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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씨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머리 용병은 군주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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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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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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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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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오해하는 사람들 (3)

DUMMY

2. 오해하는 사람들 (3)


나는 지구에서 PMC, 그러니까 현대의 용병으로 불리던 민간군사기업 소속으로 활동했었다.

우리가 아는 상식과 달리 PMC가 전투에 참여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경비와 군사고문 위주로 활동한다.


그러나 일부는 PMC의 이름에 걸맞은 일, 더럽고 위험하고 죽음에 한 발 걸친 일을 한다.

내가 활동한 쪽이 바로 그런 분야였다.


그런 내 경험에 의하면 기습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 특히 이렇게 공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오히려 반대로 기습을 당했다면, 당연히 후퇴해서 피해를 줄여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훈련이 부족한 군대라면 겁을 집어먹고 사방으로 흩어져서 달아나기 십상이니까.


간혹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명령권자가 무턱대고 무조건 공격을 외치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그런 경우는 억지를 부리던 자의 뒤통수에 총알이 박히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다 함께 사이좋게 지옥으로 행군하거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자들은 총과 RPG가 아니라 칼과 철퇴를 들고 있는 것에서 차이가 날 뿐,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PMC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쌓은 자들이었다.

몸을 숨긴 채 총 몇 번 쏘고 전투 경험자라며 으스대던, 자신이 소모품인지도 모르고 날뛰던 멍청이들과 달리 바로 코앞에서 칼을 맞대고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과연 그들은 경험 많은 용병이 보일 법한 행동을 취했다.

기습이 실패했음을 깨닫자마자 미련을 버리고 곧장 후퇴하려고 한 것이다.

후퇴하려는 방향은 상단 있는 곳과 반대편, 내가 있는 곳이었다.

혼자서 쇠뇌를 다시 장전하고 있는 자가 있는 곳 말이다.


“실패다! 도망쳐!”


“대장! 보그만 님의 말씀은!”


“집어치워. 지금은 아니야! 움직여!”


잠깐 잡소리가 나오기는 했지만, 7명의 용병은 일제히 내가 있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과 나 사이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

전력으로 달린다면 순식간에 도달할 정도.

그러나 내가 쇠뇌를 재장전하고 한 방 쏘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다시 한번 볼트가 날아가고 선두에 선 자가 땅바닥에 굴렀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이 빡세게 들어가는 것이 보였을 뿐이다.

도망치는 길목에 내가 있으니 겸사겸사 칼질도 해주겠다는 생각이겠지.

나 역시 그렇다.


볼트를 발사하자마자 새롭게 선두가 되어버린 적이 내게 도달했다.

그가 칼을 위로 치켜드는 순간,

나는 그를 향해 빈 쇠뇌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등 뒤의 검을 뽑으며 휘둘렀다.

반원을 그린 검끝이 쇠뇌 때문에 멈칫한 적의 어깨와 가슴을 가르고 지나갔다.

가죽으로 된 흉갑은 칼 댄 두부처럼 깔끔하게 잘려 나갔고, 적은 피를 뿜으며 비틀거렸다.


뼈무덤에서 주운 검.

좋은 검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괜찮은 느낌이었다.


뒤이어 들이닥친 적 역시 가볍게 튕긴 검 끝에 철퇴를 잡은 손가락이 모두 날아갔다.

그는 어린애처럼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굴렀다.


그 모습을 목격한 나머지 적들은 다급하게 좌우로 나를 피해서 달렸다.

싸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도망을 먼저 선택했기 때문일까?

난전(乱战)을 기대했던 나는 약간의 실망을 느끼며,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도망치는 자의 등판이 무방비하게 내 앞에 보였다.

손에 닿을 거리.

검으로 찌르기에는 충분하고도 약간 남는 거리였다.

도망치던 용병도 그 사실을 느꼈는지 뒤를 흘낏거리다가 내 눈과 마주쳤다.


“으아아~악!”


겁먹은 눈빛이 고통과 경악으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등을 꿰뚫린 용병은 비명을 지르다가 숨도 못 쉬고 컥컥거렸다.

그나마도 두세 번 컥컥거린 것이 끝이었다.

