12쪽
21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5) +6 24.05.10 1,982 87 12쪽
20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4) +3 24.05.09 2,000 87 11쪽
19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3) +2 24.05.08 2,049 86 12쪽
18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2) +1 24.05.07 2,209 86 12쪽
17 5. 용병에게는 고용주가 필요하다. (1) +3 24.05.06 2,284 84 12쪽
16 4.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4) +6 24.05.05 2,326 94 12쪽
15 4.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3) +4 24.05.04 2,340 94 13쪽
14 4.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2) +3 24.05.03 2,347 86 12쪽
13 4.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1) +4 24.05.02 2,458 86 12쪽
12 3. 결정은 내가 한다. (4) +2 24.05.01 2,549 86 12쪽
11 3. 결정은 내가 한다. (3) +4 24.04.30 2,583 91 12쪽
10 3. 결정은 내가 한다. (2) +6 24.04.29 2,634 96 12쪽
9 3. 결정은 내가 한다. (1) +4 24.04.28 2,811 89 12쪽
8 2. 오해하는 사람들 (4) +4 24.04.27 2,854 90 12쪽
7 2. 오해하는 사람들 (3) +4 24.04.26 2,895 91 12쪽
6 2. 오해하는 사람들 (2) +4 24.04.25 3,017 90 12쪽
5 2. 오해하는 사람들 (1) +3 24.04.24 3,263 95 14쪽
4 1.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4) +6 24.04.23 3,561 100 14쪽
3 1.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3) +4 24.04.22 3,699 93 12쪽
2 1.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2) +3 24.04.21 4,348 104 15쪽
» 1.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1) +10 24.04.21 6,166 105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