그는 생기를 잃고 축 늘어졌다.


뒤늦게 상인들이 무기를 들고 몰려왔지만, 습격해 온 자들을 따라잡기에는 너무 거리가 났다.

따로따로 흩어져서 숲으로 사라진 자들을 뒤쫓기에는 이쪽도 여력이 없었다.

대신 상인들은 죽은 자들을 확인하고 부상자들을 묶어서 수레로 옮겼다.


여덟 명 중 셋은 죽었고, 둘은 부상을 입은 채 사로잡혔다.

도망친 자는 셋.

어설픈 사냥꾼은 오히려 사냥감이 되기 십상이라는 이곳에서 흩어져서 도망치다니.

저 사람들, 과연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개척마을의 덫사냥꾼도 장담할 수 없다는 길을?

혼자서?

의문이었다.


“덕분에 피해가 없었습니다. 이 일에 대한 감사는 소스노비로 도착하면 크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상단주 야쿠프는 뒷수습이 바쁜 와중에도 내게 와서 감사를 표했다.

말로 때우는 것이 아니라 따로 사례까지 언급하는 것이 이 일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친 사람이 없으니 다행입니다.”


“모두 기사님 덕분이지요. 더구나 그토록 놀라운 검술이라니! 마경을 홀로 다니시는 분다웠습니다. 상행을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토록 뛰어난 검술을 지니신 분은 정말 드물게 봅니다.”


내 검술을 찬양하는 야쿠프의 시선이 내 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탐욕은 아니었다.

놀라움과 호기심, 약간의 갈망?

왜 검에 그리 관심을 보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내게 우호적이었다.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던 PMC의 후배들에게서 간혹 느끼던 분위기와 흡사했다.


“별말씀을. 나와 같은 사람은 세상에 많습니다.”


저쪽 세상에 말이다.

이쪽 세상은 아직 모르겠다.


“그런데 이 지역이 위험하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산적이 대놓고 날뛰는 곳인 줄은 몰랐습니다.”


“산적은 아닐 겁니다.”


대답하는 야쿠프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나는 말수를 줄이는 그를 따라 상단의 수레 쪽으로 향했다.


* * *


산적일 수가 없지.


야쿠프는 이미 판단을 내린 후였다.


이곳이 마경에서 벗어난 곳이고, 이렇게 상행도 다니고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체르니마스의 마경 외곽에 해당한다.

마경에서 밀려 나온 야생동물들을, 간혹 마물까지도, 언제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산적이?

절대로 불가능하다.


레슈나 영지에서 전력을 기울여서 투자한 병력마저 녹아난 곳이 마경이다.

티탄급의 기사였던 영주조차 죽었을 정도다.


아무리 마경의 외곽이라고 해도 산적 따위가 웅거하고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레슈나의 기사나 병사들은 모두 병신들이었겠지.


야쿠프가 볼 때 저들이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상단이 쥐고 있는 무력과 재산이 탐이 나고, 신경도 쓰이니까 상단주를 치우고 싶은 자다.

대리 영주의 친척들.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대리 영주 이후를 보고 자리다툼을 하는 자들 중 하나가 보냈으리라.

셋 중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셋 다 기회만 된다면 똑같은 짓을 할 놈들이니까.


수레로 끌고 온 자들은 상단의 조합원들이 조사하는 중이었다.

가죽 갑옷째 어깨에서 가슴까지 베인 자는 반쯤 죽어가는 중이라서 무엇인가를 질문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오른손의 손가락을 모두 잃은 자는 통증이 심해서 그렇지 입은 멀쩡했다.

그러나 그는 조합원들의 질문에도 완강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벌써 몇 대 얻어맞았지만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때려봐야 아프게 느껴지겠어? 손가락이 저 모양인데.”


“그러면 아예 손을 잘라야 하나? 아니면 왼손에 있는 손가락을 잘라?”


상인과 용병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자들답게 포로를 앞에 두고 주고받는 대화는 살벌하다 못해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포로로 잡힌 자는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당장이라도 실행에 옮겨질 것은 협박 사이에서 넋이 나간 듯했다.

아니면, 넋이 나간 흉내를 내고 있던지.


“어디서 온 놈들이지? 나는 처음 보는 놈들인데? 혹시 이놈들 본 적이 있는 사람?”


“처음 보기는 하지만 생김새가 익숙해. 이 얼굴은 블라바 아재와 비슷한데? 그 아재 젊은 시절이 딱 이 모습이야. 너 블라바라고 오시에크에서 과수원하는 아재 아냐?”


“그 집안 아들들 중에 용병 모집으로 떠난 녀석이 몇 명 있었지? 아무래도 그놈들 중 하나같은데?”


소도시의 특성이다.

인구가 몇 만에 불과하고, 평생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라서 이름과 얼굴 정도는 대충 다들 서로서로 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어느 집안 사람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저놈들, 보그만이라는 사람을 언급하더군. 그 사람 휘하에 있는 것처럼 말했네.”


조사를 지켜보던 이한이 끼어들어서 한마디 던졌다.

적절한 정보였다.

조합원들은 대번에 앞뒤를 꿰맞추고 포로를 을러댔다.


“아! 그러면 맞습니다. 보그만이라면 스보이타 백작쪽 사람입니다. 당시에 용병을 모집해 갔던 곳이 스보이타 백작령이었으니까 앞뒤가 맞아떨어집니다.”


“이놈의 입을 열려면 블라바네 집안을 털면 되겠군요. 야. 너희 집안 작살나지 않으려면 증언 제대로 해야 될 거다.”


창백해진 포로의 얼굴은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위협 때문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 모습을 보던 야쿠프는 조사를 중단시켰다.


“이제 그만. 상처를 치료하고 상단 감옥에 가두도록 해. 나중에 쓸모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상행은 중단이다. 갈리노는 가지 않겠다. 우리는 곧장 소스노비로 복귀한다.”


야쿠프의 선언에 상단에 참여한 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나는 이들의 조사 과정을 지켜보며 이들 사이에 끼어드는 것이 쉽지 않겠다고 느꼈다.

익명성에 기반한 생활에 익숙한 도시출신의 현대인과 달리 이들은 서로가 강하게 결속되어 있었다.


한국도 과거에는 이웃집 젓가락 숫자까지 안다는 말이 당연했다고 한다.

전근대 시절, 소규모 지역 사회가 기본이었던 시절의 흔적이다.

그런데 이곳은 그것이 현재 진행형이다.


마법사를 찾고, 도움을 구해야 할 입장에서 뿌리없는 외부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지역도 이곳 같을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상인들이 움직이자 야쿠프가 내게 다가왔다.


“상황이 이래서 죄송합니다. 되도록 빨리 소스노비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신경 쓸 것 없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야쿠프가 좀 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야쿠프에게 내가 엿들은 것을 말해 주었다.

상단에 이번 습격과 관련되어 연루자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야쿠프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아마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상단이 아니라 여러 상단이 모인 곳이라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섞여 들어오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상단이라기보다는 조합에 더 가까우니까요.“


“모르던 것을 하나 또 알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사실도 알려주시고, 여러모로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가 도움받은 분의 이름도 모르고 있더군요. 실례가 아니라면 제가 은인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과장된 감사인사였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아마 인연을 계속 잇고 싶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와 알고 지낸다는 것이 손해볼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별 생각없이 이름을 알려주었다.


“내 이름은 이한입니다.”


“리한, 리안? 발음이 어렵습니다. 혹시 성이 어떻게 되십니까?”


“성은 이, 이름은 한. 그래서 이한입니다.”


내 성을 듣는 순간, 가면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야쿠프의 표정이 깨졌다.

다급하게 다시 평정을 가장했지만, 내 성을 듣고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이름도 아니고 성(姓)에?

이씨가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공치사를 주고받으며 느슨해있던 내 감각이 다시 날카롭게 곤두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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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3. 결정은 내가 한다. (1) +4 24.04.28 2,829 89 12쪽
8 2. 오해하는 사람들 (4) +4 24.04.27 2,870 90 12쪽
» 2. 오해하는 사람들 (3) +4 24.04.26 2,911 9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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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 오해하는 사람들 (1) +3 24.04.24 3,282 95 14쪽
4 1. 내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4) +6 24.04.23 3,580 10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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